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을 파탄시킨 유신 독재 고발장 돈 오버도퍼의 <투 코리아>
마크 리퍼트 대사가 병원에서 읽은 책은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돈 오버더퍼(Don Oberdorfer)가 쓴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리퍼트 대사는 이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도대체 어떤 책이 길래 ‘한미동맹의 바이블’이라고 미 대사관이 칭찬을 할까? 미 대사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을까? 특히 전반부에 해당되는 박정희에 대한 비사는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해 본다.
중동 순방에서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공항에서 바로 리퍼트 대사의 병실을 찾았다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묘사
다음은 <서울신문> 3월 9일자 보도 내용이다.
“지난 5일 피습을 당해 입원 중인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뜻을 밝히며 한반도 현대사 및 한·미 관계에 관한 ‘바이블’로 꼽히는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을 읽고 있다고 대사관 측이 8일 밝혔다.”
눈이 번쩍 뜨이는 뜻밖의 기사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한․미 관계에 대한 ‘바이블’이라고 대사관 측은 강조하고 나설까? 먼저 지은이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기로 하면 오버더퍼는 1972-75년 <워싱턴포스트> 동북아시아 지역 특파원으로 근무하였고, 17년 재임 기간 매년 한국을 방문하여 역대 대통령들을 직접 인터뷰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연례 유엔총회에 참석한 북한의 역대 외교부장들과 고위관리들까지 대면할 수 있었고 91년과 95년 북한을 방문하여 주요 관리들을 인터뷰한 인물이다. 또한 미국의 포드, 카터 대통령 등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대통령들도 상당수 인터뷰하였다. <두개의 한국>은 한반도 분단과 전쟁, 유신 정권의 등장과 박정희 암살¸ 남한의 민주화와 서울올림픽¸ 북의 전쟁 준비와 핵개발 논쟁¸ 김일성의 죽음¸ 소련의 한반도 정책 변화와 그에 따른 한·소 정상회담의 성사¸ 그리고 최근의 남북정상회담까지 비사를 기록한 책이다. 풍부한 사례와 논증, 미 정부의 기밀문서, 방대한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심층 취재라는 저널리즘의 정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이 책에서는 가장 많은 면을 박정희 시대에 할애하여 집중 조명한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리퍼트 대사를 면담한 3월 9일은 조간신문에 리퍼트 대사가 이 책을 읽은 것으로 보도된 날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비사가 다수 나와 있는 책의 전반부를 리퍼트 대사가 읽었다면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어떤 감회를 가졌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이 책의 제2장 ‘시작과 종말’은 박정희라는 한 인간에 대한 조명이다. 행간에서 오버더퍼는 김일성과 박정희를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동급의 독재자로 묘사하고 있다. 1961년의 5․16 쿠테타로 집권했을 때 “박정희의 정적들은 그의 좌익활동 전력을 시비했지만 이후 강력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1970년대 초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엘리자베스 폰드 특파원은 박정희의 과거를 언급하는 기사를 작성했다는 죄로 남한 입국을 금지당하기도 했다.”(65쪽) 한국 전쟁 이전에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는 남로당 비밀당원이었다. 그 과거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절대 언급할 수 없는 금기사항이었다. 그런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박정희가 거추장스럽고 비생산적인 관행으로만 비추어지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봉할 이유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65쪽)는 분석이다.
