맥아더와 오펜하이머, 영웅과 반역 변증법

2012. 01. 20
조회수 48864 추천수 1

중국 핵공격 주장했다가 잘린 뒤 화려한 귀환

원폭의 아버지로 추앙 받다 반공 광기에 희생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와 오펜하이머 박사.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트루먼 대통령을 짜증나게 해서 현직에서 해임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는 미국의 전쟁 영웅이었으나 중국 본토로 확전을 주장하다가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1951년 4월에 해임되었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인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로 2차 대전을 종식 시킨 미국의 과학영웅이었으나 1949년부터 좌익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1954년에 기소 당했고, 이로 인해 열렸던 정부 청문회 결과로 보안사항 취급허가와 정부 고위층의 자문역을 상실하게 되었다. 

 

“내 손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다” 민간인 살상에 죄책감

 

두 미국의 영웅이 트루먼 대통령을 짜증나게 하면서 자기 파멸의 길을 간 이유는 상반된다. 먼저 맥아더는 중국군은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개입하더라도 그 숫자는 6만 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중국군 30만 명이 개입하여 유엔군을 후퇴시키면서 맥아더는 만주에 대한 폭격, 중국 연안도시 공격, 핵무기 사용을 대통령에게 주장했다. 사실상 3차 대전을 불사하자는 주장이다. 트루먼은 맥아더의 독선과 오류를 응징했다. 

 

한국전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맥아더와 트루먼은 태평양상의 웨이크 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맥아더 장군은 트루먼 대통령의 도착시간보다 늦게 영접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화가 치민 대통령은 맥아더가 영접하러 비행기 앞에 올 때까지 비행기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가 맥아더가 영접을 하러 비행기 앞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비행기에서 내려왔다. 일설에 의하면 트루먼에게 반감을 가진 맥아더가 일부러 늦게 왔다는 분석도 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맥아더에게 단 한 번의 긍정적 느낌도 가질 수 없었다. 맥아더를 해임하고 트루먼은 한국전쟁을 종결지었다. 

 

오펜하이머는 맥아더와 정반대의 이유로 고초를 당한다. 1941년경부터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그는 43~45년에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소장으로서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많은 과학자를 모아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종전 후 ‘원폭의 아버지’로서 국가적 영웅이 되었으나 1949년부터 수소폭탄을 개발하려는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 시작한다. 광신적인 반공사상인 매카시즘 풍조 속에 일어난 ‘오펜하이머 사건’은 교직원 노동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반파시즘 운동을 하는 좌익계의 친구들과의 친분, 좌익 계열의 처까지 문제를 삼았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개발한 원자탄으로 일본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살상된 데 죄책감을 가졌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 손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은 트루먼 대통령은 주위 참모들에게 “다시는 저 얼간이를 내 옆에 오지 못하게 해”라면서 화를 냈다는 일화도 있다. 소련이 수소폭탄 실험을 한 데 대해 미국도 이를 개발하려고 하자 오펜하이머는 위력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폭탄 개발을 온몸으로 저지하려 했다. 

 

청문회에서 오류와 독선 드러나 몰락하며 “노병은 사라질 뿐”

 

필자가 이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을 쏟는 이유는 인간과 전쟁, 과학에 대한 상반된 두 시각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핵무기를 사용하자고 했고, 한 사람은 핵무기를 없애자고 했다. 맥아더는 “폭력의 사용에는 한계가 없다”는 클라우제비치의 전쟁관을 신봉한 군인으로서 절대전쟁을 추구했다. 오펜하이머는 언젠가 인류가 적은 비용으로 핵개발 경쟁에 뛰어드는 과학의 재앙을 예견했고, 인간의 역사는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절대 평화주의자였다.


