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7 북중관계 전망-1.복원

강태호 2017.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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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2017년 북중관계 전망


 발문:트럼프발 파고에 맞서 북중결속 강화 예고


1. 북한 껴안기의 지정학-7차 당대회 이후

2. 유엔제재와 북중경협의 상호진화

3. 위화도 합작투자가 보여주는 것


 

 긴잠에서 깨어나는 나진 선봉-훈춘의 북중 협력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지린성이 새해 들어 두만강 유역에 조성중인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 개방 선도구’ 사업에 더욱 힘을 내고 있다.  1월25일 지린성(공식 누리집)에 따르면 성 정부는 올해 창지투 개발과 이를 통해 대외 개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이끌어 내기 1월4일 지린성의 주요 고위 관리들이 참가한 가운데 ‘창지투 전략실시영도소조 제4차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는 창지투 개발과 관련한 올 해 주요 업무가 심의∙가결됐다.  바인차오루 지린성 서기는 이 자리에서 개혁∙개방이 지린성 발전에 필수라며 내륙지역 개방을 위한 고지 조성과 더불어 국경 개방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나선(나진-선봉)특구로 통하는 길목인 훈춘(琿春) 국제협력시범구 등에 대한 기업투자 유치를 독려했다.  이에 앞서 1월초 중국 국무원은 백두산과 지린성 옌지(연길), 훈춘을 연결하는 대규모 관광도로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이 계획에는 북중 접경지역 관광도로 건설도 포함돼 있다.

 

신두만강대교.png

 

 또한 한달여 전인 2016년 11월 훈춘시와 북한 나선경제특구를 연결하는 신두만강대교가 2년 2개월여의 공사를 마치고 개통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14년 9월 착공한 이 다리가 애초 10월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9월 초 태풍 ‘라이언 록’때문에 두만강 일대에 발생한 홍수로 공정에 차질을 빚었고 이후 밤낮없는 집중공사로 연내 개통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새 다리의 정식 명칭은 '중조(中朝) 변경 취안허(권하 圈河)통상구 대교'로 총공사비 1억3천959만 위안(약 238억5천여만원)이 투입됐다. 훈춘시는 9월30일 미리 왕복 4차로 중 2차로를 임시 개통했고 11월에 모두 개통했다. 기존의 원정리 대교는 관광객 전용으로 활용이 될 예정이다. 원정리 대교와 30m 평행으로 서쪽에 위치한 신두만강 대교는 취안허 세관에서 나진항까지 약 54㎞를 연결하며, 단둥-신의주의 신압록강 대교와 함께 북중간 양대 국경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신화통신>은 "새 다리가 취안허통상구를 거쳐 조선(북한) 나선경제특구로 진입하는 주요 통로이며 중조(中朝)경제무역협력을 진일보시키는데 중요한 작용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두만강 대교는 길이 549m, 폭 23m 규모로 여기서 두만강의 동해 합류지점까지의 거리는 불과  36㎞다. 또한 중국은 이 원정리로 건너는 신두만강 대교에서 북의 나진항까지 가는 기존 산길 도로 대신에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린신문>(2016년 12월20일)은 훈춘 합작구 총체계획을 인용해 훈춘에서 나진을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를 이용해 양국이 나선경제특구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훈춘국제합작시범구 조성과 연계해 북한 나진항을 겨냥한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0월 북중 접경지역인 지린성 창춘과 훈춘을 잇는 창훈(창춘-훈춘)고속철도 361㎞ 구간을 개통했다. (박정우, “훈춘-나진 철도∙고속도로 건설 추진” <RFA> 2016년 12월20일) 훈춘-나진 고속도로는 그동안 계획에 잡혀 있던 것이지만, 훈춘-나진간 철도 건설은 중국과 러시아간에 훈춘과 블라디보스톡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훈춘-나진 구간의 거리는 53㎞로 180 ㎞인 훈춘-블라디보스톡 구간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연변일보> (2016년 6월 14일)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취안허-나진항 고속도로 건설은 이미 북한 나선위원회와 비망록을 체결한 상태다. 또 이미 2012년 기존 비포장 길을 확대 포장 보수해 개통한 훈춘-나진 연결도로 (54㎞ 2급도로) 구간은 노면 포장 등 부분 복구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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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이창주, http://changzhu.tistory.com)


