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5도, 대만 금문도처럼 요새화?
한겨레 국방 전문 웹진 ‘디펜스21’ 오픈 특집 - ‘연평도 피격 그 후’
자칫 ‘양날의 칼’
영국 채널제도도 마찬가지로 전면전 땐 전략적 가치 사라져
정부의 구상대로 서해 5도를 중심으로 서북해역사령부가 설치되고 이곳이 요새화하면 우리의 국토방위능력이 더욱 강해질까요? 군사 전문가들은 대만의 금문도와 영국 채널제도 사례를 들어 그 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7일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도발 방지책과 관련해 “군사적으로 요새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라”고 말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군사시설을 지하화하고 방공호와 같은 대피시설을 보강하는 등 서해 5도를 대만의 금문도와 같은 형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본토 방어 약화 부를 수도
금문도는 대만의 부속 섬이지만 중국 본토와의 거리가 불과 1.8㎞이며 동서 20㎞, 남북 길이 5∼10㎞인 조그만 섬입니다. 대만은 이 섬 전체를 땅속으로 그물망처럼 연결해 요새화했습니다. 이는 지하 2층으로 건설된 지하도시와 같은 형태입니다. 이곳에는 4만여명의 주민 전체가 대피해 생활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화생방 방어시설과 지하 비행장 등도 있습니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섬을 요새화하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대만의 금문도처럼 적의 본토 공격을 막는 전선기지의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요새화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본토 방어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또 본토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경우 섬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져 전쟁에서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적이 무시해버리면 닭 쫓던 개
실제로 적과 대치한 섬을 요새화하고도 적이 무시해버려 전쟁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한 경우가 존재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채널 제도(Channel Island) 의 사례가 바로 그것입니다.
채널 제도는 영국 해협에 위치한 건지(Guernsey), 저지(Jersey), 사크(Sark), 올더니(Alderney) 4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개 섬의 크기를 다 합쳐야 강화도 면적(302㎢)의 3분의2가 채 안되지만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으로부터 10~20㎞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채널 제도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 함대가 머무르던 군사기지 역할을 했지만 19세기부터 프랑스가 영국의 동맹국이 되면서 채널제도는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약간의 경비 병력만 주둔하는 어업기지이자 관광지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채널 제도는 독일군의 침공을 받게 되고, 채널 제도 주둔 영국군은 저항 없이 본토로 철수해버립니다. 채널 제도를 점령한 독일군은 연합군이 유럽을 침공하기 전 채널 제도를 점령하여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정확히는 히틀러의 생각), 이에 따라 채널 제도에 대한 요새화 및 전력보강이 이루어집니다. 육군 1개 사단의 이동 배치를 시작으로 공군 대공포부대와 해군 해안포 부대, 노동자 등을 합쳐 한때는 42,800명이 채널 제도의 방위에 투입됩니다.
이렇게 독일군의 자원이 채널 제도에 집중되면서 정작 영국과 마주하고 있는 프랑스 해안에 대한 방어태세는 매우 취약해졌습니다. 프랑스 본토의 디에프-생 나제르 해안 1000㎞에 배치된 독일군의 야포는 37문에 불과했으며, 노르망디 해안의 방어 역시 채널 제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이 때문에 독일의 장군들은 채널 제도의 병력과 물자를 프랑스 본토로 이동시켜달라고 히틀러에게 수없이 요청했지만, 채널 제도가 연합군의 첫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히틀러는 장군들의 요청을 번번이 거절합니다.
하지만 연합군은 히틀러의 예상을 깨고 채널 제도를 지나쳐 1944년 6월,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이 때문에 채널 제도를 지키던 2만5천여 명의 독일군은 1945년 5월 종전 때까지 전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섬에 갇혀 있다가 연합군에 항복하고 맙니다.
결국 히틀러가 프랑스 해안 방어까지 약화시켜가며 추진한 채널 제도의 요새화는 독일군이 저지른 낭비의 대표적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박수찬 디앤디포커스 기자 fas1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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