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체제와 동맹정치

2015.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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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력 충돌로서의 2차 세계대전이 완전히 끝난 뒤에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새로운 정치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은 어떤 ‘이야기’(narration or recit)로 재현(reproduce)되거나 묘사(represent)될 수 있는가? 지역을 한반도로 좁혀서 말한다면, 이는 미소냉전에 편승한 한반도 두 신생 권력의 대결로, 반공산주의 대 반제국주의의 대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의 두 권력(국가, 지배집단, 권력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한편으로는 외세와 결합하여 작동함으로써 동북아 냉전질서 형성과 분리될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념투쟁의 형태로 정당화됨으로써 상대방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극단적 투쟁 또는 절대전쟁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내전의 일상화와 부정적 정체성의 고착화

 
  분단은 (분단된 한반도의) 남북한 내부에서 내전이 일상화되고 부정적 정체성이 고착화된 상태이다. 분단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남북한 내부의 억압상태는 남북한 각각의 권력에게 체제경쟁을 위한 유효한 권력 기반이 되며, 분단 자체는 (따라서 경쟁하고 대립하는 상대권력의 존재는) 남북한 권력에게 억압적 질서의 정당화 기반, 곧 존재 이유가 된다. 남북한 내부의 억압과 남북한 분단은 하나의 체제처럼 작동한다. 분단체제는 억압체제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이후의 지속적인 민주화운동은 남한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한반도 차원의 평화·통일 실현을 향한 사회동력을 분출시켰다. 1998년 초부터 10년 간 지속되었던 소위 ‘민주정부’(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통일 지향의 평화 구축’을 실현하는 데에 정책적 중점을 두었다. 남한 사회의 역사에서 국가와 시민사회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처음으로 힘을 모았다.
  그런데 남한 사회 내 민주·진보진영이 이끌었던 분단체제 극복의 사회동학은 해체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던 분단체제의 반격에 직면하였다. 반격은 세 방향에서 나타났다.
 

  분단체제의 반격


  첫째, 남한 사회 내부에서 분단체제 해체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반격에 나섰다. 대북포용정책은 대북유화정책으로, 대북지원(인도적 및 경제적 지원)은 ‘무조건 지원’으로, 남북경협은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위한 물적 기반 제공으로 비판을 받았다. 남한 사회 내 보수진영은 유연한 대북정책을 통한 남북관계의 심화·발전이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을 강화시키고 한국의 정통성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였다. 남한 사회 내에서 분단체제가 약화되어 가면서 역설적으로 대북·통일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나타났고, 이러한 갈등은 남한 사회 내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갈등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기본 프레임’이 되었다.
  둘째, 남북관계의 발전과 어긋난 북한과 미국 사이의 군사적 갈등이 분단체제 해체 과정에 제동을 걸었다. 북한의 전통적인 안보관과 미국의 패권적 동아시아전략이 충돌하면서, 북미갈등은 북한핵 위기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안보 위기는 분단체제 해체에 제동을 거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하였다. 미국에서, 또 북한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안보 위기는 전통적인 냉전 전사들에게 국가전략과 정부정책의 수립·추진에 적극적으로 참여·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다.
  셋째, 2008년 남한에서의 보수정권 등장은 결정적으로 분단체제 해체를 중단시키고 분단체제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남한 사회 내 남남갈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북미갈등에 편승하면서 대북강경정책을 통한 ‘북한 변화’ 또는 ‘북한 붕괴’를 유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세 방향의 반격은 이명박 정부의 사회경제정책 및 통치방식과 결합하면서, 단순히 남북관계의 후퇴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사회 전반의 위기로 발전하였다.
 

