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장성 옷벗기기, 군의 몰락 부른다

김도균 2011.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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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군 인사와 나치의 군대장악 과정 비교한 글 화제 올라


군심이 심상치 않다. 현재 국방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국방개혁 307계획’에 비판적인 군의 목소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군의 이기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탓이 크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 28일 ‘국방개혁 307계획’에 반발하는 예비역 장성과 현역 군인 일부에 대해 ‘인사조처’를 거론하며 강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이날 “307계획에 대해 일부 현역들이 예비역 장성을 통해 자신들의 얘기를 대신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을 사는 대목이 있어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국방개혁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려는 현역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옷을 벗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이미 옷을 벗은 장성들이 많다. 육군참모총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육군참모총장의 임기가 6개월과 9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충빈 총장이 그나마 1년6개월을 재직했지만, 한민구 총장은 9개월, 황의돈 총장은 6개월 만에 물러났다. 세 명의 총장 재임 기간을 보면 현 정부의 육군참모총장 재임기간은 평균 11개월 정도다. 지난 참여정부의 평균 재임기간인 1년 6개월에 비하면 너무 짧다.

디펜스21은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황 총장의 경질을 보며 예비역 육군 소장인 K 씨가 쓴 <독일군은 자멸하였다>는 글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장성 옷 벗기기가 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살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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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8일 오전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참석자들이
인수위원들에게 거수경례로 인사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조선일보와 ‘일주일간의 전격전’


지난해 12월12일, 예비역 육군 소장 K씨는 A4 한 장 분량의 글을 이메일을 통해 지인들에게 발송했다. ‘독일군은 자멸하였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K 장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정예 군대의 표상으로 알려진 독일군이 몰락하게 된 원인이 히틀러의 독일군 참모본부 장악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독일군은 이미 전쟁을 하기도 전에 지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 K 장군이 쓴 글의 요지였다. 학자풍의 K 장군은 합리적이고 강직한 성품으로 군 선ㆍ후배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글을 꼼꼼히 읽다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눈에 뜨인다. 바로 나치가 치졸한 공작을 통해 히틀러를 움직여 독일군을 장악해 나간 과정을 언급한 것. K 장군이 이메일을 발송한 시점은 12월9일자 <조선일보>가 1면에 ‘황의돈 육참 총장 부적절한 재테크 의혹…황 총장 고도제한 완화 미리 알았나’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던 때로부터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사실 삼각지에 있는 황의돈 총장 소유의 빌딩은 이미 국방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것으로 8년 전 황 총장이 국방부 대변인 시절 취득한 후 진급심사 때마다 기무사와 국정원,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 사정기관들의 검증을 받았던 사안이었다.


물론 지난해 6월 그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될 때도 청와대는 빌딩 취득과정에 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고위 장성이 국방부 근처에 고가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고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미 여러 차례의 검증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된 사안이라는 것이 기자들의 대체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별안간 황 총장의 부적절한 재테크 의혹을 지적하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으니 기자들의 관심은 이 뜬금없는 기사가 왜 이 시점에 보도되었는가 하는데 쏠릴 수밖에 없었다. 기사의 소스를 청와대에서 제공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온 지 나흘만인 14일 황 총장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기다렸다는 듯 황 총장의 사의표명을 받아들인 청와대는 바로 다음날 황 총장의 후임자로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 동지상고 후배인 김상기 3군사령관을 내정했다.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 꼭 1주일 만에 이루어진 인사였다. 때문에 ‘김상기 육군참모총장’을 만들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일주일간의 전격전’이란 수군거림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장관에 임명된 직후 기자실을 찾아 “대장급인사는 없다”고 공언했던 김관진 국방장관도 무색하게 됐다. 한 현역 장교는 사석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이 참담하게 느껴진다는 심정을 토로할 정도였다.