하비브 대사의 불개입 원칙
일단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에는 놀라울 정도의 효율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는 재임 기간에 또 한 번의 쿠테타를 감행한다. 1972년 10월에 유신이 선포된 것이다. 이 당시 필립 하비브 주한미대사는 본국으로 전문을 보낸다. “명목상으로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했지만 하비브는 박 대통령이 이처럼 극단적인 조치를 강행하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쉽게 파악했다. 하비브는 ‘박정희의 조치는 야당을 무력화하고 통치권을 강화해 적어도 앞으로 12년 간 장기 집권을 하겠다는 의사의 표명이며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남한에는 명실상부한 독재정부가 출현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전문을 워싱턴에 보냈다.”(73쪽) 박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시점은 매우 주도면밀한 계산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의 대선 기간에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워싱턴은 뒷짐만 지고 구경만 했다. 그것이 불과 3주 후에 박정희가 유신을 기습적으로 선포한 강력한 이유가 된다고 오버더퍼는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10월 23일에 워싱턴에 보낸 전문에서 하비브는 “박 대통령은 미국이 지난 27년 동안 후원하고 지지해 온 정치철학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76쪽)고 밝히면서 이 문제에 미국이 발을 빼는 불개입주의를 본국에 건의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남한 사회에서는 박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대항하는 반대여론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그리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 경호실까지 동원해 자신의 조치에 반대하거나 간섭하는 모든 사람들을 가택에 연금시키거나 체포해 입을 막았다. 중앙정보부 고문실에서 어떤 사람은 손목과 발목이 기다란 막대기에 묶인 채 화염 위에 얹어지는 ‘통닭구이’ 고문을 당했다. 물고문을 당한 사람도 많았다.”(78쪽)
저자는 그 사례로 민족주의자 장준하가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다가 의문사한 사실, 김대중이 일본에서 납치되어 죽음 직전까지 간 사실을 자세히 묘사한다. 당시 김대중의 목숨을 구한 건 미 대사관이었다. “대사관 소속 정보요원들은 곧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 소행이라는 걸 알아냈다. 하비브는 대사관 채널을 통해 만의 하나 김대중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한미관계에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임을 분명하게 경고”(80쪽)했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가 고문으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당시 CIA 한국 책임자인 도널드 그레그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관계를 단절해 버렸다.
이 당시 남북 대화는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듯 했으나 다시 적대정책으로 돌아섰다. 남과 북 “양측의 지도자들은 모두 민족통일이라는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각자의 정책이나 권력 기반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각각 계산도 다르고 한반도에 미처 신경 쓸 틈이 없는 외부 열강들이 강력히 밀어붙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경쟁심이 강한 두 정권이 대화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84쪽) 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반공독재,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정책으로 일관하는 박정희에 대해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가해졌다. “반 유신 운동이 폭넓게 확산되자 박정희 정권은 시위 주모자를 체포, 구금하고 끊임없이 탄압했다..... 워싱턴에서는 박정희 정부의 인권 침해 상황을 비난하는 미 의회의 여론과 한국계 미국인들을 위협하는 중앙정보부의 활동 때문에 결국 의원 청문회가 조직됐고 결국 미 의회는 남한에 대한 군사원조를 삭감했다.(90쪽) 1970년대 초반에 미국이 한국에 대한 동맹의 의무를 방기한 이유는 다름 아닌 유신 독재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남한 정부는 미국에서 가해지는 이와 같은 정치적 압력을 돈으로 매수하는 고질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것은 90년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정치계에 개입하려다 터진 스캔들의 전조가 되었다.“(90쪽) 그 스캔들은 박동선 사건이었다.
육영수 피격, 한미동맹의 파국
워싱턴포스트 기자 등을 역임한 돈 오버더퍼
“박정희 정권이 반정부 활동에 용공 혐의를 씌워서 탄압을 정당화했다”고 한 1974년에 오버더퍼는 광복절 기념식 참석 차 국립극장에 있었다. 여기서 그는 육영수 여사가 저격 당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 그 이후에 오버더퍼가 본 박정희는 그가 직접 일기에 적은 대로 “모든 것이 귀찮고 심신에서 모든 용기와 의욕을 잃어버린” 노회한 모습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패배로 끝난 1975년 6월 미국 대사 스나이더는 본국으로 보낸 전문에서 “이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언젠가 다가올 미군 철수에 대비하고 있고 그 대책으로서 남한 내에서 탄압 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110~111쪽)고 전문을 보낸다. 월남 패망 이후 박정희가 미국과 동맹을 거의 파탄으로 몰고 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중 한 축은 한국 내 독재와 인권유린, 다른 하나는 핵무기 개발이었다.
