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6
<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발문: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를 시작하며
1. 푸틴의 동진과 시진핑의 서진
중-러의 전면적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와 유라시아 통합
2. 러시아 극동개발전략의 새로운 단계
블라디보스톡 자유항, 선도개발구역, 극동개발기금의 3개축 가동
3. 중러관계:대형 프로젝트 돌파구 기대되는 리커창 총리 극동방문
러시아 극동 동시베리아-중국 동북지역간 협력 프로그램의 추진
4. 북러관계:당대회 이후 대러시아 외교행보 누굴 보낼 것인가
북러 정부간 공동위원회와 재앙적 북핵 제재상황의 극복
5. 일러관계:적극외교와 대러 제재사이에 저울질하는 아베총리
‘포괄적 접근’과 안보와 경제협력의 맞교환 모색
6. 한러관계: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회생 내건 박근혜 대통령
대북 제재 압박과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협력의 딜레마
9월2~3일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동방경제 포럼부터 2016년 가을 주요국가의 외교무대가 시작된다. 푸틴 대통령은 개막 첫날인 9월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이어 3일엔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한다. 그리고는 박대통령을 비롯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정상들은 9월4일~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제11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며, 이어지는 7일~8일엔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열리는 ASEAN+3 정상회담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모이게 된다. 동방경제 포럼에 앞서 빅토르 고르차코프(76) 연해주 입법의회 의장은 2016년 7월1일 블라디보스톡 현지에서 국내 언론과의 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동방경제 포럼 참석을 희망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블라디보스톡 자유항에 등록된 외국 업체가 1천19개인데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보니 러시아에 관심이 많았다. 삼성·롯데 등 성공 사례도 많다. 이제는 모스크바 대신 극동 러시아의 시대가 왔다. (이 지역은) 한국 기업의 동쪽 관문이 될 것이다.”
푸틴의 박근혜 초청은 지난해 말
선도개발구(TOR)와 자유항을 내건 러시아는 2015년부터 극동개발에 한국기업의 투자와 한국정부의 참여를 요청해왔다. 특히 남북러 협력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못지 않게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극동개발부 장관이 2015년 5월과 6월 잇따라 남북을 방문하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는 불발로 끝났다. 그러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9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릴 제2회 ‘동방경제포럼(EEF)’의 초청장을 보냈다. 그건 201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 포럼 참석을 공식 발표한 것은 2016년 8월3일지만 그 가능성이 거론된 것은 훨씬 전인 2015년 말이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30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푸틴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 방문을 요청했으며 박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다. 러시아 언론 <로시이스카야 가제타>(2015년 12월 16일)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2013년 11월 한국을 방문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외교 관례상 박 대통령이 답방으로 러시아를 찾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 대통령이 2015년 5월 러시아의 2차 세계 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았지만 워싱턴의 강한 압력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문은 박 대통령의 방문이 2016년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2017년 말 한국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2016년 이후에는 국내일정 때문에 박 대통령의 시간이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6년 9월초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경제포럼에 푸틴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그 기회를 이용해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해 푸틴대통령과 만나는 게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때 만일 북한의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도 함께 참석할 수 있다면 남북러 3자 정상의 만남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와는 달리 남북러 3자 정상의 만남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됐지만 예상대로 박 대통령이 동방경제 포럼에 참석하는 것으로 양국간에 조율이 진행됐다. 2016년 6월 윤병세 외무장관의 모스크바 방문과 한러 외무장관 회담은 이를 위한 외교적 절차였다.
