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5

강태호 2016.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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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발문: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를 시작하며   

 
 1. 푸틴의 동진과 시진핑의 서진
  중-러의 전면적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와 유라시아 통합


 2. 러시아 극동개발전략의 새로운 단계
 블라디보스톡 자유항, 선도개발구역, 극동개발기금의 3개축 가동


  3. 중러관계:대형 프로젝트 돌파구 기대되는 리커창 총리 극동방문
 러시아 극동 동시베리아-중국 동북지역간 협력 프로그램의 추진


 4. 북러관계:당대회 이후 대러시아 외교행보 누굴 보낼 것인가
  북러 정부간 공동위원회와  재앙적 북핵 제재상황의 극복


 5. 일러관계:적극외교와 대러 제재사이에 저울질하는 아베총리
   ‘포괄적 접근’과 안보와 경제협력의 맞교환 모색


 6. 한러관계: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회생 내건 박근혜 대통령 
   대북 제재 압박과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협력의 딜레마


  소치 정상회담과 쿠릴 문제의 ‘포괄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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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푸틴 대통령과 대통령 관저에서 회담했다.  만찬을 겸한 회담에서 두 지도자는 현안인 북방영토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의 접근과는 다른 ‘새로운 발상’으로 교섭을 추진해 두 정상 간에 해결하기로 의견을 일치했다고 발혔다. 두 정상은 또 양국 국방·외무장관 협의체인 '2+2 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가능성도 검토하기로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기자들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러시아는 아태지역과 동북아 지역에 조성된 안보 위기를 고려할 때 (양국 국방·외무장관 협의체인) 2+2 회담이 아주 유용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본 측이 이를 인식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국은 오는 2018년에 러시아에서 '일본의 해' 행사를, 일본에서는 '러시아의 해' 행사를 교차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극동 지역의 발전 등 8개 항목의 협력 방안(일명 '포괄적 접근')을 제시했으며, 푸틴 대통령은 강한 관심을 보였다. 이 때문에 회담 시간이 3시간 10분여로 길어졌다. 푸틴은 이 때 아베 총리를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 포럼에 초청했으며, 두 정상은 계속 회담을 이어가기로 했다. (“아베•푸틴, 북방영토 문제 “현 정상 간에 해결”…새로운 접근 추진 <교도통신> 2016년 5월 7일) 푸틴 대통령은 회담을 시작하면서 “일본은 단순히 우리의 이웃일 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라면서 “정치와 통상·경제 관계에서 알려진 사건(서방의 대러 제재)으로 인해 일정한 문제가 있지만 양국 관계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서방 제재에도 양국 관계를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자는 제안으로 이해됐다. 
  2016년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廣島) 방문이라는 성과를 거둔 아베 총리는 다음 외교 목표로 쿠릴 4개섬 협상에서의 진전을 꾀하려 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소치 정상회담을 중요한 계기로 삼았다.   앞서 아베 총리는 5월6일 오후 회담을 위해 전용기로 영국에서 소치로 이동했는 데 일본 정부는 이 회담을 '비공식 정상회담'으로 규정하고 장소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가 아닌 소치에서 하는 것으로 러시아쪽과 조율했다. 그건 미국의 우려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교도통신>(2016년 2월23일)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2월9일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공동 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전화통화 중에 5월로 계획된 러시아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통신은 복수의 일러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지금은 그런(방러)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아베 총리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의 일러 협력을 위한 ‘종합 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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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총리가 소치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한 8개 항목의 러일 협력 프로젝트는 매우 구체적이고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우선 ‘극동지역의 근원적인 산업 발전이다.  아태 지역을 향한 수출 기지화를 위한 협력. 항만, 농지 개발, 수산물 가공, 제재소, 공항 정비 등’이 포함됐다.  두번째 의료산업 지원이다. 일본 스타일의 최첨단 병원과 러일 건강 장수센터의 건설 및 운영 등 의료 수준을 제고하여 러시아 국민들의 건강 수명을 늘리는 데 기여하는 협력을 담았다. 세번째 쾌적하고 청결하며 살기 편하고 활동하기 좋은 도시 건설에 협력한다. 구체적으로는 도시 문제에서 모범을 보여온 일본의 식견과 기술을 활용하여 한냉 지역에 적합한 주택과 폐기물 처리 시스템, 교통 정체 해소, 상하수도 정비, 도시교통망과 우편 네트워크 정비, 재개발 토지(brown field)의 개발 등이 제시됐다. 네번째는 러일 중소기업 간 교류와 협력을 근본적으로 확대하는 협력이다.  여기엔 비즈니스 매칭, 벤처 지원, 직종간 교류 등을 추진하는 새로운 기관의 설립을 포함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로 에너지 협력이다. 석유 및 가스 등과 같은 에너지 개발 협력. 생산 능력의 확충, 더 나아가 석유 제품의 다변화와 관련된 협력.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기존 협력을 능가하는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러시아가 일본에게 기대했던 것들이다. 여섯 번째로 상징적인 대규모 프로젝트의 추진이다.  러시아 산업의 다변화 촉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로 원자력, IT, 러일 양국의 지혜를 결집한 첨단기술 분야의 협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러일 양국의 상호이해를 증대시키기 위해 대학과 청소년들의 교류 및 관광객의 증가 그리고 스포츠 문화 등 폭넓은 분야에서 인적 교류를 근본적으로 확대하는 것 등으로 돼 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 연구실장은 이 정상회담으로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획기적으로 높였으며, 일본쪽이 의도한 ‘포괄적 접근’이 푸틴 대통령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는 평가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정상이 배석자 없이 통역만 대동한 채 영토 문제에 대해 약 35분간 의견을 교환한 것에 의미를 뒀다.    현승수 실장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이렇게 발언했다고 한다. “8이라는 숫자는 일본에서 재수가 좋은 숫자로 통한다. 내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Shintaro Abe)가 외상이었던 당시 소련에 제안한 항목도 8개 항목이었다. 나도 아버지처럼 러일 관계의 발전을 바라면서 8개 항목을 가다듬었다. 나는 기존의 발상을 뛰어넘어 러시아 국민들이 직접 혜택을 실감할 수 있고 러시아 경제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 플랜을 구상하고 있다. 이것이 실행된다면 러일 양국 관계를 우리 두 사람이서 크게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목표로 나는 최대한 노력해 나갈 생각이다. 블라디미르(푸틴 대통령) 역시 나의 이러한 생각에 호응하여 진지하게 검토해 줄 것을 바란다. 두 사람이 협력하여 러일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면 좋을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러시아 전문가인 사토 마사루(Masaru Sato)는 이 아베 총리의 포괄적 접근을 러시아어로 ‘prazdnichnyi nabor(휴일을 기념해 마련한 종합선물 세트)’에 비유하면서 러시아쪽이 바라는 경제적 안건들을 일본이 통째로 선물처럼 안기는 것이며, 그 안에 쿠릴 열도 문제의 해결 방안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물론 일본은 이 ‘종합 선물 세트’를 쿠릴 열도문제 까지 포함해 러시아가 전부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국제젼략연구실장 “러일 경제·통상 관계와 극동·시베리아 개발”, 2016년 6월23일 러시아 유대인자치주 비로비잔에서 열린  ‘글로벌 경제여건의 변화와 러시아 극동개발의 미래’국제 세미나 제3세션 ‘동북아국제관계와 극동시베리아 개발’ 주제 발표)
  하지만 쿠릴 열도 교섭의 구체적 내용은 두나라 모두 엄격히 정보 통제를 하고 있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일본 정부 고위 관리는 아베의 ‘새로운 접근’에 대해 기자들에게 “4개 섬의 귀속 확정을 요구하는 일본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경제와 국제 협력 등 포괄적인 관계 강화를 추진하고 영토 문제의 전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 실장은 아베 총리의 발언들을 통해 추측해 볼 때, “그가 영유권 문제를 해결한 후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도쿄선언’(1993년 10월)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것” 같으며,  “소치에서의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일련의 회담을 통해 일본 정부는 보다 유연한 자세로 영토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두 정상은 이 회담에서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 포럼에서의 정상회담에 이어 푸틴 대통령의 방일 일정도 협의했다. 아베 총리는 “협력을 쌓아가는 가운데 적절한 시기를 찾자”고 제안했으며. 6월에 외교차관급 평화조약 체결 교섭을 개최하는 것도 합의했다. 또 국제회의(동방경제포럼 등)에 맞춰 정상회담을 거듭하는 한편, 양국이 안전보장 분야를 포함하는 정치 대화를 가속화할 방침에도 일치했다.
 
