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출범 뒤 미러 관계-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강태호 2017.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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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는 혼란스럽다. 그래서 예측불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많은 국내외 정책들을 반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해체시키고 있다. 외교안보 영역을 보면 극단적인 미국 제일주의, 나토는 중요하지 않다는 동맹 경시 외교, 국방비 증강과 선제공격을 배제하지 않는 무력 외교, 이미 합의한 다자간 무역협정의 폐기 등등 트럼프가 내건 외교 스타일이나 방침은 오바마는 물론이고 부시의 외교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들과도 다른 것이며, 미국 외교의 기존 패러다임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미러 관계는 어떨까? 바뀔 것이다. 그러나 크게 개선될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다. 그렇다면 미러 관계의 변화는 미중 관계와 중러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트럼프는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견제한다는 이른바 ‘역 닉슨 전략’을 추진할 것인가? 미국의 지도자 가운데 트럼프만큼 등장 그 자체로 국제정세를 격동과 혼돈으로 몰아넣은 인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미국이 무엇을 할지를 얘기하는 건 늘 성급한 전망이 될지 모른다. 다만 트럼프의 등장으로 확실해지고 있는 것은 오바마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건 그 승자가 트럼프이기 보다는 푸틴이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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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 정상회담 뒤 미러 정상회담 수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월 28일(현지시간) 전화통화를 통해 지난 3년의 ‘신 냉전’을 끝내고 미-러 간 ‘신 시대’를 열기로 약속했다. 백악관은 보도 자료를 통해 “이날 통화는 복구 필요성이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테러리즘과 다른 중요한 관심사를 다루기 위해 양쪽이 신속하게 움직이길 희망했다”고 덧붙였다. 크렘린궁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그 국민들에게 공감하는 미국인들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러시아 국민들에게 행복과 번영의 소망을 전하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도 미국인들에게 똑같은 희망을 전했다고 덧붙였다.
 두 나라는 이어서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갔다. 미러관계의 개선은 이미 미 대선과정에서 트럼프의 발언 등으로 예견된 것이었다. 다만 현실은 미중 정상회담이 먼저 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중은 2017년 2월10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전화통화를 바탕으로 조기에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 양제츠 국무위원이 미국을 가서 3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일을 방문하고 중국에 오는 것에 합의했다. <CNN 방송>은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중 정상회담이 4월 6,7일 트럼프 대통령이 남부 플로리다 주에 시 주석을 초대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전했다 그에 반해 미러는 미국내의 반러시아 정서와 푸틴 측근들의 내통 스캔들 등이 고려된 때문인지 다소 속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과  틸러슨 미 국무 장관은 2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무장관회의서 처음 두 정상간의 회담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2월22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아직 이 문제(미-러 정상회담 문제)는 외교 채널을 통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양쪽이 각자 염두에 둔 날짜가 있겠지만 아직 서로 협의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우샤코프는 그러면서도 오는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담에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것으로 보이고, 뒤이어 7월에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고 상기시켜 이 행사들과 연계돼 미-러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도 있음을 비쳤다. 현재로선 오는 7월 7~8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푸틴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는 건 확실하며 두 정상의 회담은 그 이전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로선 초기에 하나의 중국 정책 폐기 마저 거론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행보가 북핵 문제 남중국해 문제 그리고 환율 조작과 같은 통상문제 등의 악재를 안고 있음에도 미중관계를 크게 악화시키는 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반해 러시아와의 협력관계 구축은 신중한 접근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미중, 미러 두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트럼프 등장 이후의 미러 관계, 미중관계와 이른바 미 중 러 3자의 세력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러시아를 지렛대로 중국의 ‘대국굴기’를 막으려는 ‘트럼프식 세계경영 전략’은 아직은 지도자의 정책의지 내지 전망의 영역에 있는 셈이다.