 이런 철도 도로 교량 등의 인프라 구축과 연계해 국제 버스터미널도 건설되고 있다. 훈춘시 (공식 누리집)는  2016년 10월10일 국제버스여객터미널 착공식이 시∙당 관계자들과 공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밝혔다. 터미널은 훈춘시 북쪽 약 3.5㎞ 지점에 들어설 예정으로 지난해 완공된 훈춘 고속철도역 바로 북동편에 조성된다.(박정우, 중, 훈춘에 나진항 연결할 국제버스터미널 착공 <RFA> 2016년 10월 14일) 전체 부지면적 3만4천300㎡에 총 투자비 1억4천482만 위안 (243억원)이 투입돼 2018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세부 시설로는 3층짜리 여객 빌딩(7천500㎡),  지상∙지하 주차장(2만6천452㎡) 등이 들어서게 된다. 특히 여객 터미널 끝은 고속철 출발지점과 연결되도록 설계해 버스 승객들이 걸어서 고속철 터미널로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훈춘시는 이 버스터미널이  인근 헤이룽장성 그리고 랴오닝성의 주요 도시 간 여객운수는 물론이고 북한과 중국, 중국과 러시아 간 국제여객을 실어나를 예정이라고 밝혀 고속철도와 연계한 국제버스터미널이 북한을 주요 영업권역 중 하나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나진항으로 연결되는 취안허 통상구에 이어 북한 함경북도 경원군과 연결되는 샤투어즈(사태자) 통상구에 새 교량을 놓기 위한 사업 타당성 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훈춘 인근 두만강에 면한 북중러 3국 접경지인 팡촨(방천)에서 러시아 하산쪽으로 가서 동해를 거쳐 북한 나선특별시 두만강동의 유람선 부두를 서로 연계하는 3국간 해상관광을 위해 중국, 북한쪽 부두가 각각 건설 중에 있다. (이창주 칭화대 박사과정, '대북제재 예외' 나선특별시, 둘러봤더니..,<오마이뉴스> 2016년 10월1http://changzhu.tistory.com/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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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만강변 건설중인 북쪽과 중국의 유람선 부두 (출처: 이창주, http://changzhu.tistory.com)


 이런 북중간의 국경 협력을 위한 인프라 건설 붐은 훈춘 이외에 인근 국경 지역에서도 활발하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1월15일 평양에서 중국의  투먼과  남양을 잇는 북-중 국경에 “다리를 공동 건설하고 관리하는 내용의 협정이 체결됐다”고 전했다. 이날 협정식에는 북한 외무성의 박명국 부상과 리진쥔 평양주재 중국대사가 참석했다.투먼과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 사이에는  100 m 의 ‘도문교’가 있으나 1941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는 투먼에서 남양을 거쳐 청진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중국이 나진에 이어 동해로의 출구로서 청진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지방정부 차원의 협력이지만, 이 모든 게 중앙 정부의 승인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사업들이다. 그동안 주춤했던 창지투 사업과 북중 국경지역에서 경제특구 등을 통한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다시 본격화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만강 지역 등 북중 국경에서의 경제협력은 이어가겠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

 