2015년 11월 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기간에 만난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윤 장관은 블라디보스톡 한러 정상회담이 발표된 뒤 8월 기자들에게 “지난 6월 러시아 방문에서 정상 방문 준비를 상당히 끝내고 왔다”면서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전략적으로 잘 맞는다는 걸 이해하고 있고, (러시아에선) 사드와 이를 구분해서 생각하려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러시아는 중국과 구별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만나서 사드 배치가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한 것이며,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라는 보도한 데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했다. 사드 문제에 대해 러시아의 이해를 구하겠다는 걸 러시아가 용인할 것으로 보는 건 착각이기 때문이다. 그는 "99%가 한러 양자 관계, 어떡하면 우리 경제인들이 러시아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로 관심 가질 것이며, 정상간 대화도 그런 측면에 초점 맞춰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러시아가 중국과 다르다고 했지만, 사드문제 등 외교안보 현안에서 러시아의 입장이 확고한 이상 이견을 좁힐 수 없으니 경제문제만 다루겠다는 것이다.
대북 압박 고립 외교와 러시아 방문
2016년 6월12일부터 13일까지 윤 장관의 러시아 공식 방문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포위를 지속한다는 ‘대북 압박 외교’의 일환이자 이에 대한 러시아의 협력을 구하려는 것이었다. 한러 외무장관은 2016년 2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 그리고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신뢰구축회의(CICA)등 다자회의를 계기로 두 차례 회담을 가진 바 있지만 장관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이었다. 당시 외교부는 “북핵 공조는 물론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러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신동방정책 연계 등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실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 회담을 통해 북한이 선(先)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제재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원칙을 재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국과 외교적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윤 장관의 러시아 방문은 최근 이란, 우간다, 쿠바 등 일련의 글로벌 대북 압박 외교의 모멘텀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의 경우 한국의 일방적 기대일 뿐 현실은 달랐다. 윤 장관은 2016년 3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안보리 제재 이후 외교의 방향을 북한에 대한 고립과 보복에 뒀다. 그는 2016년 6월20일 기자들과 만나 상반기 외교를 결산하면서 이를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외교를 했다”고 표현했다. “올 상반기가 과거 어느 때보다 분주한 기간이었는데, 적지 않은 나라들의 경우 제 입장에선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외교를 한다는 기분으로 전략적 목표를 많이 잡았다. 지난 6개월 동안 정부 모든 관계자들의 외교활동을 보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커다란 전략적 로드맵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호랑이굴은 대통령 순방 수행을 포함해 그가 방문한 나라들로 이란, 우간다, 쿠바, 러시아, 불가리아 등일 것이다. 전략적 로드맵이란 북한과 가까웠던 나라들로부터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냉전 이래 가장 적대적인 외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일종에 북한에 대한 외교 전쟁을 벌인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당국들에게 현지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와 해외 송금이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다는 걸 논거로 비자 발급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북한에 타격을 가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근로자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전체 임금의 3분의 1이 핵미사일프로그램의 용도로 전용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우간다의 경우 군사·경찰·안보 분야의 협력을 중단했으며, 폴란드 및 카타르 등 일부국가들이 비자발급 제한 등으로 북한의 노동력 진출은 차질을 빚었다. 윤병세 장관의 방문을 앞두고 지중해의 몰타 공화국 당국은 북한 근로자 20명의 비자 연장을 거절해 귀국시키기도 했다. 카타르의 비자발급 제한은 2016년 7월 카타르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중국내 북한 음식점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이라든가,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 망명 등은 이런 압박이 낳은 성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를 두고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한쪽 면만 보는 것이다. 이런 한국 정부의 요구와 정책방향에 대해 러시아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리아 노보스티통신>(2016년 7월29일)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내무부 산하 이민국은 이례적으로 북한 노동력 수입을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민국은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 등이 2007년 8월31일 체결된 임시 노동활동에 관한 양국간 협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과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절차 등을 규정한 북러 양국 국민들 간 임시 노동활동에 관한 협정을 체결해 시행해 왔다.