소치에서의 푸틴-아베 정상회담에 대한 엇갈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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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치 정상회담은 아베 총리가 러일 경제협력을 이끌어내며 북방 4개섬 문제에 대한 해결을 기대했다는 것이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일본이 원하는 북방 4개섬 문제에서는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는 부정적 평가다.(유철종, “방러 아베, 푸틴과 회담…평화조약 체결 협상 등 별 진전 못봐” <연합뉴스>, 2016년 5월7일) 여기엔 일본의 대러 제재대열에서의 이탈에 대한 우려와 아베 총리의 행보에 대한 미국 등의 불안한 시선이 투영돼 있다. 다른 하나는 아베 총리의 결단으로 인해 러일관계가 진전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많은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 회담이 러일 관계의 주요 방향 설정에 있어 답을 제시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따라서 진전을 얘기하는 건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러시아쪽은 아베 총리가 결단력을 보여줬다는 데 높은 평가를 줬다.  발렌틴 키스타노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극동연구소 일본 연구센터 소장은 “아베총리가 70년 간 지속돼 온 러시아와의 침울한 관계를 청산한 지도자로 남고 싶어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서 “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 晋太郎) 전 일본 외무상은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를 일본에 초청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쿠릴열도(북방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과거의 소련과 달리 최소한 러일 간 갈등을 줄이려고 하는 등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세르게이 구니에프 Sergey Guneev, “푸틴-아베 정상 회담 결과 전문가 총평 ‘日, 대러 제재 시스템서 발 뺏다’”<스푸트니크> 2016년 5월11일) 그동안 러시아가 쿠릴 4개섬을 실효지배 중인 가운데, 일본은 1855년 제정 러시아와 체결한 통상 및 국경에 관한 양자조약을 근거로 쿠릴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쿠릴열도가 2차 대전 종전 후 전승국과 패전국간 배상문제를 규정한 국제법적 합의(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에 따라 합법적으로 러시아에 귀속됐다며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 평행선을 달려왔다. 누구도 쉽게 양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앞서의 키스타노프 소장처럼 이제 일본 지도자가 먼저 결단을 내리길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도 호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베총리가 대러 제재와 관련해 G7의 '파업 이탈자'가 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러일 관계 회복에 있어 아베는 결단력 있게 행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베 총리는 미국의 강한 압박에도 러시아와 화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러시아의 대일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파노프 전 주일 대사도 “아베 총리의 소치 방문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결과물을 꺼내놓지는 않았지만 실제 양국 관계에 많은 진전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파노프는 이렇게 말했다. “아베 총리의 소치 방문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러일 관계가 작동하도록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일본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언급은 안했지만 서방의 대러 제재 시스템에서 벗어났다. 아베 총리가 소치에서 내놓은 제안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분야와 관련된 주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정치적 대화도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그는 5회 이상의 고위급 회담을 계획하고 있으며 매순간 적극적으로 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동방경제 포럼 참석도 포함돼 있다.”  소치 정상회담 뒤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장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7월4일 모스크바에서 외교부 고위 관리 간에 안보 정책 관련 협의를 했다. 이에 앞서 6월 23일엔 도쿄에서 하라다 지카히토(原田親仁) 일러 관계 담당 정부 대표와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교차관 사이에 회담을 열어 쿠릴 4개섬 문제 등을 논의한 바 있다. 푸틴과 아베가 소치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협상의 문을 연 것만은 분명하다. (조준형, 9월 아베 방러·연내 푸틴 방일 계기 돌파구 마련될지 주목,<연합뉴스> 2016년 6월30일)
   