 새로운 억압정치 방식으로서의 동맹정치 


 박근혜 정부 하에서 분단체제 강화는 대북강경정책의 지속, 한미동맹의 강화, 남한 사회 내 억압정치의 부활로 나타났다. 그런데, 다소 거칠게 정리하자면, 남한 사회 내 억압정치의 부활은 민주화 이전 시기 독재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 남한 사회 내부에서 형성되고 성장한 다양한 정치세력들, 정당들, 사회·경제적 집단들, 시민·사회단체들, 언론·종교·문화·학문 분야의 사회세력들, 심지어 관료들은 정치적 권력과 패권을 획득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연합하고, 일상적 정치 과정에서 다른 집단이나 세력을 견제한다. 보수진영의 다양한 세력들조차 보수정권의, 또는 보수진영 내 주도적 권력집단의 ‘지휘’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일종의 ‘동맹정치’가 작동한다.
  분단체제와 함께 작동하던 안보전략 차원의 (국제적) 동맹정치는 이제 남한 사회의 내부 정치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동맹정치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이념과 가치 체계의 동질성보다는 패권경쟁이나 권력투쟁에서의 승리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자연히 동맹 내부에서 이념의 혼란이나 정체성의 혼란이 나타난다. 보수진영에서도, 민주·진보진영에서도 동맹은 이념이나 가치 체계에 의해 조율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 내부의 동맹정치는 국제관계 차원의 군사동맹에서 나타나는 연루와 방기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보수와 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각 세력이 선거 승리나 패권 유지 때문에 연루와 방기의 딜레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당연히 자기편의 동맹 강화를 위해 상대편 내부의 방기와 분열을 유도한다. 자기편 내부의 연루는 정당화되고, 상대편의 연루는 부정된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분단체제의 강화가 가져온 동맹정치는 보수정권 하에서 민주주의의 후퇴와 분단체제의 강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단일화와 경직성의 논리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동원의 일상화, 다수의 횡포가 일어난다. 역설적으로 동맹세력의 동원을 위해 현실적인 사회·경제 문제보다는 정치적 이념(더 정확하게는 정체성)의 문제가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제기된다. 시민사회에서는 탈정치화와 과잉정치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민주정부 하에서 작동하던 남남갈등은 보수정권 하에서는 이제 상대편을 억압하는 이념 공세의 형태로 전환된다. 국가는 모든 판단의 최종심판자가 되고, 합리적 문제제기는 추방되고 공론장은 폐쇄된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시민사회의 문제제기는 반국가적 행위로 낙인이 찍히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대북정책은 ‘종북정책’으로 규정된다.


 동맹정치의 극단적인 형태


  이러한 동맹정치가 민주주의, 특히 헌정주의의 외양을 띠고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한 것이 바로 한국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이다. 판결문은 통합진보당의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석기 의원이 주도하는 경기동부연합의 내란 관련 회합을, 통합진보당의 비민주적 정당 운영을, 폭력 수단에 의한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과 그를 통한 통일과 사회주의의 실현을, 그리고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에 따라 혁명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애국가를 부정하거나 태극기도 게양하지 않는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를 정당 해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원리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정체성은) 분단체제의 기본 원리 아래에, 그리고 현재의 안보 상황에 대한 판단(북한이라는 현실적 적에 의한 체제 전복의 시도가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황) 아래에 놓이고 말았다.
  한국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는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후퇴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통일과 동북아시아 평화·협력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징조이다. 먼저, 분단과 안보 상황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가 정당화된다면, (또한 민주공화국의 헌법이 잠정적으로 유보된다면,) 다른 모든 국가에서도, 특히 북한에서도 동일한 논리가 작동할 수 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민주공화국은 (진정한 평화가 없는 냉전이 아니라) 호혜에 바탕을 둔 진정한 평화질서를 형성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으로, 남한 사회 내부에서 동맹정치가 강화될수록 한미동맹이, 한-미-일 삼각동맹이 강화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동북아시아에서 군사동맹에 바탕을 둔 냉전질서를 새롭게 부활시킬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동맹정치와 냉전질서의 부활은 국내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도 공론장의 폐쇄를, 새로운 대안질서의 모색을 봉쇄하는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지배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현존하는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호혜의 행위가 아니라 경쟁의 행위로, 궁극적으로는 패권을 위한 대결의 수단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협력을 통해 발전해 온 동북아 지역의 경제는 2007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통합진보당의 해산 선고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암울한 미래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불안한 미래를 보는 것은 단지 하나의 편향되고 과장된 인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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