(박정우, “러 ‘북한 노동자 계속 받아들일 것’ ”, <자유라디오방송> 2016년 7월29일) 특히 이런 러시아의 방침은 7월22일 시베리아 서부 건설현장에서 북한 노동자 2명이 붕괴된 골조에 깔려 숨지는 등 안전사고가 일어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해외 진출 북한 노동자는 약 50개국에 5만 2천여명에서 6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중국과 러시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러시아 이민국이 발표한 북한 노동자에 대한 노동허가증 발급 건수는 1만7천500건이었다. 이는 합법적으로 취업허가를 받아 러시아에 파견돼 일하고 있는 북한 근로자의 규모다.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발사 이래 박근혜 정부의 북한에 대한 압박과 고립 더 나아가 붕괴까지 노리는 전략은 나진 하산프로젝트를 포함해 남북러 3국 프로젝트를 위한 한반도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박근혜 정부 스스로 내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물론이고 한러협력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대변하는 사업이었다면, 러시아에게는 한반도를 교두보로 하는 신동방정책의 핵심적인 프로젝트였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나진-하산 프로젝트 중단 결정은 개성공단 중단 및 철수가 남북관계를 단절시킨 것 이상으로 남북러 협력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러시아가 결의 통과를 지연시키면서까지 나진하산 사업을 안보리 제재 대상에서 제외시켰으나, 박근혜 정부는 독자 제재에 나서 나진-하산사업 투자 중단 조치 뿐만 아니라 2016년 3월8일엔 180일 이내 북한을 기항한 제3국 선박의 한국내 입항을 금지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나진 하산을 통한 남쪽으로의 석탄 운송마저도 중단됐다. 일종의 ‘2차 제재(Secondary Boycott)인 셈인데 북한과 협력하는 경우 러시아나 중국도 제재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중국 또한 2016년 신두만강대교 준공을 앞두고 있었기에 나진항 이용을 더욱 확대하면 했지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극동개발전략에서 본다면 러시아는 북한과의 협력을 오히려 강화할 것이기에 충돌과 모순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경제적 제재를 넘어 체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조처까지 불사하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방향을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었다. 중국이 새롭게 추진하는 동북3성 진흥전략에서 볼 때도 그렇고, 중국과의 협력 등을 바탕으로 극동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러시아에게 북한 근로자의 유입을 중단하라는 요구는 러시아가 보인 반응에서도 확인되는 것이지만 반발만 불러올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 포럼에 간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에게 대북정책에 관해 협조를 요청하기 보다는 오히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강경 대북정책을 수정하라는 요구를 받는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이번 방문은 “99%가 한러 양자 관계, 특히 한국기업의 극동진출 문제에 할애될 것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북한 없는 남북러 협력을 배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결국 한러 경제협력 내지 한국기업의 극동진출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사드 배치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논의대상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대사는 <리아노보스티 통신> (2016년 7월5일)과의 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초청을 박 대통령이 받아들인 걸 언급하면서 러시아는 “라진-하산 사업을 다시 진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 이 발언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계속하려면 이 사업을 재개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에게 북핵 문제 해결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이제 두 마리 토끼가 됐다. 이는 북방 4개섬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목표로 극동개발에 참여하는 일본의 아베 총리의 전략과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북방 4개섬 문제의 해결 없이는 러시아와의 대규모 협력은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이제 아베 총리에게 극동개발 협력은 북방 4개섬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고 있다. 게다가 푸틴과 아베는 협력의 프로그램들을 내놓고 푸틴 의 일본 방문 등 정상간 대화를 지속할 예정이었다.
반면에 러시아가 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극동개발 협력은 절실한 과제가 아니다. 나진 하산 협력을 비롯해 북한과 관련된 남북러 협력을 배제한 남한의 극동진출은 공허해 보인다. 빅토르 고르차코프(76) 연해주 입법의회 의장이 앞서 지적했듯이 극동 연해주에 진출한 1천여개 외국기업 가운데 한국기업은 전무하다. 어떤 극적인 계기도 없고 사드 배치 등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불협화음만 커지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일방적인 러브콜만으로 어떤 기업들이 러시아로 달려갈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안보리의 SLBM 시험발사 규탄성명과 중러의 공동대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016년 8월26일(현지시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규탄하는 언론성명을 뒤늦게 나마 채택했다. 그러나 8월초 중러가 사드배치를 내세워 언론성명을 무산시켰듯이 한미일 대 중러의 균열이 해소됐다고 볼 수는 없었다.