 미러의 신 냉전과 선거에서의 트럼프-푸틴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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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집권 3기가 시작되었던 2012년 상반기부터  대 러시아 인권법안 채택(마그니츠키법), 미국의 전세계적인 도감청을 폭로한 스노든의 러시아 임시망명 등으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러시아인 변호사 마그니츠키는 2008년부터 자국 검찰과 경찰, 판사, 세관원 등 고위공무원들이 연루된 대규모 비리사건을 파헤치다 탈세 방조 혐의로 기소되어 조사를 받던 중 2009년 11월 모스크바 구치소에서 숨졌다. 미국 의회는 마그니츠키 사건을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지목하고 냉전시절 채택된 미국의 대러 무역 제한 법인 ‘잭슨-베닉 수정안’을 폐지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인 인권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피살 사건과 관련된 러시아 인사들에 대한 제재 내용을 담은 ‘마그니츠키 법안’을 채택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오바마와 푸틴 두 정상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리아 내전, 나토의 동진, 미사일 방어체제, 핵 군축 등에서 대립해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결정적으로 두나라 관계를 악화시켰다. 우크라이나의 친러계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 등으로 축출된 뒤 이에 반발해 2014년 3월 러시아계 자치령이던 크림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이 주민투표로 러시아와 합병을 결의하자, 러시아는 두 지역을 전격 합병해 러시아의 역외 영토로 선포했다. 그 직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계 주민들의 분리 독립 투쟁으로 일어난 우크라이나 내전에도 개입했다. 나토 및 동유럽에 미군을 증파하고, 유럽연합 등이 가세해 러시아 제재에 나서면서 2014년 이래 양국 관계는 ‘신냉전(New Cold War)’ 상황에 돌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2015년 9월 푸틴의 시리아 내전 개입과 2016년 들어 시리아 이라크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이슬람국가(IS) 조직 격퇴를 위한 협력의 필요성은 미러가 협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줬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이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하여 공조하기로 하는 등 양국이 화해 해빙 모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그러나 미 대선과정이 본격화 하면서 트럼프 후보와 푸틴 대통령이 서로 민주당의 클린턴과 오바마 연대에 맞서 반클린턴 선거 캠페인에 나서자 갈등은 오히려 심화됐다. 트럼프는 푸틴을 오바마와 비교하며 “강한 지도자”라고 추켜세웠으며, 정책 방향에서는 미러 협력을 강조하면서 특히 “시리아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 조직의 극단적인 테러리즘을 격퇴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크림반도가 러시아 영토임을 인정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며 오바마-클린턴의 대외정책을 비판했다. 
  이처럼 트럼프는 선거기간 대외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음에도 대러 전략에서만큼은 오바마만이 아니라 미 공화당을 포함해 미국의 주류 집단이 추구해 온 패러다임을 부정했다. 우선 오바마를 비롯해 미국의 전통적 시각은 국제정치 및 안보문제에 있어 러시아는 위협적인 존재이며, 미국의 의지를 관철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러시아를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실용적 관점에서 협력 대상으로 간주했다. 트럼프가 유럽연합에 부정적이며, 브렉시트(Brexit)를 옹호하고, NATO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시각마저 보이고 있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이런 시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나토의 동진 및 이른바 대서양 동맹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내부로부터의 분열이라는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트럼프와 푸틴의 밀월관계와 푸틴의 남자 틸러슨 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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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과 틸러슨 엑손 모빌 회장


 트럼프의 대외정책에서 푸틴과의 연대 가능성은 현실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기간 내내 푸틴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호감을 보이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혀왔다. 푸틴은 트럼프를 “재능 있는 사람”으로, 트럼프는 푸틴을 “위대한 지도자”로 불렀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국무장관에 렉스 틸러슨(Rex Wayne Tillerson)을 발탁한 것은 그 말들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틸러슨은 <뉴스위크>의 표현대로 ‘푸틴의 남자’다.(오웬 매튜스, “트럼프가 주목한 푸틴의 남자”, <뉴스위크> 한국판 2016년 12월 26일)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이자 미국 최대 석유업체인 엑슨 모빌에서만 41년간 일해 온 틸러슨은 전형적인 오일맨으로 푸틴 대통령과는 17년간 인연을 맺어왔다. 