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 최적기를 놓친 한국

2015.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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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주도로 추진되어온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당초 예상했던 규모보다 크게 늘어난 57개국을 창립회원국으로 하여 올해 말 화려한 출발을 하게 될 것 같다. 그 동안 AIIB 설립을 견제하며 우방국들의 참여를 반대해왔던 미국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듯 했으나, 발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기존 세계은행이나 ADB를 통해 적절히 견제하며 협력을 모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의 견제와 질시 속에 성사 가능성을 의심받았던 중국은 이제 미국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G2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재확인 받음으로써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 이미지 구축에 성공하였다. 한편 그동안 중국으로부터 창립회원 가입을 요청받으면서도 미국의 반대에 막혀 고심하다 막판 시한에 쫓겨 가입을 결정한 한국은 일부 정부당국자들의 자화자찬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가입의 최적기를 놓침으로써 선점에 따른 이익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주국가로서의 면모에도 일정 부분 상처를 남겼다. 성공적인 협상은 명분과 실리 그리고 시기(timing)라는 3박자를 적절히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뒤늦은 AIIB 참가 결정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앞으로도 동아시아에서 부상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 사이에서 유사한 사안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의 전말을 곱씹어서 향후 한국 외교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입장 배려하지 않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한국의 AIIB 참여 문제를 명분과 실리 면에서 검토해보자. AIIB 구상은 2013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남아 순방 중 낙후된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건설을 위해 500억 달러를 출연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별도로 지역개발금융기구 설립을 공식 제안함으로써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가입을 통한 정치경제적 실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려는 유라시아 이니시어티브나 북한의 SOC 확충을 위한 재원조성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신실크로드 전략과 아시아 후발 개도국의 SOC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신성장동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선뜻 참여를 공식화할 수 없었던 것은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 등 표면상의 이유보다는 미국의 공공연한 반대 입장 때문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을 통해 세계은행과 ADB는 지배구조와 환경·사회적 안전망 등의 측면에서 수십 년간 경험을 축적해온 반면, AIIB는 향후 넘어야 할 문턱이 많다고 문제를 제기하였으며,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는 한국에 참여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당시 미국의 주장은 충분한 근거와 명분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을까? 미국 주장의 불합리성은 과거 한국 등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9년 유럽의 재정위기 당시 미국과 IMF 등이 보여준 이중 잣대 외에도 최상위 국제개발금융기구인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의 지적에서 드러난다. 김 총재는 지난해 7월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국 인프라 투자 등에 1조 5000억 달러가 필요한데 반해 기존 개발은행이나 개인투자자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2,050억 달러에 불과하다면서 "신흥국의 투자 수요를 고려할 때 새 금융기관 설립 제안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덧붙여 그는 "중국 정부는 초기 구상 단계부터 우리와 협의했다"면서 AIIB가 세계은행과 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영국 등 다수의 서방국가들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AIIB 참여를 결정한 배경 역시 미국의 주장이 합리성을 결하고 있으며 AIIB에의 참여가 자국들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한국의 AIIB 가입 만류는 우방인 한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하는 철저한 자국이익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성한 말의 성찬, 이제는 실행으로


  물론 미국과 각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요청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이밍을 조절하여 미국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선행한 후 늦어도 지난 연말 이전에는 참여를 결정하는 외교적 지혜와 역량을 발휘했어야 했다. 한국이 AIIB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을 돕고 미국이나 일본이 우려하는 상황을 잘 반영하여 서방과 중국의 가교역할을 맡겠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중심을 잡고 외교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자부, 통일부 등 관련부처가 유기적으로 공조하면서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와 협력을 구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이러한 대응체제가 작동했더라면 한국은 AIIB 참여 결정의 적기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며, 이 기회를 통해 향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추진 시 중국의 협력을 보장받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AIIB 본부를 서울이나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제안을 공론화하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한국을 개발금융허브로 만들자는 구상은 노무현 정부시기에 추진했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흐지부지 된 바 있지만 지금도 유효한 정책 어젠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개발금융에서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천 송도에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과 협력한다면 국제사회가 원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가 어젠더에 대한 대처는 늘 한 박자가 늦다는 느낌과 함께 말만 무성한 채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번 AIIB 가입 결정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에는 주요 정책 수행에 있어서 올바른 정보 파악에 기초하여 실기하지 말고 주도면밀한 전략적 대응과 실행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 이 글은 남북물류포럼에 KOLOFO 칼럼 274호로 실렸습니다.

( http://www.kolofo.org/?c=user&mcd=sub03_01&me=bbs_detail&idx=1453&cur_page=1&sParam= )

 추원서 경기대 국제통상학부 초빙교수(전 산은 상하이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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