이 안보리 언론 성명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포함해 7∼8월 실시된 4건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적시하면서 “안보리 회원국들은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언론성명은 북한의 8월24일 SLBM 발사 외에도 8월3일과 7월19일 탄도미사일 발사, 그리고 7월9일 SLBM 발사들도 대상으로 삼았다. 안보리는 “이런 발사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국제적 책무를 심각히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안보리는 이를 포함한 북한의 모든 탄도미사일 활동이 북한의 핵무기 투발수단 발전에 기여하고,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이를 개탄한다”고 비난했다. 특히 북한 주민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의 자원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투입되는 상황에 유감을 나타냈다. 이어 “안보리는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해 나가면서, 앞서 표현한 의지대로 추가적인 중대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경고를 내놓았다.
안보리는 2016년 6월말까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규탄하는 내용의 언론성명을 7차례 채택했다. 하지만 7월9일 북한의 잠수함 탄도미사일 (SLBM)과 7월19일 노동미사일 등 3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하는 언론성명은 중국등의 반대로 채택하지 못한 채 미뤄졌다. 이 때문에 2016년 8월3일의 안보리 긴급회의는 앞서의 8월3일(한국시각)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2발의 노동 신형 미사일로 추정)에 대한 대응까지 포함한 언론성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까지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당시 오준 유엔주재 한국대사는 “북한이 올해에만 13번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했고, 29개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쐈다”면서 “이 같은 시험발사는 미사일 기술의 상향 조정과 개선을 위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목적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벳쇼 고로 유엔주재 일본 대사는 8월3일 발사한 미사일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낙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규탄 성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 1718호와 1874호, 2087호, 2094호, 2270호를 통해 북한이 어떤 종류의 탄도미사일도 발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안보리 언론성명은 그 자체로 새로운 추가 제재를 가하는 등의 구속력 있는 조처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한미일이 그 당위성을 주장해 온 것처럼 미사일 발사의 (결의 위반에 대한) 심각성과 단합된 자세로 안보리의 의지를 보여주면서 다른 나라들과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자는 뜻이 있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8월3일의 언론성명 불발은 안보리의 심각한 불협화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한미일은 9일 오전까지 몇차례나 시한을 미루면서 ‘침묵절차’(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자동 통과)를 통해 이 언론 성명을 관철시키려 했으나 끝내 중국이 응하지 않자 성명 채택에 실패했고 종료되고 말았다. 8월5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전화 통화를 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미국 국무부가 밝혔으나 이 또한 중국의 이의 제기를 막지 못했다. 그러자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8월9일 청와대 입장을 내 “중국쪽은 우리의 순수한 방어적인 조치를 문제 삼기 이전에 그간 네 차례의 핵실험과, 올해만도 10여 차례 이상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깨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 보다 강력한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이례적으로 중국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계기로 북한의 도발 행위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변화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같은 언론 성명 채택의 불발은 안보리가 단합되지 못했음을, 나아가 결의 위반의 심각성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과 2주도 채 안된 8월24일 새벽 북한은 또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해 500km 거리의 성공적인 탄도 비행을 선보였다. <노동신문> (2016년 8월25일)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이를 "성공 중의 성공, 승리 중의 승리"라고 자축했다. 8월24일의 SLBM 발사는 한미의 을지포커스 훈련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안보리는 이로 인해 시험대에 서게 됐다. 이미 규탄 성명이 채택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에도 안보리가 언론 성명을 내지 못한다면 안보리의 권위는 크게 추락하고 자칫하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정당화해주는 결과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중러의 거부권 행사를 어렵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드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반대할 경우 안보리를 무력화시켰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러는 8월26일 안보리 언론성명에 동의하면서 그 대신 “안보리 이사국들은 한반도 및 역내외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의 안보리 언론성명이 무산된 게 사드 배치 강행으로 중국(러시아)이 북핵에 대해 입장을 바꾼 게 아니듯이, 이번에 언론성명이 채택됐다고 해서 중러가 사드에 대한 입장을 바꾼 건 아니었다. 