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북한의 제4군 전략군

201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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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군의 모델은 소련 전략로켓군, 중국의 제2포병


북한이 육·해·공군에 이은 ‘제4의 군대’로서 2012년 창군한 전략로켓군 명칭을 전략군으로 바꿨다. 왜 바꿨는가 뭘 의미하는가?
 전략로켓군은 통상 말 그대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등을 중심으로 전략무기를 관장한다. 전략로켓군의 무기체계를 제대로 운용하려면 핵무기 기술뿐 아니라 우주과학기술 수준도 매우 높아야 한다. 이를테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기술과 ICBM 기술은 사실상 동일하다. 실제로 북한에 앞서 전략 로켓군과 제2포병을 운용한 소련과 중국은 우주개발기술 강국이었다. 보통 새로운 무기체계가 등장하면 이에 따라 군사전략이 바뀌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군사제도도 변화한다. 핵무기의 등장은 냉전 시대를 열었고 군사전략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놨다. 핵전쟁 시대를 맞아 핵 무력을 갖춘 국가들은 새로운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군사제도 역시 바꿨다.
 북한이 전략로켓군을 창설하고 이후 전략군으로 조직을 개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략로켓군의 존재는 김정은의 연설로 알려졌고, 전략군의 존재는 전략군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알려진만큼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있다. 냉전 시기 전략로켓군과 제2포병을 창설했던 소련과 중국의 사례에 비춰 이 전략군으로 개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베일에 싸인 제4군, 전략군


2012년 4월 1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 수십만의 평양 시민과 인민군이 모였다. 매년 성대하게 행사를 치르는 태양절(김일성 생일)이지만 이날은 북한 지도자들 모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 반년이 지나지 않았고, 김일성 주석 탄생일인 태양절 100주기였다. 북한은 10년 단위 기념일을 특히 성대하게 치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 제1비서가 첫 대중연설에 나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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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제1비서는 첫 대중연설을 했다.


김정은 제1비서의 연설은 조선 인민군에 대한 호명으로 시작됐다. 김 제1비서는 “영용한(영웅스럽고 용감한) 육·해·공군 및 로켓 전략군”이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제4의 군대’, 북한의 새로운 군종인 전략로켓군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다. 그리고 이어진 군사 열병식에서는 미 정보기관이 KN-08로 명명한 5000km 이상의 장거리탄도미사일 (북은 화성13호 로켓,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급) 6기와 이동식 발사대(TEL·Transporter Erector launcher)를 선보였다.

KN-08의 사거리는 5천km 이상에서 1만km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의 제임스 클래퍼 국장은 지난 1월 29일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서면으로 제출한 증언에서 "(북한이) 아직 (발사) 실험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북한이 이미 이동식(road-mobile)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KN-08)의 (실전) 배치의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가 2013년 의회에 제출한 '북한 군사력 증강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탄도미사일용 이동식발사대를 최대 200여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동식 탄도발사차량(TEL)의 전략적 활용도는 뛰어나다. 다량의 차량을 24시간 운행하다가 불시에 로켓을 발사시킬 수 있어 조기에 발사 여부를 포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새롭게 명명된 북한의 전략군이 현재 이런 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고 있으나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이동식발사대 실전배치를 목표로 조직을 개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북한의 전략로켓군이 전략군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그로부터 2년쯤 뒤인 2014년 3월 5일 북한이 조선인민군 전략군 대변인 명의로 담화를 내보내면서다. 그러나 전략군의 기능과 편제는 모두 구 소련군이 1959년 창설한 전략로켓군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핵전력을 일원화하고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작전수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로켓’ 뺀 이미지 변신과 전술 미사일 운용과 통합 일원화된 지휘체제