틸러슨이 출셋길에 오른 것도 푸틴 대통령과의 인연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시장경제도입에 따른 혼란이 국가 경제를 흔들었던 1998년 무렵(러시아는 1998년 8월에 모라토리엄을 선언), 틸러슨은 엑손의 부사장 겸 러시아 사업 담당 자회사 사장으로 승진해 러시아 땅을 밟았다. 그는 당시 러시아 관료주의에 막혀 지지부진하던 170억달러 규모의 사할린 원유 채굴 사업을 푸틴 (당시) 총리의 도움으로 성사시켰다.  이 때 그는 푸틴과 개인적인 거래를 텄고, 2011년 러시아 북극 영토 자원 접근권을 확보하면서 ‘장수 최고경영자(CEO)’의 길을 닦았다. 미국에서 푸틴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인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푸틴 대통령은 2013년 틸러슨에게 러시아의 자원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우정 훈장’을 수여했다. 우정 훈장은 러시아 정부가 외국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위 훈장이다. 당연히 틸러슨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에 따른 미국과 유럽연합의 러시아 경제제재에 반대해 왔다. 그 틸러슨을 트럼프가 국무장관 자리에 앉힌 것은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이 지적했듯이 누가 보더라도 “트럼프가 러시아와 진정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걸 보여준 신호”이지만, 아마도 트럼프가 아니면 누구도 노골적으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친러시아 성향인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DIA) 국장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으로 내정했다.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모두 친러파로 채운 것이다. 또한 트럼프  진영의 인사들 가운데 대외정책자문관으로 기용된 카터 페이지(Carter Page)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Gazprom)에서 일했으며 관련 주식 일부를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옹호했던 몇 안 되는 미국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클 수밖에 없다. 출범 한달도 안된 2017년 2월13일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임한 것은 앞으로의 미-러 관계를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는 2017년 1월 트럼프 취임 전 세르게이 키슬락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접촉해 '대(對) 러시아 제재 해제'를 논의한 사실이 폭로되며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가 사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언론이 녹취록을 근거로 그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트럼프 정부 고위 관계자들에게 거짓 해명을 했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다. 플린은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팀 첫 주자이자 첫 탈락자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가 안고 있는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보건데 그의 사임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비교할 때 사소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플린과 키슬락의 녹취록이 나온데서 알 수 있듯이 그 이면에는 CIA와 FBI 그리고 백악관을 좌지우지 하는 트럼프의 수석전략가이자 고문인 스티브 배넌과의 알력 등 권력 내부의 암투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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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마한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틸러슨의 국무장관 발탁 등 러시아와의 협력을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세 가지 주요 국제 현안에서 기존 정책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 찬성하는 트럼프 당선자의 태도로 미루어 그동안 유럽 연합과 공조 체제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왔던 종래의 입장에서 탈피하여 러시아와 협력 체제를 구축한 뒤, 그동안 취해왔던 제재 조치를 완화해 사실상 무력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되어왔던 NATO의 확대와 전력증강은 중단될 것이다. 셋째,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미-러 양국은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달리, 트럼프 당선자는 시리아 정부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독재자로 여기지 않으며 과거에도 러시아의 무력 개입을 적극 찬성했었다.  결론적으로 세 가지 현안 모두 러시아의 이해관계에 따른 해결방식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과의 협력 가능성. 러시아의 경우 크림반도 합병 인정 및 제재 해지, 시리아의 경우 반군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 결과 IS 퇴치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러시아 –터키- 이란이 시리아 사태 해결을 비롯해 중동지역의 질서 재편을 주도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추진하는 이와 같은 정책들이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 등 미 내부에서 지지를 얻어 통과되거나 이행될 수 있을 것인가다. 