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四)가지 가 없는 윤일병 1심 선고, 그 진실은 어디에

201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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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유가족들의 기자회견 모습. 유족들은 이날 육군 3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결과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30일, 윤 일병 사건의 1심 선고 결과에는 ‘네(四)가지’가 없었다. 군 사법부는 상해치사로 45년을 선고했다. ‘양형’의 기준이 없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군 검찰의 ‘의지’도 찾을 수 없었다. 국방부는 윤 일병을 질식하게 만든게 ‘냉동 식품’이라고 발표했으나 그 존재유무를 밝히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초동수사 당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던 28사단 헌병대와 지휘관들의 ‘처벌’이 없었다.
  그 빈자리는 유가족의 아픔과 절규가 채웠다. 막내 동생을 잃은 두 누나의 비명과 아들을 앞세워 보낸 아버지의 참담함이 군사법정을 메웠다. 유가족은 지난 4월 비명에 아들을 보내고 지금까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들은 군 사법부의 이번 판결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누가 유족들을 위로할 것인가? 윤 일병은 언제쯤 편히 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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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3군 사령부 전경. ‘법(法)에 힘(務) 쓰겠다’는 두 글자가 눈길을 끈다.   


  3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 속기사의 손가락이 춤을 춘다. 군판사가 가해자들의 양형이유를 빠르게 읽어 내려간다. 곧이어 법원서기의 타자기가 요란한 소리를 낸다. ‘구타’, ‘가혹행위’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가운데 ‘폭행’과 ‘사망’이라는 말이 뒤를 잇는다. 고 윤 아무개 일병의 유가족은 “윤 아무개”, “피해자”라는 말에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린다. 그렇게 나이 마흔에 얻은 귀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흐느낌이 법정을 메웠다. 
 
  지난 10월 30일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이하 군사법원)은 ‘윤 일병’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살인죄와 함께 윤 일병에게 가해졌던 ‘성추행’ 혐의도, 윤 일병이 병원에서 사망한 뒤(4월 7일 오후 16시경) 가해자들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는 정황에 대한 처벌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원칙 없는 군 사법부의 ‘양형’기준


  이날 비법조인 재판장(문성철 준장)은 주범 이 병장에 대해 징역 45년을 선고했다. 그동안 법원이 상해치사죄에 내려온 형량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었다. 이 병장(27)과 함께 살인죄로 기소된 나머지 3명에 대해서도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하 병장(23)에게는 30년을, 이 상병(21)과 지 상병(21)에게는 25년 형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폭행을 방조한 의무반 의무지원관이자 이 사건에 개입된 유일한 간부인 유아무개 하사에게는(23) 징역 15년을, 폭행의 정도가 가장 미비하며 윤 일병이 후임으로 올 때까지 윤 일병처럼 맞았던 이 일병에게는 징역 3월에 집행유예 6월을 선고했다.
 주심판사는 ‘살인죄’ 대신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형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우리 사법부 역사상 상해치사죄로 ‘45년’ 이 선고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우리 현행법에 따르면 징역형의 상한은 ‘30년’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번 선고는 아마 미래에도 보기 힘든 판결일 것이다.
 기존 판례에 따르면 상해치사죄로 선고된 최고 형량은 ‘징역 15년’이었다. 3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이번 선고가 원칙과 규정을 무시한 것으로 보는 이유다. 왜 3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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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출입통제 속에서 3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고(故) 윤 아무개 일병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휴가 중인 병사가 폭행을 했다는 건가요?”
“………”

