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간과 한국외교

2015.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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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1945년,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국제정치맥락에서 보자면, 1990년 냉전의 종식 역시 “도둑처럼” 뜻밖에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함석헌을 비롯해 박헌영, 김구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의 패망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소련의 붕괴나 냉전체제의 종식을 예측한 국제정치학자들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실상은 그 반대였다. 당시 냉전이라는 ‘양극체제’의 안정성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국제정치학계에서는 대세였다. 물론 냉전의 종식은 ‘뜻밖의 사건’이 아니라는 해석도 있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예측의 성공여부가 아니라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곧이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 시작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우리네 일상의 시간은 서로의 안부를 묻을 틈도 주지 않는 듯 빠르게 흐른다. 정치의 시간도 빠르다. 흔히 정치는 무관심이나 망각을 동반하기에 그것의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시간은 넋 놓고 안부를 묻지 않기엔 너무도 묵직하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형성은 세계화, 민주화, 정보화, 지역화, 상호의존성의 증가 등으로 묘사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현상을 담고 빠르게 ‘전환’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현실의 삶은 그 ‘전환의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한국 외교는 어떤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지만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든다. 과연 한국은 새로운 질서에서 어떤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새로운’ 질서를 살아가고 있긴 한 것일까? ‘탈냉전기’에도 ‘냉전적’ 질서가 변함없이 한반도를 감싸고 있는 현실은 한국이 새로운 환경을 아직까지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 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냉전의 종식, 뒤이은 유럽의 통합, 그리고 자유로운 소통(해시태그#)의 시대가 열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전적이고 군사적인 대결구도에서 남북간 갈등을 일상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혹자는 날카롭게 되물을 것이다. 분단과 남북대결이 오롯이 한국의 책임인 것인가? 나아가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조건에서 우리가 질서의 ‘전환’을 꿈꾸는 것은 과도한 이상주의가 아닌가?

  일견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한반도 분단의 원인은 국내보다는 국제적 차원에서 찾는 것이 더욱 타당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25년이 흘렀다.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만들었던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 흐른 25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변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그렇다하더라도 다시금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은 변하지 ‘않았고’ 게다가 냉전종식 후 중국의 급속한 성장으로 미-중간의 경쟁구도가 새롭게 등장했으니, ‘전환의 시간’은 한국을 비켜간 것이라고 몽니낼 수 있다. 더불어 한국은 새로움을 꿈꾸는 전환보다는 현실(대결)의 연속적 구도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해결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까? 21세기 한국의 외교정책에 관한 가장 활발한 논의 혹은 논쟁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미-중 간의 세력경쟁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른바 “전략적 딜레마”로 흔히 표현되는 이 질문은 수많은 언론기사, 정책제안서, 학술논문 그리고 대학 및 대중강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연한 것 같은 이 질문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우선, 질문을 ‘해체’해보자. 이 질문은 무정부적 국제정치체제 속에서 미-중간의 경쟁/대결을 ‘주어진’ 현실로 혹은 변형 불가능한 구도나 질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 하에서, 즉 그렇게 고정된 질서 ‘내부’에서 국가행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혹은 할 수 있는가)를 묻는 형식이다. 이렇게 구성된 질문에서 행위자의 역할은 ‘이미’ 상당히 제약 받게 되며, 따라서 선택의 범위도 매우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강화, 친중외교, 그리고 이른바 “연미화중”(聯美和中) 전략이 그것이다. 주지하듯, 이렇게 셋으로 구분되는 정책방향이 한국외교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인 논의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환의 시간'과 구성적 역할


