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정부는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국방비에서 1조8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삭감했다. 당초 총 국방예산의 3.6% 수준이다. 국방부는 예산 삭감에 대해 “이번 감액 추경으로 인해서 어떤 장비의 도입 시기가 늦어진다든가 전력화가 지연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군 내부에서는 “1조8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깎아도 문제가 없다는 게 더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5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2020년 국방예산안(50조1527억원)을 의결했다. 세계 7위 규모였다. 이를 놓고 정부가 진보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예산 50조원을 돌파했다’는 상징성을 만들기 위해 ‘부풀리기식’ 예산 편성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50조원을 넘어서는 2020년은 국방예산 역사에 남을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며 “2020년대 중반쯤 국방예산 규모가 사실상 일본에 거의 상응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다보니 코로나19 위기 극복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깎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상작전헬기 사업비 2000억원을 삭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방위사업청이 전력화가 시급한 ‘핵·대량살상무기(WMD) 대응전력’이란 이름으로 엉터리 포장해 예산을 배정했지만, 애초부터 예산 투입이 시급한 게 아니었다.


국방부는 1조8000억원 가까이 삭감하면서도, ‘황당한’ 사업에 예산을 새로 배정했다. ‘4차 산업 체험장’의 시범 구축을 구실로 군사훈련과 무관한 ‘무조건 이기는 가위바위보 로봇’이나 ‘사탕 뽑기 머신’ ‘로봇 바리스타 커피머신’ 등을 구입하는 비용으로 수억원을 끼워 넣었다. 그런 ‘강심장’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는 것은 국방예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방예산은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국방예산이 20조원에서 30조원을 돌파하는 데 6년, 30조원에서 40조원 시대를 여는 데 다시 6년이 걸렸다. 하지만 국방예산 50조원 시대는 이의 절반인 3년 만에 다가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2월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그 많은 국방비, 다 떡 사먹었습니까, 자기 나라 군대의 지휘를 외국 군대에 맡기고, 지휘를 받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처럼 그 많은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한국군이 북한군에 견줘 우세하다고 자신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군 간부들이 지금도 상당수다. 북핵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도 우세를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매년 북한의 국민총생산(GNP) 규모를 국방예산으로 사용하고, 지난 10년간 420조원 이상의 국방예산을 투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국방예산의 상당 부분이 인건비로 나가기 때문”이라는 것도, “북한 통계는 숨겨져 있는 게 많아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라는 것도 핑곗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는 안보를 경제적 관점에서 책임져야 할 시점이다. 강한 군대는 마구잡이식 예산 투입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투입된 비용으로 성과를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경영인 출신인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 국방장관은 1960년대에 컴퓨터를 이용한 국방예산과 전략의 합리화를 추진시켜 국방계획에 ‘비용 대 효과비’를 도입했다. 그는 이를 통해 소련과의 체제경쟁을 핑계로 국민 세금을 물 쓰듯 하면서 비효율이 만연했던 미군을 개혁했다.


프랑스 국방장관이 국영철도회사 경영진 출신인 것처럼 상당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국방장관은 민간 전문 경영인 출신이 맡고 있다.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여성을 국방장관에 임명한 사례도 적지 않다. 국방부 차원의 업무를 전쟁을 감당하고 부대를 관리하는 군인의 시점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다.


이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당연히 군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다수 현역 군인들조차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도 국무위원이면서 국방 업무의 전반을 전문성 있게 담당할 경영인 출신의 장관이 나올 때가 됐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국방장관은 예비역·퇴역 단체나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 조직의 효율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국방사업에서도 비용 지출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중간 점검, 획득, 운용, 문제점 처리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유리하다. 전투 임무태세는 ‘전쟁 전문가’로서 군복을 입은 합동참모본부 및 각군 지휘관들에게 맡겨도 문제가 없다.


한국군은 강력한 구조조정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3대 국방과제인 ‘국방개혁 2.0’과 ‘전작권 전환’ ‘남북 군사합의’와는 결이 다른 문제이다. 국방예산은 ‘단군 이래 최초의 50조 돌파’ 운운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국방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군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는 이유로 장성 출신이, 막연히 문민이라는 이유로 경영 마인드가 떨어지는 정치인 출신이 임명되는 자리가 돼서는 곤란하다. 국방장관이라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게 덕목이 아니라, 국방 철학을 교감하기 위해 맥나마라처럼 대통령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미·중관계 악화와 함께 맞이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3대 국방과제도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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