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20년 미완의 합의와 최후의 담판-마지막

강태호 2014.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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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북핵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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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5819자 31면 강태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


 2012년 8월 18일 괌 미군기지에서 군용기가 평양을 향해 이륙했다. 이 비행기엔 국가정보국(DNI) 산하 조지프 디트라니 국가비확산센터(NCPC) 소장과 시드니 사일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남북한 담당관이 타고 있었다. 디트라니는 DNI 대량살상무기 부서의 수석 자문관을 거친 베테랑 북한 전문가이고, 사일러는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보좌하는 한국어가 유창한 전문가였다. 이들은 북한에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과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미 현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핵폐기를 넘어 탈냉전으로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디트라니와 사일러는 북한 새 지도부에 김정일 사후 온건한 외교정책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 디트라니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지 말라고 설득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으며, 나와 다른 전문가들은 처음에 김정은이 온건파를 기용하는 등 아버지보다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느꼈으나 이런 희망은 곧바로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에 앞서 4월, 북한이 광명성 3호 인공위성(은하 3호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기 전에도 북한을 방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비밀리에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와의 대화 채널을 타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디트라니는 "미국 처지에서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당국자들과의 대화 시도는 매우 적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그들이 비밀 방북해 무슨 논의를 했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2013년 1월 21일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그 일부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NSC와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를 통해 김정은 시대의 조선은 지나간 조(북)-미 회담 역사를 총화하고 그에 기초하여 핵문제와 관련한 최후통첩"을 전달했다는 거다. 최후통첩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버리지 않을 경우, 조선의 핵보유 장기화는 불가피하고 비핵화 논의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조엘 위트 전 국무부 북한 담당관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정책 전문가로 제네바 합의에도 참여한 위트는 2012년 7월 싱가포르 북-미 비공개 투트랙 회의에서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한성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등에게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먼저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핵억제력 강화와 미사일 추가 개발 등 2005년 9·19 공동성명의 '동시 행동' 원칙을 폐기할 것이다." 위트는 이미 지난여름 북한이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직면할 첫 번째 외교정책의 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엔 미 정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 외무성은 비망록을 통해 좀더 공개적·공식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같다. 8월 31일 <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 비망록은 10월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 공식 문서로 배포됐다. 이 비망록도 앞서 언급된 '최후통첩'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대북 적대시 정책의 대표적인 예로 북의 위성 발사를 안보리 결의로 제재하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는 북을 적으로 보는 적대 관념 때문에 나왔다는 것이다. 또 논리적으로 북핵이 먼저인지, 아니면 미국의 적대정책(관념)이 먼저인지를 묻고 있다. 핵문제 때문에 미국이 북을 적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북을 적대하면서 핵위협을 가증시켜왔기에 불가피하게 핵을 보유하게 됐다는 말이다. 적대정책 해소 없이 북핵 해결은 없다는 것은 이런 논리에 근거한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한다면 북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 될 수 있다. 비망록은 이에 따라 미국의 선택을 요구했다.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전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북의 핵 무기고가 계속 확대 강화되는 것을 지켜볼 것인지. 

북은 이미 2012년 여름부터 12월 12일 장거리 로켓 발사에 이어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예고한 셈이다. 비망록은 당시 주목받지 못했지만 "핵보유는 부득불 장기화될 것이며,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화되고 확장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북은 3차 핵실험을 단행한 뒤인 2월 12일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거듭 결단을 촉구한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우리의 위성 발사 권리를 존중하여 완화와 안정의 국면을 열겠는지, 아니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해 정세 폭발을 향한 지금의 잘못된 길을 계속 걷겠는가 하는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의 포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북은 버락 오바마 재선 직후인 2012년 11월 10일<조선신보> 시론과 12일 <노동신문>에 실린 개인 필명의 논설을 통해서 '조선이 이제껏 주장하는 요구사항'을 언급한다. 그건 "지난 20년 합의가 이행되지 못했던 북-미 협상의 역사를 총괄하고 최종적인 해결에 나서기 위한 담판"이다. 북이 원하는 것은 기존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담판이라는 말이다. 기존 합의는 3가지다. "미국은 20년 전에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북-미 1단계 고위급 회담을 지칭하며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에서 재확인)에서 핵무기 불사용과 핵위협 포기, 자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조선의 평화통일 지지를 확약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1994년 3단계 북-미 고위급 회담(제네바 기본합의)에 앞서 1단계 회담에서의 합의와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의해 최종 마무리지으려 했던 미사일 협상과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지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올해가 정전협정 체결 60년을 맞이하는 해라며 "과거에 북-남 수뇌(정상)들은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수뇌들이 전쟁 종결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고 상기시켰다.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을 말하는 것이다. "클린턴 정권과 부시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오바마 정권이 조선과 어렵게 이루게 된 (이들) 합의를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20년간에 걸친 조-미 비핵화 대화는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종전'을 향한 전면 대결전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이제 협상을 통한 핵포기는 불가능하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줬다. 북한은 협상을 핵무장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핵은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이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협상무용론이다. 그러나 위험하고 무모한 도박일지 모르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최후의 담판으로서 기존 이들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협상인 셈이다. 북은 오바마 2기 행정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치른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용단"을 내린다면 북한도 "언제든지 그에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조선신보>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은 '최후 결판의 국면'이며, '전쟁 방지를 위한 평화회담'에 나서라는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은 수십 년에 걸친 연구 성과를 모아 <코리안 엔드게임>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엔드게임'이란 서양 장기 체스에서 말이 거의 죽어 단 몇 수 만에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을 때를 말한다. 

