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동맹 어디로 가는 것인가?

2015.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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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일본을 호의적 파트너로 생각하는 걸까?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에 초점을 맞춰 풀이한다면 전혀 엉뚱한 발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냉전 시기부터 미국은 대륙의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해양 제패를 전략 목표로 제시해왔다. 유럽에 NATO가 있다면 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일본이 미군의 거점으로 중요시되었고 해양을 제패할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지정학 측면에서 볼 때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중요한 거점으로 간주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한반도를 구소련과 함께 분할 점령한 것도 일본을 거점으로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냉전 시기에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팽창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거점으로는 단연 일본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냉전 질서가 종식된 지금 중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패권 지위를 강화한다고 인식되므로 이것을 저지해야 한다는 새로운 전략 목표가 생성된 것이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 개념으로 소위 ‘재균형’ (Rebalance)이라는 키워드가 제시되었다.


미일 동맹 왜 강화되나?


   미국이 세계를 관리하는 전통적 구상은 패권적 지위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라이벌 강국을 등장시켜 양극 구도 (bipolar)로 관리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패권을 차지했던 국가는 결국 쇠퇴의 길을 걸었고, 잘못하면 보통 국가 이하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그래서인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 지위에 오른 미국은 패권 지위보다는 미국과 비슷한 지위의 초강대국을 라이벌로 등장시키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래야 군사력 유지에 도움이 되고, 군사무기의 혁신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것 말고도 양극 질서의 장점은 의외로 많다. 군사전략 전술도 비교적 단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국가 내부의 정치적 통합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컨대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고 국민의 애국심도 고양시킬 수 있다. 냉전 시기에 미국은 구소련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을 끌어들였고, 같은 방식으로 이제는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구소련이 몰락하면서 그 내부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의외로 그 국력이 허약한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군사력과 무기를 제외하고는 경제 사회 전반에서 취약점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중국을 새로운 라이벌로 간주하고 있다. 근래에 거둔 중국의 경제 성장과 경제력을 놓고 보면 누군가 이것을 제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것이다. 경제력이 신장되면 당연히 군사력도 강해진다. 더구나 중국의 정치제도가 독특한 집단체제 노선을 구축하면서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략 10년 주기로 정치권력이 안정적으로 이양되는 패턴을 구축한 것은 중국의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정치력은 중국의 패권 지위를 강화시키는 원동력이다. 미국이 중국을 라이벌 강국으로 간주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전통적 세계전략 구도에서 보면 중국의 힘이 크게 강화되는 것은 분명 우려할 만한 일이면서도 일면 미국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고, 이 목표를 위해서 외교안보 전략을 비교적 단선적으로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극질서 역시 미국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방안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예민한 관리 기법이 요구된다. 다수의 강대국이 공존하는 질서는 19세기의 유럽에서 전개되었으나 그 끝은 세계 대전이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더구나 미국의 지위가 다수의 강대국을 허용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지도 않다. 군사력 지표만을 놓고 볼 때 이미 미국은 압도적 지위에 올라있고 당분간 미국에 필적할 강대국 후보도 보이지 않는다. 고작해야 러시아, 중국인데 중국의 군사력이 질적으로 미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 냉전 질서가 종식된 후 러시아가 제2군 강대국으로 후퇴하였으므로 더 이상 미국의 라이벌 강국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국이 강력한 후보국으로 떠올랐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간주하는 것을 중국은 터무니없다고 불평한다. 중국의 고위급 관리들이나 학자들은 토론하는 자리에서 하나같이 같은 목소리를 낸다. 그 메시지는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과도한 군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와 행동에 대해서는 거의 분노를 표출할 만큼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 측이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시위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이 전략을 수정할 리가 없고, 그래서 중국도 군사력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이에 맞서야 한다는 의식이 발동될 것이고, 이것은 결국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촉발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제 우리는 세계질서의 새로운 ‘판’을 바라봐야 하는 형국에 놓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아시아 ‘판’의 부작용