  아베 총리의 네 번에 걸친 러시아 방문


 소치에서의 아베-푸틴 정상회담은 2013년 4월 아베 총리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한 지 2년 만에 아베 총리가 다시 러시아를 찾은 것이었다.  2013년 4월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의 이 모스크바 정상회담은 공동성명에서 상호 수용 가능한 형태로 북방영토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일본이 대러 제재에 가담하면서 러시아와 일본은  2014년 2월 이후부터 교섭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2014년 2월8일에 정부 전용기편으로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개별 회담을 했다. 이 소치올림픽 개막식에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구미 각국 정상들이 잇따라 불참을 표명했으나,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신뢰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며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나라가 다시 교섭을 재개하기로 한 건 2015년 9월이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에 재선된 상황이었고, 이번에 유엔 총회를 활용해 뉴욕에서 다시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 이 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내가 자민당 총재로 재선됐다. 이로써 차분하게 푸틴 대통령과 평화 조약 교섭에 임할 토대가 마련됐다”며 “영토문제는 2013년 4월 (모스크바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 평화교섭은 건설적이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무관하게 협상은 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양국 사이에는 여러 방면에서 대화가 활발해지고 있다. 무역경제 정부 간 위원회나 안전보장 책임자의 협의도 이뤄졌다”며 “(양국 사이의) 경제 협력에는 큰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양국 공동 사업이 그것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 분야에서의 일본쪽의  성의있는 자세를 요청한 셈이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이 2016년 5월 소치 회담에서처럼 약 40분에 걸친 회담 가운에 약 10분간은 통역만을 대동하고 비공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이 시기 시진핑 주석은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미국 공식방문에 들어가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이미 아베-푸틴 두 정상은 최적의 시기를 조정해 푸틴 대통령의 방일을 추진키로  했으며, 그런 점에서 2016년 12월 푸틴의 일본 방문은 2013년 4월 아베의 모스크바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러일간에 상호 방문의 정상외교 공식화다. 그러나 푸틴의 일본 방문은 말 그대로 “가장 좋은 시기”를 찾지 못한 채 계속 미뤄졌다. 2016년 5월 다시 이번에도 아베 총리가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를 방문했으며, 이 비공식 정상회담을 통해 서방의 대러제재 속에서도 관계정상화와 쿠릴열도 문제를 풀기 위한 이른바 ‘새로운 접근방법’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회담에서도 러시아는 답을 주지 않았다. 푸틴의 일본 방문에 합의는 했으나 시기를 정하지는 않았고 푸틴은 또 다시 아베 총리에게 9월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하는 걸 초청했으니, 아베 총리는 2016년 12월 푸틴의 일본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소치, 뉴욕, 소치, 블라디보스톡 방문이라는 공을 들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푸틴 일본방문의 징검다리가 될 블라디보스톡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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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아베와 푸틴은 2016년 9월2일 블라디보스톡 회담에서 만찬을 포함해 총 3~4시간 자리를 같이 하면서 쿠릴 열도 문제를 포함한 평화조약 체결 협상과 함께 아베 총리는 앞서 제안한 8개 항목의 협력계획에 대한 구체적 액션 플랜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 신문>(2016년 8월16일)은 일러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연내 일본을 방문하는 문제도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전망했다. 그 시기에 대해서는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대선기간의 과도기적 상황에 있는 미국이 일러관계를 견제하기 어려운 시점으로 2016년 연말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했다.  그렇다면 왜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모스크바, 2014년 2월 소치 그리고 2016년 5월의 소치 여기에 2016년 9월의 블라디보스톡까지 4번에 걸쳐 러시아를 방문하면서까지 푸틴의 일본 방문을 성사시키려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만하다. 우선 쿠릴 4개섬의 반환은 개헌과 더불어, 아베 총리의 숙원사업이다. 외교의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는 이를 조부이자 정신적 ‘멘토’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전 총리로부터 ‘물려받은’ 전후체제(2차대전 패전국으로서 주어진 체제) 탈피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북한과의 관계정상화도 그 하나)로 삼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는 이 쿠릴 열도에 관한 합의가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라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그런 의사를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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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대통령은 2012년 3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쿠릴 열도 문제에서 ‘무승부’ 방침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2001년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엔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와 ‘이르쿠츠크 성명’에도 합의했다. 2001년 3월, 이 모리-푸틴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이르쿠츠크 성명은 평화조약 체결 후에 쿠릴열도의 이른바 일본이 말하는 북방 4개섬 가운데 하보마이군도(歯舞群島)와 시코탄도(色丹島)의 인도를 결정한 1956년 일•소 공동선언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푸틴 대통령은 2012년 3월 3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직후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영토 문제에서는 유도의 ‘히키와케(引き分け·무승부)’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해 영유권 분쟁에서 타협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푸틴은 유도 유단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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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남 쿠릴열도의 4개섬을 둘러싸고 소련과 일본 사이에는 70여년에 걸친 오랜 영토분쟁의 역사를 봐야 한다. 전후 이 문제는 일본과 소련간의 관계 정상화의 장애요인이 됐다. 이에 따라 4개 섬을 실효지배하고 있는 소련과 일본은 1956년 두나라 국회가 비준한 일소 공동선언 9조에서 일본에 두 개의 섬을(하보마이와 시코탄)을 양도하는 선결 조건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명시했다. 즉 모든 영토 분쟁의 조정과 일본 정부가 향후 영토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두개 섬을 양도한다는 것이 이 56년 일소공동선언의 합의였다. 그러나 일본은 2개 섬 양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4개 섬  전체를 반환할 것을 요구해왔으며, 그러자 이에 맞서 러시아도 56년의 일소 공동선언의 이행을 거부해왔다.  아무런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 내에서는 북방영토 문제 해결을 위한 모리 총리 특사론이 거론돼 왔으며, 그건 모리 전총리가 2001년 푸틴 대통령과 이르쿠츠크 성명에서   일소 공동선언의 합의의 정신을 복원했기 때문이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앞두고 2월에 모리(75) 전 총리를 특사자격으로 보내 푸틴 대통령과 사전에 조율하도록 했다. 아베 총리는 이 모리 특사를 통해 전달한 친서에서 쿠릴열도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대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특히 푸틴 대통령이 주장한 ‘무승부론’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베 총리의 러시아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으며, 모리 전 총리의 방문 전에 이뤄진 북한의 제3차 핵실험에 대해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러·일 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두나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두 사람은 그 뒤 양자 및 다자회의에서의 정상회담 및 접촉을 통해 쿠릴열도 문제와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서로 확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뒤 이어진 두 정상의 회담은 적어도 두 개섬 반환에 관한 합의를 출발점에 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9월의 블라디보스톡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푸틴 대통령을 자신의 선거구인 야마구치 현에 초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푸틴 대통령이 연말에 즈음해 아베 총리의 선거구인 야마구치현등 일본 방문에 동의한다면 두 정상이 쿠릴 열도 문제의 해결에 획기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12월 일본 방문은 적어도 그런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한 채 북방 4개섬에 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성과도 발표되지 못했다.)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 포럼은 푸틴의 일본 방문을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5년 9월에 드미트리 스트렐리초프 모스크바 국제관계대 동양학부 학장이 한 말은 의미 심장하다. “일본은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통해 남쿠릴 문제와 평화조약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한다. 아베는 러시아와 영토 문제를 해결한 총리로 역사에 남길 원한다. 그러나, 정작 푸틴을 맞이하는 방문 준비에는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스트렐리초프의 이 말은 블라디보스톡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풀어놓을 보따리에는 앞서 2016년 5월 소치 정상회담에서 내놓은 8개항의 경제 협력 분야와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이행방안들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 언론들이 교통인프라 개발과 농업 분야에서의 협력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는 건 러시아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올레그 벨로제로프 러시아철도공사 사장은 2016년 2월29일 ‘무역산업회담: 러시아-일본’ 포럼에서 교통 인프라 개발 사업에 대한 일본 투자 유치에 관심을 표명했다. 