히틀러ㆍ히믈러ㆍ괴링의 삼각음모


이미 여러 해 전 군문을 떠났던 K 장군에게는 이런 비정상적 인사가 어떻게 비췄을까? 이 시점에서 K 장군이 이메일에 언급했던 히틀러의 독일군 장악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1차 대전 패배 후 독일이 겪은 극심한 사회ㆍ경제적 혼란을 자양분으로 집권기반을 다지고 있었던 히틀러는 1933년 1월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임명된다. 히틀러는 빠르게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계기로 공산주의자들을 추방했고, 의회의 입법권을 정부에 위임하도록 하는 전권위임법, 이른바 수권법을 통과시켜 독재 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권력을 얻게 된 히틀러는 더 이상 합법의 틀에 안주하고 않고, 정당을 해산하고 언론과 사회단체들을 나치당의 통제 속으로 일원화했다. 다른 목소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 내에는 히틀러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집단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프로이센 귀족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군부였다. 19세기 프리드리히 대제 이후 200여 년에 걸쳐 독일 군부는 국가발전과 민족통일의 중심세력이었고, 전통의 수호자임을 자처하고 있었다.


독일 장교단은 태생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를 탐탁찮게 여겼지만, 나치와 게슈타포의 무도함에 대해서도 체질적 거부감이 있었다. 이러한 군부를 자신의 손아귀 안에 넣기 위해 히틀러는 베르사이유 조약 폐기와 재군비로 군부를 달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군부를 음해하는 교묘한 술수를 썼다. 히틀러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 바로 친위대 사령관 겸 비밀경찰 총수였던 하인리히 히믈러, 공군사령관을 맡고 있던 헤르만 괴링이었다.


이들의 첫 번째 타깃이 된 사람이 육군 총사령관 베르너 폰 프리츠(Werner von Fritsch) 장군이었다. 그는 군인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전형적인 독일 장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히틀러의 등장을 반겼던 그는 히틀러의 급진적 군비확장 정책에 대해 공공연히 비판하다가 히틀러의 눈 밖에 나게 되었다. 라이벌 관계였던 히믈러와 괴링은 의기투합,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군권 장악을 위한 마녀사냥과 희생양 만들기


1938년 1월 25일 괴링은 몇 년 전 게슈타포가 작성했던 서류철을 들고 히틀러를 찾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스 슈미트라는 인물은 베를린 뒷골목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협박과 공갈로 연명하던 사기꾼이었는데, 그는 게슈타포의 심문과정에서 “베를린의 한 거리에서 젊은 남성과 동성애에 빠져 있는 외알 안경의 육군장교를 보았다. 형사인 척하고 신분증명서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고, 장교가 내민 증명서에는 폰 프리츠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진술한 것.


그날 저녁 총통 관저로 불려온 폰 프리츠 장군은 장교로서의 명예를 걸고 자신이 뒤집어쓴 혐의가 완전히 날조된 것임을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임을 강요당한 프리츠는 차라리 군사 재판을 열어 진실을 밝혀 줄 것을 요구했고, 히틀러는 그에게 무기한 휴가를 명령했다. 육군이 사법부와 협조 하에 실시한 예비조사 결과 프리츠 장군은 게쉬타포에 의해 조작된 무고한 피해자였음을 입증했다. 한스 슈미트가 포츠담 정거장 근처의 으슥한 골목에서 동성애에 빠져 있던 장교를 몇 년간이나 협박, 금전을 갈취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장교의 이름은 리트마이스터 폰 프리슈로, 이미 퇴역해서 병상에 누워 있던 기병 장교였다. 하지만 히틀러는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장군들을 쳐부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진상 규명의 열쇠를 쥔 증인들은 게쉬타포의 협박과 엄중한 감시 속에 놓이게 되었고, 형식적 군사재판이 열린 것은 이미 프리츠가 사임한 이후인 3월10일의 일이었다.


새로 육군 원수가 된 괴링이 재판장을 맡았던 이 재판은 그나마 개정 하루 만에 유야무야 중단되고 말았다. 애초 히틀러와 나치에게는 프리츠 장군의 결백을 밝힐 이유도 그럴 의사도 없었던 것이다. 육군 총사령관과 함께 전쟁성 장관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원수도 히틀러의 표적이 됐다. 상처(喪妻)한 후 오랫동안 홀아비였던 블롬베르크는 1938년 1월 12일 자신의 타이피스트였던 에르나 그룬과 재혼했다. 이 결혼식에는 히틀러와 괴링도 하객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블롬베르크 장군부부가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난 사이 음모가 진행된다. 열렬한 나치 당원이자 베를린 경찰청장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가 경찰이 보관하고 있던 범죄 심문 조서에서 에르나 그룬의 이름을 찾아낸 것. 이 서류에는 독일 전쟁성 장관의 부인이 된 여성이 매춘부였고, 누드 사진을 촬영했다가 체포되어 징역까지 산 기록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곧 이 서류는 괴링의 손에 넘어갔고 프리츠 장군을 동성애자로 매도한 문서와 함께 히틀러에 게 보고되었다.