 핵 실험 뒤 우호 과시하는 국경절 기념 행사


 북한이 지난 해 두 번째인 5차 핵실험을 단행한 것은 9월9일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달도 채 안된 시점인 10월1일 두나라는 중국의 건국 67주년 기념일(국경절)을 맞아 서로 기념행사를 열면서 전통적 친선 우호를 다졌다. 평양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의 국경절 기념행사에 각각 자국 대사가 교차 참석했다. 5년 10년 단위의 '꺽어지는' 해가 아닌데도 평양에서 기념행사를 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핵실험으로 국제사회가 추가 대북 제재에 나선 것과 대비해보면  북중이 의도적으로 ‘전통적 우호’ 관계의 복원을 내외에 과시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으로 할 수 있다.
  당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북한 대외문화연락위원회와 북중친선(우호)협회가 9월30일 평양 옥류관에서 공동으로 초대회(리셉션)를 개최해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성립 67주년을 축하했으며, 이 자리에는 북한 당· 정·군의 유관 부문 인사와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외교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리진쥔(李進軍) 평양주재 중국대사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정세 아래에서 중국은 북한과 함께 초심을 잃지 않고 ‘전통계승·미래지향·선린우호·협조강화’의 방침(16자 방침)을 토대로 중·조(북·중) 관계를 잘 수호하고 강화하고 발전시키길 원한다”고 말했다. ‘16자 방침’은 중국과 북한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대변해 온 말이다.

 북중은 이 16자 방침을 좀 더 현실과 밀접한 미래지향적인 방침으로 발전시킨 적이 있다. 2010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린성 성도 창춘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두 지도자가 베이징이 아닌 그것도 동북3성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북중간의 협력의 원칙으로서 ‘정부 주도·기업 위주·시장 운작(運作 운영)·상호 공영’ 이라는 새로운 16자 원칙을 제시했다. 이는 앞서의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16자 방침과 달리 북중의 경제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구체적인 하나의 지침이자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결국 생애 마지막의 시기가 됐지만 이 창춘 정상회담을 포함해 2010~2011년 3번에 걸쳐 중국을 방문해 보다 더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북중간 국경협력을 통한 북한의 발전전략을 추진했다. 그 합의의 결실이 2010년 12월 나선· 황금평 경제지대 공동개발· 공동관리 협정 체결이었다. 그 실행 계획 요강이 2011년 작성됐으며, 이에 바탕해 김 위원장의 마지막 중국 방문 직후인 2011년 6월9일 북중은 황금평에 이어 나선 “나선경제지대 조중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 대상 착공식”을 거행했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중 경협에서 시장원리에 입각한 정부와 기업의 역할 분담이었다. 즉 두나라 정부 간 협조 지도 체계와 공동 관리 체계, 개발경영 체계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공동 번영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었는데, 정부주도의 공동개발 공동관리, 기업중심의 시장중시, 공동번영의 3원칙에 입각한 북중협력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리고 이를 이끌어 갈 조직으로 중앙과 지방차원에서 각각 북중 경제공동 지도위원회가 결성됐다.
 그러나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과 2012년 4월과 12월 북한의 인공위성 장거리로켓 발사, 2013년 2월 3차 핵실험 뒤 한미간 ‘키 리졸브’ 연습에 맞서 한반도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김정은 최고사령관은 이 때 최종적으로 전략 로케트군의 미 본토 괌 일본 등의 미군기지에 대한 타격계획을 비준하는 1호 전투근무 태세와 함께 실제 발사준비에 돌입하는 등 북미간 전면 대결전의 정세가 전개됐고, 그에 반해 2013년 공식 출범한 시진핑 지도부는 출범 2기를 맞이한 오바마 정부와 새롭게 미중관계를 설정하려 했다.  시진핑 지도부가 당시 6월 캘리포니아의 휴양지 산초미라지에서 열린 비공식 정상회담을 통해 오바마 2기 행정부에 제시한 것이 이른바 '신형 대국관계'다. 또한 중국은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하고도 이명박 정부 당시의 불화와 갈등을 극복하고 한중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방침에 따라 움직였다. 북한의 핵실험과 북미 전면 대결의 자세와는 엇박자일 수밖에 없었다. 2013년 3월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제재 결의 뒤인 5월 초에 중국정부가 취한 북한의 주요 국책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북한 대외무역은행 계좌 폐쇄)는 가혹한 것이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2013년 5월 김정은 당 제1비서가 보낸 최룡해 특사를 냉대했다. 당시 언론들은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그가 베이징에 도착한 이후 군복 차림으로 돌아다녔지만 정작 시 국가주석을 만날 때는 검은색 인민복을 입고 나갔는데 이는 중국의 요구 때문으로 전했다. 또 최룡해 특사가 중국에 도착한 것은 5월22일이었지만, 시 주석은 지방 시찰을 이유로 계속 일정을 연기해 면담이 불발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왔으며, 결국 이틀 뒤인 24일 오후에야 만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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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최룡해 총정치국장(왼쪽)과 시진핑 국가주석


