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라고 밝히는 순간 군은 지옥이었다
고백 직후 온 부대에 알려지고 온갖 조사 받아
스스로 입증하라며 성행위 사진까지 제출 요구
해병 2사단 총기사고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병영 내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병영 내 구타ㆍ가혹행위에 관련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장병들의 인권신장에 관한 많은 논의가 오가지만 언제나 주목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이들이 있다. 군생활 내내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야만 하는 동성애자 병사들이다. 군 형법마저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명문화하고 있고 극심한 편견 때문에 이들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편견과 혐오의 눈초리로 인해 숨소리 내기조차 힘든 그들의 인권실태를 들여다봤다.
에이즈 검사 받고 성관계 횟수까지 꼬치꼬치
2005년 6월 육군에 입대한 동성애자 A씨는 남들처럼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싶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애초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군 복무를 피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남성중심주의 군 문화 안에서 A씨의 성 정체성이 침해되는 일이 자주 발생했고, 고민 끝에 A씨는 간부와의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을 요청하면서 A씨는 전역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군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상담 목적이었다. 하지만 상담이 끝난 후 A씨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참혹한 인권유린을 경험하게 된다.
상담과정에서 A씨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상담간부에게 고백했다. 상담이 끝나도 이러한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상담 후 A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소속부대 전체에 퍼졌고 관련 문건마저 관리소홀로 유출되면서 A씨는 아웃팅(Outing, 당사자가 원치 않는 성 정체성 공개)을 당하게 된다. 아웃팅 이후 A씨는 이곳저곳을 불려 다니며 온갖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간부와 동료 병사들이 내뱉는 성폭행에 가까운 폭언은 그를 성적 모욕감과 수치심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또한 그는 에이즈 감염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했고 성관계 횟수까지 질문 받았다.
A씨에 대한 인권유린은 그가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라는 군의 요구에서 정점에 이른다. A씨의 소속부대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전역을 시켜주겠다며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소속부대에서 요구한 증거는 다름 아닌 성행위 장면이 담긴 사진이었다. 심각한 인권유린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A씨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휴가를 나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으며 사진을 찍었고 이를 부대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또 부대 내에 퍼져버리는 바람에 A씨는 더욱 심한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이때 A씨는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A씨는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군을 나왔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회복하기 힘든 수준까지 황폐해진 상태였다. 당시 A씨를 상담했던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대표에 따르면 A씨는 전역 후에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고 한다.
허울뿐인 비밀유지 약속,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적 시각, 동성애자는 에이즈 보균자라는 편견, 동성애를 성행위와 연관짓는 왜곡된 인식 등 A씨는 병영 내에서 동성애자가 당할 수 있는 인권유린을 한꺼번에 경험했다. 당시 상황은 국방의 의무를 정상적으로 이행하려 했던 정상인을 심각한 정신질환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정 대표는 A씨의 사례를 “군에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어렵게 성 정체성을 털어 놓는 병사들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성애자들은 ‘아웃팅(Outing)’을 두려워한다. 아웃팅은 자신이 원치 않았지만 타인을 통해 성 정체성이 공개되는 상황을 말한다.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성애자들이 아웃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성애만이 ‘정상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정욜 동인련 대표는 이에 대해 “이성애 중심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동성애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가슴 졸이며 살아간다.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온 사회적 관계 등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군에서 동성애자들이 느끼는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은 사회에 비해 훨씬 크다. 가장 마초적인 집단으로 평가받는 군에서 동성애자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차별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이 공개된 후 전에 없던 폭언에 시달렸고 일부는 동료 병사들의 성폭행을 경험했다고 한다.
▲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92조 합헌 결정에 항의하는 인권단체
이들이 경험한 폭언은 ‘더럽다’, ‘정신병자냐’, ‘애들 건드리지 마라’ 등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것들이 대부분으로 당사자에게는 성적 수치심을 넘어 자해의 충동까지 일으키는 수준이라고 한다. 2007년에는 선임병과 간부에게 40여 차례나 성희롱ㆍ성추행을 당한 동성애자 병사가 정신적 스트레스로 네 차례 자해를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피해병사는 선임병으로부터 ‘나랑 잘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식의 성희롱을 수십 차례 당했고 한 소대장은 그를 침대 위에 눕힌 뒤 목을 깨물거나 침을 바르는 성폭행을 저질렀다가 적발됐다.
