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3각관계> 2. 시진핑의 동북지방 현지지도- 동북진흥계획

2015.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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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북방 3각관계
 1. 북 중 러 3각관계의 새로운 움직임
 2. 시진핑의 동북지방 현지지도-동북진흥 프로젝트

 3. 김정은의 선택-미사일 준비와 전승절의 국제정치

 4. 푸틴의 블라디보스톡 방문과 동러시아 경제포럼


 시진핑의 지린성, 랴오닝성 등 동북지방 현지지도 특히 옌볜 조선족자치주와 지린(길림)성 성도 창춘 방문이 특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2007년 당시 후진타오 주석의 지린성 시찰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그 맥락에서 지린성의 경우 8년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동북지방  방문은 북한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었음에도 대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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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7일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만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과 당시 창춘에서의 북·중 정상회담 모습
 

2007년 후진타오 총서기 지린성 시찰


 2007년 1월 18일, 후진타오 총서기는 지린성을 시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지시를 했다.
  “지린성의 노후화된 공업 기지를 진흥하는 데 있어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지역의 개혁 개방과 과학기술 개발 방면이다. 이를 통해 전 국가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2007년 8월 지린성은 ‘창지투(창춘 지린 투먼) 선도구’계획을 중앙정부에 제출했고, 원자바오 총리는 이를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통일적 연구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리하여 이를 바탕으로 중국 국무원이 2009년 8월 창지투 개발 개방 선도구 합작개발 계획강요를 비준하면서  지린성이 마련한 개발 계획은 국가 전략으로 본격화된다. 그런 점에서 후진타오 주석의 지린성 방문은 창지투 개발계획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개혁 개방의 관점에 대한 후진타오 주석의 현지지도에 따라서 지린성은 창춘(長春)-지린(吉林)-두만강(圖們江)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창지투 개발 개방 선도구’ 계획을 마련했으며, 동시에 이 시기 랴오닝성의 경우는 랴오닝 연해 지구 경제벨트 개발 계획을 마련했다. 이것이 여러차례의 토론을 거쳐 국가개발 전략으로 채택됨으로서 2003년 제시된 동북진흥계획이 본격화되는 길을 열게된 것이다. 
  중국의  지린, 랴오닝 두성은 북한과 두만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접한 지역이다. 따라서 두 성이 2009년 본격 입안한 이  개발계획은 한반도 동서 북단의 각각 한쪽 끝인 압록강의 신의주와 두만강의 나진  선봉등 접경지역에 경협벨트를 지향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지린성의 ‘창지투 합작개발 계획 강요’는 훈춘을 개방의 창구로 하며 옌지(연길)-롱징(용정)-투먼(도문) 일대는 개방의 전진기지로 삼고, 창춘과 지린시를 배후지로 삼아 변경지역과 내륙이 연동되는 개발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동부 연안지대의 대외개방이 내륙의 발전을 이끌어냈듯이 창지투 대외개방 선도구를 지렛대로 지린성 전체의 발전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랴오닝성과 달리 지린성은 내륙지역이기에 바다로의 대외통로 건설(차항 출해)은 핵심 과제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당연히 북한의 나진 선봉 자유무역지대의 공동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현 총리인 리커창 당시 랴오닝성위원회 당서기가 직접 추진한 랴오닝 연해경제벨트는 동북지역 최대 항구도시인 다롄을 중심으로 신의주와 마주보는 단둥을 비롯해 다롄 잉커우 진저우  후루다오 등 5개 도시를 잇는 경제벨트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5점 1선’ 전략으로 불리었다. 랴오닝성은 이 연해벨트 개발계획을 일핵 (다롄의 핵심적 지위 격상)·일축(다롄, 잉커우, 판진의 메인라인 강화)·양익 (발해익:판진-진저우-후루다오 발해연안, 황해익:다롄-단둥 황해 연안 및 주요도시지역)의 강화에 두고 발전시켰다.
  이로써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 경제협력은 이제 중국의 동북진흥계획과 구체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지린성의 경우는 창춘-지린-투먼으로 이어지는 벨트를 통해 북한의 나진선봉, 러시아 극동지역과의 연계와 협력을 통한 다자간 협력으로, 랴오닝성의 경우는 단둥을 중심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북한의 신의주와 황금평 위화도에 경제특구 등을 조성하는 북중간 공동개발 공동관리의 지역협력으로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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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0월 4일 북한을 방문한 원자바오 총리를 환영하는 평양시민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
 