 시 주석은 최룡해가 전달한 김정은 친서를 굳은 표정으로 받아들었고, 최룡해에게 “정세가 어떻게 변해도”라는 날 선 전제를 달아 세 차례나 연거푸 '비핵화'라는 단어를 썼으며 의례적으로 웃는 표정마저도 짓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 이러한 북중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킨 것이 그해 12월 김정은 당 제1비서(당시)의 고모부이자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이었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은 당 행정부장으로서 국가권력기관의 한 축을 지도하고 있는 위치에 있었으며, 북중공동지도위원회의 북한쪽 공동위원장으로 북중관계에서도 핵심적인 지위에 있었다.  2012년 8월14일 그가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것은 북중공동지위 3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뒤 불과 8개월여만의 첫 방문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큰 배려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성택이 북중 협력의 실질적 책임자이자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서른살도 채 안된 후계자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지목했다는 점 등에 입각해 그를 덩샤오핑과 같은 실질적 지도자이자 원로로서의 역할을 하는 인물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처형까지 겹치면서 북중관계는 2015년 10월 북한 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의 방북때까지 거의 2년여를 다자 외교무대에서의 외교장관 회담까지 포함해 그 어떤 실질적인 고위급 교류도 이뤄지지 않았다. 갈등과 반목의 시기였다.김정일 사후 불과 1년여만에 당 제1비서로서 후계자의 지위에 올라선 김정은은 2013년 3월 31일 노동당중앙위전원회의를 통해서 경제건설 및 핵무력 강화의 ‘병진노선’을 기본 방침으로 채택했다. 미국과의 신형대국 관계와 남한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려던 중국의 정책방향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북중 대화채널의 복원과 중국의 정책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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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31일 이번엔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무국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조선노동당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했다. 36년 만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 뒤였다.  리 부위원장은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김 위원장의 '구두친서'와 함께 7차 당대회 결과를 알렸다. 2013년 최룡해 특사의 방중 뒤 꼭 3년만이었으며 이번엔 그 당시와 달랐다.
  우선 리수용이라는 인물을 특사로 보낸 것은 중국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홍콩 <봉황망>은 리수용 부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맞춰 5월31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고모부로 2013년 처형당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리수용 부위원장의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이에 따르면 리 부위원장은 2011년 외자유치 실적에 힘입어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으로 승진한 뒤 당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과 함께 손발을 맞춰 장성택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리 부위원장은 당시 장성택 라인의 '경제통'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은연 중에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에 장성택이 추진했던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복원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그럼에도 이 방문에서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리수용 부위원장은 중국의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서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쥘 것”이라고 강조했고, 시진핑 주석을 만나서도 “새로운 (핵-경제) 병진노선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다고 <중앙통신>은 보도했다.  시 주석은 2015년 11월 당 중앙외사판공실 상무 부주임이었던 쑹타오를 대북 정책을 포함한 중국 공산당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중앙대외연락부 부장(장관급)에 임명했다.  또 리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던 5월31일 북한은 실패하긴 했지만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했고, 리수용이 시진핑을 만나던 6월1일에는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과 핵탄두 모형 등 중요 전략무기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북한은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주장하면서도 ‘북중 친선’을 강조했다.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면서 북중 친선을 변함없이 강화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도발 억제를 주문했지만 그 말은 달랐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며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로 그 메시지를 대신했다, 오히려 강조점은 “중국은 북중 우호협력 관계를 고도로 중시한다”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둘 다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핵개발이 북중관계를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핵 실험 등의 도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대의에 입각해 응분의 조처가 따르겠지만 북중 관계와는 분리해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보여준 것이다.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유관 당사국들의 냉정과 자제 유지’를 촉구한 시 주석의 발언은 생략한 채 시 주석이 “북중 친선을 수호하고 발전시켜나가려는 중국 당과 정부의 방침은 불변하다”며, “지역의 평화와 안전, 발전을 수호하기 위해 북한측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했다.