  지난 10월 24일 군 판사가 군 검찰에게 물었다. “어떻게 휴가 중인 병사가 윤 일병을 때릴 수 있었냐”며 군 검찰의 공소사실을 확인하고자 했다. 군 검찰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진술서를 몇 분간 뒤척이더니 “수정 하겠다”고만 대답했다. 군 검찰의 허둥대는 모습에 “똑바로 해라”라며 방청석으로부터 야유가 쏟아졌다. 군 검찰의 부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군판사는 법원에서 소란을 피우면 “내보내겠다”고 군기를 잡았다.
 이 날은 30일 1심 선고를 앞두고 가해자들의 죄목을 심리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러한 자리에서 군 검찰은 실수(?)를 했다. 군 검찰은 증거에 바탕해 피고인들의 범죄사실을 입증해야하는 책무가 있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윤 일병이 사망했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군 검찰은 그러지 못했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모습은 재판과정 내내 계속됐다. 허술하고 부실했던 군 검찰의 태도에 유가족은 슬픔을 넘어 좌절을 맛봐야 했다.
  군 검찰은 정확한 사망시각도 사망원인도 재판부와 변호인에게 말하지 못했다. 한 달하고도 5일 이상 지속된 가혹행위가 있음에도, 선임병들이 윤 일병을 ‘성추행’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음에도, 어느 것 하나 명료하게 입증해내지 못했다.
 이러한 군 검찰의 모습은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이 병장과 유 하사의 증언에서도 두드려졌다. 군 검찰은 진술서와 대조되는, 증인의 증언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발언에 대해 단 한번도 ‘반박’ 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없는 군 검찰의 태도에 유가족은 거듭 좌절했다.

 

 27살 이 아무개 병장을 '형'이라고 불렀던 ‘유 하사’


  재판과정 내내 지속된 군 재판부와 군 검찰의 무기력한 모습은 지난 24일 재판과정에서도 여실 없이 드러났다. 특히 23살 초급간부인 유 하사(범행당시 22살)의 심리과정에서 두드러졌다. 군 판사는 군 복무 내내 27살 이 아무개 병장을 '형'이라고 불렀던 유 하사가 그동안 진술했던 내용을 확인했다. 유 하사의 진술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군 검찰과 유 하사에게 고쳐 물었다. 특히, ‘확성기’로 윤 일병을 폭행했다는 부분이 그랬다.

확성기로 머리를 때린 게 아니라 손으로 때렸다.

군 판사는 확성기로 윤일병의 머리를 때렸는가라는 질문에 증언석의 유 하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손에 확성기는 쥐고 있었으나, 확성기가 아닌 손으로 윤 아무개 일병의 머리를 내리쳤다.” 방청객에서 쏟아진 야유. 그런데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유 하사의 답변에 군 검찰은 침묵했다. 이러한 군 검찰의 태도에 유 하사는 지난 28사단 헌병대의 조사에서 자신이 밝힌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기만 했다. 
 무슨 이유였을까. 왜 군 검찰은 가만히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3군 사령부 군 검찰은 28사단 헌병대에서 수사한 사실을 바탕으로 가해자들을 대했다. ‘윤 일병’ 사망사건은 ‘질식사’로 결론지어져 세상에 공개됐다. 하지만 자칫 묻힐뻔 했던 이 사건은 군 인권세터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질식사’가 아닌 ‘구타’ 및 ‘가혹행위’로 인한 사건이라는 사실들이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은 28사단에서 3군 사령부로 이관됐다. 28사단의 수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유가족과 국민의 요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3군 사령부 검찰부로 넘어온 이 사건은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군 검찰은 28사단 헌병대가 ‘질식사’로 판정한 증거 위에서 관련자들을 만나고 가해자들을 다뤘다. 문제가 있었던 수사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되풀이 하는데 그친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군 검찰은 ‘공정성’ 논란이 있는 28사단의 수사내용을 그대로 반복하기에 바쁜 유 하사의 진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지만 피고인의 얘기를 제지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군 검찰의 태도에 재판부는 확인하기에 바빴다.   3군 사령부 보통 군사법원의 ‘주먹구구식’ 재판과 검찰의 엉터리 수사 앞에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 나아가 정의구현은 설 자리가 없었다.

 

“다칠까봐 ‘방탄헬멧’을 씌우고 때렸다”

 

유 하사가 윤 일병의 머리에 방탄헬맷을 씌우고 책상 스탠드로 가격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주심판사는 유 하사가 고 윤 일병의 머리를 ‘책상 스탠드로’ 때렸다는 진술 대목을 이날 법정에서 확인코자했다. 유 하사는 “군 생활의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윤 일병의 머리를 쳤다고 재차 진술했다. 또 그냥 때리면 많이 다칠까봐 윤 일병의 머리에 “‘방탄헬멧’을 씌우고 책상스탠드로 때렸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아가 “스탠드로 내려침으로써 윤 일병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경각심을 주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유하사의 진술은 기존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해자이자 동시에 목격자인 다른 피고인들의 진술내용과도 어긋난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유 하사가 위증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차례 포착됨에도 군 검찰은 가만히 있었다.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피고인이자 증인인 유 하사에게 그 진위를 확인하는 어떤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윤 일병의 누나가 흐느꼈다. 큰 누나는 소리쳤다. “이게 재판이냐”