앞서의 8월 3일 안보리 언론 성명 추진이 무산된 데 대해서 한미 등의 언론은 중국의 비협조 내지 변화된 태도만을 비난하는 식의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중국은 일관된 자세를 유지했으며, 원칙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왕이 외교부장이 안보리 결의 2270호가 채택된 직후 강조했듯이 “조선(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는 최종 출구는 대화와 협상의 궤도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 무장과 경제건설의 병진노선이라면,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에 강제하는 ‘제재’와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을 위한 ‘대화’의 병진노선인 셈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드는 오히려 제재의 명분을 약하게 하고 평화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로 영자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2016년 8월 11일) '사드가 북핵을 둘러싼 안보리 단결을 무너트렸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은 이유다. 사설은 이례적으로 앞서의 안보리 언론성명이 무산된 것은 미국과 중국이 사드 배치 반대와 북한 미사일 발사 비난을 놓고 ‘엄중한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제동을 거는 바람에 유엔 안보리의 대북 언론성명 채택이 무산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중국은 사드를 중국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조처가 북핵 문제의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따라서 이 논리에 따른다면 이 신문이 전하고 있듯이 북한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안보리 언론 성명을 채택하자는 미국의 요청에 중국이 “각 당사국이 돌발이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을 피하고 북한 핵 위협과 미사일 발사를 빌미로 동북아에 새로운 요격 미사일 거점(사드)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성명에 넣자고 요구한 것은 정당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면서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건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문제 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한미일의 무력 증강 조처에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서의 안보리 언론 성명 반대를 들어 중국이 북한의 편을 든다거나, 북핵을 용인하고 있는 논리는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악의적인 왜곡이라는 게 중국의 주장이었다. <환구시보> 사설에 따르면 중국의 반대가 문제가 아니라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이 동북아에 새로운 도전을 가져오면서 북한 핵보유 반대를 위해 형성된 국제협력 국면을 흐트러뜨리고, 동북아 정세의 성질을 변하게 했다”는 것이다.
언론들의 집중적인 질문을 받고 있는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대사
이에 따라 일본의 <교도통신>(2016년 8월11일)도 중국은 안보리 언론성명에 미군의 최신예 요격 시스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사드)’의 한국 배치를 염두에 두고 “동북아시아에 어떠한 요격 미사일도 새로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보리 언론성명에 명기하도록 요구했으며, 성명안을 작성한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중국의 논리로 본다면 안보리 언론 성명을 거부한 것은 미국이 된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의 세계와는 다른 ‘베이징 컨센서스’인 셈인데 이제 미국의 입장에 서서 일방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당시 언론 성명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함과 동시에 다음 3개 사항을 추가로 명기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선(한)반도의 현재 상황은 복잡하고도 민감하다, △모든 관계자는 도발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 △북한에 의한 핵•미사일 개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을 구실로 동북아시아에 어떠한 요격 미사일도 새롭게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은 이 논리를 계속 안보리 논의에서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러시아 또한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내에서도 거론되는 안보리 거부권 경고
무엇보다도 한미일을 곤혹스럽게 한 것은 또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보리 외교 소식통에 의하면, 러시아도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는 의견에 관해 중국과 일치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미 러시아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를 포함해 사드 배치 등 중러의 공동 대응을 포함해 더 강하게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거듭되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해 알렉산드르 카자코프 정치평론가는 러시아 언론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국방부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태평양 지역(괌)에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 랜서(Lancer)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면서 미일의 대응이 원하는 결과를 낳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일본과 미국이 제재 강화 뿐만 아니라 북한을 상대로 새로운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서방은 북한 지도자가 무아마르 카다피도 사담 후세인도 아니라는 현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최근 10-15년 동안 워싱턴은 생각 없이 먼저 행동하고 그 다음에 한 일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있다. 