벨로제로프 사장은 “‘통합된 교통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뿐 아니라, 개인 투자가 요구되며, 특히 극동지역을 포함해 모스크바 물류센터 등 국제 교통 통로에 위치한 화물이 집결되는 장소의 물류센터에 일본이 투자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한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석유 가스 에너지와 함께 협력이 가장 유망한 분야로 거론된 게 극동 연해주 지역의 농업 그리고 인근 해역에서의 수산업이었다. 러시아 농업부는 2016년 7월26일 “도쿄에서 열린 러-일 농업 협상에서 러시아가 대 일본 농축산물 수출 확대 계획을 밝혔다”고 발표했다. 수출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Russia포커스>가 만난 전문가들에 따르면 러시아 농축산물 생산자들은 국내시장에 공급하고 남는 여유분을 아시아 시장에 수출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 최대 유전자복제 양돈 농장 ‘오트라다 겐’의 패트릭 호프만 CEO는 “러시아 축산물은 EU, 미국, 캐나다 제품과 비교할 때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러시아 농장들은 성숙한 단계에 와 있고 생산성이 증대되면서 생산량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러시아의 대 일본 농수산물 수출은 약 2억9천만 달러 규모였다. 하지만 그중 90%가 수산물이었다.(키라 예고로바, 예브게니야 오구르초바, ‘러, 농축산물 일본 수출 확대 기대, <Russia포커스>  2016년 7월 28일) 호프만 CEO는 “일본, 한국,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축산물을 수입해왔기 때문에 러시아 축산물의 자연스러운 판매시장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중국산 육류가 밀려들어올 것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 산하 농업위원회 분석팀의 책임자인 이반 루바노프도 “현재 러시아의 대 일본 농산물 수출량은 많지 않다. 빻은 알곡 같은 곡물을 수출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수출용 농산물 대부분이 러시아의 유럽지역과 서시베리아에서 재배되고 있어 동부 지역으로 운송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 농산물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극동에서 다양한 농업 프로젝트들이 시작되고 있으며, 루바노프에 따르면 예컨대 설탕 제조회사 ‘루사그로’는 극동의 양돈단지 건설에 10억 달러 투자를 계획 중이며 생산된 제품 일부를 일본으로 수출할 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앞서 언급했듯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2016)에서 논의됐던 한국-러시아-중국-일본을 연결하는 전력공급망을 구축하는 동북아시아 에너지시스템 통합 프로젝트가 동방경제 포럼에서 논의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극동개발부는 알렉산드르 갈루시카 극동개발장관,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마에다 타다시 일본국제협력은행(JIBC) 수석전무이사 등이 동방경제포럼에서 “이 프로젝트를 문서상 합의내용을 작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진전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럼의 실무회담에서 지구촌 인구 3분의 1이 거주하는 아시아 전력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시아 전력의 78%가 한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서 소비된다”면서 “4개국이 통합된 에너지 망(그리드)을 구축하는 일은 매우 올바른 선택”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일러 경제·통상 관계와 극동·시베리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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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 문제, 북한과는 납치 문제 우선 해결을 내세운 데다, 중국과 영유권 문제 및 패권적 갈등관계가 심화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변화를 외면한 채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동남아(베트남, 필리핀, 타이 등). 인도 그리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몽골,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 구축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북방 4개섬 문제 등 러시아와의 관계정상화 의지와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극동 개발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결합되는 현재의 국면은 러일 양국이 호혜적인 형태의 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일본 기업들의 구체적인 극동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소극적으로 일관했던 일본의 대러, 대 극동 개발에 변화가 예상되는 것이다.  현승수 실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러시아가 직면한 경제난에 따른 러시아 국내의 소비심리 위축 등이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러시아와 일본이 지닌 경제력과 시장 규모, 지리적 접근성 등을 고려할 때 두 나라의 무역과 투자관계는 모두 기대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에서 잠재적 성장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일본 기업의 대러 투자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일본 기업들이 러시아의 제조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을 도모하고 있어 전망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러시아 유럽 지역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직접 투자는 대부분 자동차 및 그와 관련된 공업 부문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었다. 직접 투자 분야에서도 무역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자동차 이외에도 대러 수출 품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기계 메이커들 즉 고마츠(Komatsu), 히다치 건설기계(Hitachi Construction Machinery) 등도 러시아에서 생산 공장을 가동해 왔다는 중장비 기계 건설 등이 러일 투자의 중심이었다. 여기에 최근 의료 분야에서 러일 협력이 진전되고 있는 추세에 따라 의약품 및 의료 기기 제조 분야에서의 진출도 활발해지는 등 다변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이 참여한 최대 투자사업인 사할린 프로젝트가 국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일본의 직접투자 잔고로서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러시아에 대한 총투자 잔고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1%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만큼 투자확대의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러시아 국내에서 자원 개발 및 수송 인프라의 정비가 진행되고 있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화석연료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에게 있어서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은 당분간 중요한 수입품목의 위치를 유지할 것이 확실하다. 다만, 어패류나 목재, 비철금속 등과 같은 전통적 품목은 러시아 측의 자원 보호 정책과 가공품 수출 방침, 최근의 가격 하락 등 요인들이 겹쳐 수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등 무역 투자 등에서 러일 경제협력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러간 무역 및 투자 협력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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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극동 시베리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2000년대 초반 사할린의 석유와 가스 개발이 계기가 됐다. 2003년 5월 일본 기업이 사할린-1, 사할린-2에 참가함으로써 양국 경제 관계는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생산된 에너지 개발 관련 설비와 기자재의 계약이 다수 체결됐고 특히 대러 수출과 직접 투자가 빠르게 확대됐다.  두나라 무역 역시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해 2005년에는 총액 1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07년에는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2008년 말, 워싱턴발 금융위기로 일본 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제 역시 타격을 받으면서 2009년 러일 무역액은 전년 대비 59% 감소한 121억 달러에 그쳤다. 특히 일본의 대러 수출은 전년 대비 79.9%나 감소해 3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러시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매년 기록을 갱신해 나갔고 2013년에는 총액으로 역대 최고인 348억 달러를 기록해 1992년의 35억 달러와 비교하면 20년 만에 10배 규모로 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대러 제제, 루블화 폭락과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2014년부터 러시아 경제는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했으며, 러일 간 교역도 2015년에는 뚜렷한 부정적 징후를 보였다. 2013년과 2014년 모두 약 350억 달러 규모였던 러일 무역은 2015년 들어 전년 대비 39% 줄어든 209억 달러로 위축됐다. 이 가운데 일본의 대러 수출은 전년 대비 44%나 감소한 51억 달러로 축소되었다. 러시아의 대일 수출은 158억 달러로 전년 대비 36% 감소했다.     무역수지를 보면 2009년 이후 일본의 러시아로부터 수입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면서 일본이 적자를 기록해 왔다. 이는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가스의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의 대러 수출을 견인하던 자동차(신차)의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대일 수출은 과거 최고치인 248억 달러를 기록한 데 반해, 일본의 대러 수출은 93억 달러에 불과해 극심한 역조 현상을 보였다. 일본의 대러수출의 주종목은 수송용 기기로 2013년 대러 수출의 63%를 차지했다. 반면에 러시아로부터의 주요 수입 품목은 석유와 가스였다. 이들의 비중은 2013년 수입에 70% 이상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비철금속이나 석탄 등의 천연 자원이었다. 이처럼 단순한 무역구조에다, 지난 25년 동안 일본의 무역 총액에서 러일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05년의 경우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2013년부터 무역규모가 소폭 증가했지만 여전히 2.2%(중국 20%, 미국 13.1%, 한국 6%)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쪽에서 보더라도 대외 무역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4% 정도이며 나라별 순위에서는 7위를 보였다. 그럼에도 극동 지역 무역만을 놓고 보면 주요 상대국은 2014년 실적으로 일본, 한국, 중국이 총액의 약 80%를 차지한 가운데 일본과의 무역액이 102억4,000만 달러로 2008년 이후 6년 만에 일본이 중국을 제치고 러시아 극동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런 러일간의 무역 투자관계는 두나라 협력이 그동안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잠재적 가능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선행 투자와 러시아의 선도개발구역 설치, 블라디보스톡 자유무역항 등 투자 여건 개선 등에 힘입어 새로운 시장 러시아로 의료, 항만 도로 공항 전력 등 인프라, 농업 및 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의 진출 붐을 전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극동ㆍ시베리아 개발과 일본의 역할