잠재적인 성범죄자로 취급하며 그림자처럼 감시
일부의 편견과 달리 동성애자 대부분은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이 군 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친다. 예비역 동성애자들은 한목소리로 “이성애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든 군 생활을 하긴 하지만 군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말한다. 외려 앞서 소개한 A씨의 사례처럼 스스로 군 복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의지 때문에 상담을 신청했다가, 혹은 병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지에 성 정체성을 밝혔다가 아웃팅을 당하는 것이 군 복무 의지를 꺾는 요인이라고 한다. 한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이 밝혀진 상태에서 군 복무를 계속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에 가깝다”고 밝혔다. 정체성이 드러난 후 벌어지는 인권유린 사태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성애자들이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들이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동성애자는 이러한 상황을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군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했다.
“군대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 성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애로사항을 조사하고 고충을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데 군에서는 항상 비밀을 보장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밀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휘관들은 아웃팅이 당사자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모른다. 한 병사가 동성애자라는 게 밝혀지면 지휘관들은 일단 그를 격리시키고 에이즈 검사를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러면 자연히 부내 내에 소문이 퍼지는데 그 후 발생하는 인권유린에 대한 보호 장치는 전혀 없다. 수시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위협받는 폭언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또 “기본적으로 군에는 성 정체성을 밝힌 동성애자들에 대해 ‘격리하지 않으면 다른 병사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며 “동성애자를 잠재적인 성범죄자로 보는 인식이 차별을 만드는 주범이다”고 밝혔다.
군에서 동성애자인 것이 밝혀져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B씨는 당시의 경험담을 설명하며 자신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봤던 군의관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병원에 들어갈 때부터 군의관은 의무병들에게 ”호모XX 왔으니까 잘 관리해라“며 수치심을 줬다.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드는 간호장교가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나를 독방에서만 자도록 한 것이 가장 기분 나빴다. 병원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 전 이틀 정도 머무는 독방이 있는데 나는 그 기간이 끝난 후에도 항상 거기서 잠을 자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동성애자고 밤마다 나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다른 병사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독방을 쓰라는 것이다. 나는 군의관이 생각하는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군에서 동성애자로 밝혀진 병사들을 격리하고 감시하는 이유는 B씨의 경험담 속에 나오는 군의관과 같은 편견 때문이다. 동성애자 병사가 다른 병사들에게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 이러한 인식은 동성애자를 잠재적 성범죄자, 즉 성폭력의 가해자로 보는 왜곡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는 국방부가 내 놓은 지침들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003년 7월 선임병들의 성폭력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김일병 사건 이후 국방부는 ‘성폭력 방지를 위한 종합 대책안’을 마련했는데, 내용 중에는 ‘장병들의 인성검사를 강화하여, 성적 이상 성향자나 이상 성격 소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성적 이상 성향자’는 동성애자를 뜻하는 말로 동성애자를 정신질환자로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성폭력의 가해자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의 전제와는 다르게 군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성범죄는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가 가해자이며 성욕보다는 권력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대부분이다.
▲ 군에 입대한 남자친구를 만나러가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게이 영화 <친구사이?>
2003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군교도소에 수감된 성폭력 가해자 8명에 대한 면담과정에서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힌 병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행위의 목격자들 중 5.4%만이 이들을 동성애자로 추측할 뿐이었다. 외려 가해자들은 “동성애자도 아닌데 (교도소에)들어와서 억울하다”며 단호하게 동성애자가 아님을 드러냈다. 심지어 동성애자임을 인정하면 용서를 해준다고 해도 동성애자 취급은 받고 싶지 않다며 강한 동성애혐오증(homophobia)을 나타내기도 했다. 피해자들도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냐는 질문에는 동성애자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 해 아예 응답하지 않았다.