  미국이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동기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즉 중국 봉쇄정책의 신호탄이라고 봐야한다. 미국 단독으로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너무 부담이 크다. 군사적 패권은 유지되지만 경제력에서 중국에 밀리기 시작했으므로 파트너십이 필요하고, 일본은 미국의 욕구를 채워줄 적임자이다. 미국이 일본을 끌어내면서 중국이 크게 반발하고, 또 다른 동맹국 한국이 불편해하는 것을 잘 인지하면서도 걸음을 재촉하는 것을 보면 그 만큼 미국이 다급하고 또 힘에 부친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북한 문제를 놓고 미국이 중국과 줄다리기 하면서 불만이 증폭된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다급하다고 보는 반면 중국은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을 뿐 아니라 오로지 ‘6자회담’의 개최만을 반복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을 끌어내어 아시아에서 새로운 ‘판’을 형성한다면 대체로 중국과 미일동맹이 대치하는 구도가 될 것이다. 미국은 세계를 관리하는 입장에 있으므로 큰 구도를 짜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구도 내에서 어떠한 형태의 예민한 문제들이 발생하든 그것은 관리와 조정 작업으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예컨대 한국이 일본의 등장을 불편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문제, 중국이 일본과 맞서기 위해 군사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문제, 일본이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고조시키는 문제, 이런 문제들은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심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미국이 구상하는 대전략의 취약점이라고 본다. 그동안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을 묶어두고 아시아 강자로 군림하던 구도에서는 지역 내에서 벌어질 소지가 있었던 분쟁문제들이 잠복한 상태로 눌려있었다. 그런데 일본이 ‘보통국가’로 날개를 다시 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제역량으로 외교를 지탱하던 일본은 이제 군사역량을 추가하여 외교입지를 제고할 것이 뻔하다. 그것은 일본이 주변국과 마찰을 빚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을 등에 업고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쟁점들을 차례로 만들어 내면서 다시 강대국으로 군림하고자 할 것이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태프트-카스라 밀약’ (Taft-Katsura Secret Agreement)의 악몽을 떠 올리는 이들이 있다. 지금부터 정확히 110년 전에 있었던 이 밀약에서 미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거점 지역을 서로 나눠가지기로 합의하였다. 각서(memorandum) 형태의 이 합의에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열강에 의한 제국주의 정책이 세계의 판을 결정하던 이 시기에 이러한 약속은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특이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관에서 이러한 강대국의 세력균형 방식은 용인되지도 않고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식민지 정책이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강대국의 영향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북한은 동맹국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 놓여있지 않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거의 종속된 상태에 놓여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는 엄연한 독립국가지만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강대국이 중소국의 영토를 병합할 수는 없지만 정치적 경제적으로 영향권역으로 묶어두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다면 미일동맹이 강화되면서 피로에 누적된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일본 역량에 맡기고 미국은 아시아 해상통로 (sea lanes)를 전담 마크하면서 중국을 봉쇄하는 역할 분담을 밀약으로 합의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큰 난관에 처하게 된다. 일본의 군사 활동 영역이 확대될수록 미국의 한국방위 의지는 약화되고, 이렇게 되면 한국은 결코 원치 않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해야 하고, 중국과의 파트너십은 곤경에 빠지게 된다.

  더 중대한 문제는 따로 있다. 세계질서와 한반도 안보의 연계성 문제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은 그 당시 세계질서 구도로 형성되던 ‘냉전’의 여파가 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구소련이 아시아에서 중국과 북한을 영향권으로 병합했고, 그것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봉쇄전략을 구사하던 와중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금 수준의 미군을 주둔시켰어야 했는데, 한국지역에 힘의 공백상태를 만들어 놓은 결과 북한 측이 공격을 개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새롭게 형성되는 아시아 ‘판’의 구도는 미국과 중국의 양극이 대치하는 국면으로 가고자 한다. 세력균형 판세로 볼 때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을 봉쇄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므로 일본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군사력 제휴는 중국 시각으로 볼 때 너무 위협적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첨단 군사력의 연합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에게는 큰 위협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 지역의 전략적 중요도를 높게 평가할 것이고, 이것은 결국 한반도를 중무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반도가 화약고로 변모된다는 뜻이다.

  중국과 미일동맹이 아시아 지역에서 전면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대체로 낮다. 핵전쟁을 불사하는 무모한 전쟁을 벌여 취해야 할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동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는 지역분쟁에서 서로 힘겨루기를 벌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중국과 일본이 맞서고 있는 조어도가 가장 위험한 곳으로 지목된다. 그리고 한반도 역시 분쟁 위험 수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미일동맹이 서로 대치한다면 그 대치의 강도가 제일 예민하게 느껴지는 곳이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도발을 일으키도록 조장하지는 않겠지만 북한 스스로가 중국의 관심과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 북한의 선제 도발로 한미일 군사 대응체제가 강화되면 중국의 대북한 지원은 불가피해진다. 이것 말고도 북한은 스스로 위기를 조장해야 체제가 유지되는 기형적 국가이다. 대외적으로 위기상황이 조성되지 않으면 국가 내부의 정치 통합력이 약화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것을 가장 반기는 나라가 북한이라고 본다. 그동안 소원해진 북중관계도 회복될 것이고, 내부의 체제위기도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우려스런 대목이다. 북한의 도발 유혹에 맞서야 하고, 극단적으로는 제한전쟁 상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할 때 큰 지렛대가 되어주었던 당근책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 볼 대목이 있다. 1960년대 말 미국이 중국의 문을 처음 두드리면서 외교 정상화를 추진할 때, 남북한은 서로 유사한 내부 정치개혁을 동시에 시도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 강도를 약화시켰고, 중국은 그동안 적대 국가였던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북한을 실망시켰던 것이다. 이에 맞서 한국은 소위 ‘유신체제’를 구축하였고, 북한도 김일성을 국가주석 자리에 올리는 헌법 개정을 꾀했다. 남북한 양측은 자신의 동맹국이 보여준 실망스런 태도에 맞서 국내적으로 권력을 더 집중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치가 구조적으로 정착되면 남북한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가 내부의 정치개혁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시도는 민주주의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남북한 양국의 군사력이 더 강해지고, 안보 지상주의가 국가 전반에 퍼지는 그러한 방향일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안보는 물론 남북한 양국의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아시아 정세 구도와 한국의 선택


