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색이요? 북녘 동심 그린 영화예요
‘북 이탈’ 정성산 감독의 ‘량강도 아이들’
남녘에서 보낸 선물로 빚는 소동
감동 뒤안 북한 실정 살짝살짝
탈북자 출신의 감독이 만든 영화가 나왔다. 정성산(사진), 김성훈 감독의 <량강도 아이들>. 정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김 감독이 음악, 편집을 맡았다. 북한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라 탈북한 정 감독의 역할이 컸다. 평양연극영화대학과 모스크바대학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한 정 감독은 1995년 탈북해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한국방송> 미니시리즈 <진달래꽃 필 때까지> 각본,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동해물과 백두산이> 각색, 뮤지컬 <요덕스토리> 연출 등을 했다. 이번 영화로 탈북 16년 만에 영화감독의 꿈을 이뤘다.
<량강도 아이들>은 남녘에서 날려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주머니가 북녘 두메산골 마을에 떨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시골 인민학교. 모두 평양 견학을 가는데, 종수(김환영)는 공화국 수도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제외된다. 떠나는 버스를 따라갔다가 울며 돌아오는 길에 선물주머니를 줍는다. 거기에는 멜로디카드와 산타 옷과 로봇 장난감이 들어 있다. 아이들은 그것을 보러 찐옥수수, 누룽지, 달걀, 메주 등을 들고 종수 집으로 몰려든다. 그 바람에 반장 중심의 권력이 종수한테로 기운다. 이때 반장의 아버지인 보위부장이 개입한다. 로봇이 남쪽에서 왔다는 소문이 있다며.
“정치색이요? 북한에서 영화배우 하다 온 놈이 뭐 그런 게 있겠어요. 굳이 한다면 어른들이 애들보다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관객들이 우리는 행복하구나 하는 것만 느껴도 감사하죠.”

▲영화 ‘량강도 아이들’ 가운데 한 장면
그래도 영화에는 북한의 실정을 엿볼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배급체계가 유명무실화한 뒤에 생겨난 시장, 구걸 또는 절도로 연명하는 꽃제비 아이들, 평양-지역의 차별과 격차 등. 차출됐다가 쫓겨와 미쳐버린 기쁨조, 벽지로 보내진 국군포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죽은 교사들 등은 흔적만 남아 있다.
제작자 김동현(영화사 샘 대표)씨는 “120분 1차 편집본을 95분으로 줄이는 후반작업으로 무겁고 칙칙했던 영화가 어린이 위주의 가뿐하고 감동적인 것으로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자칫 탈북자의 한풀이로 비칠 뻔했다는 것. 정 감독은 대학 졸업반이던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 사상동요를 막기 위해 군에 배치된다. 이듬해 7월 남한의 대북방송인 ‘사회교육방송’을 듣다가 들켜 사리원 노동연대(군범죄자 수용소)에 수용된다. 9월 재판받으러 개성으로 가던 중 호송차가 구르는 사고가 난 틈에 탈출한다. 이때 평양의 가족은 국경지대인 혜산으로 추방되고 그들을 찾아간 정 감독은 수비대의 추격을 받아 국경을 넘는다. 그가 남한에서 ‘문화활동’을 하는 게 알려지면서 2003년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사망하고 어머니와 형은 행방불명, 중국까지 넘어왔다가 붙잡혀간 조카 둘은 홍역으로 죽었다고 했다.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을 다뤄 논란이 됐던 <요덕스토리>는 그의 가족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런 얘긴 하고 싶지 않은데…, 북한인권 얘기하면 무조건 정치적으로 비쳐 속상해요. 어려운 북한을 돕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제대로 배급되는지를 봐야죠. 굶어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생존권은 기본 문제입니다.” 그는 “좌우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게 자기와 같은 탈북문화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린이들과 작업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을까.
“왜소한 아이들을 찾기 힘들었어요. 50 대 1 경쟁을 거쳐 겨우 35명을 뽑았으니까요.” 이들은 보름 전 촬영지인 강원도 영월로 내려가 합숙훈련을 했다. 가재 잡고 옥수수, 감자 구워 먹으면서 살을 태우고, 북한사투리를 배웠다.
“제작비도 문제였지만 애들이 쑥쑥 자라 오래 끌 수 없었어요. 잘 보면 앞뒷부분의 아이들이 달라요.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건 우리밖에 없을걸요.” 그 아이들은 대학생, 고교생이 되었다. 다음달 17일 개봉.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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