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동맹’과 가치공유의 차이

2012.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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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석 칼럼] 

요즈음 한-미 관계와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와 여권 인사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가치동맹’이다. 지난 6월에 한-미 동맹이 안보동맹, 경제동맹을 넘어서 ‘가치동맹’이 되었으며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한-미 관계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가치동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별문제가 없고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다. 그러나 ‘가치동맹’은 번지수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발상이다. 한-미 동맹이 우리 외교안보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를 ‘가치동맹’으로 확장시키자는 것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철부지 주장이다.

20120801_2.JPG » 이명박 대통령이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오바마 미국대통령을 2012년 3월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맞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미가 ‘가치를 공유한다’는 사실과 ‘가치동맹’이 된다는 말은 전혀 다른 뜻이다. 한국과 미국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지구상에 이 가치를 공유한 나라는 많다. 일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독재국가들조차도 내거는 가치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다. 그런데도 한·미가 굳이 이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상호 이해와 협력이 공고함을 확인하거나 양국이 이 가치를 함께 잘 발전시켜 국민의 행복과 좀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한·미는 평등과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화된 시장경제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유가 공평하게 실현되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미 가치동맹’은 가치공유가 지닌 이러한 긍정적·상생적 의미와 달리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 아래, 이를 반대하거나 혹은 이와 다른 세력, 국가들에 대항한 배타적 동아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와 다른 이념이나 생활양식을 지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뭉치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가치동맹’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덕목에 배치된다. 이 말은 사회구성체의 성격과 발전단계, 이념이 다양하며 대립적이기조차 한 동북아에서 배타적 가치를 내세우는 ‘가치동맹’이 시대착오적이며 평화 파괴적이라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소중한 이유 중 하나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나의 이념을 규범으로 앞세워 다른 이념을 제압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기 것과 하나로 수렴해 가려는 개방된 자세가 필요한 때에 ‘가치동맹’은 시대를 이념대결시대로 거꾸로 돌리겠다는 얘기다.

동맹에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그것이 태생적으로 배제와 배타성을 지녔다는 점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미 가치동맹’은 아무리 부정해도 중국을 타깃으로 한다는 인상을 씻어낼 수 없다. 미국으로서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중국과 한·미·일의 경제협력이 대세인 상황에서 안보동맹, 경제동맹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지자 ‘포괄적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가치동맹’을 내놓았을 것이다. 이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필경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한 한국·일본과 달리 중국은 사회주의이므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일 군사협력이 필요하다는 위험천만한 궤변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미 가치동맹’을 주장해야 할 합리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공동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새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위협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각국에서 시장경제가 지배적인 경제양식으로 자리잡았으며, 자유민주주의와 대결하던 사회주의 진영은 붕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 가치동맹’ 주장은 동북아의 기존 질서에 긴장을 조성할 뿐이다.

결국 한국이 동북아에서 ‘한-미 가치동맹’을 추구하면 우리 국익이 심대하게 손상되고 동북아 안보정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북아에서 국가들 간 가치의 수렴은 장기간의 접촉과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이며 합리적이다. 한-미 동맹이 나아갈 길은 ‘가치동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호혜적이며 균형이 잡힌 양국관계를 지향하면서, 다른 한편 중국 등 주변 국가와의 다자적 협력과 잘 조화하는 ‘다름’과 공존할 수 있는 동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20120801_1.JPG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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