이 습관은 유로슬라비아 침공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후 끊임없이 반복돼 왔다”(러시아 정치평론가 “대북제재 논의... 처음 진지?한 태도 기대” <스푸트니크>오피니언 2016년 8월5일) ‘스톨핀, 스트루베’ 자유보수정치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카자코프는 만약에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와 같은 강압적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그렇게 할 것 같다. 우리는 지역 긴장 완화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 문제다. 러시아의 입장에 중국이 함께 할 거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대화가 필요하다.” 그는 “만일 평양의 양 손에 일본 수역뿐 아니라, 섬 지역까지 닿을 수 있는 미사일이 개발된다면 상황은 이미 통제 밖에 놓여진다. 이라크 침공 당시 사담 후세인에게 ‘비열한’ 핵폭탄이 없다는 사실을 미국은 사전에 알고 있었다. 이제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무기 존재 여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면서 “북한과 대화해 설득할 수 있는 건 모스크바, 베이징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는 “처음엔 작은 협상부터... 다음에 비핵화를 말해야”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반도 전문가이자 브릭스 국가위원회 행정실장을 담당하고 있는 게오르기 톨로라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아시아전략연구센터 소장도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지만 미국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북한을 배제한 채 5자회담 하자고 제안(박근혜 대통령)하는 것 혹은 일본과 러시아를 배제한 채 4자회담을 갖자는 등 추가형식을 제안하는 일은 거품이 낀 허황된 생각이다. 이 제안들은 협상 참여국들을 분열시키는 동시에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제스처다. 어쨌든 핵무기 문제는 6자회담 틀 속에 남겨지기 때문”이라고 허를 찔렀다. 중러가 국제문제의 주요 현안에 대해 공조를 모색해 온 것은 오래 전이지만, 외교 안보 분야에서 거의 전면적인 채널을 가동해 이번처럼 거부권 행사와 같은 공동행동을 보이는 것은 미중러 관계의 변화에 따른 구조적인 변화이지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미 2016년 3월11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하면서 ‘사드 반대’에서 중·러 공동대응을 예고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그 뒤 4월12일(현지시간) 몽골·일본·중국 순방 일정을 앞두고 이들 국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한반도 및 주변 지역 정세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한·미가 추진 중인 사드 시스템의 한국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관련 기관 전문가들이 만나 동북아 지역 정세에 대한 평가를 교환했으며 양국이 현존하거나 증대하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부터 3월까지 양국 외교, 군사 분야와 다른 기관 전문가들이 만나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고 부연했다. 라브로프는 “러시아와 중국은 (북핵 문제 못지않게) 한반도의 복잡한 정세를 이 지역으로의 군비증강에 이용하려는 일부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 국가들은 첨단 무기들을 포함한 새로운 무기들을 해당 지역으로 배치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 정세에서 나오는 실질적 위협에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북아 지역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구축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이 한국에 MD 시스템(사드)을 배치하려는 계획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사드는 독립 시스템이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MD 시스템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중러의 이런 공동대응은 1991~92년 한러, 한중 수교 이래 한반도 세력 관계의 균형추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의 대외 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를 거슬러 올라가 70~80년대의 냉전 회귀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북한 붕괴론의 대북 강경정책은 중러와의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 넘어서 이들이 북한의 보호자로 나서게 만들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시각에 갇혀 버림으로써 사드 배치문제를 중러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중러는 그걸 말 그대로 ‘도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국립과학원 극동연구소 소장이자, 중국문제 전문가인 세이겔 루자닌은 2016년 8월1일 <신화통신> 기자와의 특별인터뷰에서 “한국의 사드 대탄도미사일시스템 배치 결정은 최근 몇년간 동북아에서 발생한 사건들 중 가장 심각한 군사적 도발이며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긴장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자닌 소장은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미국이 동북아에서 군비 경쟁을 시작하려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같은 행위는 북한에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도발이라 비판했다. 루자닌 소장은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것은 (유럽의 MD 시스템과 함께) 동서 두 방향에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것이며 “그러나 이를 두려워할 게 없다. 러중 전략협력에도 치명타는 아니다. 두 나라는 위력적인 거대한 군사 전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는 “러시아와 중국은 지역 및 세계적 면에서 평화, 안정과 발전에 대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사명을 이행해왔다. 양국 지도자들은 15년 전 체결한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에 의거해 꾸준히 세계적인 전략의 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벌어지는 중러와의 간극과 대북 고립정책의 실패
