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현상유지와 현상변경이라는 상반된 두 목표를 동시에 해결해야

2015.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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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사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에 따르면 사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거대한 게임”이다. 그는 “미국이 태평양을 내해로 유지하느냐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우는 중국과 서태평양을 공유하느냐의 구도”라며 “이 밑그림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할 것이냐를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구도 아래서 송 총장은 한국이 현상유지와 현상변경이라는 상반된 두 목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한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미동맹은 유지·발전시키는 한편, 분단이라는 현상은 변경해야 하는 중층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과 한국 앞에 놓인 상반된 두 과제를 배경으로 사드를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또한 5월 9일 러시아 전승기념일과 9월 3일 중국 항일 승전 기념행사 참가 문제 등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있다. 송 총장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북핵문제 해결을 매개로 하여 한반도에서 미·중을 조화시키는 것이 한국이 할 일이다”며 남북관계 개선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주문했다.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의 주역인 그는 30여년 경력의 정통 외무관료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을 거쳐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 당시 경기도 국제관계 자문대사로 맺은 인연이 계기가 돼 전국구 의원으로 민주당에 들어가 국회 외교통상위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대학총장은 새로운 도전이라 할 만하다. 학교 얘기는 ‘아직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나중으로 미루자고 했다.


 사드, 검증부터 하자


 -사드 논란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 입장에서는 사드 배치 문제를 대미, 대중 관계의 차원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안보에 대한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국한시키면 된다. 사드가 북한 미사일 방어에 효과적이라면 도입하고 그 효용이 입증이 안 되면 늦춰야 한다. 한국정부가 이른바 ‘3no’라며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건 상황에 맞지 않는다. 아직 사드가 북한 미사일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건 증명된 적이 없다. 미국이 한 실험은 5,000km 거리에서 미리 입력된 자료에 의한 실험이다. 길어야 500km 밖에서 예고 없이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막을 수 있을지 와는 판이하게 다른 실험이다.
  한반도는 방어 종심이 짧아 미사일을 4~6분 안에 탐지하고 중간에 막기 어렵다.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무기체계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대량보복능력을 갖춰 북한의 도발 원점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억제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게다가 북한의 위협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과소평가도 과대평가도 안 된다. 사드가 사거리 1,300km인 노동미사일을 겨냥한다는데 노동미사일은 대기권 밖에 나갔다 다시 진입하는 미사일이다. 그런데 북한의 미사일 탄두가 대기권 진입을 성공한 적이 없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과거 미국, 소련도 100번 이상 실험해서 확보한 기술이다.”


 - 사드가 주한미군을 방어하기 위한 것인데 한국이 왈가왈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미 공동방위를 위해 존재한다. 사드가 만약 한국 방어에 효용이 있는 것으로 입증되면 한·미 공동으로 배치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군과 자국민 보호를 위해 배치한다는 데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있겠냐라는 생각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다. 여기는 한국 영토이다.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문제도 미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 사드에 대한 중국의 우려, 과민반응의 측면이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는 데 사드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된다면 중국이 쉽게 개입할 수 없다고 본다. 중국으로서는 엑스 밴드 레이더가 중국을 들여다본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북한의 직접적 공격 위험 앞에 있는 우리의 안보 위협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사드의 능력이 한반도 환경에 효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그럼에도 중국 관리가 방한해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해 우리 안보결정사항에 대해 공개적으로 관여하는 건 받아들일 수도 없고 적절치도 않다고 본다.”


한국이 처한 딜레마


  -미국이 본질적으로는 다른 문제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 외교가 미중의 선택을 요구받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거 아닌가. 결국 한국이 가입을 결정하긴 했는데….
 “한국정부가 딜레마에 처해있다. 이건 합리와 현실 사이의 갈등이다. 중국은 AIIB 지분을 50% 이상 갖는다. 어떤 국제 금융기구에도 전례가 없다. 통상 한 국가가 차지하는 최대치는 전체 지분의 1/6 수준이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모두 그렇다. 지배구조, 의사결정과정을 중국이 합리화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비합리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통일 과정에서의 북한 인프라 개발과 역내 경제협력 차원에서 창립멤버로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이밖에도 올해 우리 외교는 더 큰 시험대에 서게 될 것이다. 먼저 미·일 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4월말 아베 총리의 미국방문에서 개정된다. 비슷한 시기인 5월 초 모스크바에서는 2차대전 종전기념일을, 9월엔 중국도 종전기념일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한·중·일 동아시아연대, 한·미·일 태평양협력이 뒤섞여 있는데 한국은 어떤 고려를 해야 하나?


