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반도의 봄과 북한 핵

강태호 2014.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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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봄-‘전면 대결전’과 ‘플레이북’

  

  2013년 봄 한반도는 그 어느때보다도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2월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은 3월26일1호 전투근무 태세를 발동시켰다. 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은 “지금 이 시각부터  전략로케트군 부대들과 장거리 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 포병군 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킨다”고 밝혔다. 1호 전투근무 태세는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최종적으로 전략로케트군의 미 본토 괌 일본 등의 미군기지에 대한 타격계획을 비준했다는 걸 의미했다. 실제로 그 뒤 북은 사정거리 4000 km로 추정되는 중거리 미사일 무수단을 동해안으로 이동시켜 발사 대기상태에 들어갔다.총련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이는 2012년 12월12일의 “인공위성 발사를 불법시한 유엔의 안보리 제재 결의에 대응한 북한의 전면대결전”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2103년 4월3일자)에 따르면 미국은 이른바 ‘플레이북’으로 대응했다. 작전계획의 하위 개념인 플레이북은 2012년 12월 미 태평양 사령부가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응해 새롭게 마련한  일종의 ‘전술교본’이었다. 그 목적은 북이 위협을 가할 경우 훨씬 강력하고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 정부의 지나친 군사적 대응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된 3월11일을 기점으로 실제 무기를 동원한 ‘도상(圖上)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3월19일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등 3월에만 세 차례 이상 B-52를 출격시켰다. 또 20일엔 전략핵잠수함인 샤이엔을 연습에 참가시켰으며 이런 사실들을 모두 공개해 힘을 과시했다. 그러자 북한은 20일 B-52가 재출격하면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전략로켓군 부대들과 장거리포병 부대들에 대한 1호 전투근무태세를 발동시킨 것이다. 그러자 미국은 28일 B-52를 능가하는 스텔스 전략폭격기인 B-2를 미 본토로부터 출격시켰다. 북도 물러서지 않았다. 29일 김정은은 전략미사일 부대의 화력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사격 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북한도 이 회의를 언론에 공개했다.  미국은 3월31일 주일미군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킴으로써 이 또한 무시했다.

 

 ▶무수단 발사 중단-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조짐

 

 평양주재 외국공관에 전쟁 가능성을 이유로 철수권고를 내리며 발사단추를 누르겠다던 북이 무수단 발사 중단 움직임을 보인 건 4월12일이었다. 정면충돌에서 벗어나려는 첫 신호였다.  미 <CNN> 방송은 이날 미군 소식통을 인용해 북이 무수단 미사일을 기립 상태에서 아래로 내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신호는 미국이 먼저 보냈다.  앞서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플레이북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미국이 속도조절에 나섰다고 전했다. 실제로 헤이글 국방장관은 4월 3일, “복잡하고 불붙기 쉬운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키길 원하지 않는다면서 느닷없이 예정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 III 의 시험발사를 연기했다. 또 한미 군사위원회 회의(MCM)도 연기하는 조처를 취했다. 헤이글 장관은 그 이유를 “한반도 긴장 고조와 북한의 오판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밝혔다.

 북이 미사일 발사대기 상태 해제에 나선 4월 12일은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서울에서 한미외교장관회담을 한 날이다. 그는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대화의 조건과 목표가 ‘한반도의 비핵화’임도 분명히 했다. 국무장관 취임 뒤 첫 한중일 순방에 나선 케리 장관의 이 발언은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은 것이었다. 한미가 함께 대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케리 장관은 또 오바마 대통령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연기한 것을 상기시키며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몇 개의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고 명령해 긴장 완화에 기여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제 선택은 김정은의 것이다. 그는 책임 있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결단을 요구했다. 북은 중국을 통해 그 답을 내놨다. 5월 22일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전격 방문해 전면대결전의 정책전환을 분명히 했다. 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면담에서 밝힌 ‘6자회담 관련국과의 대화’ 방침은 6월6일 남북당국간 회담 제의와 6월16일국방위원회 중대 담화를 통한 북미 고위급 회담 제의로 나타났다.

 또 다시 전쟁은 회피됐다. 그러나 대화의 문을 열어놨을뿐 본격적인 협상국면이 전개된 건 아니었다. 북미는 지난해 중국이 적극적 중재에 나섰음에도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공방만 거듭했을 뿐이다. 남북은 개성공단 중단사태의 해결을 위한 대화를 이어갔지만 개성공단 정상화의 원상회복에 그쳤을 뿐이다. 그러나 올 2월 들어 키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도 북이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합의한 것은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남북은 단순히 대화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 남의 청와대(김규헌 국가안보실 1차장)와 북의 통일전선부(원동연 부부장)간의 고위급 접촉 채널을 가동시키고 있다.  물론  지난 2월14일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한 3개항 합의 결과를 보면 남북이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천안함 사건이 계기가 돼 남북관계를 단절시킨 5.24 조처를 풀어나가기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남북은 “상호 관심사가 되는 문제들을 계속 협의하며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조선신보>(2월10일자)의 표현을 빌리면 북은 지난해와 달리 전면대결전에서 ‘직설적이고 강력한 화해공세’로 나섰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되돌릴 수 없는 화해과정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의 4월 방한 등 키리졸브 군사연습 이후 본격적인 협상국면을 기대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핵문제의 진전 없이는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북미 서로 과거와 다른 협상 방식 고수 

