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의심되는 심리부검위원회, “하나마나”

김동규 2012.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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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인권연대, “실효성 있는 자해사망 예방 정책부터 수립하라”

작년 9월 15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된 후 군에서 자해행위로 인해 사망한 병사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 국방부는 지난 5월 31일 전공사상자처리 훈령개정안을 발표해 자살한 병사가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걸었다. 개정안은 순직자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으로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자유로운 의지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로 인해 사망·상이 하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자해행위를 한 병사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게 의학적으로 증명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방부는 심리부검 도입을 검토 중에 있다. 심리부검은 자살한 사람들의 삶을 생전 기록과 지인 면담으로 재구성해 자살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말한다. 미국이 1930년대 최초로 도입한 제도로 핀란드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광범위한 심리부검을 주도해 자살예방정책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로 예산과 전문 인력 부재 때문에 소규모 연구 활동에만 그치고 있다. 군과 관련해 2009년 12월 31일 활동이 종료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부 사례에 심리부검을 수행하긴 했으나 국방부 차원에서 제도화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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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일 국방부는 국방회관에서 ‘군 심리부검 운영 세미나’를 열어 심리부검을 제도화하는 길을 모색했다. 국방부는 그러나 아직 제도 도입이 확정된 게 아니라 필요성과 제한사항을 검토하는 단계에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심리부검제도와 관련해 국방부와 접촉한 바 있는 정재영 병영인권연대 사무처장은 “군 관계자는 심리부검을 위해 위원회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국방부 내에 설치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며 “조사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 조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병영인권연대는 군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유가족으로 구성된 단체로 국방부의 심리부검 제도 도입 방식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단체 회원들은 제도 도입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 때문에 국방부 내에 심리부검위원회를 설치하는 건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와 같은 외부 독립기관에 위원회를 설치해 국방부가 주도가 아닌 다자 간 협력이 가능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디펜스21 >는 병영인권연대 회원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을 자세히 듣기 위해 지난 7월 27일 서울 종로의 한 모임센터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참석한 유가족 회원 4명은 한 목소리로 국방부 내에 심리부검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들은 모두 군에서 아들을 잃은 뒤 군의 부실한 수사를 통해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전역 병사 등을 통해 스스로 찾아 문제를 제기한 경험이 있다. 간담회에 참가한 회원 두 명은 당사자 요청에 따라 가명을 썼다.
 
군 신뢰하지 않는 유가족, 심리부검위원회는 외부 조직으로

디펜스21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 각자 자기소개를 먼저 부탁드린다. 

윤주호 윤창환 이병 아버지 윤주호다. 나이는 쉰셋이고 2008년 2월 14일 육군 항공학교에서 근무하던 아들이 숨진 뒤 병영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진숙(가명) 공진숙이다. 나이는 마흔 아홉이고 큰아들이 공수 특전여단에서 근무 중 사망했다. 현재 작은 아들이 군에 입대한 상황이라 매일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명희(가명) 이명희다. 공진숙 씨와 동갑이고 공군에 복무 중이던 아들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어진 군의 부실한 수사와 은폐를 두 눈으로 목격한 뒤 병영인권연대의 유가족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두혁 오명석 상병 아버지 오두혁이다. 나이는 앞의 두 어머니와 같다. 해군에 입대한 아들이 2009년 7월 10일 간부들의 부실한 부대 관리로 부사관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세상을 떠났다.

디펜스21 현재 병영인권연대 유가족들은 국방부가 추진 중인 심리부검제도 도입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자해행위로 인해 사망한 병사들도 보훈 정책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굳이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진숙(가명) 먼저 신뢰의 문제가 있다. 우리 유가족들은 모두 군의 조사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접 겪으며 알게 된 사람들이다. 우리 단체에서 활동하는 한 가족은 군의 조사를 믿지 못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헌병대 수사결과에서는 구타와 가혹행위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지만 권익위 재조사 결과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증거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증거를 확보해 재판에서 승소한 경우가 많다. 왜 군 수사기관은 외부기관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을 못 밝혀내나? 

이런 식으로 믿음을 배신당한 유가족들이다보니 군 내부에 심리부검위원회를 설치하는 걸 반대할 수밖에 없다. 분명 헌병대 조사처럼 군에 유리한 결과를 내놓기 위한 활동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군의 수사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는 게 각종 재판에서 증명되고 있는 마당에 군이 심리부검까지 주도하겠다고 한다. 차라리 보건복지부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는 게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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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호 씨는 “예방이 철저하면 심리부검은 필요 없을 것이다”며 실효성 있는 자해사망 예방책 마련을 요구했다.

윤주호 나도 헌병대가 밝혀내지 못한 사실들을 전역한 병사들을 상대로 직접 면담하며 알아내고 있는 중이다. 전국을 누비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중인데 쉽지는 않다. 공진숙 씨가 말한 대로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결론을 내는 헌병대 수사도 부정확한 부분이 많은데 심리부검을 어떻게 군에 맡기나.  