  하지만 ‘해체’된 질문 속으로 다시 들어가 ‘전환의 시간’이라는 맥락에서 질문을 ‘재구성’해보자. 동북아시아의 지역질서는 늘 고정되어 변형된 적이 없는가? 동북아시아의 현 (대결적) 질서는 바람직한 것인가? 그 질서는 시공간을 넘어 ‘주어진’ 것인가, 아니면 (한국을 포함한) 행위자들이 물리적, 담론적 차원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인가? 그 질서를 형성하는 혹은 그 질서를 수용하는 행위자는 국가(정부)로 국한되어 있는 것인가? 시민으로써, 특히 학문을 배우고 지식을 생산하는 지성인으로써 우리들은 그 질서의 ‘유지와 재생산’의 과정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이처럼 해체되고 재구성된 성찰적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현 질서가 결코 “자연스러운” 것도, “고정돼”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서형성의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구성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각과 성찰은 ‘실천’을 촉발하게 되며 이는 전환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서형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식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긴 역사의 호흡을 통해 켜켜이 통찰의 나이테를 쌓아올린 비판이론에 따르면 언어, 담론, 지식, 권력, 질서, 그리고 체제 간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거칠게 요약하여 예를 들자면, 만약 현 질서가 ‘대결적’이라면 그것은 대결적 언어, 이와 관련된 이론과 지식이 생산되고, 이것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용되고 확산되면서 다시 재생산되고 나아가 강화되면서 대결적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 ‘미-중간의 세력경쟁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수많은 언론보도, 정책브리핑, 학술논문과 저서, 나아가 대중강연과 교내강의를 통해 ‘재생산’되면서 단순한 질문을 넘어 일종의 담론이 된다. 그리고 이처럼 형성된 담론은 강력한 수행성을 발휘한다. 주류담론은 곧 사회적 상식(common sense)으로 작동하게 되어 특정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주류담론(이른바 ‘상식’)과 배치되는 언행은 비정상적이고 부적절하며 타당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지되어 결국 배제되거나 주변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일찍이 갈파했듯 상식적(혹은 정상적)이라는 개념은 필연적으로 ‘경계만들기’와 ‘구별짓기’를 동반하는 “양자택일”(binary)의 시스템이며, 여기서 비주류는 비정상적이 것이 되어 선택받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한국외교의 ‘선택’을 묻는 질문은 단순히 질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존재, 그리고 행위를 제약하는 강력한 ‘실재’(real)가 되어 결과적으로 한국외교의 실행적 범위를 협소하게 가둬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담론이 언어를 넘어 발휘하는 ‘수행적’ 기능과 제약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한국의 물질적 역량의 한계, 지정학적 위치와 조건을 무시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물질만큼(혹은 일부 국제정치이론에 따르면 물질 이상으로) 관념이 중요하다. 나아가 만약 물질적 차원에서 주어진 제약을 변형할 수 없다면, 최소한 관념적 차원에서 형성된 ‘담론적 제약’에서는 “해방”될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여기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질문’의 도출이며 이를 통한 새로운 언어와 담론의 형성이다. 현 질서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질문에 조응하는 선택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 ‘밖’에서 새로운 질문을 도출하고 그 질문을 추동하는 지식을 생산하며 확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성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휘한다.


비판적 언어와 지식의 생산을 통한 대안적 담론의 형성


 (국제)정치의 현실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행위자로써 나의 언어가, 질문이, 의제(agenda)가 현재의 대결적, 패권적, 차별적, 배타적 질서 ‘내부’에 편입되어 그 내부의 문제에만 천착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결과 현 질서의 재생산, 나아가 그것의 강화에 공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성찰이 지속되면 기존의 질서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 ‘밖’을 향하고 있는 비판적 언어와 지식의 생산을 추구하게 되며 이는 결국 ‘대안적 담론’의 형성으로 이어져서 다시 한 번 행위자의 성찰을 유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적 상호작용과정’의 지속은 대안적인 사회규범과 제도가 만들어지는 단초가 되어 결과적으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과연 전환의 시대에 새로운 질서를 고민하고 있었는가? 한국을 지나치게 ‘규율’했던 냉전담론에 균열이 생기고 21세기 한국외교에 새로운 공간이 마련되는 계기가 생성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서 묻고 생각해보길 희망해본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은 “도둑처럼” 온 해방보다 큰 공명이 있으므로.


은용수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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