의회의 시리아 아사드 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미 군부의 러시아 불신은 물론이고, 트럼프 스스로가 이란 핵협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비춰 볼 때 어느 하나 쉽게 풀릴 수 없게 얽혀 있다.  푸틴은 미국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밝혔다. 제재해제, 러시아 접경 지역에서 나토 병력의 철수, 미국 마그니츠키법(부패 러시아 관료 제재)의 폐기, 제재조치로 러시아가 입은 경제적 손실의 보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만큼 의회는 물론이고 행정부 내에서 지도력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의 주된 관심사는 스스로 밝혔듯이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지배적 지위를 양보하는 것으로 해석될 협정은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푸틴의 러시아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 예산 증강과 핵전력 강화 등을 새로운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한 대로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1일∼2018년 9월30일)의 국방비를 540억 달러(약 61조2천630억 원), 전년 대비 약 10% 증액하기로 했다. 비(非)국방 예산은 국방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줄어들게 된다. 결국 국방 예산은 늘리고 외교 예산은 줄이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13년 오바마 정부가 강제한 5천억 달러 수준의 국방예산 강제 감축 조치 (sequester)를 사실상 폐지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아래서 미 육군 병력은 48만에서 54만으로 증원되고, 미 해군은 현 272척인 함대 규모에 78척의 새로운 전투함과 잠수함을 추가하고, 미 공군은 전투기를 100대 이상 추가로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군사력 증강은 향후 10년간 5천억에서 최대 1조 달러 가량의 추가적 군비 지출로 이어질 전망이다.  해군의 대대적 확대 등 계획의 상당부분은 중국을 겨냥한 측면이 있지만, 미사일 방어망 이외에 ICBM 전략폭격기 원자력 잠수함등 전통적인 핵전력 현대화 계획은 러시아에게는 위협이다. “핵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오바마와는 달리 트럼프는 미 핵전력의 절대 우위를 강조한다. 그는 미 핵자산 현대화의 일환으로 냉전 이후부터 거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던 미국의 육해공 공격 수단인 핵 3대축 (트라이어드 Triad), 즉 대륙간 탄도탄 (ICBM), 전략폭격기, 그리고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SLBM)의 첨단화를 계획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2016년 12월1일 연례교서에서 “전략적 균형을 깨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며 전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강화될 미사일 방어체제와 함께 미 핵전략의 첨단화는 러시아를 압박하고 특히 상대적으로 왜소한 핵전력을 보유한 중국의 핵억지력을 붕괴시킬 수 있다. 
  트럼프 정부 내의 불협화음과 매티스 국방장관 등 미 군부의 뿌리 깊은 반 러시아 인식 등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내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 의회, 공화당, 군부, 나아가 트럼프가 지명한 신 행정부내 외교안보 영역의 상당수 인사들마저도 우크라이나 개입, 시리아 개입, 전략무기 현대화, 인권침해 등에서 “(우크라이나 평화안으로 체결된 ‘민스크-2’의 이행 등) 러시아의 행동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협력에 반대하면서 처음부터 제동을 걸 것이다. 낙마한 플린 국가안보보좌관과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자를 제외하면 부통령 마이클 펜스(57, Michael Pence),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66, James Mattis), 법무장관 제프 세션즈(69, Jeff Sessions), CIA국장, 마이크 폼페오 (52, Mike Pompeo) 등 트럼프의 외교안보 담당자들 모두가 과거 강력한 대러 불신을 피력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사이버 해킹은 미국내 당파를 초월한 국가 위협요소로 전면 부각됐다. 2016년 12월, CIA보고에 이어 오바마 전임 대통령은 마지막 기자회견을 통해 노골적으로 러시아가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민주당 전국위원회 메일을 해킹했다고 밝혔다. 이는 의회내 공화 민주 양당의원들의 대러 규탄으로 이어졌으며 미 군부는 “전통안보 측면에서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을 최대위협으로 간주해 왔다. 이러한 대러 불신 내지 러시아 위협론은 오바마 행정부 뿐만 아니라 공화 민주의 정파를 초월해 뿌리가 깊다. 2016년 11월 8일 선거결과 백악관과 상하 양원의 다수당(하원: 241대194, 상원:51대46) 지위에 있는 미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대러 강경론자들이며 오바마 정부 8년간 오히려 좀더 강력하게 러시아를 압박하지 않은 것을 비판해 왔다.(정은숙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트럼프 당선과 미러관계 변화 전망, <정책 브리핑>, 2016년 12월13일)
  트럼프의 등장으로 확실해지고 있는 것은 오바마 정책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러나 미국내 정치지형에서 볼 때 대 러시아 정책에서 그 승자가 트럼프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더 많은 이들이 견해를 같이하는 이유다. 