   러시아의 1억4,3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극동에 거주하는 인구는 620만 명에 불과하다.  시장이 형성되기가 어렵다. 또 인구 1,210만 명을 헤아리는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러시아에서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는 모두 15개인데 극동 지역의 도시들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더욱이 시장으로서의 극동은 대단히 협소하고 러시아 국내 시장이 집중되어 있는 유럽 지역으로부터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게다가 러시아의 공업 집적도 역시 유럽지역에 크게 편재되어 있다, 전체 면적의 20%에 불과한 유럽 지역에 인구와 공업 생산액의 약 75%가 집중되어 있다. 공업 출하액 측면에서 볼 때도 극동은 북캅카스와 함께 가장 수치가 낮은 지역이다.   이에 따라 현승수 실장에 따르면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새로운 형태의 선도개발구역과 자유항을 선포하고 대담한 규제 완화와 감세를 추진하여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의 자본을 보다 원활하게 유치하려는 시도를 평가하지만, 인구가 적고 공업 집적도가 희박하면 고객이나 공급자 그리고 파트너들을 쉽게 확보하기는 어렵기에 일본 기업들이 극동 진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극동지역의 최대 약점은 동시에 일본 기업들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러시아가 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의 구조개혁을 실시할 수밖에 없고 러시아 정부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 기술력을 비롯해 종합적인 경제 역량이 우수한 일본이 러시아의 중요한 동반자로서 최적이라는 것이다. 또 러시아의 구조 개혁에 일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만 있다면 러시아에게도 큰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극동지역에 한정하다면 일본은 러시아 극동지역 무역의 80%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다만 러시아 극동의 대일 수출 중 91%는 석유 가스 등 사할린 주에 집중됐다. 반면에 대일 수입의 92%는 연해주 지방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승수 실장에 따르면 “일본과 러시아 극동의 무역 관계는 일본이 사할린 주로부터 에너지를 수입하고, 블라디보스톡이나 나홋카와 같은 연해 지방의 항구도시로 중고차를 수출하는 단순 구조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출입 각각의 동향을 보면 러시아의 대일 수출은 9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와 LNG 수출이 감소함에 따라 85억 달러를 기록해 워싱턴발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 이후 줄곧 감소하는 추세였다. 한편, 대일 수입은 중고 승용차나 건설기계 등 수송기기와 기계류가 증가함에 따라 18억 달러로 전년 대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4년 말 루블화 폭락으로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중고차가 크게 줄었으며 이에 따라 2015년 수입 감소는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극동의 수출은 에너지 연료가 약 70%를 차지한다. 러시아 극동에서는 현재 LNG 플랜트와 가스 화학 공장 건설이 계획 중이며, 또 동시베리아태평양 파이프라인(ESPO)을 통한 석유의 출하량도 증가하고 있어서, 앞으로 아태 시장으로의 에너지 수출을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러시아의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에 러시아 극동의 수입 가운데 기계, 설비, 수송기기가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금, 철광석, 구리 등의 광산 개발 그리고 각종 인프라 정비 사업 등에 따른 수요가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들 품목의 수입은 러시아의 전체적인 경제 상황, 대외관계에 따라 2016년에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는 “일본 전문가들이 극동지역에서의 러일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역관계의 이런 단순구조를 탈피해 다변화 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쪽 극동 세관의 통관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러시아 극동의 무역액은 수출이 285억 달러, 수입이 105억 달러, 수출입 총액은 390억 달러였으며 무역수지는 러시아가 180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전년 대비 수출이 1.6% 증가한 데 반해, 수입이 12.8%까지 대폭 감소한 것인바, 총액에서도 2.7% 감소했다. 수입 감소의 원인은 역시나 서방의 경제제재와 루블화의 가치 급락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극동개발 공동 보고서


