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제국의 정치 2

2016. 0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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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제국의 정치-혼돈과 분열의 미 대선

 

 <기획을 시작하며>


1. 전망의 부재
 -아무도 답하지 않는 미국이 직면한 문제들/피터 밴 뷰렌 작가이자 정치평론가


2. 백악관의 문을 두드리는 사회주의자 샌더스/바스카 순카라 언론인 (<자코뱅(뉴욕)> 발행인)


3.트럼프가 초래한 미 우파의 분열증/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 발행인
 -트럼프는 파시스트인가/밥 드레이퓌스 언론인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시대적 투쟁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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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국무장관의 ‘사회주의자’ 경쟁자 버니 샌더스는 최근 몇 달간 놀라운 쾌거를 올렸다. 언론과 주류 정치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샌더스의 주장은 국민들이 느끼는 일부 불만사항을 촉발시키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좌파 유권자들이 버니 샌더스의 가장 주요한 특징으로 꼽는 것은 그의 철저한 친서민적인 행보다. 버몬트 주 상원의원이자,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민주당 예비경선에 나선 무소속 후보 샌더스는 미국의 대다수 진보주의자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미국 정치계의 변두리에서 근근이 명목을 유지하던 궤멸 직전의 정치조직을 거쳐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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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운동가 유진 뎁스


  1941년 브룩클린에서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 부모에게 태어난 샌더스는 대학 재학 중 미국 사회당의 청년부인 ‘젊은 사회운동가 연맹(YPSL)’에 가입한다. 이후 몇 년간 YPSL이 내부분열로 몰락하던 중에도 샌더스는 시민권 운동이나 베트남 전 반전운동 같은 시대적 투쟁에 몸을 사리지 않고 투신한다. 이후 그는 산이 많은 버몬트 주에 뿌리를 둔 작은 정당인 자유연합당에서 열정을 불사르며 버몬트 주 상하원의원직에 수 차례 도전하지만 계속 실패한다.
  1970년대 말, 샌더스는 정치활동을 잠시 쉬고 공교육 프로젝트에 헌신했다. 이후 1979년에는 포크웨이 레코드 사에서 5선 사회당 후보 유진 뎁스의 대선 연설을 재녹음해 “나는 자본주의 투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다”, “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지만, 단 하나의 전쟁만큼은 예외다” 등의 선언들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반혁명을 포용할 준비가 된 나라에서, 샌더스는 흐름에 역행하는 신앙고백을 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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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동북부 버몬트주 벌링턴시


 그렇지만 2년 후,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버몬트 주의 최대도시 벌링턴 시의 시장으로 선출된다.  지역 일간지 <더 버몬트 뱅가드 프레스>는 특집호에서 ‘벌링턴의 서민적 공화제’를 언급하며 샌더스의 눈부신 업적을 높이 평가했고, 샌더스는 집무실 벽에 뎁스의 초상화를 걸어놓는다. 벌링턴 시장 3선에 성공한 이후에는 기세를 드높여 1990년 무소속 출신으로 버몬트 주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샌더스는 하원의원직을 버몬트 주지사 선거가 있던 2006년까지 유지했다. 지금도 국회의사당에 있는 샌더스 집무실에는 뎁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샌더스는 민주당에 맞서 무소속 후보로 주저 없이 나섰다. 그렇지만 샌더스의 사회주의적 비전은 친 볼셰비키 성향의 멘토 뎁스보다는 사민당 출신의 스웨덴 전 총리(1982~1986) 올로프 팔메를 연상시킨다. 그는 미국 어린이들이 심각한 빈곤에 노출돼 있으며, 부담 없는 비용의 건강보험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스웨덴 형 복지국가의 성공과 미국사회의 불평등을 즐겨 비교한다.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언급하는 것은 무엇보다 공식 언론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미국 진보진영의 길고 풍요로운 역사를 전파하기 위함이다. 사실상 버몬트 주 상원의원으로서의 정치적 노선은 민주당의 좌파 노선과 유사하다. 2005년 5월 22일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하워드 딘 위원장이 <Meet the Press>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단지 진보적인 민주주의자일 뿐이다. 요컨대 버니 샌더스는 98퍼센트의 경우 민주당의원들과 똑같이 표를 던진다.”
 