2007년 북한 핵은 엔드게임 단계에 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큰 흐름에서 되돌아보면 남북은 2000년 두 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과 함께 9·19 공동성명으로 민족적·국제적 차원에서 한반도의 탈냉전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남북, 그리고 주변 4강국이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2007년에 이르러 10·3 2단계 북핵 불능화에 합의하고 10·4 남북 정상선언을 이끌어낸 것은 한반도의 탈냉전이라는 관점에서 마지막 관문에 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북의 1차 핵실험이 이런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 정상이 2007년 10·4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종전 선언을 위한 4자(또는 3자) 정상회담은 비핵화 2단계인 불능화를 핵폐기 단계로 견인해내기 위한 정치적 합의이자 결단이었다. 10·3 6자회담에서 합의한 북핵 불능화는 3단계 핵폐기와 1단계 핵동결(폐쇄) 사이에서 그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뒤로 갈 수밖에 없다. 폐기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선 북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취하지 않겠다는 보장이 필요했다. 노무현-김정일 두 정상은 미-중이 참여하는 종전 선언을 통해 이를 정치적으로 보장하려 한 것이다. 

반전을 통한 엔드게임은 가능한가 

1989년 미-소가 몰타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듯이, 종전 선언의 본질은 한반도에서 전쟁으로까지 치달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 미국이 이제 더 이상 적이 아니라는 걸 선언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는 것이었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 한반도 평화가 불가능하듯이 북-미, 남-북 간의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한반도 평화 없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비핵화는 가능할 수 없다. 그러나 적대관계 해소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종전 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여는 관문이자, 북한이 핵폐기라는 입구에 들어서도록 정치적 결단을 이끌어내는 견인차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당시 부시 대통령이 불능화의 확실한 진전을 요구하며 핵폐기 후 관계 정상화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종전 선언은 실종되고 말았다. 7년 전 클린턴 정부가 이뤄놓은 미사일 합의를 거부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의 당선이 북-미 합의의 모든 걸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면, 2007년은 남한의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모든 걸 바꿨다. 

2008년 이후 진행된 불능화 이행 과정에서 핵 프로그램 및 시설에 대한 신고를 둘러싼 논란과 그에 대한 검증 문제에서 나타난 북-미 간 대립은 결국 6자회담을 무력화시켰고, 결국 2단계 북핵 불능화는 '불능화'되고 말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9년 3월, 서울에 온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특사를 임명한 것은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북핵 협상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바마 1기 행정부 내내 6자회담은 재개되지 못했다. 보즈워스 특사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9년 12월 단 한 번뿐이었다. 2009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뒤이은 2차 핵실험, 그리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 등 대결과 갈등 속에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오바마 1기가 취한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은 제재에 매달렸을 뿐 북의 핵무장화에 속수무책이었다. 

북은 미국과의 전면 대결전을 선언하며 3차 핵실험과 유엔의 추가 제재에 전쟁 불사의 더욱 강력한 추가 도발을 강행하겠다며, 전쟁인지 평화인지의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그건 엄밀히 말해 양자택일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북-미가 합의한 것들을 이행하기 위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북-미(더 정확하게는 남-북, 6자회담 참가국)는 이미 2007년 핵폐기의 3단계로 갈 수 있는 엔드게임 단계에 있었다. 전쟁을 내건 협상이기에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이 반영돼 있는 건 분명하다. '협상은 무의미하다'가 아니라 더 이상의 협상은 없으며 이번이 지난 20년의 핵협상을 최종적으로 종결짓는 마지막 협상이라는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글 / 강태호 <한겨레> 기자. 서울대 경제학과 졸. <한겨레>에서 통일외교부를 출입하며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문제 등을 다뤄왔다. 저서로 <천안함을 묻는다>, 편역 및 공역으로 <미국의 세계전략> <코리안 엔드게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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