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헌병대’, “1억 불법 조성 뒤 양주 등으로 진급로비”
“최근 전역한 이아무개 전 육군 중수단장이 주도” 제보…군 비리의 '빙산 일각‘
최근 육군 중앙수사단장 겸 헌병병과장(옛 헌병감)인 이아무개 준장이 자진 전역 형식으로 물러난 이유가 거액의 군부대 내 불법 비자금 조성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군사전문 월간지 <디앤디포커스>와 한겨레 군사웹진 <디펜스21>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아무개 준장이 최소 1억2천만원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뒤, 진급을 위한 향응에 썼다는 내용이 군 핵심부에 제보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군대 범죄를 수사해야 할 헌병 병과에서 대규모 불법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제보로 군 부대
내부가 혼란스럽다. 사진은 근무중인 헌병들. 김정효 기자
현재 군 당국은 이 준장이 “비리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하급자로부터 투서를 받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입장이어서, 군 부대 내에서 자행되는 대규모 불법 비자금 사건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군대 내의 범죄를 조사하고 예방해야 할 7천명의 헌병을 총괄하는 최고책임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군대 비리 척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지난 4월22일 이 준장의 전역으로 공석이 된 육군 중앙수사단장 겸 헌병병과장(옛 헌병감)에 보병인 김종출 3군 참모장을 임명한 상태다.
수사비 등서 빼내 조성, 진급 위해 상품권, 양주, 갈비세트 등 동원
지난해 11월 초에 육군 중앙수사단(당시 단장 승장래 준장)에는 전 수방사 헌병대장을 역임한 이아무개 당시 대령이 거액의 불법자금을 조성해 진급에 사용했다는 제보가 날아들었다. 제보의 핵심 내용은 이 당시 대령이 △ 약 300만원의 연말 격려비 횡령 △ 매월 400만원의 증식비, 비품구매비의 가짜 영수증 처리 △ 매월 수사비 약 100만원 유용 △ 매월 헌병 오토바이 정비비 약 40만원 유용 등 방법으로 공금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빼돌린 약1억2천만원의 현금은 상품권, 양주, 갈비세트를 구입하여 유력자에게 진급로비를 하는데 쓰였거나, 이명박 정부 들어 최대의 군 관련 모임이 된 ‘서초포럼’ 소속 예비역 장군들에게 향응을 접대하는 등의 사적인 용도로 쓰였다는 것이다.
<D&D 포커스>의 취재결과 군은 최초 제보가 있었던 지난해 11월초에 제보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증하지 않았고 11월 중순부터 익명의 제보자를 색출하는데 헌병 수사기능을 대거 동원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승 당시 단장이 이 대령이 극렬하게 제보내용을 부인하면서 “진급의 경쟁자에 의한 모함”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이 대령의 진급 경쟁자를 대상으로 투서자를 색출하기 위한 전담 TF까지 만들었다.
여기에 참여한 수사관들에게는 제보 내용은 전달하지 않고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의 겉봉투만 전달하면서 “색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에 TF는 헌병 병과에서 장성으로 진급이 유력시되는 대령들에게 휴대폰 통화내역 제출을 요구하는 등 행적을 조사했다. 이에 상당수가 통화내역 제출을 거부하는 등,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령이 불법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도, 이 대령이 아닌 진급 경쟁자 전원을 조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제보자는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의 H 대령
TF가 별다른 성과 없이 시간을 허비하던 12월 중순에 이 대령은 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중수단장으로 영전했고, 승장래 단장은 소장으로 진급하여 국방부 조사단장으로 영전했다. 그러자 12월에 재차 김관진 국방장관 앞으로 비슷한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 편지에서는 제보내용을 무시하는 승 단장에 대해 ‘비리의 공모자’라는 비판까지 덧붙여졌다.
편지를 받은 국방장관실의 군사보좌관인 Y 준장은 제보 내용을 검증하거나 확인하지 않은 채 김관진 장관에게 “무기명 음해성 투서”라고 보고했다. 인사철에 기승을 부리는 진급 경쟁자에 대한 음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기강 확립 차원에서 투서자를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령이 헌병대 각 과에 ‘현금 할당액’ 지시
제보자를 찾아내는 수사는 지난 1월말까지 진행되어 경기도 모 사단의 헌병대장인 H 중령으로 밝혀졌다. H 중령은 자신의 육사 후배인 헌병 P 소령으로부터 이 대령이 “현금을 마련하라”며 헌병대 소속 몇 개 과에 ‘할당액’을 지시한 데 따라 이를 마련하느라 예산을 과도하게 계상하고 허위로 서류를 작성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당시 수방사 헌병대에는 인사, 총무, 수사를 담당하는 과들이 있었는데, 과장들에게 현금으로 일정 금액을 할당하여 마련하도록 지침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마음의 갈등을 느끼고 있던 P 소령에게 H 중령은 “자신이 나서겠다”며 직접 ‘비리척결을 위해 총대를 맨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쓴 것으로 보인다.