그런데 전략로켓군을 전략군으로 바꾼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이름을 이렇게 바꾼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심 무기체계는 여전히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로켓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노리는 점은 무엇일까? 북한 군사 전문가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김동엽 교수는 ‘이미지 쇄신’과 ‘포괄적 전략구사’를 꼽았다.
 김 교수는 “마치 로켓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라고 할까, 전략로켓군이라고 하면 미국을 전략적으로 공격하려 한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핵탄두 운반수단’을 운용하는 군대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의미다”라며 “전략군이라는 용어는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하고 또 미국에 대응한다는 전술적 차원보다 더 넓은 전략적 차원에서 군대를 운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쪽 정보소식통들은 전략군 창설의 의미를 최근 모든 미사일 전력을 통합, 발사체계를 자동화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발사 명령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정보 소식통은 "북한이 작년 말부터 단·중·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통합해 '전략군'을 창설했다"면서 "전략군을 창설한 것은 미사일 발사체계를 자동화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시킨 의미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소식통은 "이는 김정은의 발사 명령이 있으면 이를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체제로 개편한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기존 전략로켓군 예하에는 스커드·노동·무수단 미사일 여단이 각각 편제되어 있었지만 전략군을 창설하면서 이들 여단이 모두 통합된 것으로 안다”면서 “이는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이 미사일 전력에 대한 ‘최고 주도권’을 갖게 됐고 그만큼 발사 명령에 대한 반응 속도도 높아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2013년 2월 3차 핵실험에 이어 2014년 올해 들어 2월부터 9월까지 사거리가 500km에 이르는 신형전술미사일과 방사포등 19차례에 걸쳐 110여발 이상을 발사했고 이는 전년대비 10배 이상으로 증가한 수치 이다. 주로 강원도 원산 지역에서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던 북한은 최근 들어 평북(묘향산)과 황해도 평산, 개성 등 내륙 지역으로까지 발사 지점을 확대하고 있고 최근에는 북•중 접경지역인 자강도 지역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 지도국에서 전략군으로


  2012년 전략로켓군이 창설되기 이전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는 부대는 ‘미사일지도국’이었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스커드 미사일(사거리 500㎞)을, 1990년대부터는 노동 미사일(사거리 1,300㎞)을 실전 배치했다. 2004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2003년 미사일부대 지휘체계 일원화를 위해 이 포병군단을 미사일지도국으로 개편했다.
 이 미사일지도국의 김락겸 국장은 2012년 4월11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장 계급으로는 유일하게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됐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선노동당의 주요 군 통치기구다. 인민무력부장 등 육·해·공군 사령관 17명이 위원으로 있다. 김락겸 중장은 전략군으로 개편되는 2014년에는 이번엔 한단계 높은 상장(우리의 중장 계급, 2월)으로 승진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 국가가 핵무기로 전쟁억지력을 갖추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이른바 ‘최소억제전략’을 완전히 구사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장거리 타격 능력의 핵심능력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은 여러차례의 인공위성 로켓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거쳐 2012년 12월 마침내 대기권 밖에 인공위성 광명성3호 2호기를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시켰다. 그러나 이 로켓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기능하려면 대기권으로 재진입시키는데 성공해야 한다. 북한은 아직 이  기술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기권 재진입기술은 이미 50~60년 전에 개발된 기술이기에, 북한이 이 기술을 확보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이동식 발사대를 갖추게 된 다음에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다탄두 각개 목표설정 재돌입 비행체(MIRV·Multiple Independently-target able Reentry Vehicle) 전력을 확보하여 ‘제한억제전략’ 수준의 핵전력을 갖추려 할 것으로 보인다. 소련과 중국이 전략로켓군과 제2포병을 창설한 이후 했던 것과 유사한 패턴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련과 중국을 보면 북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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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첫 핵실험을 한 지 10년 만에 전략로켓군을 창설했고, 후발 핵 국가인 중국은 첫 핵실험을 한 지 2년 만에 제2포병을 창설했다. 북한은 첫 핵실험을 한 뒤 16년만인 2012년 전략로켓군을 창설했다. 소련과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한 뒤에 전략로켓군을 창설했으나 중국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기 이전에 제2포병을 창설했다.
 소련과 중국의 전략로켓 부대는 육군, 해군, 공군 외 별도의 군으로 취급되고 국가지도부가 직접 통제하고 관할한다. 소련, 중국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북한의 전략군은 부대 명칭과 창설시기 등의 면에서 보면 소련 전략로켓군과 더욱 유사하다.
 소련과 중국은 핵탄두의 장거리타격능력을 갖추는 이른바 ‘최소억제전략’을 갖추는 단계에서 전략로켓군과 제2포병을 창설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 탄두화 여부에 대한 미국의 유보적인 평가와 별개로 이런 움직임으로 볼 때 북한 스스로 최소억제전략을 갖췄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갖춘 뒤 창군한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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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전략로켓군 휘장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쇼크’로부터 시작됐다.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를 대기권 밖에 진입시키기 이전에도 흐루쇼프 서기장은 "수소폭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미국을 비롯해 자본주의 진영은 이를 단순한 체제 선전용 허세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실제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서방 국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소련은 1955년에 이미 “챠르 봄바”란 이름의 수소폭탄을 만들었으며, 이는 TNT 50 메가톤 위력으로 최대폭발력을 기록했다. 소련이 카자흐스탄의 사막에서 핵실험에 성공한 것은 미국보다 많이 늦은 1949년이었다. 스푸트니크로 소련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떤 면에서는 미국을 능가하는 군사 강국이 된 것이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대륙을 넘어 미국 본토에 떨어질 수 있는 로켓 기술을 먼저 확보하면서 미국은 핵 선제공격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것이다. 소련은 핵 개발 초기부터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미국을 긴장시켰고 핵전력 면에서 본다면 미국과 소련 누구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소련은 핵미사일이 광범위하게 도입된 195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형태의 군종 및 병과의 창설을 진행하면서 1959년에 전략로켓군의 창설로 이어졌다. 첫 사령관이었던 미트로판 네델린 차수는 미사일 발사 실험 중에 사망했으며, 소련 원수 키릴 모스칼렌코 등의 사령관들이 전략로켓군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된다.
 이 소련의 전략로켓군은 3개 로켓군, 3개 독립 로켓군단, 10~12개 로켓사단, 3개 대형 로켓 사격장 그리고 과학연구소 및 교육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략로켓군 총 병력은 1959년 창설 당시 약 35만 명 규모였으나 조직을 확대해 냉전 시기 최대 50만 명에 이르렀다. 소련은 국방회의를 통해 최고사령관이 전략로켓군을 통제했다.
 1997년 7월 16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우주군과 우주 미사일 방위군을 전략로켓군 아래에 통폐합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60개에 가까운 군 조직과 관련 시설물들이 해산됐지만 4년 후인 2001년 6월 1일 러시아 연방 우주군은 다시 독립 병과로 분리됐다. 현재 전략로켓군은 다시 독립군종으로 운용되고 있다.