박근혜 정부는 특히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이후 과거 90년대 초반 김영삼 정부가 보여온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정책을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 90년대 초 북한 핵문제가 본격화하면서 그동안 남한 정부는 이에 대해 크게 두가지 정책기조를 보여왔다. 하나가 핵 경협연계론, 핵문제 우선 해결론이라면, 다른 하나는 포용정책으로서의 핵문제 해결과 경협 병행론 내지 핵 문제와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의 동시병행론이다. 남한 정부가 전자의 정책을 고수한다면 러시아와 남북한의 3자 협력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나진 하산 프로젝트에 대한 한러의 대응은 이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북한과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가로막고 있는 북한의 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중러와 한미일은 심각한 견해 차이를 보여왔으며, 이제 그 간극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러시아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일치 단결해 채택한 안보리 결의(2270호) 채택을 미루면서 나진-하산 프로젝트 구하기에 나선 바 있다. <타스>통신은 2016년 3월2일 비탈리 추르킨 유엔주재 대사가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에도 러시아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추르킨 대사는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는 전혀 무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미국과 추가적인 논의를 진행하여 “이러한 이해관계가 침해받지 않도록” 합의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업에 따른 석탄 공급과 관련해선 안보리 제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통보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런 러시아의 입장은 북러 관계와 앞으로 전개될 북핵 문제 향방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래 북중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북러관계가 그 빈 공간을 채워왔다. 북중관계의 악화라는 상황에서 북한은 그만큼 러시아에 의존해 온 셈인데 러시아의 이런 입장은 북한의 핵실험에도 북러관계가 오히려 더 강화될 여지를 준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에게 러시아라는 후원자가 있는 한 러시아를 배제하고서 한미가 중국만을 설득하거나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강행함으로써 중국마저도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간주했던 중국을 설득하거나 압박해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정책을 포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북중 관계의 변화와 북중러 3자협력의 가능성
사드 배치의 또 다른 문제는 북중러의 협력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데 있다.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2016년 6월2일 2박 3일간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의 중국 방문은 북한이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지만 외교 정치적인 고립에서는 탈피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리 부위원장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북중 친선을 강조했다. 동시에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리수용 부위원장은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서도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쥘 것”이라고 강조했고, 시진핑을 만나서도 “새로운 (핵-경제) 병진노선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언급했다고 북한 <중앙통신>은 보도했다. 또, 리수용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던 5월 31일 북한은 실패하긴 했지만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했고, 리 부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만나던 6월 1일에는 SLBM과 핵탄두 모형 등 중요 전략무기 모습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중국과 관계개선은 원하지만, 핵과 미사일 같은 전략무기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럴 생각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한 것이다.북한은 어찌 보면 당당하게도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주장하면서 ‘북중 친선’도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를 사실상 용인했다.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내세워 고립을 탈피하는 이미지를 얻고, 중국은 북한이라는 외교적 지렛대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걸 대외에 과시한 것이다. 그 뒤 유엔 안보리는 대북 문제에서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분열됐다. 그것도 중국만이 아니라 두 상임이사국 중국과 러시아가 공조한 것인데, 유엔 제재와 북한을 고립시킴으로써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것이 한미일의 전략이라면 이는 이미 절반 이상은 실패한 셈이다.