H 중령과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예비역 보병 대령의 말이다.
“그 친구(H 중령)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비리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분이 넘치는 성격이다. 그래서 따르는 후배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태도에 군 수뇌부도 골치 꽤나 아팠을 거다.”
조사 결과 H 중령 등은 “입증할 수 있는 1억2000만원만 적시했으며, 증거인멸로 입증이 곤란한 부분이 더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 사건의 본질은 ‘음해성 투서’가 아니라 ‘대형 비리 사건’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 준장만 조용히 내보내는 것으로 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비리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하급자로부터 투서를 받은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명분이었다.
이 준장 전역 뒤에도 제보 내용은 ‘특급비밀’로 처리돼
육군 헌병의 병과장이 진급과 동시에 구설수에 휘말리고 전역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헌병 병과 전체는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나 제보내용은 외부는 물론 헌병 병과 내부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오직 장관실과 조사본부 고위층 극소수만이 갖고 있는 특급 기밀이었다. 당연히 영문을 모르는 채 헌병장교들이 동요했다. 이러한 잡음이 발생한 데 대해 김상기 육군 총장은 이번 기회에 이 사건을 헌병 개혁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 총장은 헌병 자체의 힘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2월에 박종성 인사사령관으로 하여금 헌병 개혁의 임무를 부여했다. 여기에서 김 총장의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치 않고 개혁의 방향도 모호한 것이었다. 헌병의 고위 장교들을 소집한 정신교육과 워크숍이 수시로 개최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헌병 장교들에게는 무엇을 개혁하라는 것인지, 내용 자체가 애매했다. 헌병 워크숍에서 승장래 조사단장을 비롯한 헌병 수뇌부는 “무기명 투서를 자행하는 군기문란 행위를 근절하고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취지로 개혁의 방향을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장성의 인사비리 의혹이 무엇인지 여부를 떠나 군에 최근 인사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히 범상치 않은 현상이다. 군복을 벗은 이 준장의 경우, 아무리 자신의 진급 운동을 위해 현금이 필요하더라도 왜 그렇게 많은 액수를 한꺼번에 횡령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어야 한다. 일선의 헌병 실무자들의 열악한 복지와 실비부족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파격적인 횡령액이기 때문이다.
2007년의 이명박 후보의 대선조직인 ‘서초포럼’은 현 정권의 군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줄기세포’라고 할만 했다. 군 주요 직위에 진출을 하려는 예비역과 현역들이 이 조직을 주목하면서 각종 진급 로비와 청탁이 몰려든다는 얘기는 군 안팎에서 꽤나 무게가 실려 전해지고 있다. 이 준장의 형인 예비역 중령이 서초포럼에서 활동하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서초포럼은 “이 준장의 형인 이 예비역 중령은 회원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예비역 정치세력화
잘못된 예비역 문화가 잘못된 군 인사 구조로 연결되는 경로는 어쩌면 현 정부의 최대 불행일지도 모른다. 예비역들이 특정 정권과 밀월관계를 가지면서 강한 보수의 정치논리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현역의 군 인사에도 정치논리가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과거 정부의 요직에 있던 핵심인재를 대거 도태시키는 과정에서 과거정부에 협력한 정도에 따라 A급, B급, C급으로 분류하고 이들에게 각기 인사의 불이익을 주는 풍조가 국방부 주도로 이루어졌다. 한 국방부 소식통은 그러한 살생부가 최근까지 존재했음을 시인하며 “그 명단이 21명에 달했다”고 설명한다.
“줄 잘서야 진급 된다” 군 주변 소문 파다
현재 육․해․공 삼군 참모총장이 전원 영남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군의 주요보직과 기관장의 상당수가 특정지역 출신으로 편중된 사실은 이러한 현실을 드러내는 지표다. 어쩌면 L 준장의 경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군의 인사에 정치적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현실을 상당수의 고위 장교들이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청와대의 줄이든 ‘서초포럼’ 등 예비역의 줄이든 “줄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성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비리가 싹트는 음지의 세계가 확장되게 된다. 일부 언론이 H 중령의 고향이 호남이라는 사실을 은연 중 부각시키며 지역갈등으로 몰아가려는 태도 역시 가벼이 볼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어느새 우리 군이 몇 번의 정권교체를 겪으면서 정치권력의 향배에 민감한 ‘권력지향 군대’가 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히틀러가 괴링을 비롯한 측근들의 권력지향의 행태에 매몰되면서 독일군 총참모부가 궤멸된 2차 대전 말기의 양상에 비견되는 현상이다. 당시 독일군의 우수 인재들은 게슈타포의 음해성 정보조작과 비리, 정치논리에 의해 궤멸되었고, 모스크바 침공을 계기로 완전히 무너졌다. 권력형 군대의 비참한 종말이다.
* 이 기사는 27일 발매되는 <D&D Focus> 5월호 기사를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구독문의 02-3775-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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