  미일 동맹이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면서 동아시아 판세 역시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지역안보의 안정판이 깨질 위험이 더 높다고 관측된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팽창이 걱정되므로 이것을 봉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겠지만, 그러한 봉쇄조치와 활동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고 부작용도 예상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그러한 부작용의 여파가 일종의 관리 문제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중소국 대만과 남북한,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들 국가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면서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양극 대결구도에서 어떤 쪽에 서야 하느냐가 가장 큰 딜레마이고, 방향이 선택되었다고 하더라도 강대국 대결구도에서 때로는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희생과 부작용이 파급될지는 앞으로 펼쳐질 강대국의 역학관계 여하에 달려있다.

 ① 엄격한 양극 대결체제; 중국과 미일동맹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구도이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한다면 한국의 선택은 미일동맹에 가담하여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중국은 러시아와 힘을 합칠 것이고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남북한 관계는 대치상태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② 중국 우위의 구도; 미일동맹이 힘의 한계를 노출하는 상황이다.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이 올인 전략을 펼쳐 힘을 압도하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중국이 미국과 협상전략을 펼치고, 필요하다면 한국을 끌어들여 일본의 기세를 꺾는 구도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이중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지금처럼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일본의 군사역할이 확대되지 않도록 공동보조를 취할 필요도 있다.

 ③ 미일동맹이 중국을 압도하는 구도; 일본의 군사력이 급속히 강화되고 미국 역시 아시아 주둔 군사력을 강화하여 중국을 봉쇄하는데 성공한다면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 지위는 크게 약화된다. 이 구도에서 한국의 선택은 미일동맹에 가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일본의 외교 역량에 압도된다는 부작용이 따른다.

 ④ 중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 미국이 일본을 이끌어 내고 동아시아에서의 역할 부담을 크게 완화시키는 형국이다. 세계 전역에서 미국이 안보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퇴조의 길을 걷게 되면 중국과 일본의 직접 대결 구도가 형성된다. 이 구도가 한국으로서는 가장 크게 우려해야 할 시나리오이다. 과거 한반도를 둘러싸고 열강이 각축을 벌이던 시기의 구도와 유사하다. 한미동맹은 약화되어 한국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가장 예민하면서도 큰 난관이 예상되는 구도이다.

 ⑤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는 구도; 미국이 일시적으로 일본을 이끌어 내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패권적 지위에 오르는 구도이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은 크게 제한되며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에 머문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만, 괌을 연하는 선에서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해상 교통로를 석권하여 중국을 봉쇄하는데 성공하고 아시아에서 패권 지위를 얻는다. 이 구도가 한국으로서는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라고 평가된다. 한국의 선택은 비교적 명확해지고, 필요에 따라 중국, 일본과 선택적으로 외교활동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일동맹은 언젠가는 변화를 겪어야 할 처지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질곡이 그대로 담긴 미일관계가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대는 많이 변했고, 그 변화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일본 내에서 극우세력이 급속히 준동하는 움직임은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늦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결코 반길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움직임에 정면으로 도전할 힘도 없다. 이것이 냉철한 국제정치의 흐름이고 또 원리이다. 그러나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이 큰 힘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고, 작은 힘이라도 여러 번 반복하여 발휘한다면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 역할을 확장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일본의 역할을 최소화시켜 동아시아에서 긴장이 완화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향해 가진 외교 역량을 모두 발휘해야 한다. 1954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 8개국을 묶어 ‘아시아반공연맹’을 창설하는 외교력을 펼친 것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절박하고 더 허약한 상태에서도 당시의 세계 기류를 읽어내고 외교 역량을 발휘한 것에 주목하자. 지금의 대한민국 역량으로 볼 때 적어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힘 있는 목소리와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기력한 자세로 화려한 담론으로만 흘러가는 기류에 편승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본다.


이민룡 숙명여대 안보학연구소장
 

*이 글은 디펜스 21+ 온라인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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