  남북 , 중국 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지린 랴오닝성 등 동북진흥계획을 구체화한 바로 이 시기에  대북 정책 또한 근본적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은 그해 8월 중국 국무원 창지투 계획요강을 승인한 것을 바탕으로 이 창지투 개발계획과 연계해 북한과의 국경지역에서의 새로운 경제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상징적인 합의가 신압록강 대교 건설이었다.  북중 관광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며 전기를 맞이한 것도 이때 부터다. 원자바오 총리는 북한 방문에서 ‘중국 관광단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행 실시 방안에 관한 양해 각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2009년 말 중국은 북한을 ‘관광 목적지 국가’로 지정했다.
이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은 북중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 때 원자바오 총리는 관광 분야, 신압록강 대교 건설 프로젝트 만이 아니라 무상 경제원조, 기술 및 교육 분야의 지원 협정을 체결했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한 후 북중관계는 심각한 국면에 있었다. 그러나 2009년 7월 후진타오 주석이 참석한 중앙외사영도소조회의에서 중국의 대북정책은 ‘북핵 문제를 북한문제와 분리하여 대응하는’ 이른바 대북 포용정책으로 선회했다.  제재나 강경 고압정책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북한에게 안전한 국제환경과 개방적인 국제경제정책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북한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더 큰 도발을 가져올 수 있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희옥 성대 교수 등 중국전문가들은 당시 중국 지도부가 북핵문제에 대해 이미 단순한 핵 문제가 아니라 북한문제로 비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북핵문제는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장기적인 국제고립의 산물이자 북한 경제파탄의 결과이고 북한정권 불안정성의 표현이라고 인식했다고 전했다. 북한 문제의 해결이라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2008년 8월 뇌졸증으로 쓰러진 뒤 회복한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의 방침에 적극 호응하면서 경제협력에 적극 나섰는데 이는 이때부터 진행된 후계체제의 구축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원자바오 총리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공항 영접을 나왔으며, 방문을 하루 앞둔 2009년 10월3일 북한은 <로동신문> 사설에서 원자바오의 방문을  “조-중 친선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방북 첫날인 10월 4일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끊임없이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북한) 동지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호응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의 2인자인 원 총리의 방북 일정을 끝까지 동행한 것은 중국 국가 주석이 방북했을 때도 보기 어려운 전례 없는 파격적인 예우였다. 그리고 이 18년만에 이뤄진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방문은 그 뒤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1년여 사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번에 걸친 중국 방문으로 이어졌다. 특히 2010년 8월 창춘에서의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은 나진선봉자유무역지대, 황금평 특구에서 북중 협력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 합의의 결실이 조중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 위화도 경제지대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에 관한 협정이었다. 이로써 북중은 정부주도의 공동개발 공동관리, 기업중심의 시장중시, 공동번영의 3원칙에 입각해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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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두만강지역 협력은 1991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주도하는 두만강개발계획(TRADP)의 다자간 지역협력 개발 구상으로 추진됐다. TRADP(두만강지역 개발계획)은 2005년 개발범위가 중국, 북한, 러시아 심에서 한국의 강원도와 부산 지역, 몽골까지 확대되며 GTI(광역 두만 개발계획)로 전환된다. 초기 회원국은 한국,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5개국이었다.  그러나 2009년 11월 북한은 GTI를 전격탈퇴하였다. 이는  개발사업 실행력과 재원이 부족한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보다 중국의 개발계획에 동참하는 것이 경제적 실익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9년 중국이 창지투 개발개방 선도구 개발계획 요강을 내놓으면서 중국 주도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그 이전까지 독자적인 특구 계획(2002년 신의주 특구, 나진 자유무역경제지대 설치 등)을 추진하던 북한은 중국 접경지역과의 협력을 통한 발전 전략으로 선회했다. 북한은 이를 배경으로 2010년 1월 대풍국제투자그룹, 국가개발은행을  차례로  설립했으며, 같은 해 7월 ‘합영투자 지도국’을  ‘합영투자위원회’로 개편했고, 12월에는 ‘국가자원개발지도국’을 ‘국가자원 개발성’으로 승격시켰다. 또 2011년 1월15일엔 ‘국가 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을 통해 기초시설 건설, 농업, 전력, 석탄, 석유, 금속 등 기초공업 및 지역개발 전략목표를 확정했다. 이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국가경제개발 총국도 설립했다. 2013년 5월 29일에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11월에 경제특구와 13개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설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처들은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진흥계획에 따른 북중간의 협력을 성장의 동력이자 모델로 삼아 북한 전체의 경제개발 전략으로 확대시키는 과정이었다.
 