 키신저와 트럼프의 ‘역 닉슨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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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에 기대를 보이고 높이 평가하는 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중동 유럽을 넘어서 보다 글로벌한 것이며, 전략적인 것이다. 헨리 키신저(93)는 70년대 공화당 정부에서 미중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미국의 전략가다. 그가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대해 매우 호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그는 <CBS방송>의 뉴스 시사 프로그램(2016년 12월18일)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트럼프 당선인이 매우 중요한 외교 이슈를 많이 제기했다”면서 “그것이 적절히 다뤄진다면 좋은, 대단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키신저는 심지어 “트럼프 당선인이 던지는 낯선 질문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풀 가능성도 있다”면서 “트럼프 당선인은 역사에 매우 중요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까지 높이 평가했다. 키신저는 또한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을 비난하기는 커녕 변호했다. “그가 러시아와 너무 친하다는 주장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러시아와 친하지 않았다면 엑슨 모빌 대표로서 쓸모가 없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그걸 장점이라고 봤다.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등 과거 공화당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트럼프를 만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했으나 트럼프식 외교정책과 해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뒤인 2016년 11월17일 키신저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때 공약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대선 때 입장을 지키라고 해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모든 공약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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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상하이 공동커뮤니케로 미중관계 정상화를 시작한 키신저와 리처드 닉슨 대통령.


  그렇다면 키신저는 왜 트럼프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보고 높이 평가하기까지 하는가? 이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트럼프가 키신저의 정책 방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선거 캠프 외교·안보팀의 수장이었으며,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제프 세션즈는 이미 2016년 5월 22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방어와 외교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기본적 철학과 접근은 키신저 식 모델에 가깝다”고 말했다. 즉,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정통 보수주의를 이탈한 ‘신(新) 고립주의’라기보다, 철저한 국익 중심의 ‘현실주의’라는 것이다. 이는 2016년 5월18일 뉴욕 맨해튼에서 트럼프와 키신저의 회동이 단순히 트럼프의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언론 홍보용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 분석가 그레그 로슨은 2016년 12월3일 미 정치 전문지 <더힐> 기고문에서 “트럼프의 외교는 ‘역(逆)닉슨(Reverse Nixon)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저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초 급성장하는 소련, 제3세계 사회주의 확산, 베트남전의 패배 등 위기 속에서 닉슨은 키신저의 세력균형론을 받아들여 중국을 방문해 미중관계를 극적으로 반전시킴과 동시에 주한미군 등 아시아에서의 미군철수와 방위 분담 등 동맹관계를 재편하는 ‘닉슨독트린’을 내놓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오일쇼크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위기, 미 달러위기 등에 대해 금본위제를 폐기하는 ‘닉슨쇼크’로 대응했는데 트럼프에게서 이와 유사한 행보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이정훈 국제팀장, “트럼프의 대외정책, 제2의 닉슨 독트린”, 현장 언론 민플러스 2016년 12월20일)    


현실과 전망의 괴리-베이징 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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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손을 맞잡은 중러 인도 브라질 남아공 대통령


  2016년 대선 기간 공화당 진영은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융단폭격을 가했다. 요약하면 오바마의 대외정책은 “미온적’이고 ‘애매모호’하며 ‘교묘’하고 ‘비겁’할 뿐만 아니라 ‘경험 부족’에다 ‘모순적’이고 미래에 대한 ‘전망마저도 부재’한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그 비난의 핵심에는 미 대통령이 무력 사용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영향력과 신뢰를 깎아먹었다는 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는 공화당 주자들이 대안은 내놓지 않은채 IS (이슬람국가) 조직을 향한 융단 폭격을 촉구하는 정도가 고작인 선거 캠페인용 비난이었지만, 오히려 공화당의 이런 비판이야 말로 쇠락하는 제국이 직면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트럼프를 반대하고 오바마를 지지했던 미국의 전략가들이나 정책 전문가들도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큰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오바마의 외교정책은 큰 틀에서 보면 유럽에선 나토의 동진정책을 고수하고, 중동에서는 전쟁에는 발을 빼면서 최소한의 개입을 유지하고, 아시아에선 이른바 아시아 중시정책(Pivot to Asia)을 내건 중국을 견제해 패권을 유지하는 재균형전략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칠게 얘기하면 중동은 전쟁을 끝내지도, 발을 빼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리아, 이란 터키 등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도 영국의 브렉시트에서 보여지듯이 ‘대서양 동맹’의 균열을 막지 못했으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크림 반도는 물론이고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의 기득권을 저지하지 못하고 대러 제재를 유지하는 데도 급급했다. 