군형법 92도 ‘계간’ 조항, 헌재조차 합헌으로 결정
정욜 동인련 대표는 동성애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시각에 대해 “동성애자들은 성소수자로서 차별받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권력관계를 토대로 이성애자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실제로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들은 대부분 이성애자들이 저지르는데 동성애자들만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인식은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동성애를 무조건 성행위와 연관짓는 잘못된 인식이 동성애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편견의 시작”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군형법 92조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정욜 동인련 대표는 군형법 92조에 명시된 ‘계간(鷄姦)’ 조항을 동성애자들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이라고 설명했다. 계간은 남성 간의 성행위를 닭에 비유한 단어로 군형법 92조에 따라 ‘계간 및 기타추행’을 저지른 군인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군형법 92조에 대해 동성애자의 평등권,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표명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당시 군형법 92조는 2008년 8월 육군 22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심의 중인 상태였다.
하지만 헌재는 2011년 3월 31일 군형법 92조를 재판관 5대(합헌) 3대(위헌) 1(한정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고 이는 성소수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헌재의 판결을 “동성애자는 헌법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공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동성애자들이 형법 92조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계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차별성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한 예비역 동성애자의 말.
“계간 조항은 동성 간의 성행위를 닭들이 하는 짓으로 비하한 것도 모자라 비정상적인 행위로 규정해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있다. 사실 계간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데, 동성 간의 성행위를 범죄화하고 있는 부분이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성애자의 성행위를 군형법으로 처벌하는 조항은 없는데 동성애자만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이성애자 성행위는 형법 적용 대신 행정처분에 그쳐
군형법에는 계간조항과 달리 이성애자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이성애자 간의 성행위는 형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행정처분에 그친다. 2010년 레바논에 파병 중이던 동명부대에서는 장교끼리 부대 내에서 성관계를 가졌다가 징계를 받은 사례가 있다. 동명부대 소속 A대위와 B대위는 사무실, 부내 내 성당, VIP숙소, 여군 화장실 등에서 과도한 신체접촉을 해 징계를 받았지만 징역이 아니라 몇 달간의 정직과 감봉에 그쳤다. 만약 이들이 동성애자였다면 징계위원회가 아니라 군사법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아야 한다.
▲ 동성애자란 이유로 미 육군에서 강제전역당한 한국계 미국인 다니엘 최 중위.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였지만 단지 공개석상에서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다는 이유만으로 군에서 쫓겨났다. 당시 뉴욕주 방위군은 최 중위에게 “뉴욕주 방위군의 기강과 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전역을 통보했다.
일각에서는 계간조항의 폐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특히 동성애를 교리로 금지하는 기독교계에서 강하게 반발하는데, 이들이 헌재 앞에서 시위를 할 때 들고 있던 피켓에는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군대 간 내 아들 동성애자 되고 에이즈 걸려 돌아오나’, ‘동성애 허용하면 내 아들 군대 절대 안 보낸다’, ‘동성애 허용하면 우리 국군 무너지고 김정일이 좋아한다’
이들의 우려는 대체로 동성애는 전염되고, 에이즈 감염의 주범이고, 군 기강이 무너진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단체에서 주장하는 계간조항 폐지가 ‘동성애 허용’을 노리는 의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인권단체에서는 이들의 우려가 대부분 편견에서 나온 왜곡된 인식일 뿐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먼저 ‘동성애 허용’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욜 동인련 대표의 말이다.
“동성애는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일 뿐 누가 허용하고 말고 할 게 아니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동성애를 동성 간의 성행위로만 인식하고 동성애자들이 부대 안에서 자유롭게 성행위를 하기 위해 계간조항을 폐지하려 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동성애 허용’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이건 분명한 편견이다. 우리는 그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를 삭제해주길 원할 뿐이다. 또한 강제적 성관계를 동성애에 한정시키지 않고 강제적으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행위로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은 동성애가 전염된다는 논리에 대해 “만약 개인의 성적 취향이 전염되는 성질을 가졌다면 이성애자가 대부분인 군대에서는 동성애자가 외려 이성애자가 돼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계간조항의 불합리성에 대해 “휴가 중 부대 밖에서 이뤄지는 행위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고 민간인과 합의 하에 관계를 가진 것이 적발돼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휴가 중인 현역 군인 두 명이 합의 하에 성행위를 했다가 부대에 사실이 알려져 복귀 후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2008년 계간조항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던 이경환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설령 부대시설 내에서 동성 간 성행위를 하다 적발돼도 징계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데 부대 밖에서 합의 하에 가진 관계까지 형사 처벌하는 건 과잉이다”고 지적했다.