  20년만의 옌볜 조선족 자치주 방문
 
 중국 관영매체들에 따르면 7월16일 시 주석의 옌볜조선족자치주 방문은 취임이래 처음일뿐만 아니라. 중국 지도자가 이곳을 찾은 것은 장쩌민 주석이 1995년 방문한 이래 20년 만이다. 16일 전용기편으로 옌지시 공항에 내린 시 주석은 먼저 옌볜박물관을 찾아 조선족의 전통풍습과 옌볜주 발전상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창지투 개방 선도구를 설치한 것은 중앙(당과 정부)의 중요한 조치”라며 “국경지역을 개방해 동북아 국제협력을 확대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동북지역 등의 옛 공업기지를 진흥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어 허룽시로 이동해 도서관 등 주민편의시설을 둘러보고 가정집을 방문해 조선족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시 주석은 노인 가무단이 노래 ‘붉은 태양이 변경을 비추네(紅太陽照邊疆)’에 맞춰 춤추는 장면을 보며 “수십 년 전 촌지부 서기를 할 때 매일 이 노래를 들었다. 오늘 보니 해란강이 바로 노래에 나오는 그곳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옌볜주 방문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이경호 조선족자치주 주장의 방문 요청에 따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 주장이 옌볜 방문을 요청했고, 시 주석은 “지린성에 가게 되면 꼭 옌볜을 찾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며, 시 주석은 당시 이 주장에게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 명칭)은 겨울에도 여행할 수 있느냐, 케이블카는 설치돼 있느냐”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옌볜자치주 방문 뒤 시 주석은 18일까지 지린성 성도 창춘을 방문했다. 그리고 27일 랴오닝성의 선양을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언론들은 이상할 정도로 선양 방문에 대해서는 공식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일정도 알려진 게 없다. 시 주석의 선양 방문은 선양 기업인과 현지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에 근거한 한국 언론의 보도로 그 내용이 알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진핑 주석의 선양 방문은 비공개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방문이  2013년 8월 28∼31일에 이어 1년 11개월만에 이뤄진 것이고.당시 방문에서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 호를 승선하고 군부대를 시찰했기 때문에 이번 방문에서도 군 관련해 예민한 부분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선양 현지 소식통들은 “시 주석이 27일 선양에서 동북지역의 옛 공업기지 진흥을 강조하고, 랴오닝성이 추진 중인 대외개방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라고 주문했다”고 28일 확인했다. 아울러 “일대일로 관련 잉커우(營口)자유무역시범구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부정부패 척결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 전했다.소식통들은 “시 주석이 27일에 이어 28일도 선양에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며  “시 주석의 구체적인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2년 전 첫 선양 방문과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2년 전 지시사항 이행을 점검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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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총서기가 7월 17일 지린성 창춘 창춘궤도객차주식유한회사에서 직원들과 얘기하고 있다 


