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역사인식과 샌프란시스코체제의 강화

2015.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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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도입된 지 60년, 이제 중국 봉쇄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고 훨씬 복잡하며 모순에 가득 찬 체제로 진화하고 있다."

 -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

  아베 일본 총리는 1952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었던 날인 4월 28일에  맞춰서 미국을 방문했다. 아베의 미국 방문 기간 동안 미국과 일본의 외교 국방장관들은 뉴욕에서 미일 안전보장위원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일본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세계적으로 넓히는 방향으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자위대는 이제 지구방위대가 되었다. 아베가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의원 합동연설을 한 것은 모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일에 따라 이뤄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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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일은 일본 주권회복의 날?


 아베 총리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유독 집착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61년이 되는 2013년 4월 28일을 ‘주권 회복 및 국제사회 복귀의 날 기념식’으로 하고 4월 28일을 ‘주권 회복의 날’로 규정했다. 기념식이 끝날 즈음에 참석자들은 ‘천황 폐하 만세’를 세 차례 외쳤다.
일본의 재무장을 추구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인인 4월 28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베가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자 일본의 패전 70주년인 2015년 4월 28일에 맞춰서 이 같은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은 2차대전 전범국가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아베의 행보는 일본이 더 이상 전범국가가 아니라 보통국가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아베는 전범국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과거사를 사죄한 독일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던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모두 부정했다. 일본은 1982년에 미야자와 담화를 통해서 교과서 기술에 대해 주변국을 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 1993년에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고, 1995년에는 식민지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들은 대부분 한일 두나라 사이의 과거사에 대한 것이다. 아베는 지난 4월 22일 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일본은 앞선 대전(大戰)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한다”고 했다. 일본이 중국, 미국과 전쟁을 한 2차대전(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해서는 사과는 없지만 반성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서는 반성도 사과도 없었다.
  아베 총리의 이같은 행보는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당시 상황을 연상시킨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미일안보조약과 함께 1952년 4월 28일 발효되었다. 이 조약 2조에서는 일본의 영토와 영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주권행사의 범위를 지정한 것이다. 아베가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서 일본의 영토와 영해에 대해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생겨난 규칙, 절차, 제도 등을 포괄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부른다. 샌프란시시코 체제로 인해서 일본은 과거 전쟁과 침략의 범죄에 대한 사과 없이 국제사회에 무임승차한 것이다. 일본은 과거 범죄에 대한 징벌이 없이 샌프란시키코 체제를 통해서 오히려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는 중국, 소련, 북한 등 공산주의 진영과 대결을 위한 미국의 전략 때문이었다.


치유되지 않는 제국주의 침략의 상처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2차대전 이후 동북아에서 미소대결, 중국의 공산화 등의 상황을 반영한 미국의 전략에 따라서 형성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동원하여 대소, 대중 봉쇄를 위한 동아시아 전진기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군국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은 채 일본이 재무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체제라기보다는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가로막는 불안전한 체제였다. 이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2015년 4월 28일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을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일본역사에 대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존 다우어 MIT대학 명예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대해서 전쟁의 유산을 미청산하고 착취구조를 유지시킨 체제라고 비판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번영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착취로 인한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계속 남아 있었다.
  2차대전 종전 이후 형성된 냉전체제의 결과 한반도에서는 분단체제가 탄생했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세계적인 차원의 냉전체제의 하위체제가 되었다. 냉전은 한반도 분단의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종전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맞이해서도 변하지 않고 있다. 종전 70주년이 분단 70년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 70년은 구호 뿐이다. 하지만 종전 70주년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의 팽팽한 힘겨루기로 표출되고 있다. 70년 전에도 한반도가 국제정세에 의해서 지배받았듯이,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반도는 국제정세의 영향권에 놓여 있는 상황인 것이다.
 종전 70주년의 가장 큰 특징은 중국의 ‘신형대국론’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의 충돌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미국은 과거 냉전시기에 미국과 소련이 대결했던 것과는 달리 중국과 미국이 협력하고 공존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신형대국론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신형대국론을 중국의 성장을 위한 시간벌기용 전략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소련의 부상을 위험스럽게 염려해서 대소련 봉쇄정책을 펼친 것처럼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될 경우에 태평양 건너 미국의 위협이 된다는 발상이 자라잡고 있는 것이다.


