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병의 편지’ 부르며 군대 가는 북 청년들

김보근 2011. 01. 25
조회수 489304 추천수 1

제가 2009년 8월 <통일한국>이라는 남북관계 전문 월간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남한 청년들이 군대에 가면서 즐겨부르는 <이등병의 편지>를 북한 청년들도 군 입대를 앞둔 환송식에서 즐겨부른다는 내용입니다. 이 노래도 북한에 들어간 많은 남한 가요들처럼 이름은 바뀌었습니다. <떠나는 날의 맹세>가 그것입니다.

이 글의 말미에도 썼듯이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똑같이 부모님께 인사한 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눈 채 마주보는” 현실이 참 가슴아픕니다.  이것이 최근 전해지고 있는 남북군사회담 소식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지난해 연평도 사태처럼 긴장이 고조된다면,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 우리 젊은이들이 친구가 될 날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보근의 평화이야기 운영자 김보근 드림

 

03458053_P_0.jpg 

▲지난해 여름 한탄강에 떠내려온 북한병사의 시신 송환이 이루어진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북한 병사 한 명이 

디지털 카메라로 남측을 촬영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중략)”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하면, 모여 있던 친구들이 곧 한 목소리가 된다. 내일이면 군 복무를 위해 떠나갈 친구를 위해서다. 우리 주변에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은 남한에서 벌어지는 ‘군 입대 환송회’ 모습이 아니다. 바로 북한에서 진행되는 ‘초모생(군입대자) 환송식’의 한 장면이다. 남한 가수 김광석이 부른 이 노래는 남한의 군 환송식에서 불릴 때는 제목이 <이등병의 편지>지만, 북한에서 불릴 때면 <떠나는 날의 맹세>가 된다. 김광석의 이 노래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에 전달됐고, 이름이 바뀐 채 ‘초모생 환송식’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가 돼 있다고 한다(데일리엔케이 2008년 4월28일).

올해 들어 <떠나는 날의 맹세>를 부르는 북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북한 당국이 ‘초모(招募·신병모집) 사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국방’이 더욱 강조되게 되고, 이런 ‘국방’에 대한 강조는 젊은이들에 대한 초모사업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4월초 로켓발사를 한 이후 초모생 환영회가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북한에서 올해 초모사업은 로켓발사의 여파로, 첫 입소 날짜가 4월8일로 예전에 비해 늦어졌다고 한다. 또 행사가 예전에 비해 큰 규모로 진행됐는데, 이는 “국가에서는 ‘초모생들이 위성 강국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환영식을 큰 판으로 조직하라’는 별도의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데일리엔케이 2009년 4월13일).

북한 당국은 또 초모사업에 열성으로 참여한 ‘모범 가정’을 소개하는 일에도 열성을 보이고 있다. ‘모범’을 창조함으로써, 초모생들을 늘리고, 사회적으로도 긴장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동신문> 7월1일치 기사 ‘혁명대학으로 떠난 오누이’다. 여기서 ‘혁명대학’은 바로 군대를 가리킨다. 이는 “인민군대는 혁명의 대학이다”라는 김정일의 어록에서 따온 말로서 “군사복무야말로 사회적 인간의 성장과 완성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교육단계”라는 뜻이다. 기사는 평안남도 평성시 양지동 144 인민반에서 사는 리성률, 리인숙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부부는 모두 제대군관과 제대군인 출신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남매를 모두 초모생으로 군대에 보냈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한 아들 금성이는 아버지가 섰던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갔고, 딸 금향이도 어머니가 섰던 초소로 떠나갔다.” 즉 아이들이 예전 부모가 근무했던 바로 그 군부대에 배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두 부부의 특별한 소망에 따른 것이다. 두 부부는 자기들의 섰던 초소에 아들과 딸을 세우면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속에서 조국의 아들딸로, 혁명의 기둥으로 억세게 성장해갈 자식들의 희망찬 앞날을 확신”했다고 한다.