 시진핑 동북지방 현지지도에 대한 평가
   
 <신화통신>은 7월17일 “이 지역은 북중러 3국의 경계지역으로 동북진흥, 두만강 개발 등 국가전략들이 하나하나 추진되고 있는 곳”이라며 시 주석의 지린성 시찰이 동북 개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또 <신화통신> 영문판은 18일 시 주석이 창지투 개발사업을 언급하며 “국경지역 개방과 동북아 협력을 위해 대단한 중요성이 있다. 개방작업의 모델로 만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19일  지린성 시찰 의미를 ‘변화 속에 새로움과 전진을 이루고 돌파구를 마련한다(變中求新 求進 突破)’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북 3성 지역은 지난해 이후 경제 발전속도가 둔화세를 보여왔다.  동북3성의 성장률은 각각 5.8%. 6.5%, 5.6%로 중국 전역에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시진핑 주석은 이에 올해 양회(중국 최대 정치행사)에서 지린성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동북공업기지의 진흥 발전을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중국경제신문> 6월1일자에 따르면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이하 ‘발개위’)가 5월 25일  <동북 진흥 중대 프로젝트와 성(省)간 협력 프로젝트 전반기 사업 특별 보조금 관리 잠정조치>를 발표했으며, 이는 2014년에 이어 2015년 1분기 성(省) 별 GDP 증가율 순위에서도 동북3성이 하위 5위로 기록되는 등 동북지역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으로 전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이미 2014년 8월 <동북진흥 지원을 위한 중요 정책에 관한 의견>을 발표해 동북지역 중대 프로젝트와 성(省) 간 협력 프로젝트 전기 사업 지원을 위해 특별 중앙 예산 편성을 제시했다.
 중국 언론에 보도된 시주석의 동북지방 현지지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보면 국가행정학원 왕위카이 교수는 “시진핑 주석이 연변 지역을 방문한 것은 앞으로 현지 발전 전략 및 정책을 어떻게 세워야할지 현지의 담당자들과 함께 상의하기 위해서”라면서 “조사 연구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방안을 찾아야만 소수민족 지역 발전을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보면 시 주석이 동북 3성의 전체적 형세를 파악하는 것을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번 시찰은 동북지역 경제의 향후 발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행정학원 경제학원 장잔빈 부주임 역시 “현재 동북 지역은 경제 구조 단일화, 서비스업 발전 낙후 등의 문제가 있다”며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산업구조 조정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데, 시진핑 주석의 이번 시찰은 앞으로 새로운 발전 과정에서 동북 경제가 건강하게 발전해 중국의 전체적인 발전에 맞춰가길 바라는 바램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당 정치국 회의와 동북지방 현지지도
 
 또한 이번 동북지방 현지지도는 13차 5개년 계획(2016~20년)의 수립과도 무관하지 않다. 시 주석의 동북 지역 방문 일정을 보면 16∼18일 지린(吉林)성 일대를 둘러보고 27일 랴오닝성의 선양을 방문한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 20일엔 베이징에서 공산당 정치국 회의가 열렸으며, 이 회의에서 제18기 중앙위 제5차 전체회의(5중전회)를 오는 10월 베이징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10월의 5중전회에서는 국민경제 중기목표인 제13차 5개년계획의 기본방침을 심의 책정할 예정이다. 또 5중 전회에선 2기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출범하는 2017년 제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정치국원, 군 수뇌부 등 중요 인사에 관해서도 의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7월21일 당 기관지 <런민일보> 는 이 정치국 회의에서는 경제 하방압력이 증가하는 가운데 경제발전이 많은 모순과 심각한 과제에 직면했다고 분석하고, 발전의 질을 중시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지향할 방침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차기 5개년 계획은 경기둔화 경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제성장에 관한 목표 등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 제13차 5개년 계획은 내년 봄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정식 승인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시 주석은 13차 5개년 계획을 확정할 5중전회를 논의한 당 정치국 회의를 전후로 해서 지린성과 랴오닝성을 방문한 셈이며, 그런 점에서 성장률 저하, 발전의 질을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성장 등 13차 5개년 계획에 담아야 할 문제등과 관련해 동북3성의 현지지도가 진행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런민일보>가 전한 정치국 회의에서의 강조된 내용 가운데는 전방위적인 대외개방을 심화하고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당히 대처하여 상호윈윈과 공동발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시진핑 주석의 이번 동북지방 현지지도는 동북3성 경제활성화와 북·중 경협을 확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5세대의 시진핑 중국 지도부는 2013년 출범하면서 후진타오 지도부가 추진한 동북진흥 전략의 성과를 하나의 모델로 중국 전역으로 확대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동북진흥 계획 10년을 맞이해 2013년 3월에 발표한 <전국 노후공업기지 조정 개조 계획(全國 老工業基地 調整 改造規劃 2013~2022년)>에는 이 동북지역의 노후공업기지 진흥사업을 하나의 모델로 삼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방침 아래 2017년까지의 목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처들이 제시됐다. 연변대 동북아연구원의 윤승현 교수는 이 전국 노공업기지 조정개조 계획에 대해 시진핑 지도부가 과거에 비해 더 효율적인 산업배치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동북지역 발전 전략을 추진할 것이며, 북-중 접경지역 개발도 한 단계 진전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시중쉰.jpg
 2013년 10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친인 시중쉰 전 부총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발간된 사진집에서의 두 부자