  7차 당 대회와 경제 우선의 정책방향


  전문가들은 2016년 5월 9일 폐막한 북한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정책의 강조점을 북한의 핵무기로부터 경제 건설로 전향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미국의 권위있는 북한 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칼린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도 그 중  하나다. 그는 2016년 5월 31일 이 센터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 누리집 <38 노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성공으로, 북한이 핵 억지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면서 이제는 군사에 투자되는 비용을 줄여 경제 발전에 집중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지적했다. 당 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강조한 것은 병진 노선 중 상대적으로 더 집중해야 되는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핵화를 의미하거나 그에 대한 태도 변화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경제건설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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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6차 당대회 이래 처음으로 2016년 5월6~9일 평양서 열린 제7차 당대회


 히라이와 순지 시즈오카 현립대학 교수도 김정은 정권에서 “다음 과제는 경제일 것”이라면서  이 당 대회에서 북한이 국가경제 5개년전략을 채택한 것을 지적했다. 그는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도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국제사회와의 관계 회복은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며 북한의 행보가 앞으로 경제와 외교쪽으로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다.(“당 대회 이후 北 과제는 경제와 외교”…  <교도통신> 2016년 5월 14일 ) 그는 당 대회에서 신설된 정무국이 과거 비서국이 했던 일을 맡게 될 것으로 보면서 정무국의 외무상의 역할을 해 온 리수용,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 부위원장이 대외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종연구소의 이성현 연구위원(통일전략연구실)은  시진핑 지도부의 북핵 문제와 북한에 대한 대응에서의 정책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중국을 에워싸려는 미국의 포위전략에 맞서 이번에 중국은 북한을 미국과의 갈등구조에 활용하는 지정학적 본능으로 응수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정부가 리수용 방중의 중요성을 ‘관례’적이라고  ‘폄하’하자, 오히려 "중국이 국내 언론의 입을 빌려 이번 방문의 의의가 실은 ‘당과 당의 관계를 초월’(超越党与党的关系)하여 ‘지정학 문제’(地缘政治问题)를 다룬 것이라고 바로 잡아주는 ‘해설자’의 수고를 자청하였다"고 말했다.('리수용 방중과 북중관계의 지정학적 관성' ,<세종논평> No. 317 2016년 6월 7일 )
  이는 지역 맹주인 중국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중국 역시 그에 맞서 북한 껴안기 카드를 쓰겠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대응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미중이 거의 충돌직전 수준으로 가고 있는 ‘설전’(舌戰)과 긴장 대치 상황, 한미의 사드 배치 협의 본격화, 일본의 적극적인 미일동맹 강화, 북한 4차 핵실험 뒤 중국이 배제된 채 진행된 한미일 3 협의, 일본에서 열린 ‘G7’에서 나온 중국 비판을 담은 성명 등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은 리수용 방중을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 2015년 12월에 있었던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불발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발생하면 안됐다. 중국 언론들은 리수용 부위원장이 이끈 대표단이 무려 10대에 이르는 의전용 차량에 타고 모터케이드의 극진한 호위를 받으며 시내로 이동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또 북한이 리수용 방중을 몇 시간 앞두고 또 무수단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음에도 <인민일보>는 시 주석과 리 부위원장의 회담 사진을 <인민일보> 1면 최상단에 배치하는 예우를 해주었다. 중국 텔레비전들은 북한 평양과 중국 지난(济南)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공노선 개통 소식을 크게 보도하며 북중간의 교류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돋구었다. 그리고 리수용 방중 일주일 전에 중국올림픽 농구대표단을 보내 평양에서 친선경기를 이틀 간격으로 세 번 가졌다.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직접 관람했다. 중국팀은 북한팀에 졌고, 중국정부는 북중양국의 ‘우의가 깊어졌다’(加深了友谊)라는 평가를 내렸다. 김 위원장이 중국 관련 외부활동을 한 것은 2015년 7월 29일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릉원을 방문한 이후 처음이었다. 중국 농구팀의 평양 방문이 끝난 바로 하루 뒤에 그 깊어진 우의의 여세를 몰고 리수용의 방중이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양측은 치밀하게 사전에 조율된 움직임을 보였다.
  게다가 리수용 부위원장의 방중은 며칠 뒤 열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불협화음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미중 전략대화를 앞둔 것이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베트남, 필리핀 방문을 하는데 대한 맞대응의 측면이 있었다.
  물론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 (<자유아시아방송(RFA)>2016년 6월2일)도 강조했듯이 중국이 리 부위원장의 방중 기간 북한의 병진노선을 '지지(endorse)'한 것은 아니다. 고스 국장은 시 주석이 리 부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약해진 중국의 대북 지렛대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에 더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은 장성택 처형 후 김정은 위원장과의 소통을 도와줄 인물을 원했는데, 이제 리진쥔(李進軍) 평양주재 중국대사가 국경절 기념행사에서 언급한 ‘소통협조 강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외무상인 리수용은 5월초 열린 당대회에서 정무국 부위원장에 임명됐으며, 스위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유년 시절을 보낼 때부터 보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김정은에 가까운 실세로 평가받았다. 고스 국장은 중국이 이를 통해 "앞으로 북한을 핵 협상장에 복귀시킬 방안, 또 남북 대화와 미북 대화로 이끌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북한 외교 리수용-리용호 시대와 ARF 외무장관 회담


