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꼼수·거짓말…“중요성 몰랐다” 어이없는 변명까지

하어영 2012. 06. 28
조회수 28199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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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일 정보협정을 의결했다. 뉴시스


[한-일 군사정보협정 ‘몰래 의결’]

국무회의 안건 목록에서 빼고 브리핑서도 한마디도 안해
안건 사전공개 안한 이유 묻자 “즉석안건이라 몰라” 거짓말

‘군사정보협정’서 ‘군사’ 삭제…
협정 성격 감추려고 ‘꼼수’
이 대통령 외국 순방중 서둘러 정치적 부담 피하기 의도?

정부는 지난 26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면서 이를 목록에서 누락하고 사후에도 공개하지 않는 등 철저히 밀실행정으로 처리했다. 또 하루 뒤인 27일 외교부에서 처리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실수로 비공개했다’거나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는 등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 밀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26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처리된 과정은 처음부터 석연치 않았다. 외교부는 이 협정을 ‘일반안건’이 아닌 ‘즉석안건’으로 올렸다. 일반안건은 3일 전까지 온라인 국정관리시스템에 올려야 하며, 대개 제목과 내용이 국무회의 전날 언론에 공개된다. 반면 즉석안건은 국무회의 3일 전까지 올리지 못했지만 긴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안건을 말한다. 한-일 간에 1년 반 동안 협의해왔고, 일본 정부는 아직 처리 날짜도 정하지 않은 이 협정을 정부는 긴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즉석안건’으로 올린 것이다. 또 비밀안건이 아닌데도 국무회의 안건 목록에서 뺐다.

이런 태도는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열린 정부 대변인인 김용환 문화부 2차관의 브리핑에서도 계속됐다. 김 차관은 국무회의에서 처리한 가장 중요한 안건인 이 협정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김황식 총리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해서만 설명했다.

■ 거짓말 이 안건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7일 아침 김용환 차관은 “즉석안건으로 올라와 사전에 몰랐고, 국무회의가 끝난 뒤에도 이 사안의 중요성을 몰라서 설명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같은날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한술 더 떴다. 그는 “한-일 간에 실무협의가 진척됐지만, 협정 체결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다음주에 국무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의 해명은 불과 1~2시간 뒤 외교부의 비공식 브리핑에서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 고위 관리는 “일본이 우리만큼 준비되지 못해 국무회의 의결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대통령 재가 등 국내 절차를 밟기 위해 일본보다 먼저 처리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실 관계자는 “즉석안건도 보통 하루나 이틀 전에 온라인 국정관리시스템에 올린다”고 밝혔다. 정부가 처음부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비공개로 처리하려 했던 것이다.

■ 꼼수 애초 ‘군사정보보호협정’이었던 이름이 ‘정보보호협정’으로 바뀐 것도 이 협정의 군사적 성격을 감추려는 꼼수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외교·안보 정보를 서로 교환하자는 것이어서 ‘군사’라는 표현을 빼도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일본과의 군사협정이 필요하면 공개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일인데, 이를 정부 집권자들의 전유물로 여기고 비밀리에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며 “과거 미국 쇠고기 논란이나 천안함 사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절차적 민주주의 무시가 이번에도 반복됐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외국 순방 중에 서둘러 국무회의 의결을 한 점도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김규원 하어영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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