   2015년 2월 27일 일본의 경제산업성과 노무라종합연구소가 공동으로 작성한 ‘러시아: 일러 투자 촉진을 위한 틀에 관한 지원사업’ 의 보고서는 일본이 앞으로 극동 지역 개발에서 직면하게 될 어려움과 해결 방안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과 러시아 전문가들의 획기적인 제안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현승수 실장에 의하면 이 보고서는 첫째 장에서 러시아연방 정부 및 지방 정부가 추진하는 극동ㆍ동시베리아 지역에서의 외국 투자 촉진 정책(외국 기업에 대한 우대책, 투자환경 정비 상황 등)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어 두 번째 장에서는 극동개발에 관심이 높은 일본 기업들의 구체적 사업 안건 및 정책적 요구사항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실현 가능성이 높은 구체적 투자 안건들을 과감하게 추려서 제안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극동에서 사업 경험이 있는 일본 기업들을 대상으로 청취 조사를 실시한 후, 풀어야 할 주요 과제를 △정보와 교류의 부족, △인프라 부족, △번잡한 절차, △사업 지원 기능의 부족 등 4가지 문제의 해결에 두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극동에 JETRO(일본무역진흥기구)와 같은 대외경제를 담당하는 전속 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으며 그럴 경우 극동 지역에 대한 기초정보를 진출 기업들에게 제공함은 물론 각종 상담도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극동에 진출을 완료한 기업들과 아직 검토 중인 기업들 그리고 극동에서 사업을 접고 철수한 기업들로부터 구체적인 경험을 청취하여 앞으로 극동 지방이 갖는 미래 비전과 러시아와 일본이 극동 개발을 통해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 제안의 핵심은 러시아 극동에 ‘꿈’이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러시아가 일본과의 연계를 통해 극동의 강점을 살리면서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이상적인 ‘꿈’을 그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현 실장은 이 보고서가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극동에서의 러일 협력의 윈-윈 구도를 도식화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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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지역에서 러일 협력의 윈-윈 구도 출처: 경제산업서 노무라연구소의 공동 보고서 표를 현승수 실장이 번역하여 재작성한 것임.