물론 국방부 차원에서 동성애자 인권에 대해 모른척하고 있지는 않다. 2003년 선임병의 상습적 성추행 때문에 자살한 김일병 사건 이후 2006년 성관계 장면 사진을 요구당한 A씨의 사건까지 터지면서 국방부는 다방면으로 동성애자 관리에 대한 지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방부의 지침은 여전히 땜질식이고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씨 사건 직후 2006년 4월 1일 국방부는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지침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성소수자들에게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장병권 동인련 상임활동가는 2007년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관리지침의 문제점으로 ‘동성애자 병영 내 유입, 확산 차단 대책 미비’조항을 들었다.
장 씨는 칼럼에서 “군은 내부에 동성애자가 존재하면 여타의 군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동성애는 ‘유입, 확산’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성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며, 성 정체성을 형성하고 인지하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관리지침에는 ‘인성검사를 통해 동성애 성향 잠재자로 밝혀질 경우 집중관리’, ‘이성애자로 전환 희망 시 적극 지원’ 등의 내용도 있는데 이 조항들은 군이 가진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여과없이 드러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제가 제기되자 국방부는 훈령 제1196호 ‘부대관리 훈령’에 동성애자 병사에 대한 조항을 추가했다. 하지만 훈령에 포함된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에도 비판이 뒤따랐다. 제236조 제2항에는 ‘동성애자 병사의 병영 내에서의 모든 성적 행위는 금지된다.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 또는 징계 처분한다’는 부분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불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정욜 동인련 대표는 “형법상 강간죄나 추행죄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데 굳이 조항을 삽입했다”며 “이를 통해 지휘관들은 동성애자 병사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강하게 가지게 되고 감시가 강화돼 인권침해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단체에서는 군 지휘부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강하고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관련된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할 목적으로 2008년 군 지휘관을 상대로 지침서를 만들어 군에 배포하려 했다. 지침서 작성에 참가했던 한 인권 활동가는 “국방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표현은 쓰지 않았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도 삭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에서는 이 지침서를 수용하길 거부했고 일일이 우편으로 부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군 내부의 문제에 외부 단체의 개입을 극도로 꺼리는 군의 특성이 빚어낸 결과였다.
▲ 2차 대전에 참가한 버팔로 부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파이크 리 감독의 <세인트 안나의 기적>.
미군은 2차 대전 당시 흑인을 제대로 된 전투원으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정욜 동인련 대표는 문제의 해법을 “군이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A씨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우리 같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 대표는 또 “인권단체는 사례별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군이 동성애자 문제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의 주장은 지난 7월 해병 2사단 총기사고가 발생한 후 인권단체들이 군에 요구한 사항들과 비슷하다. 총기사고 이후 민간 인권단체에서는 군에 독일식 국방 옴부즈만 제도 등을 도입하기를 요구했지만 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민간단체와 함께 풀자는 취지였지만 폐쇄적인 군의 태도로 인해 물거품이 됐고 군은 실효성 없는 대책들만 내놓으며 비난을 받아야 했다. 동성애자 문제에서도 군은 외부의 손길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입대 전 정신적으로 건강했던 동성애자들이 정신질환을 안고 전역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지금도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불안 속에 살고 있는 동성애자 군인들을 위해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군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에서 ‘게으르고 멍청해서 총을 쥐어주는 것 자체가 낭비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차별 당했던 흑인들이 지금은 훌륭한 전투원으로 전장을 누비고 있다. 과거 성별을 이유로 입대조차 거부당했던 여성들도 남성들과 다른 방면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며 군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동성애자를 배제하기만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들을 받아들이고 적극 활용한다면 강군으로 가는 길이 조금은 수월해 질지도 모른다. 동성애자를 승리를 가져다 줄 전투원으로 만들지, 정신질환자로 만들어 내보낼지는 군 지휘부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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