아시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남중국해에서는 베트남, 필리핀과의 공동전선을 구축해 중국을 견제했다고 하지만 그 성과를 내기도 전에 물거품이 될 지경에 처했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4번에 걸친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 등 북핵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인내의 한계만 보여줬다. 아베의 일본마저 이미 오바마의 반대에도 대러 제재를 넘어 푸틴과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러시아와의 협력에 나섰으며, 남중국해의 최전방에 섰던 필리핀은 터키가 친러 정책으로 180도 정책 전환을 보인 것처럼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등을 돌렸다. 오바마는 중동의 전략 요충인 시리아와, 남중국해 핵심 국가인 필리핀 모두에서 러시아, 중국과의 힘겨루기에서 교두보를 잃었다. 한미일 동맹에 묶어두려한 한국마저도 그들이 보기엔 불안한 미래로 가고 있다. 미국의 전략가 키신저가 ‘오바마 대통령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트럼프가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는 이유도 이런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신고립주의가 아니라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예컨대 트럼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하루 아침에 폐기시켜 버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5년 6월 일본 등 11개국과 함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경제 규칙을 중국이 아닌 미국이 써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트럼프는 자유무역이라는 글로벌 경제 규칙을 헛된 망상으로 보는 듯하다.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편집인은 중국과 미국의 이런 행보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 지를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노조의 지지를 등에 업은 트럼프 대통령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보호주의가 “위대한 번영과 막대한 힘을 가져올 것”이라고 선언하는 그 때, 중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화의 동력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미국이 만든 합의가 세계의 질서를 규정하는 규칙이 됐던 ‘워싱턴 컨센서스’는 과거가 되고 있다. 중국은 지금 일대일로의 구상을 이행할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  2014년 7월 서명한 ‘브릭스판 세계은행’인 ‘신개발은행’(NDB),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상하이협력기구(SCO) 개발은행 등 미국의 금융지배 질서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가 현실이 되고 있다. 
 키신저의 세력균형론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 사태에 발목이 잡혀 러시아와의 갈등과 대결을 추구하는 미국의 정책을 지속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건 전략적 경쟁자이자 패권국인 중국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협력 앞에서 힘의 균형추는 중국쪽으로 기울 것이다. 미국은 갈수록 수세적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2016년 7월 <폭스뉴스>의 시사 토크쇼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밀착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는 조언을 수없이 들었는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와 갈등을 빚어 결과적으로 중·러 밀착을 도왔다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의도는 러시아와의 밀월관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는 압력을 가하고 러시아와는 해빙 무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미국이 러시아의 푸틴과 밀월관계를 구축한다면 중국 러시아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다른 모든 나라를 제치고 러시아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푸틴 대통령과 지금까지 4년여 동안 20차례 이상 정상회담을 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침공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2014년에는 4000억달러 규모의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30년간 도입하는 세기의 빅딜에 합의했다. 그 뒤 중·러는 북핵 문제와 사드 문제, 시리아 문제 등 거의 모든 주요현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문제는 미국이 기존의 중러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뒤흔들만큼 러시아를 움직일만한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자칫하면 러시아가 미국의 카드가 되는 게 아니라, 미국이 러시아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을 카드로 활용할 수가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 개입에서 보여준 군사적 능력과 자원대국으로서의 외교적 역량,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이란 인도 파키스탄을 비롯해 과거 소연방체제 아래에 편입돼 있던 중앙아시아국가들(유라시아경제연합 등)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의 또 다른 거인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푸틴의 장기간에 걸친 독재적 리더쉽은 일관되고 강력한 외교를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EU와 미국 등 나토의 동진에 맞서 동방 외교로 나선 푸틴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바탕으로 한편에서는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이란까지 포괄해 SCO의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을 대유라시아 협력구상으로 확대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이제 그동안 패권적 세계질서의 변화를 중국의 부상 내지 미중 대국관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과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러시아의 협력 관계, 또 다른 G2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다. 두 나라는 이웃하면서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에서 중국이 만들어가는 신형 국제관계는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이라는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러 관계 –밀월을 넘어선 구조적 협력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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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의 두 거인인 중러의 관계는 무려 4천km에 이르는 광대한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데 따른 국경분쟁에다, 이념논쟁이 혼재된 패권 경쟁, 미국과의 전략적 이해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늘 갈등과 협력의 불안하고 불완전한 협력관계를 보여왔다. 