  

 지난해 4월 케리 국무장관은 하원 청문회에서 북핵 문제에서 과거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즉 비핵화의 조건 없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 경제적 지원 및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은 더 이상 안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의 방식을 거부하는 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제시한 국방위 중대담화에 깔려 있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은 1994년 제네바 합의나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성명과 같은 비핵화 협상 방식의 거부다. 예를 들어 지난해 3월말 핵 무력 강화 및 경제건설 동시추진의 병진노선을 채택한 직후인 4월1일 <로동신문>사설은  “미제가 우리를 핵으로 위협하며 경제건설에 제동을 걸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자신들도 이제는 핵보유국이니 주변에서 이를 인정하고, 특히 미국과는 ‘대등한’ 입장에서 핵군축의 구도에서 대화와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과거의 비핵화 협상 방식을 거부하는 까닭은 핵보유라는 현실 말고도 더이상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건설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변의 실험용 경수로(ELWR) 건설 현장을 위성으로 분석해 온 미국 전문가들(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사이트 ‘38노스’의 닉 핸슨과 제프리 루이스) 은 북한이 이르면 2014년부터 100㎿t(전기출력용량으로는 25~30MWe) 경수로를 시험가동하기 시작해 내년에는 상업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당의 병진노선이 주체적인 원자력공업에 의거하여 핵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긴장한 전력 문제도 풀어나갈 수 있게 한다”고 말해 이 경수로가 병진노선의 핵심임을 밝힌 바 있다. (<로동신문>은 2013년 5월3일 논설 ‘우리 당의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은 항구적 노선이다’)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교수는 지난해 <연합뉴스>(10월9일)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현재 비핵화로 종결되는 ‘다단계(multi-stage) 협상 프로세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의 입장을 가장 잘이해하고 있는 미국내 대북 전문가이며 이  내용은 9월말 10월초 베를린, 런던에서 있은 북미 1.5 트랙 대화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입장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비핵화 협상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러나 대화의 전제조건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대화 초기에 또는 대화를 위한 신뢰구축 단계는 가능하다. 세 번째로 비핵화, 정치, 군사, 경제분야 등 다단계 협상 프로세스다. 그건 과거 제네바 합의 또는 일련의 6자회담 합의와 마찬가지로 여러 단계를 거치며 양쪽이 필요한 조처들을 취해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핵 프로그램의 해체는 종착역이다. 그러나 위트는 2012년 또 다른 인터뷰에서 “식량이나 에너지 지원으로 핵문제를 푸는 단계는 지났다”면서 “북한은 안보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고 있으며, 북한과 직접 대면해 그들이 원하는 평화협정과 미국이 원하는 대량파괴무기와 프로그램의 폐기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략적 판단에 입각한 중국의 새로운 접근 

 

 북의 이런 핵보유국 논리에 입각한 새로운 접근법은 ‘비핵화의 조건 없이 대화 없다’는 미국의 강경대응을 자초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의 유례없는 적극적 중재를 무색하게 만들어 왔다. 지난해 출범한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과 유엔제재 이행을 공언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성균중국연구소의 이춘복 책임연구원이 중국의 ‘한반도 재균형전략’이라고 적절히 명명했듯이 이는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이 우려하는 안보불안-북미, 남북관계를 동시에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여기엔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작동하는 아시아 중시전략(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 전략)에서 북핵 문제가 한미일의 대중 포위전략에 이용되서는 안된다는 판단과 미중 신형대국관계 추진에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두나라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예컨데 2013년 9월19일 왕이 외교부장은 워싱턴서 케리 장관과의 회담 뒤  “6자회담을 어떻게 재개할지에 대해 미국과 새롭고 중요한 합의를 도출할 자신이 있다”고 밝히고,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은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과 우라늄 농축작업 일시 중단 등을 수용한 2012년 2월29일 북미 합의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는 6자회담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9.19 공동성명 합의를 거부하는 자세를 보였던 북한의 팔을 비틀어 입장을 바꾸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케리 국무장관이 10월3일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진정한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발언을 이끌어냈을 뿐 대화 재개로 이어지지 못했다. 비핵화 없이 대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도 북미는 접점을 찾지 못한 듯하다. 한중일 순방에 나선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2월17일 미국의 대북 정책 목표는 ‘대화재개가 아닌 비핵화 실천’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같은날 북한에 들어갔다 20일 곧바로 남한에 온 류전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북한이 여전히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미국쪽으로부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케리 국무장관은 2월14일 베이징에서 왕이 외교부장에 이어 시진핑 주석과 면담뒤 “미중 양국이 북한의 비핵화 촉진과 관련한 서로의 안을 제시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기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테이블로 돌아와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며, 핵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고 현재의 위협행동에 관한 합의된 기준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비핵화 정책 목표 이행을 확실히 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처를 취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발언은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이행의 ‘보증자’로 나서는 걸 조건으로 미국이 비핵화 없이 대화없다는 방침을 바꾼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H6s강태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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