 経済産業省・野村総合研究所、「平成26年度新興国市場開拓事業(相手国の産業政策・制度構築の支援事業(ロシア:日露投資促進のための枠組みの在り方に関する支援事業, 러시아:일러투자 촉진을 위한 기본 틀의 존재방식에 관한 지원사업) 最終報告」(2015年2月27日)、p. 96。http://www.data.go.jp/data/dataset/meti_20150706_0322/resource/825e876f-9aeb-4e00-b21c-6dca59a0c0a6


 

쿠릴 열도 개발과 군사기지화 나선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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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일본과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는 다른 한편에서는 쿠릴 열도 개발을 본격화 하는 한편 군사기지화에 적극 나섬으로써 일본의 쿠릴열도 4개섬 반환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건 영토문제라는 측면 이외에 쿠릴의 경제적 및 지정학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납치 문제 해결을 내걸고 북한과의 대화에 나선 일본에게 핵 실험이 장애가 되고 있듯이 북방 4개섬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협력을 추진하는 아베 총리에겐 이런 쿠릴열도의 군사화 조처는 결정적 장애가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베의 대러외교가 북방 4개섬 문제에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일본 내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일방적 4개섬 반환 요구는 러시아의 이런 정책을 정당화 시켜줄 뿐이다. 일본 내의 또 다른 한편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성사된다면 일본을 무시하고 러시아가 쿠릴 열도 군사화와 일방적 개발에 나서지는 못하리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안드레이 시도로프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 대학 부교수가 발표한 ‘러시아 동아시아 해양정책’에 의하면 극동 연해주 인근 해역과 베링해에서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은 매우 심각하며 이대로 두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2015년 11월 제11회 한겨레-부산심포지엄 이틀째 회의 4번째 세션 주제 <광복 70년 해양질서의 변화와 동아시아 평화>에서 발표). 시도로프 박사는 이 지역의 해양 분쟁의 가능성이 큰 쟁점 현안으로 △러시아 내해로 바뀌는 오호츠크해, △남쿠릴열도 개발과 군사화로 인한 일본과의 분쟁 격화 가능성 △베링해 경계획정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간 대립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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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열도 4개섬 가운데 하나인 쿠나시르를 방문한 메드베데프 총리


  2015년 8월 중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2010년 이래 세 번째로 쿠릴열도를 방문했다. 첫 번째는 2010년 러시아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쿠릴을 방문하였고, 2012년에는 총리 자격으로, 그리고 3년만에 다시 찾은 것이다. 매번 일본은 ‘입에 거품을 물고’ 러시아를 비난했으나, 메드베데프는 무시했다. 오히려 평소 경원 받던 러시아 보수세력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메드베데프에게 쿠릴은 러시아 영토 수호자라는 정치적 자산으로 남아 있었다. 메드베데프는 1,2차 방문에서 주로 영토 수호와 군사적 방어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2015년 3차 방문에서는 쿠릴 개발을 본격적으로 선언해 변화를 보였다. (“러시아가 일본을 다루는 방식, 쿠릴식 해법”, <스푸트니크>  2015년 8월13일)   러시아 정부는 '쿠릴열도 사회-경제 개발을 위한 연방 프로그램 2016∼2025'을 승인하였는데, 총 700억 루블(약 1조5천억 원)을 투자해 12만 3천㎡의 주택과 더불어 학교·병원·체육관 등 17개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고, 100km에 달하는 도로의 개보수와 아스팔트화를 실시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또한 쿠릴열도에 어업과 관광업 개발을 중심으로 한 특별경제구역을 창설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쿠릴을 군사적 측면에서만 고려하였는데 앞으로는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쿠릴의 해양수산자원 개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남쿠릴 열도(북방4도)는 각종 어족 자원이 풍부하게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세계 3대 황금어장 중의 하나다.  이 지역의 대표 어종은 연어, 송어, 청어, 대구, 크랩 등 한대성 어족이며, 최근에는 연어와 송어 양식 분야가 적극 투자되고 있다. 수산 선진국인 노르웨이가 해상 가두리 양식으로 세계 최대의 연어 수출국가지만 자연환경으로 본다면 난류와 한류가 겹치는 쿠릴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할린 주정부는 쿠릴열도에 9개, 사할린에 11개의 부화장 건설, 어류 처리시설 확장, 통조림 생산시설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바이오테크 공원(Biotech Park)’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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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릴열도 4개섬 가운데 하나인 쿠나시르