 외교관 출신 탈북자 고영환에 따르면 리수용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오랫동안 스위스에서 공사참사, 대사로 활동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 뒷바라지를 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한다. 특히 김정은의 유학시절 그가 외출할 때마다 가족처럼 항상 동행하고 온갖 시중을 다든 일종의 김정은 대부 역할을 한 인물로 고영환은 평가했다. 리수용은 2012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부장으로, 2014년 4월에는 외무상으로 승진했으며, 그리고 2016년 5월의 7차당대회에서는 정무국 국제담당 부위원장으로, 정치국 위원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에 따라 7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된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후임 외무상이 됐다. 고영환에 따르면 리용호는 올해 62살이고 그는 김정일 시대 숨은 실세였던 이명제 전 당 서기실 부부장의 아들이다. 평양외국어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그는 외무성에 들어온 후 미국국 부국장과 영국주재 대사를 지냈고 2010년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했다.  고영환은 리수용이 스위스 대사 겸 당 서기실 부부장을 할 때 리용호 외무상의 부친 이명제도 서기실 부부장으로 오랫동안 일해 친분관계가 있었고 이 연줄로 리수용이 김정은에게 후임 외무상을 건의한 것으로 분석했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 고영환 강석주 이후 북한 외교는?  자유라디오방송(RFA) 2016년 6월10일). 이로써 북한 외교는 강석주-김계관 시대를 마감하고 리수용-리용호 시대를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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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2일 평양에서 국장으로 거행된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장례식

 