성과 없는 미국의 아시아정책- 다급해진 오바마 정부


  탈냉전 이후에도 미국에게 있어서 일본의 존재는 미국이 세계전략 및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추진해가는 데 있어서 재정적 지원자였다. 지정학적으로도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거점이다.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중국을 견제하거나 포용하는 데 있어 미국의 가장 핵심적인 전략적 파트너로 여겨졌다. 특히 최근 중국의 부상으로 이 같은 일본의 존재가 미국에게 더 긴요해졌다.
  미국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으면서 과거의 범죄에서 면죄부를 받아 군사대국화하려는 일본의 보통국가 전략을 용인해주고 있다. 미일동맹이 중국 봉쇄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이 대외적으로 팽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같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서 형성되는 미일관계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을 중시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한미일 삼각협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부활하여 재강화되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이했다. 게다가 2015년은 오바마행정부 2기 3년차이다. 올해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 아시아 정책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한일 과거사 문제의 원만한 타협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런데 샌프란스시코 조약 체결 당시 한국을 제외시키면서 한일 간의 과거사 미청산의 씨앗을 뿌린 것이 한일관계가 악화된 원인이다.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이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부활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샌프란스시코 조약 그 자체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부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재생산되는 한반도 분단체제


 결국 미국이 뽑아 든 카드는 한일 과거사에 대한 봉합이다. 미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커트켐벨 전 차관보는 오래전부터 일본의 과거사 문제 때문에 미국이 추구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진단해왔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의 기초를 입안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2015년 2월 웬디셔먼 미국무부 차관은 “위안부 문제와 같은 과거사를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애슈턴 카터 미국방장관은 지난 4월에 “한미일 협력의 잠재 이익이 과거의 긴장과 현재의 정치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이후 지속적으로 일본 중시 정책을 펼쳐 왔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정부는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은 2013년에 아베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실망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아베의 집단적 자위권은 지지하면서도 아베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는 ‘미일동맹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고 우려를 표명해왔던 것이다.  2015년 웬디 셔먼의 발언을 계기로 미국 정부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지지하면서 한일간의 역사갈등에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도 처음에는 조약 체결국가 명단에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일본의 로비에 의해서 한국이 배제되었다. 당시 요시다 일본수상은 한국이 조약체결에 참가하면 일본이 한국에 막대한 전후배상금을 물게 된다는 이유로 한국의 참여를 배제했다. 미국이 일본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결국 한일 과거사 미청산의 씨앗이 된 것이다.
 최근 미국이 한일관계에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을 보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견제, 일본 중시, 한미일 삼각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정책은 오바마 정부 2기 3년차를 맞이해서 미세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 틈을 타서 아베는 재무장의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에는 두 개의 큰 전선이 있었다. 하나는 G2로 성장한 중국과 아시아로 회귀하는 미국이 만들어내는 전선이다. 전통적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부딪힘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전선이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보통국가화하려는 일본과 일본의 지배와 침략을 당한 나라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전선이다.  하지만 이 전선이 변화하고 있다. 역사전선을 유지해서 미국의 견제를 뚫으려는 중국과 역사전선을 약화시켜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대립 때문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는 70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반도 정세를 규정한다. 동아시아에서 강대국들이 만들어 내는 대립과 협력의 새로운 질서는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새롭게 재생산하고 있다.



** 이 글은 지난 4월 22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분단 70년, 남북관계는 어디로 가고 있나?”를 주제로 주최한 제15회 월례정책포럼에서 발표한 글을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이  다시 수정 보완한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5월호(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383 ) 에 공동으로 게재한다.


글·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전 국가안보회의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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