팽팽한 줄 위에 서 있는 형국


  “미국으로서는 아시아에서 미‧일 관계와 미‧중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미·중 양자구도 중심에서 일본은 제3의 세력으로 밀려나려 하지 않는다. 일본은 미·중·일이라는 3자 구도를 원하고 미국도 적절한 방식으로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미·일 안보협력지침은 이 구도를 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싫다고 해도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에 역사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력을 가하기 어렵다. 역사문제에서 우리에게 뚜렷한 해법이 없는 이유다. 여기엔 아무리 그래도 한국이 미‧일보다 중국 쪽으로 더 가까이는 못 갈 것이라는 미국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팽팽한 줄 위에 서있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떨어질 수 있다. 한·미·일 구도가 꽉 짜여지면 한국이 힘을 쓰기 어려운 요소들이 있다. 미·중 대립과 협력 사이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러시아가 주최하는 2차대전 전승기념일에 갈 것인가 여부를 놓고 김정은 제1비서의 참석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건 옳지 않다. 김정은과 만나는 건 부산물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외교는 절반이 스타일이다. 마치 우리 대통령이 김정은 만나러 러시아 갔다는 식으로 해석되어선 곤란하다. 전승기념일 참여는 그에 맞는 명분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한국은 연합군이 승리해서 해방됐다. 그 명분이면 된다. 그 이외에는 얘기할 필요가 없다. 2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졌다면 한국은 아직도 일본 식민지다.”


한반도 핵심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핵 문제다. 사드배치 논리, 일본이 군사력을 확대하는 이유 모두 북한 위협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 위협을 해소하고 완화시키는 데 우리가 앞장을 설 때 문제해결의 길이 열린다.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해 남‧북과 미·중이 뽑아낼 수 있는 최대공약수가 ‘9‧19 공동성명’이다. 그런데 그 이행방안을 두고 좌초가 됐다. 이행을 재개하기 위한 징검다리가 ‘2‧29 합의’였다. 북한은 여기서 미사일 관련 기술을 시험하지 않는다는 항목에는 동의했으나 일관되게 우주발사체 시험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2‧29 합의는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합의 없이 발표됐다. 객관적 실정에 비추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계획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북한의 자세는 우주발사체 시험은 계속 하겠다는 얘기였다. 2‧29 발표가 나온 지 보름 만에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 3호 발사를 강행했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발사였던 셈인데 이를 두고 미국은 북한이 합의를 깼으며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나왔다.
  2008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마지막 6자회담은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의정서 채택에 실패하면서 좌초됐다. 그러나 불능화를 위한 11개 조처 가운데 이미 8개는 완수했었다. 나머지 3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우선 2·29 합의에 입각해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핵사찰 팀이 들어가고 협상이 진행되는 한 모든 핵활동을 중단한 채 불능화 과정을 완성시키는 방안에 합의하는 것이 긴요하다. 당연히 한‧미 등 다른 5개국도 에너지 지원과 제재완화 등 북한의 필요사항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9‧19 공동성명은 농축우라늄 폐기를 포함한 모든 핵무기 폐기에 합의한 것이다. 당시 예정 됐던 3단계, 즉 북핵 폐기-북·미관계정상화를 다시 추진해야한다. 그런데 미국 내 분위기가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하지 않으면 방치된다. 그 사이 북핵 능력은 계속 발전하고 남한은 그 정면에 서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팽팽한 밧줄 위의 형국을 관리하기 위해 여러 지혜를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에 더하여 비정상적이고 부조리한 한반도 현상을 바꾸려면 더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라는 모토는 있지만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기초 그림과 구체적인 계획이 받쳐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엇나가는 조각들의 집합에 그칠 수 있다. 신뢰의 프로세스를 가동하려면 강자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남한은 북한 보고 먼저 행동하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강자는 누구인가. 동북 아평화구상은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원칙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원칙적 지지’라는 외교적 수사는 적극적으로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엔 9‧19 공동 성명에 이미 동북아다자안보협력 구상이 들어있는데 무슨 새로운 구상을 내놓느냐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부산에서 파리까지 철도로 가겠다는 것이다. 부산서 1만 5,000km다. 우리가 염원해 오던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남·북간 24km도 제대로 연결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유라시아 구상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담·강태호 한겨레 선임기자 kankan@naver.com

정리·이규정 디펜스21플러스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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