이렇게 남매를 모두 군대에 보낸 이 부부의 사연에 대해 청진에서 무역업을 하던 40대 남성 새터민은 “북한에서 군대는 대학 진학과 입당, 그리고 농촌 탈출 등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북한의 대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발한다. 또  농촌출신이 군대를 제대하는 경우,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학진학·직장배치 등을 통해 도시로 진출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이건 이렇게 공식적인 노력과 선전의 뒤에는 비공식적인 행위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초모행사와 군입대’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군부대가, 리성률, 리인숙 부부의 바람과는 달리, ‘혁명대학’으로서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식량사정 등이 악화되면서 군에 간 많은 아이들이 영실이(영양실조자)가 되는 현실에서 상당수의 부모들은 군에 보내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남북한 긴장 고조는 꼭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에서 그 만큼 긴장이 높아진다면 당연히 남한에서의 긴장도 강화되기 마련이다. 남한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군 지휘부가 한 목소리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말하면서, 군인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남한에서도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군에 입대할 것이다. <떠나는 날의 맹세>를 부르는 북한의 젊은이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남한의 젊은이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똑같이 부모님께 인사한 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눈 채 마주볼 것이다. 그들 자신이 바로 그 노래 속의 ‘친구’가 돼야 하는데도 말이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김보근
한겨레신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북한문제 및 한반도 주변정세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7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배고파요 오마니!’ ‘연변의 쉰들러’ 등 북한 식량난 문제를 표지이야기로 쓰는 등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 왔습니다. 박사논문으로 <북한 천리마 노동과정 연구>(2006년)을 썼으며, 엮은 책으로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2010년), 공저로는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2008), <남북연합 형성ㆍ운영의 거버넌스>(2008) 등이 있습니다.
이메일 : tree21@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peacekorea

김보근 기자의 최신글




  • “중국 인민해방군, 북한 급변사태 때 대동강 이북 점령”“중국 인민해방군, 북한 급변사태 때 대동강 이북 점령”

    김종대 | 2011. 05. 25

     미국이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한 ‘작전계획 5027’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대응하여 중국정부 역시 이와 유사한 비상계획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정부의 비밀계획은 일명 ‘병아리(小鷄 : 샤우치우아이) 계획’으로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 서북해역, 천안함 뒤 ‘사자-호랑이’ 동시에 풀어놓은 상황서북해역, 천안함 뒤 ‘사자-호랑이’ 동시에 풀어놓은 상황

    2011. 03. 25

    천안함 1주년①-위기 대비능력 저하된 채 남북 무기·전력 ‘집중’막후협상 통로 마련 못하면 2012년에 ‘결정적 위기’ 맞을 수도천안함 사건이 발생한지 3월26일로 1주년이 됐다. 천안함 사건은 아직까지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지...

  • 흡착물 재조사 없이는 정부 천안함 조사 국제법정서 패소흡착물 재조사 없이는 정부 천안함 조사 국제법정서 패소

    김종대 | 2011. 03. 26

    천안함 1주년②…재미 과학자 김광섭 박사 특별기고 합조단의 흡착물 관련 주장은 어뢰설을 스스로 부정 필자는 지난해 7월, 지에 천안함에서 수거된 흡착물에 대한 합조단과 반합조단의 과학자들 간의 논쟁에 대하여 글을 올렸습니다. 에 글을 실은 이...

  • 중앙정보부도 북파공작원 운영했다중앙정보부도 북파공작원 운영했다

    2011. 02. 22

    하태준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ㆍ유족동지회 회장 인터뷰HID. 흔히 북파공작원을 말한다.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이들의 존재를 감추는 데에만 급급했다. 가족에게조차도 이들의 존재감은 없었다. 목숨을 내놓았지만 밝히지 못하는 ‘존재’이자 ...

  • 북한, 보수도 진보도 아닌 북한으로 바라보자북한, 보수도 진보도 아닌 북한으로 바라보자

    김종대 | 2011. 11. 29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 인터뷰] 권력 속성 인정 않고 붕괴론 입각한 강경책만, 북 생존 위한 수소폭탄 실험까지도 대비해야 우리가 속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고자’하는 노력은 모든 창의력의 원천이다. 새로운 맥락 속에서 사물을 인식하...

기획 특집|전망과 분석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