오두혁 명석이 경우를 보면 심리부검을 군에 맡기면 안 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명석이와 같이 근무했던 한 수병이 나에게 몰래 편지를 줬다. 편지에는 헌병대 수사의 부실함과 각종 조작 정황이 쓰여 있었다. 간부들 감시도 심하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도 부사관 등 간부가 많이 왔는데 이들은 유족이 병사들과 접촉을 못하도록 감시를 심하게 했다. 심리부검은 주변인들의 면담에 많이 의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병사들을 감시하며 입도 제대로 못 열게 하면서 어떻게 심리부검을 수행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윤주호 씨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역한 병사들을 만났는데 사건에 대해 입 다물기로 각서까지 쓰고 나왔다며 말하기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는 권익위나 인권위도 아니고 의사협회 쪽에 위임하는 게 낫다고 본다. 

윤주호 창환이 동료 병사들을 면담할 때는 항상 헌병이 곁에 대기하고 있었다. 대화가 제대로 안 돼서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하니 규정이라며 거부했다. 그래서 병사들이 아무 이야기도 못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심리부검을 위한 면담이 제대로 될까? 안 하느니만 못 하다고 본다. 그나마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게 독립된 기관에서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국방부 내에 있으면 군사재판처럼 유가족들은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운영될 게 분명하다. 

이명희(가명) 윤주호 씨 말에 덧붙이자면, 지난 5월 13일 열린 ‘군 심리부검 운영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뚜렷이 느꼈다. 유가족들을 위한 게 아니라 군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자살 사고가 발생하면 유가족들은 군이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조사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심리부검위원회가 국방부 내에 설치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방부 설명에 따르면 외부 심리학자 1명에 국방부 소속 조사관 2~3명을 붙여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결국 유가족들은 또 일방적으로 조사만 당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국방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구에 위원회를 설치한 뒤 인권단체와 같은 외부 인원들도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 유가족들은 이미 전국 주요 대학과 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관련 학자들을 지난 수개월간 면담했다. 그분들 중에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하신 분도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관련 활동을 하신분도 있다. 대부분 심리부검의 필요성에 대해 찬성하고 적극적 의지를 보였는데, 역시 군에 그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 조사·분석의 공정성을 염려하는 견해가 많았다. 

나는 아들의 심리부검을 위해 개인적으로 관련 전문가를 알아봤다. 그런데 국방부는 심리부검을 의뢰할 전문가에 대해 딴죽걸기 바빴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 병원 의사는 안 된다’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계속 다른 사람을 구해오라고 압박했다. 결국 위원회도 국방부 입맛에 맞는 관변·어용학자들을 데려다 쓸 것이고, 그들이 자신하는 ‘정확한 분석’은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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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병사의 일기장.
 이 병사는 비전캠프를 다녀왔지만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된 상태로 복귀했다.

유가족이나 인권단체 관계자 반드시 참여해야

디펜스21 그래도 국방부가 아직 국내에 제대로 정착되지도 않은 심리부검을 도입해 병사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노력만큼은 긍정적으로 봐야하는 것 아닌가. 유가족들도 심리부검 운영 세미나에 초청받아 충분한 설명을 들은 걸로 알고 있다.

공진숙(가명) 물론 국방부의 취지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심리부검을 통해 장병들의 자해사망을 예방하는 기초자료를 확보한다는 의도는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만하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유가족들이 배제된 상태에서 제도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미나에 초청받았다고 우리가 여기에 참여할 기회를 얻은 건 아니다. 세미나는 말 그대로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도입하겠다는 통보에 불과했다. 

윤주호 국방부는 심리부검제도와 관련해 유가족 단체들을 불러서 간담회를 열거나 설명회를 개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만나면 첨예하게 대립하고 가끔 싸움까지 벌어지니까 유가족들은 아예 배제하고 상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한 충돌도 더 나은 제도를 위한 의견수렴과정의 일부인데 어떻게 유가족들을 아예 배제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가족이야말로 각종 자해사망자 정책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대립하고 시끄러워진다 해도 일단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명희(가명)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 개정안을 발표할 때도 유가족 단체는 어떠한 의견도 내지 못했다. 죽은 우리 아들이 직접 영향을 받는 중대한 제도 변혁인데 언론보도가 나온 뒤에야 알게 됐다. 유가족 단체는 내 아이의 죽음을 가지고 뭔가를 얻어내려 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청년들이 군에 입대하고 내 아들과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군의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공진숙 씨는 큰아들을 잃고 난 뒤 작은 아들을 또 군에 보냈다. 군 관계자들은 군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가 다시 아들을 군에 보내는 심정이 어떤 건지 알아야 한다.