히틀러는 “독일 육군의 최고위 장교가 매춘부와 결혼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명분으로 블롬베르크를 파면했다. 불운한 60세의 블롬베르크는 밀월여행을 계속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음모는 프리츠와 블롬베르크와 함께 히틀러에게 비판적이던 16명의 장성이 예편되고, 44명이 좌천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 뒤 히틀러는 2월 4일 라디오를 통해 긴급령을 발표한다. 히틀러는 “앞으로는 내가 전군의 지휘권을 직접 행사한다”는 말로 시작된 이 긴급령을 통해 국가원수로서의 독일군 통수권을 행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독일군의 최고 사령관의 지위를 손에 넣은 것이다. 국방군 최고사령부(OKW)를 신설해 육ㆍ해ㆍ공군을 모두 그 아래 종속시킨 히틀러에게 감히 직언을 할 수 있는 군인은 이미 아무도 없었다.


청와대 인사기준과 이중 잣대


K 장군의 메일을 받은 예비역 장성 A씨는 “글 속에 녹아 있는 군에 대한 애정과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가슴 서늘하게 느껴졌다”며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군인을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처럼 쫓아내는 정치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군 인사법에 참모총장의 임기를 명시한 것은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벗어나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인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임 6개월 만에 육군총장을 날려 버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예비역 장성 B씨는 “특정 인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청와대가 갖고 있는 군 인사의 기준에 대해서는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B씨의 말처럼 황 총장의 사퇴 이유와 동일한 기준으로 놓고 보면 김상기 신임총장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김 총장은 자신의 명의로 주택 2채, 부인과 어머니도 각각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다. 특히 부인은 강원도 홍천에 농지 2933㎡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참모총장 내정 직후 민주당에서는 농지는 스스로 경작하지 않으면 소유할 수 없다는 농지법 위반을 지적했다. 김 총장 측은 이와 관련, “나중에 은퇴해서 이 땅에 집도 짓고 농사도 지을 목적으로 친척들과 구입했다. 2006년부터는 처남 등이 농사를 직접 짓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2008년 이후 주말에만 가끔 내려가 경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국방위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김상기 총장에 대해 황의돈 총장과 같은 잣대로 들이댄다면 총장으로 임명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총장을 자를 거라면 애초에 임명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K 장군은 이메일에서 “현재의 안보상 비상시국에 이 정부에서 검증해 임명한 육군참모총장의 뒤를 새삼 뒤지고 망신을 주는 것이 법리적으로 과연 타당하며, 또 무슨 득이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할 때”라고 답답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비판하며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전통적 보수층인 예비역 장성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기자가 만나본 예비역 장성들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군 인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들을 밝혔다. 특히 육군참모총장의 잦은 교체는 지난 정권과 비교해 볼 때 이명박 정부 아래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군 최고통수권자의 인식


예비역 장성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군 인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직접적 비판을 가하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에는 대부분 동의했다. 예비역 장군 C씨는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영포 군벌’이라는 식의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역대 정부에서 각종 비리에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가 연루돼 군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일들의 상당부분은 직책에 요구되는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보다 특정 인맥의 선후배들을 무리하게 기용한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은 국방장관과 차관을 임명하는 선에 머물고, 군 인사는 국방장관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동안 네 번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동안 군은 많이 변화해 왔는데, 군을 바라보는 최고 통수권자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도균 오마이뉴스 기자 capa1954@naver.com


* 본 기사는 <D&D 포커스> 2011년 4월호에 실린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 안보분야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D&D 포커스> 4월호가 발매중에 있습니다. 구독문의) 02-3775-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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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오마이뉴스 기자
오마이뉴스 사회부 기자로서 국방부, 통일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디펜스21>에는 전쟁사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이메일 : capa@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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