“이건 ‘재판’이 아니고, ‘감정(鑑定)’이다”


 군 검찰의 태도와 3군 사령부 재판부에 대해 윤 일병 사건 재판과정 내내 참석했던 ‘가해자’ 측 변호인은 법정을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재판은 왜 군사법제도를 개혁해야하는지를 보여준다.” 피해자 변호인도 아닌 ‘가해자’ 변호인의 한탄이다. 이 변호인은 “군판사의 양형 이유도 납득할 수 없지만, 진짜 문제는 ‘군 검찰’의 아마추어적인 수사와 공소사실 입증 부재에 있다”고 비판했다.

너는 나의 ‘좌뇌’, ‘우뇌’ 그리고 ‘칼’

  이처럼 군 검찰이 범죄 행위를 밝혀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자 가해자들은 오히려 거침없이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동을 얘기했다. 윤 일병이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35일 동안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주었던 고통을 말했다.
  그런데 35일이라는 기간 동안 왜 윤 일병은 이러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을까. 이러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던 찰라, 그 답은 이 사건의 주범인 이 아무개 병장의 입을 통해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군 인권센터의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윤 일병은 감히 신고할 엄두를 못했을 거라고 얘기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윤 일병의 맞선임인 ‘이 일병’ 때문이었다. 윤 일병은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봐야했다. 신병배치를 받고 보직이 없는 2주 동안 ‘이 병장’ 주도하에 의무대에서 벌어지는 ‘무법천지’의 세계를 목격해야만 했다.
  이 병장은 막 전입한 윤 일병 앞에서 무참히 이 일병을 짓밟았다. 군 인권센터는 의도적으로, 일부러 그랬다고 추정한다. 이 병장은 윤 일병이 보는 앞에서 이 일병의 입에 치약 한통을 부었다. 치약을 부은 것도 모자라 물고문도 행했다. 선임병들에게 고통 받는 이 일병 앞에 윤 일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구타와 폭력을 넘어선 ‘고문’을 본 윤 일병은 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말하면 죽는다’  이처럼 의무대 내에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윤 일병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음이 자기 차례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무차별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의무대. 더욱이 이 병장은 윤 일병 앞에서 평소 하 병장과 이 상병에게 “너희는 나의 ‘좌뇌’와 ‘우뇌’”라고 불렀다. 선임병 중에서 행동이 과격했던 지 상병에게는 “넌 나의 칼잡이”라고 이름 지었다. 폭력적인 생활관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윤 일병은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을 의무지원관인 유 하사는 보고도 못 본 체 했다.


 ‘꾀병’ 부리는 거 같아 때렸다

 

이러한 이 아무개 병장의 폭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5명의 선임병과 1명의 간부가 개입된 윤 일병 사건은 이 병장의 지시에 의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선임병들이 윤 일병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한 명이 때리면 다른 한 명이 망을 봤다. 선임병들의 잔인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매일 매일 맞은 윤 일병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자 선임병들은 ‘수액’을 줬다. 그리고 윤 일병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면 다시 때렸다. 폭력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교육’이라는 이름의 가혹행위가 더해졌다.
 사망하기 8일 전인 2014년 3월 29일의 경우 틈만 나면 기마자세를 강요했고 4월 1일 밤에는 잠을 안 재우고 기마자세를 시켰다. 사망하기 이틀 전인 4월 5일에는 잠도 재우지 않고, 밥도 안 먹이고 기마자세를 시켰으며 아침에는 연병장 구보까지 시켰다. 선임병들에 의해 자행된 이런 가혹행위는 윤 일병이 죽기 직전까지 지속됐다. 윤 일병이 폭력으로 인해 사망 직전 오줌을 싸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맞다가 쓰러져 숨을 헐떡이는 순간까지 말이다.
 마지막 순간 가해자 중 한 사람인 이 상병이 쓰러진 윤 일병의 입에 물을 넣었다. 하지만 윤 일병은 한 모금도 받아 넘기지 못했다. 이 병장은 "꾀병 부리지 말라"며 윤 아무개 일병의 가슴을 쳤다. 두 차례 발길질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타였다. 윤 일병의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폭력이었다. 
 24일 군사법원에서 이 병장은 사건 당일 “왜 발길질을 했냐”는 군판사의 질문에 “윤 일병이 맞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단지 ‘꾀병’을 부린다는 이유로 다른 선임병들의 만류했음에도 윤 일병의 가슴에 발차기를 했다는 것이다. 윤 일병은 2014년 4월 1일부터 4월 7일 죽는 순간까지 가혹행위를 당했다. 선임병들의 모진 언행과 폭행을 견디지 못한 윤 일병은 ‘아프다’, ‘살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병장은 윤 일병이 죽는 순간까지 이를 꾀병으로 보고 철저히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더 가혹하게 대했다.