 

18년 동안 ‘제2포병’ 존재를 숨겼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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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해방군 제2포병 휘장


중국의 핵 개발은 1955년 중국 미사일의 아버지라 불리는 첸쉐썬(錢學森) 박사 등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100여 명의 중국 과학자들이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처음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핵무기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 그러나 소련은 핵심 기술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소련 기술진도 철수해 중국 자체 기술진이 독자적으로 개발하게 됐다.
 중국은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략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57년에 전략미사일을 위한 연구소와 훈련 및 교육기관을 설립했으며, 소련이 전략로켓군을 창설한 1959년에야 처음으로 지대지 미사일 부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7년 뒤인 1966년 7월 제2포병을 공식 창설했다.
 제2포병이라는 명칭은 저우언라이 총리가 국제 정세를 고려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제2포병은 창설하자마자 기술, 인력 등의 부족으로 비정규군의 형태를 유지하다 1978년 5월 덩샤오핑이 전략미사일부대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현대화되지 시작했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제2포병은 1984년 10월 1일 건국 35주년 기념 군사행렬에서 '둥펑(東風)' 미사일을 앞세우고 톈안먼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1985년 6월이 돼서야 제2포병은 지휘·통제·자동화 지휘계통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며 전략 핵 반격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속기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제2포병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 비견되는 총참모부와 나란히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를 받는다. 전국에 6개 사단(기지) 사령부가 있고, 각 사단은 3개 여단으로, 1개 여단은 4개의 발사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여단에는 동풍 계열 미사일이 배치되어 있다. 둥펑 계열 미사일은 중국 자체 기술로 개발한 것이다.
 중국의 핵무기 개발은 1962년부터 시작됐으며, 2년 만인 1964년 고비사막에서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 1967년에는 수소폭탄의 개발과 실험에도 성공했다. 소련은 첫 핵실험 뒤 수소폭탄 실험까지 4년이 걸렸다. 영국은 5년, 프랑스는 8년이 지나서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를 고려하면 중국이 얼마나 서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240기다. 운반체로 워싱턴 D.C. 뉴욕, 모스크바까지 닿을 수 있는 ICBM은 2000년대 초에는 20여 기였으나 현재는 150여 기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핵미사일은 사정거리 5,000km 안팎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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