그러나 2000~2008년에 이어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재집권과 2013년 시진핑 체제의 등장 이후의 협력관계에 대해선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졸고, 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를 시작하며 2016년 7월7일)  미국 유럽쪽은 이를 밀월관계로 불렀다. 허니문(밀월)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2013년 말 이래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가 일시적으로 중국과 ‘달콤한 사이’가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유라시아 두 거인의 협력관계를 다분히 정략적이고 일시적인 협력으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그러나 2016년 베이징 중러 정상회담 뒤 중국 관영 <신화사>는 이런 중러 관계에 대한 시각이 두 가지 기본 사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나는 중러 관계의 내부에 존재하는 성장 동력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맺은 건 20년 전이며, 그 동안 협력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일시적이고 정략적인 밀월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몇 년간에 일관되게 진행된 획기적인 성과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카잔 고속열차, 중형 헬기 개발 등 큰 프로젝트에서의 공동 연구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국제 전자상 거래 등 새로운 영역에서의 협력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가 더욱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 중국 기업은 러시아 석유 및 천연가스 영역의 업다운 스트림의 산업사슬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군사 분야에서 연합 군사연습은 양쪽의 지속적으로 깊어져가는 전략적 상호 신뢰와 전략적 결합을 보여주었다. 특히 2015년 5월 중국과 러시아는 실크로드 경제벨트 건설과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서로 연계해 협력하기로 결정하는 등 우호적인 정치적 관계를 전면적이고 심화된 실질적 협력 관계로 전환해 왔다. 이는 일시적인 밀월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기복은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다.
  2013년 4월 취임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한 것은 러시아였다. 그는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양국 관계가 사상 최고 수준의 전략적 협력 관계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공동 이익과 협력 범위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화답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적 협력은 양자 관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덧붙였다. 이후 두 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구체화하는 데 정상회담을 활용했다. 특히 현재의 중러 관계는 지난 4년여동안 시진핑-푸틴 두 지도자가 거의 20여차례에 걸쳐 거듭된 만남을 통해 쌓은 신뢰관계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중국은 푸틴과 트럼프의 밀착을 말 그대로 ‘밀월관계’로 볼 것이다.
  
 트럼프가 닉슨이 될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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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세션즈 법무장관은 트럼프의 외교철학이 키신저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전 백악관 법률고문인 존 딘은 트럼프가 닉슨을 닮았다고 말했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법률 고문이었던 그는 2017년 2월 24일(현지시간) 방영된 뉴스프로그램 <데모크라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언론 때리기'나 정보기관 정치화가 여러모로 닉슨 전 대통령의 성향을 빼닮았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수사국(FBI)을 동원해 대통령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덮으려 했던 것은 닉슨 시대의 망령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딘 전 고문은 “지금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은 워터게이트의 반복”이라며 “워터게이트 2탄은 없었지만 우리가 지금 겪는 것은 워터게이트 2탄으로 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워터게이트는 재선을 노리던 닉슨 전 대통령이 민주당 선거 사무실이 있던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가 탄로간 난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국가권력기관을 동원한 권력 남용으로 확대돼 탄핵에 직면하자 결국 사임하게 된 미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었다.
  그는 이에 앞서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발한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을 전격 해임하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시작하는 방식을 보면 그의 임기가 참혹하게 끝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백악관이 트럼프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 보도를 반박하기 위해 FBI를 동원하려다 실패하자 정보당국 고위 관리와 공화당 의원들까지 섭외해 언론사와 접촉을 시도했다고 최근 보도한 바 있다.
  딘 전고문은 이에 앞서 2월초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발한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을 전격 해임하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시작하는 방식을 보면 그의 임기가 참혹하게 끝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미 주요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던 <LA타임스>는 상하 양원을 다 장악한 공화당과 트럼프의 관계를 ‘정략 결혼’으로 비유했다. 이에 따르면 공화당 지도부는 오랫동안 갈망해온 보수 어젠다들의 입법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트럼프 팀의 러시아 커넥션 의혹 , 백악관의 끊이지 않는 막장 드라마식 이전투구, 일일 브리핑이 되어버린 대통령의 무책임한 트위터, 2월초부터 터져나오는 타운홀 미팅의 들끓는 비난 여론까지, 정신없는 상황에 (공화당)의원들의 불안과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강태호 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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