 그  리수용 정무위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이번엔 2016년 7월25일 라오스 비엔티안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회담했다. 리용호 외무상으로서는 첫 상견례인 북중 외무장관 회담은 주한미군에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 이뤄진 첫 고위급 회담이자, 외무장관간에는 2년만의 공백 끝에 이뤄진 공식 회동이었다. 
 전날 24일 라오스에 도착한 리용호 외무상은 첫번째 공개 일정으로 왕이 외무장관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베이징에서부터 쿤밍을 거쳐 라오스 비엔티안까지 오는 비행기를 왕 외교부장과 모두 동승한 것으로 돼 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숙소도 같이 잡았다. 그에 반해 왕이 외교부장은 7월 24일 밤 윤병세 외무장관을 만나자 마자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매우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최근 남한의 행위는 쌍방의 호상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2014년 7월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거쳐 그리고 2015년 9월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과장에서의 전승절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기에 이르기까지 한중관계가 북중관계를 압도했다면,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에 맞춰 시진핑 중국 지도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크게 손상된 신뢰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앞서도 언급했듯이 2013년 5월엔 적극적인 대북 금융제재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2014년 7월엔 북한을 사실상 무시한 채 시진핑 주석이 남한을 공식 방문했다. 당시 중국 관리들은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남한에 먼저 오고 또 다른 나라를 방문하지 않고 남한만 ‘단독 방문’하는 것을 강조했다. 그에 앞서 시 주석의 방한을 준비하기 위해 2014년 5월 서울에 온 왕이 외교부장은 윤병세 장관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시 주석의)이번 방문은 ‘친척집에 가서(走親戚), 우의를 나누고(友誼), 합작을 말하고(話合作), 미래를 논하는(談未來) 여행’이다. 쌍방은 마땅히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戰略合作同伴關係)를 심화해야 한다.” 왕 부장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중국은 앞으로 한국을 더욱 중요한 협력동반자로 선택하길 원한다”며 “신흥 전략산업의 협력을 강화하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가속화하자”고 말했다. 중국이 ‘친척’이란 표현으로 한·중 관계를 묘사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으며, 한중 관계를 한단계 더 격상시키자는 것으로, 실제로 두정상은 회담에서 기존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전면적’이라는 표현을 추가해 격상시켰다.
  당시의 시진핑의 방한 등 중국의 한반도 외교 또한 대미 외교와 동북아 전략의 큰 틀 속에서 행해진 것이다. 시진핑의 방한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그해 4월 일본과 한국을 방문해서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센카쿠(댜오위다이) 열도에 대한 미일안보조약 적용을 명시해 신형대국관계 대신 중국에 맞선 미일동맹 강화를 추구했다. 또 미국은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쪽의 자세를 비판해 한일간 군사협력의 여건을 만들고, 한국에 대해선 작전지휘권 반환 연기를 수용하면서 미사일 방어(MD)체제 편입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도모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은 이런 오바마의 한일 방문에 대한 맞대응이자 한미일 군사협력의 틀에 한국이 참여하는 걸 저지하려 한 것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내놓은 ‘신형대국관계’에 입각한 협력체제는. 미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인정한다면 중국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중시’를 선언한 오바마 정부는 이런 중국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이른바 재균형전략을 통해 중국 포위에 나섰다. 미국은 조어도(센카쿠열도) 문제에서 일본 편을 들었고, 남중국해 분쟁에서도 필리핀과 베트남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이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당시 한중 정상회담 뒤 나온 공동성명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전혀 언급을 안했으며, 두 정상은 기자회견이었음에도 질문을 받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시 주석이 제안한 광복 70주년 기념식 공동 개최도 얼버무리며 무시했다. 그럼에도 미국 내에선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의 일본의 역사인식을 문제 삼은 브리핑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 수석은 정상회담 뒤 두 정상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자위권 확대까지 추진하는 데 우려하고 있고 일본이 고노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를 지속적으로 폄훼하는 시도를 보이는 데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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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7월 라오스 비엔티앤 아세안지역포럼에서 만난 윤병세 외무와 왕이 외교부장(오른쪽)

  이런 맥락에서 한중 정상회담 2년여 뒤 왕이 외교부장이 공개적으로 “최근 남한의 행위는 쌍방의 호상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고 말한 것은 '신뢰의 기초'를 지적하고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남한의 행위는 사드 배치 결정 및 합의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중국이 보여주려 한 것은 북한과 중국의 외교무대에서의 공동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고영환의 분석대로 강석주의 사망 이후 강석주-김계관의 시대를 마감하고 북한은 리수용-리용호 외교의 시대를  북중 협력으로 맞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앞서 미 해군분석센터 고스 국장의 낙관적인 전망처럼 중국이 북한을 핵 협상장에 복귀시키는 쪽으로 작동할 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전통적인 북한 중시의 외교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북중이 리수용 채널을 통해 경제 분야에서도 더욱 활발한 협력을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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