투르먼과 맥아더.jpg imagesCA4M9XBE.jpg 


맥아더는 군인으로서 군사적 승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맥아더형 미국의 군인들은 종종 대통령마저 놀라게 하는 극단주의자들이다. 1962년에 쿠바미사일 위기가 발생한 직후에 핵전쟁 가능성이 거론되었다. 토마스 파워 미 전략공군사령관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각하, 핵전쟁이 일어나서 미국인 두 사람 살아남고 소련인이 한 사람 살아남으면 미국이 이기는 전쟁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군인으로서의 명제 외에는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케네디 대통령은 핵전쟁을 포기하기로 하고 1963년의 유엔 연설에서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련과 핵무기 감축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다. 전쟁 승리가 아닌 전쟁 폐지가 케네디의 목표였다. 이에 냉전세력의 미움을 받은 케네디는 1963년에 암살 당한다. 

 

두 사람이 해임 당할 당시에 미국의 여론 역시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맥아더를 해임한 트루먼 대통령이 마침 메이저리그 개막식에서 시구를 하기 위해 야구장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일제히 트루먼에게 야유를 보냈다. 얼마 후 맥아더는 전 국민의 뜨거운 환영 속에 귀환했고, 맥아더의 인기에 눌려 트루먼의 지지도는 사상 최악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오펜하이머는 이미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혔고 이어 과학계와 공직에서 따돌림 받았으며, 반역자로 기소된다. 

 

그러나 곧이어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맥아더의 오류와 독선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맥아더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사라졌다. 이윽고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는 애초 기대했던 맥아더가 아니라 그의 경쟁자였던 아이젠하워가 선출되었으며, 맥아더는 “노병은 사라질 뿐이다”라는 그의 말대로 사라졌다. 

 

반면 반역자로 단죄된 오펜하이머에 대해 미국의 지성은 그를 재평가하였고, 1963년에 미 정부는 그에게 엔리코페르미상을 수여하였다. 과거 미국 정부가 오펜하이머에게 가한 부당한 평가와 처우는 잘못된 것으로 정부에 의해 시인되었으며, 오펜하이머의 명예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이후 한국의 광풍과 닮은꼴

 

2010년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고 전쟁을 추종하면서 강압적인 대북정책의 광기가 판치는 지금의 한국사회와 아주 유사한 1950년대의 미국 사회를 두 사람의 통해 들여다보게 된다. 평화와 공존을 외치는 한국의 지성들이 조선, 중앙, 동아와 같은 메이저급의 언론에 의해 사냥 당하고, 정부의 강압적 대북정책에 반대한 교수들의 정부 연구비 지원은 끊어졌으며,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과학자들이 몰매를 맞았다. 북한은 혐오스럽고 비정상적이며 사악한 집단이라는 혐오정서가 널리 퍼지면서 남북관계는 ‘나(I)와 너(you)의 관계’에서 ‘나와 그것(it)의 관계’로 바뀌었다.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현 정부가 기댈 곳은 바로 매카시즘적 광기였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필자는 근대 국가를 건설해 본 경험이 없이 왕조와 같은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이 개혁과 개방으로 나오기를 갈망하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북한의 변화는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고 또한 믿는다. 군사문제를 연구해 온 필자는 당장 한반도가 평화공존 단계로 전환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고, 지금의 남북 대치상황이 단기간 내에 사라질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은 평화와 공존으로 갈 수밖에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고, 이명박 정부 4년은 단지 일시적인 역류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에서 1950년대에 잠깐 나타났던 광기의 시간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광기의 시간에서는 영웅이 반역자로, 반역자가 영웅으로 둔갑되는 비정상적 현상과, 인간과 전쟁과 과학에 대한 무지몽매함이 잠시 드러날 뿐이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고수해야 할 목표가 ‘북한을 이기는 것’인가, 아니면 ‘북한과의 갈등을 멈추는 것’인가?   

 

필자는 오펜하이머와 같은 자기희생적인 평화주의자를 원한다. 일견 안보주의자들은 가장 애국적으로 비쳐질지 몰라도 장기적인 역사에서는 승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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