 러시아가 주목하는 쿠릴의 또 다른 경제적 가치는 물류 기능이다. 러시아는 최근 지구온난화로 북극항로를 적극적으로 열어가려 하고 있다, 쿠릴은 일본 본토-알류산열도-알래스카를 연결하는 대환상로에 위치하여 태평양과 아시아, 그리고 북극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다. 무엇보다 쿠릴의 바다는 태평양의 난류로 얼지 않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부동항으로서 가치가 높다. 러시아가 쿠릴 항구를 적극 개발하면 아시아, 태평양, 북극으로 가는 중요한 물류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전문 잡지<섬 연구 리뷰(Review of Island Studies)>는 남쿠릴 열도에서 증가한 러시아 군사 활동은 북극해 연안을 따라 이어지는 북극항로 개통을 내다보고 나온 것으로 분석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이제 쿠릴에 이주하는 러시아 주민들에게 현지의 땅 1헥타르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쿠릴이 사유화되면 일본의 북방 도서 반환 문제는 더욱 더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2016년 들어서는 쿠릴열도의 군사기지화도 본격화하고 있다. 푸틴 정부는 쿠릴에 병력 약 3천 5백 명을 배치하고, 이투루프와 쿠나시르에 새로운 주둔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신형 대공 미사일과 통신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니콜라이 리톱킨, “러시아,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전초 기지 강화”,  <Russia포커스> 2016년 6월 23일)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 극동군관구 사령관은 2016년 5월27일 동방 정책 추진을 위해 2020년까지 우선적으로 사할린, 쿠릴열도 및 북극 지역에 군사 인프라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르게이 수로비킨 사령관은 “러시아 정부가 극동 지역에서 국가 안보와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하기 위한 유례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특히 러시아 국방부는 사할린, 쿠릴열도 및 북극 지역에 2020년까지 군사 인프라를 강화할 계획이다.  수로비킨 사령관은 “연합부대 및 군부대 재무장이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으며 계급과 소속에 상관없이 모든 군인과 그 가족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사업 또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쿠릴열도의 현대화와 재무장은 2010년부터 추진돼 온 것으로, 러시아 극동지역 안보의 주축은 예전처럼 극동군관구 소속 제18기관총-포병사단이 맡고 있다. 지난 몇년 동안 병력이 계속 증가했고 별도의 T-80BV 전차 대대가 여기에 속해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전력 강화를 위해 쿠릴열도에 신형 지대공 미사일 'Tor-M2U'를 배치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에 따르면 2015년 중 초음속 대함 미사일 시스템 'Bal'과 역시 대함 미사일 시스템인 'Bastion(아래 사진-2)' 및 차세대 무인 항공기 'Aileron-3'를 쿠릴열도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태평양함대 전력 배치와 관련한 현지답사를 위해 대(大)쿠릴열도로 2016년 5월18일 실사팀을 파견했다. 태평양함대 소속 함정 6척이 답사에 참여하며 대형상륙함 ‘네벨스코이 제독’이 실사팀을 이끌었다. 참여 인원은 200여 명이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의 군사평론가 드미트리 사포노프는 “러시아군은 태평양함대 주둔을 위한 새로운 기지, 혹은 전력을 분산배치하기 위한 기지를 찾고 있다”며 “나아가 극동군관구 사령부는 방공(air defence) 기지를 구축하고 해안 미사일 시스템을 배치하기 위한 추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러시아의 군사 능력을 떨어뜨리는 난제가 많은 곳이다. 러시아 군 역사에 정통한 언론인인 사포노프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국방부가 슘슈(일본명 슈무슈토) 섬에 방공 기지를 구축했는데 몇 년 후 쓰나미가 덮쳐 기지가 쓸려 나갔다”며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해야 하고, 방공호를 만들어 그 안에 살자는 게 아니라면 쿠릴열도의 모든 섬에 다 군부대를 배치하지는 못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는 쿠릴열도 개발이 시작된 2차 대전 종전 직후 옛소련은 일련의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한다. 사포노프에 따르면 섬에 나있는 도로가 독일산 라비츠 격자형 그물 철망(철망을 발명한 독일인 Carl Rabitz의 이름을 따서 라비츠 그물 철망이라 불렀다) 덮여있었는데 소련군은 철망을 뜯어내고 전부 콘크리트로 도로를 메우고 길 옆으론 작은 집들을 지었다. 그런데 가을이 오자 도로가 진창이 되어 그야말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또 강풍과 강우가 몰아쳐 겨우 한 계절 사이에 집들이 폐허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인프라를 복구하는 데 해마다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런 기후적 특성 때문에 러시아가 군부대가 현재 배치돼 있는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와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 외의 다른 섬에는 군부대를 배치하지 않을 것으로 사포노프 군사평론가는 내다봤다. 쿠릴열도의 군사화 경제적 가치 등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그에 따른 러시아의 집중적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인데 푸틴과 메데베데프의 역할분담에 입각한 양면 작전인지,아니면 서로 손발이 안맞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이런 움직임은 일본 특히 이들 4개섬 문제 해결을 전후 외교의 결산으로 보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적어도 두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일본이 이를 그대로 둔다면 북방 4개섬 반환은 영영 불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러시아의 이런 조처들이 2개섬 반환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며 아직은 그 선을 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아베 총리 이외의 일본 야당이나 여론, 그리고 러일 접근에 부정적인 미국 등은 이를 근거로 아베 총리가 결국은 러시아에 돈을 쏟아 붇고서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말 것이라며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것이든 이 문제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지역 정세를 가장 크게 좌우할 가장 큰 지정학적 현안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강태호 한겨레 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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