 사회주의를 내세운 유일한 무소속 의원이자 진보적 민주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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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더스를 비방하는 정치포스터


 즉 미국 의회의 유일한 이 무소속 의원은 혁명 지지자도, 심지어 영국의 제레미 코빈 류의 급진주의자(1)도 아닌 셈이다. 샌더스의 투쟁 대상은 부의 재분배이며, 부의 소유권이나 통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최근 그는 연설에서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를 믿지 않는다”고 강조했다.(2) 그러나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의 기업친화적 태도와는 분명 다른, 진보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 당수 힐러리와 사회주의자 경쟁자 샌더스는 모든 면에서 대치된다. 물론 공보보좌관들이 단어 하나 빠짐없이 검토한 듯한 힐러리의 신중한 언어와 수사적 표현 하나 없는 샌더스의 열변은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화법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1964년 샌더스가 시민권을 위해 투쟁하던 시절 힐러리는 극보수주의자인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정치적 행보의 문제는 더욱 아니다. 두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각자의 정치적 비전 자체에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찬성’ 표를 던졌던 힐러리 여사는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이었을 당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월스트리트를 대변함”을 대중에게 상기시켰다. 반면 맹렬한 반전주의 투쟁가인 샌더스는 자신의 소명이 ‘정치적 혁명’이라 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장 뤽 멜랑숑이 내세운 ‘시민 혁명’과 약간 유사한 방식으로, 국민이 국가의 민주적 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21세기의 미국에서 사회주의자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뿌리 깊은 좌파 정치인사의 존재는 유럽에서는 낯설 것이 하나도 없지만, 미국에서는 범상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단 한 번도 대중인민당이 여당으로 집권해 대규모 재분배 제도를 만든 역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20세기 전반에 걸쳐 민주당의 수많은 투사들이 이러한 제도의 초석을 계속 다져왔으며, 노동자 조합, 시민권 단체, 지역사회단체 등 이러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회적 세력들 역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세력들은 자본적 이익을 수호하는 데 여념이 없는 정당에게 어떤 통제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공적 논의로부터 밀려난 채 저항조차 못하고 있다. 이들과 정당 유력자들 사이의 간극이 나날이 더 커지는 상황에서, 버니 샌더스의 연설이 점차 관심을 모으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민주당 개혁파가 확립한 ‘제3의 길’ 전통을 이념적으로 퇴색시킨 힐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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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힐러리 클린턴의 이념적 입장은 대체로 민주당 개혁파가 확립한 ‘제3의 길’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이 민주당 개혁파는 1980년대 말 과거 ‘민주당 리더십 자문회의(DLC)’의 지휘 아래 형성됐다. 레이건 시대의 성공적인 보수주의에 대응하고자 고안된 이 개혁파의 정치적 강령은, 사회운동의 퇴조가 재정 평등정책에 종말을 고했으며 친서민적 사회보장정책보다는 기업원조에 집중된 작은 정부 원칙에 합류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민들을 위해서는 상징적이고 부수적인 몇 가지만을 양보하는 데에 그쳤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는 1990년대 전체에 걸쳐 이러한 이념적 변모의 완성에 강력하게 기여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복지국가의 종말’을 부르짖은 것은 로널드 레이건이 아니라 빌 클린턴이었다. 당시 영부인이자 변호사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극빈층에 대한 사회원조를 삭감했던 1996년 법(3)처럼, 민주당 개혁파들이 영감을 불어넣은 개혁안들에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에 맞선 버락 오바마는 변화를 공언했음에도, 그의 백악관 정책은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한 건강보험개혁 말고는 예전 DLC의 계획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재계와 타협하려는 오바마의 꾸준한 의지가 일부 민주당 지지층을 실망시킨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특히 2008년 위기 직후 여러 좌파 운동들이 정부의 기조를 전복하려 했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시카고 교원파업, 패스트푸드 직원 최저 임금 시위, 폭력경찰에 맞선 거리시위, 소득 불평등에 대한 공공토론 등은 티파티의 허풍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헛소리보다 언론의 관심을 덜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회적 운동의 폭발은, 임종 직전으로 알고 있었던 미국 좌파가 회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샌더스 본인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분산된 좌파를 규합하고 조직화하기 위한 시도로서 자신의 출마를 설명해왔다. “내가 출마한 것은, 승리해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연합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함이다.”(4) 그의 캠페인이 미칠 장기적인 영향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활동을 시작한 지 6개월 간 샌더스는 미국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듯 보인다. 몇몇 집회에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10포인트 정도의 격차를 남긴 상황에서 샌더스는 민주당 2차 경선을 치를 뉴햄프셔 주에서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미국 정치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인 정치 후원금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샌더스는 이미 68만1천 명의 후원자들로부터 4,150만 달러를 모았다. 샌더스의 약진에 힐러리는 기존의 입장 중 몇 가지를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지난 2015년 10월에는 과거에 지지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임종 직전으로 알고 있었던 미국 좌파의 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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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에 보이는 물체는 보기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백미러의 경고문구를 보며 운전하는 힐러리를 달리기로 뒤쫓는 샌더스