1976년 8월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서 박정희의 행태에 대해 오버더퍼는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인다.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무자비한 응징을 다짐할 당시에는 박정희는 순한 양처럼 납작 엎드린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이 직접 사과를 하고 사태가 일단락되는 조짐을 보이자 이번에는 박정희가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군의 군사력 증강과 북한의 온건한 반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스나이더는 박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조치를 모색할 때 미국이 따져보아야 하는 대가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134쪽)이렇게 미국과 엇박자를 놓으면서 매사에 충돌하려는 조짐은 카터 대통령 시절에 거의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임박한 파국 앞에서 책은 비장한 서사적 묘사로 이어진다.
한국의 박동진 외무부장관이 미국을 방문하자 카터는 밴스 국무장관에게 자필 메모를 보내는데 3가지 지침이 적혀 있다. 그 중 c항은 “정치범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현재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군사원조가 지속된다고 보장할 수 없으며 남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142쪽)라고 적혀 있다. 이런 기조는 미 의회도 마찬가지였다. 포드 대통령 시절인 1976년에 남한 내 인권탄압 실태에 경악한 미 하원 1백19명의 의원들은 남한에 대한 군사지원에 대해 “미국정부의 대남한 군사지원은 미국을 ‘인권탄압의 공범’으로 만드는 셈이라고 경고하는 공동서한에 서명했다.”(148쪽) 한미 군사동맹이 위기에 처한 것은 국제정세의 변화로부터 기인한 점도 있겠지만 한국 내 오직 한 사람의 독재자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유신은 오로지 박정희 1인만을 위한 폭압적인 전체주의 권력이었다. 그것이 바로 카터가 군이 극력 반대하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굳히게 된 여러 원인 중 하나다.
카터와 박정희의 담판
“카터의 턱 근육이 조용히 씰룩거리는 것을 보았다. 카터가 잔뜩 긴장하고 있을 때면 으레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이와 동시에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던 朴대통령은 자신의 말이 한마디씩 끝날 때마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쳐서 탁탁 소리를 냈다. 이 역시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朴대통령의 버릇이었다. 밴스는 카터의 차가운 분기(憤氣)로 회의실 전체가 냉랭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朴대통령이 무려 45분 동안 자신의 입장을 장황하게 전달하는 동안 카터는 밴스와 브라운 국방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메모를 전달했다. “만일 박정희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한국에서 미군을 전원 철수시키고 말겠소.”라는 내용이었다. 카터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반론을 제기하는 대신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朴대통령과 함께 옆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 계속 대화를 나눴다. 밀폐된 장소에서 카터는 남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한 뒤 경제적으로 북한보다 훨씬 부강한 대한민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훗날 홀브룩 국무부 차관보는 “당시 한-미 양국 정상 사이의 대면은 동맹국 정상 간의 회담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평했다.“(169~170쪽)
카터와 박정희의 1979년 정상회담은 두 지도자의 동반 몰락을 촉발하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이었다. 한 명은 민주주의를 도저히 할 수 없는 전체주의에 대한 신봉자이고, 또 한 명은 낭만적 평화주의에 대한 신봉자였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둘을 나란히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킨다. 그 해 박정희는 자신의 측근 김재규로부터 암살당했고, 그 이듬해에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여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필자는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그레그 대사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한 리셉션장에서 그는 “한반도에 철권통치로 국민을 탄압하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나라가 있다면 어디인가?”라고 질문하고 그는 “여러분은 북한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바로 대한민국이었다고 본다. 그런 한국과 미국은 꾸준히 대화를 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독재를 하고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대화를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레그 대사는 오버더퍼의 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한국에서 유신을 겪은 사람이라면 지금 한국이 독재 체제의 북한과 대화를 기피할 때 “당신들의 과거를 상기하라”며 과거 미국이 한국에 그랬던 것처럼 남한이 북한과 대화를 하라고 촉구한다.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주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리퍼트 대사는 이 책에서 분명 한반도의 지정학적, 전략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그가 이 책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금 그 박정희 딸이 대통령이 되어 자신의 문병을 하는 상황을 분명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는 훗날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
김종대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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