 주변국 외교 중시와 북한
 
  시진핑 주석은 취임 첫해인 2013년 10월 새로운 ‘주변국 외교 강화방침’을 제시한 바 있다. 이웃국가와의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킨다는 것이다.  2013년 10월에 열린 ‘주변외사공작(업무) 좌담회’에서 시 주석은 주변 인접국과의 외교관계 강화를 역설하며 친(親), 성(誠), 혜(惠), 용(容)(친밀, 성실, 혜택, 포용)의 원칙을 제시했다.   “상대국을 먼저 이롭게 하여 그것이 자국의 발전에 혜택이 미치도록 한다는 ‘혜인달기(惠人達己)’"야 말로 신형 국제관계의 정수(精髓)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진핑 지도부가 연 첫 번째 중요한 외사공작회의였다. 이 회의에서는 주변외교의 전략목표와 기본방침 및 전체적인 배치를 확정하여 주변외교의 ‘정층설계(頂層設計:Top-level design)’를 더욱 명확히 했다고 <런민일보>는 당시 전했다. 이 방침 뒤 중국이 보여준 정상외교는 상호이익을 바탕으로 이웃 국가를 말 그대로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11월 열린 중앙 외사공작회의에서도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정세 하에서 외교전략 배치를 부단히 확장하고 심화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우선 주변외교를 언급하고, 뒤를 이어 대국외교, 개도국 외교와 다자간 외교를 언급했다.
 그 주변국 외교의 블랙홀이 북한과 베트남이다. 물론 일본도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변국이다. 이 세나라는 주변국 가운데 결코 비중이 작지 않은 나라들이다. 베트남 일본은 난샤군도와 센카쿠열도(댜오위타오) 문제가 얽혀 있다. 그에 비한다면 북한은 미국 남한등과 얽혀 있기 때문에 복잡하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은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래 매우 심각하게 불편한 관계를 보여왔다. 주변국 강화 방침 외교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사실 시진핑 주석이 2014년 6월 남한을 먼저 방문한 것은 또 다른 주변국 남한을 더 중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시 주석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애초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그의 부친의 경험에 비춰보거나 지난 2010년 10월 당시 부주석이었을 당시 시진핑이 했던 6.25 전쟁에 대한 언급은 오히려 미국, 남한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은 1905년 가을 펑더화이(彭德懷)가 중국 인민군 지원군 사령관으로 파견되자 서북국 서기와 서북 군정위원회 주석을 물려받았으며, 40대 중반에 중앙 선전부장과 부총리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앞서의 소설가 김훈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중공군 30만 명은 눈이 내리듯이 조용히 북한의 산하로 이동했다. 펑더화이 사령부는 선양에 병참기지를 건설하고 선양~단둥~신의주의 보급축선으로 군수물자를 운송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당시 시중쉰은 당 중앙선전부장이었다.  이를 모를리 없는 시 부주석은 2010년 10월 인민군 참전 60주년 기념식에서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 한국전쟁의 중국 표현)는 침략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밝혔다. 중국 근현대사 전문가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는 김일성 주석이  “1988년 여름, 북한을 방문한 시중쉰에게 ’중국의 성취는 우리의 성취다. 후방이 강해야 한다. 중국은 우리의 영원한 후방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하면서 “시진핑 부자는 북한과 유난히 가까웠다”고 말했다.
 

강태호 선임 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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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젊은 여자들>, 2010 - 에릭 라포르그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평양 여성들이 중국에서 유입된 패션을 따라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평양 거리에서는 단조로운 색상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옷차림 이외에도, 여성들은 ...

  • 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3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3

    강태호 | 2016. 07. 29

     <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발문: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를 시작하며      1. 푸틴의 동진과 시진핑의 서진  중-러의 전면적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와 유라시아 통합 ...

  • 환동해 4개국-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 해외 현지 취재환동해 4개국-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 해외 현지 취재

    강태호 | 2014. 07. 21

    변방의 닫혀 있는 바다 동해   동해는 변방의 바다였다. 남북의 동해안 지역, 중국의 지린성, 러시아의극동 연해주, 일본의 서쪽 지역이 면해있는 동해는 각국의 주변부의 중첩된 변방으로 존재했다. 일본까지 포함해 대부분이 자국 내 다른 지역...

  • 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4.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4.

    강태호 | 2016. 08. 12

     <기획>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 발문: <푸틴의 동방외교와 극동개발의 ’국제정치’>를 시작하며      1. 푸틴의 동진과 시진핑의 서진  중-러의 전면적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와 유라시아 통합 ...

기획 특집|전망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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