  샌더스 후보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극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마어마하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주들 대부분에서 유권자들은 힐러리에 비해 샌더스가 이길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설령 공화당 후보에 맞서서 이길 수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슈퍼대의원(Superdelegate,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표명의 의무가 없으며 원하는 후보를 마음대로 지지할 수 있는 의원-역주)’의 지지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DLC 회원, 전 의원 등으로 구성된 이 슈퍼대의원은 민주당 전당대회 의원이 1/5을 차지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렌이나 제시 잭슨, 빌 드 블라시오 같은 민주당의 가장 진보적인 인사들조차 샌더스를 공공연히 지지하는 것을 삼가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고 미국 노동운동의 현 상황을 말하면, 노동조합들조차 샌더스를 나서서 지지하지 않고 있다. 2백만 명의 근로자를 대변하는 전미서비스노조(SEIU)는 격렬한 내부논쟁에도 불구하고 힐러리에 대한 공식지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전미교원노조(AFT)도 같은 행보를 보였다. 힐러리는 전체 노조원의 2/3를 차지하는 950만 노조원의 지지를 등에 업은 셈이다.(5)
  물론 주목할 만한 예외도 있다. 18만 명의 가입자를 자랑하는 최대의 간호사 노조인 전국간호사연합(NNU)과 20만 명에 달하는 미국우편근로자노조(APWU)는 모두 샌더스의 편이 됐다. 그러나 대형 노조들은 어느 후보에 기대를 걸지 더욱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 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성향의 - 특히 교구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흑인목사조직을 비롯해 - 시민사회조직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힐러리가 그다지 우려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힐러리는 자신의 막강한 인기에, 트럼프가 이뤄내고 있는 시끌벅적한 승리의 덕을 입고 있다. 트럼프는 척 보기에도 가장 진지하며 안심 되는 후보에게로 수많은 미국 유권자들의 눈길을 돌리게끔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민주당 개혁파들은 언제나 최소한의 악임을 자처하며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법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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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더스의 대선 캠페인이 지향하는 바는 1968년의 유진 맥카시나 1972년의 조지 맥거번의 바람처럼 민주당을 내부에서 변혁하는 것도, 제시 잭슨 후보를 중심으로 1980년대에 부상했던 ‘레인보우 연합’에 비견되는 좌파세력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수백만 명의 소외계층이 자기 목소리를 드높이고, 월스트리트와 결탁하는 것과는 다른 정책을 요구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샌더스가 유권자들의 귀를 간지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돈의 권력과 일종의 역학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사회운동에 기반을 둔다면, 국가가 빈곤층을 원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달간 꾸준히 늘고 있지만, 샌더스 캠프에 투신하는 지지자들의 숫자는 몇 천에 불과하다. 3억3천만 명의 인구 중 몇 천은 적은 숫자다. 하지만 공적 논의에 좌파적 생각을 불어넣고, 샌더스가 이르듯 ‘억만장자 계급’이 자신들의 불행과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는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충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의 성격과 역사를 고려할 때, 민주당 경선에 참가하는 것은 무모한 전략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버몬트의 무소속 상원의원은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것이 많다. 그 무서운 ‘S로 시작되는 단어(Socialism을 의미-역주)’에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대중의 탄생이 그 첫 번째 소득이 될 것이다.


글·바스카 순카라 Bhaskar Sunkara
전문지 <자코뱅>(뉴욕) 창립자이자 발행인.


번역·박나리 karsella@naver.com
연세대 불문학 및 국문학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Alex Nunns, <제레미 코빈, 쓰러뜨려야 하는 인물(Jeremy Corbyn, l’homme à abattre)>, Le Monde diplomatique, 2015년 10월 기사 참조.
 (2) 조지타운 대학에서의 연설, Washington, DC, 2015년 11월 19일.
 (3) Loïc Wacquant, <클린턴 대통령이 빈곤을 ‘개혁’했을 때(Quand le président Clinton “réforme” la pauvreté)>, Le Monde diplomatique, 1996월 9월 기사 참조.
 (4) <Bernie Sanders is thinking about running for president>, The Nation, New York, 2014년 3월 18일.
 (5) Brian Mahoney, Marianne Levine, <SEIU endorses Clinton>, Politico.com, 2015년 11월 17일.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8호(2015년 12월31일)에  '백악관 문 두드리는 사회주의자 샌더스'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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