구타는 가혹행위로, 가혹행위는 성추행으로


 군 검찰의 부실과 무능력은 윤 일병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부분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앞서 말했듯 이 병장은 치약 한통을 이 일병이 먹게 했다. 그런데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자신의 가래침을 핥아 먹으라고 한 것으로도 모자라 윤 일병의 성기에 소염진통제인 ‘안티푸라민’을 바르라고 명령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윤 일병의 분대장이었던 하 병장은 24일 증인 심문에서 윤 일병이 “바지 내린 건 모르겠지만 성기는 봤다, 고로 바지 내렸을 것이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하 병장의 진술에 대해 이 상병은 이러한 사실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이 상병은 자신이 윤 일병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바지는 안 내렸고 손 넣어서 발랐다” 진술했다. 오히려 이 상병은 윤 일병이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서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발랐다고 진술했다. 이 상병의 진술은 이 사건을 목격한 당시 의무대 환자인 김 아무개가 진술한 “바지 내려서 발랐다, 내가 봤다”의 부분과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증언이 엇갈리는 상황 군판사의 지속적인 확인과 답변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군 검찰은 앞서 그랬듯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재판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점에 이 상병의 추가 진술이 있었다. 이 상병은 윤 일병이 사망하기 하루 전날인 4월 6일 오전 00시에 윤 일병의 팬티와 러닝셔츠가 여러 차례 찢기는 등 미친 듯이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엄연한 ‘성추행’ 이었다. 그러나 군 판사와 재판장은 군 검찰이 이러한 사실을 기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 똑바로 해”

10월 30일 오후 2시 47분 재판은 그렇게 끝이 났다. 맨 앞줄에서 슬픔을 꾹꾹 억누르던 윤 일병의 매형이 갑자기 일어섰다. ‘살인죄’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하지 않은 재판장을 향해 준비해 온 흙을 뿌렸다. 그리고는 윤 일병을 폭행한 가해자들쪽으로 가다 고꾸라졌다. 헌병 8명에 의해 제지당했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판 똑바로 해” 윤 일병의 아버지는 그대로 주저앉았으며,  두 누나는 재판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절규했다.   


반성 없는 가해자


 재판부는 1심 선고에서 가해자들이 뒤늦게나마 반성하는 기미를 보여 양형에 참조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반성했을까?
주범인 이 병장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대신 “윤 일병이 군 생활을 똑바로 하지 않았고, 꾀병을 부렸으며, 윤 일병이 행동과 답변이 느렸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유족의 멍든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했다. 유 하사는 다칠까 봐 방탄헬맷을 씌우고 때렸다고 진술했다. 윤 일병이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몰랐다”고 회피했다. 선임병들 모두가 자신들이 저지른 끔직한 만행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윤 일병의 맞선임인 이 일병을 제외하면 나머지 5명의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정말 어떤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증인석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이 일병을 보고서도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하기에 바빴다. 용서대신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말로 대신했다. 그런데 이러한 가해자들에게 재판부는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며 초범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양형에 참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주범에게는 상해치사죄로 사상유례가 없는 45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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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이 사망한지 200여일을 지난 지금, 윤 일병이 받았던 고통은 유가족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제공: 고정연 (군 인권센터)  


이렇게 아들을 보낼 수 없는 ‘유가족’
 
 윤 일병의 죽음은 사건이 발생한 지 200일이 지난 지금에도 논란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가족의 고통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유가족은 물론이고 가해자들의 변호사마저도 “판결이 이상하다”며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가혹행위로 고통받았던 윤 일병은 죽어서도 현실의 부조리에 고문당하고 있다. 과연 언제쯤 윤 일병은 편히 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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