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가 궁금하다
하나같이 ‘북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북한이 변해야 한다고.” 아니 “변해야만 한다”고 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가장 많이, 강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일 것 같다. 박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대통령이 만든 대북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나 「드레스덴 선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모두 북한의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변해야만 그런 프로젝트나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것은 ‘북한 변화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북한에 도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변화’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핵을 포기하고 도발을 중단”하는 것이 북한 변화의 전부일까? 아니면 북한이 자신의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 체제로 바꾸고, 자유와 민주가 확실하게 정착되는 사회가 북한의 궁극적인 변화일까? 궁금한 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의 변화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데 왜 북한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변화하면 도와주겠다"고 까지 하는 데, 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변화하면 북한 경제에 당장 이익일 텐데 말이다.
이런 저런 자료를 접하면서 ‘변화’를 거론하고 있는 대표적 학자라고 할 수 있는 「라빈」(M. Lavigne)이 정의한 ‘변화’의 개념이 눈에 띤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의 변화를 체제 자체적인 변화에까지 이르는 개혁을 변화로 보고 있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개혁 작업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즉 ①공산당의 통제력 완화를 통한 의사결정의 분권화, ②국가소유의 독점 완화를 통한 소유제도의 다양화, ③시장적 요소도입을 통한 정부의 계획과 시장의 조화라는 형태로 추진된다고 설명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코르나이」(J. Kornai)는 보다 좀 더 역동적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는 시스템의 완전한 변혁에까지는 아니지만 사회주의 지배 이데올로기 또는 공산당 지배에 의한 권력구조나 국가소유권 또는 관료적 조정 메커니즘 등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 이상이 바뀌어야 하고, 그 변화가 상당히 급진적이어야만 ‘변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그 이후 북한이 보이고 있는 변화가 비록 그 강도는 약할지는 모르나 앞서 정의한 ‘변화’에 포함될 수 있다는 평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7·1조치」 이후 북한은 ①가격체계의 조정 및 화폐경제화, ②경제의 자율성 및 효율성 강화, ③소유제도의 변화, ④대외경제관계의 변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변화’가 비록 경제적인 면에 치우쳐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내적인 필요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체제 본질적인 변화에 접근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변화’가 ‘체제내의 변화(change within the system)’에서 ‘체제의 변화(change of the system)’를 지향하고 있음을 북한 경제를 보는 다수 전문가의 일치된 견해임을 알게 된다.
아무튼 「7·1경제관리개선조치」는 북한을 이미 오래전부터 「시장」을 공식인정하는 사회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장마당 매대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누구나 ‘시장’을 통해 장사를 해 소득을 창출하는 사회가 현재의 북한이다. 기업의 자율성도 커졌으며, 생산력 제고를 위한 협동농장의 분조 간소화가 사적 소유의 규모를 확대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아울러 경쟁이 자리 잡고 있는 사회가 되다시피 했다. 살림집의 사용권도 사고 팔 수 있는 정도다. 이 모든 조치가 성공적인 것인가는 나아진 주민 생활의 정도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북한 경제의 전반이 향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 「7·1경제관리조치」의 긍정적 효과가 아닐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북한이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북한의 변화를 ‘변화’로 보지 못하거나 그런 ‘변화’를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 아닐까? 북한의 변화가 남한정권이 원하는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아닐까? 그들에겐 당장 독재체제가 망하고 핵 폐기는 물론, 미사일 발사를 포기해야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점진적인 변화는 수용되지 않는다. 당장 달라지는 급진적인 변화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는 남한이 원하는 변화일 뿐, 북한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아무리 남쪽에서 원해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의 변화는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에 대한 북한의 굴종일 뿐이다. 북한의 의지와 관계없는 변화. 그것은 결국 북한의 붕괴와 맞닿아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 변화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이 뻔하다.
‘변화’는 결코 억압이나 강요에 의해 일어날 수 없다. 변화를 강제해서는 원하는 변화를 얻지 못한다. 변화는 스스로 할 뿐이다. 변화는 강제되지 않을 때 그 참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 않을까? 스스로의 변화가 한 번 발동이 걸리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변화의 물결 속에 빠져들게 쉽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변화를 강제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변화를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것. 그 바탕이 대화와 협력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경화 남북물류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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