유라시아 경제연합과 한국의 FTA 체결
한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은 크게 세가지 층위로 구분된다. 한러 양자관계의 관점에서 본 협력관계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경제연합과의 다자적 협력의 관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중러 3국이 만나는 극동지역 개발과의 관계라는 지역적 협력 차원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하락에 따른 세계경제의 침체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경제제재가 겹쳐 2중적 위기에 처해 있다. 그로 인해 한러 경제협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2014년의 한국의 대러 수출은 9.1% 감소했고, 2015년 10월말까지 이미 56%나 감소하였다. 대러 수입도 31.1%나 줄어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과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극동지역 개발 정책에 더 초점을 맞춰 나진-하산프로젝트의 시범사업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출발점이자 몽골, 중앙아시아 등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확산시켜가는 모델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박근혜 정부 스스로 북핵 문제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9월3일의 블라디보스톡 한 러 정상회담에서는 유라시아 연합과의 협력 밖에 논의할 게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러시아경제개발부 장관은 동방경제 포럼에 앞서 2016년 8월5일 주형환 한국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회담 뒤 한국과 유라시아경제연합(EEU) 간 자유무역지역 지정 문제에 대한 연구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가을에 최종결정을 내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1년전인 2015년 9월 3일(현지시각) 윤상직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차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포럼과 병행해 열린 '수출촉진 해외민관 합동회의'에서 우리나라와 EEU간의 FTA 공동연구가 2015년 10월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EU와 한국간의 FTA 추진과 관련해 구체적인 일정이 공개된 것은 당시가 이 처음이었다. FTA 공동연구란 본협상에 들어가기 전 타당성 등을 따지는 사전 절차로 그 뒤 한국과 유라시아경제연합은 2015년 10월 공동연구팀을 발족했고 2번에 걸쳐 회의를 해왔다.
2016년 8월 4일 라오스 비엔티안 돈 찬 호텔서 회담하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알렉세이 울류카에프(Alexei Ulyukayev)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
울류카예프 장관은 “한국과 EEU 간의 자유무역협정 연구팀의 보고서가 블라디보스톡 정상회담 전까지 준비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그러나 “협정 체결까지 2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현재 53개국과 FTA를 타결, 발효시킨 상태다. 2014년 6월 러시아 주도로 결성된 EEU는 러시아 이외에 카자흐스탄, 벨라루스가 주축이 됐으며, 2015년 1월 아르메니아와 8월 키르기스스탄을 새로운 연합국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크기를 확대해왔다. 특히 2015년 5월 EEU는 베트남과 첫 번째 FTA를 체결한 것을 비롯해 경제협력의 범위를 확대해 왔다. 이를 통해 양자 간에 거래되는 모든 물품의 90%는 관세 인하 혜택을 받게 됐으며, 다른 아세안 국가와의 경제 교류에도 물꼬를 트게 됐다. EEU는 2016년 들어 홍콩과의 FTA를 체결해 동아시아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이스라엘과 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으며, 인도, 뉴질랜드와의 협정 체결도 검토중이었다. 2016년 2월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터키가 EEU와의 FTA 체결을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자흐스탄 역시 터키를 통한 유럽 및 중동 시장 진입을 구상해왔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2차 동방경제 포럼에 들고갈 보따리에 담을 수 있는 건 이런 EEU의 외연적 확대과정에 참여하는 FTA 협정 체결 협상을 진전시킨다는 것 뿐이 없게 된 셈이다. 2015년 EEU의 국내총생산(GDP)은 2조2000억달러로 전 세계 GDP(71조3000억달러)의 3.1%를 차지했다
강태호 한겨레 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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