다른 분들 생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현재 국방부는 심리부검 제도를 모두 국방부 소관으로 돌리려고 한다. 나는 국방부가 주도하려는 심리부검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에 유가족 의견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본다. 또 조사와 분석 과정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위원회가 국방부에 설치되는 것도 차선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유가족이나 인권단체 관계자가 감사 혹은 필수 참관인 형태로 조사·분석 과정에 참여하는 자격이 보장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윤주호 나는 반대다. 아무리 감사 기능을 추가한다고 해도 국방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상 공정한 조사가 불가능할 것이다. 국방부는 우리가 전문지식을 가진 교수를 데려와도 신뢰할 수 없다며 거부한다.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국방부가 선임한 사람은 믿지 않는다. 누차 강조하지만 조사의 신뢰도 때문에 무조건 독립 기관에 심리부검 기능을 둬야 한다.
   
이명희(가명) 또 다른 문제는 병사가 사망하기 직전 어떤 심리상태였는지 밝혀내야 하는 심리부검에서 입대 전 심리상태를 밝혀내려 한다는 점이다. 국방부의 의도는 황모 이병의 죽음에서 드러난다. 2011년 2월 문화방송 <PD수첩>에 방영된 내용이다. 2010년 국군수도통합병원 6층에서 추락한 황 이병의 죽음에 대해 군은 “원래 입대 전부터 정신 병력이 있던 병사라서 자살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심리부검을 통해 황 이병의 사망이 사고가 아닌 자해가 분명하다면 이는 선임병들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심각한 정신 질환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밝혀졌다. 이에 대해 군에서 반박 자료로 내놓은 건 입대 전 심리 상담을 받은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 기록도 학교생활과 관련한 단순한 상담에 불과했고 치료를 받을 수준의 질환도 아니었다. 결국 군은 심리부검을 통해 입대한 뒤 발생한 정신질환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입대 전 상황 등 본인의 귀책사유를 들춰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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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혁 씨는 사망한 아들의 동료 수병이 몰래 건네준 편지를 통해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됐다.

윤주호 애초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청년들은 군이 받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병사들은 모두 입대 전 병무청에서 실시한 인성검사결과(KMPI)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문제가 생겨도 군에 입대 한 뒤 생긴 것이란 말이다.   

이명희(가명) 훈련소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던 애들이 자대 배치 후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설사 입대 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병사라 하더라도 징병 검사를 거쳐 그 사람을 데려간 건 군이고, 결정적인 자살 원인이 구타와 가혹행위라면 이건 군의 책임이다. 

오두혁 병무청 검사는 물론 훈련소에서도 훈련병들을 한 번 더 검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씩이나 걸러낸 병사가 왜 자살을 할까? 

심리부검 도입 이전 실효성 있는 자살예방정책부터 

디펜스21 일단 여기 계신 분들의 의견은 심리부검위원회를 군 내부에 둘 바에는 아예 도입하지 않는 게 낫다는 쪽으로 들린다. 그러나 지난해 군에서 발생한 자해사망 병사는 97명이다. 최근 5년간을 비교했을 때 최고 수치다. 올해도 다수의 자해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해 일단 제도를 빨리 도입한 뒤 개선해나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공진숙(가명) 솔직히 말해서 심리부검도 필요 없다고 본다. 병사가 자살하기 전에 예방하면 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 아들의 죽음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린캠프에서 군종감이 아들이 심각한 상태라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소견서를 소속부대에 냈지만 부대장은 무시했다. 환청을 듣고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고 수차례 심리 상담을 요청했지만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행보관은 “저렇게 죽는다 하는 애들 치고 진짜 죽는 애들 없다”며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대장은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각서를 쓰고 가라는 말만 했다. 이게 군의 관심병사 관리법이다. 탈영을 시도했을 때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3시간 만에 산 두 개를 넘어 38킬로미터를 달린 병사의 심리상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그런 상태의 애를 제대로 치료하지도 않고 방치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거다.

이명희(가명)  군은 그린캠프를 운영하는 것만으로 자살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심리부검을 수행할 교수를 찾는 과정에서 만난 군 출신 교수님 한 분이 그린캠프야말로 애들을 죽이는 곳이라고 말했다. 또 “그곳은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감시하고 감금해두는 곳이다”며 “차라리 문제가 있는 병사를 군대 밖으로 내보내 민간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전역 조치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일 것이다”고 충고했다. 심리부검은 이미 죽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조치다. 앞서 죽음을 막는 조치부터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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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두혁 씨에게 전달된 익명의 편지 일부분.

오두혁 초동조사 과정에 유가족을 참여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사고 직후 명석이 자리로 가보니 자리를 싹 정리해버렸더라. 애가 남긴 종이 한 장 없었다. 한 마디로 증거인멸이다. 미심쩍은 점이 많아서 사고 현장인 탄약고 주변 폐쇄회로TV를 보여 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언제든지 보여준다고 하더니 그날 저녁부터 예전에 화재가 난 뒤 복구를 안 했다며 작동이 안 됐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간부들이 퇴근할 때 전원을 끄고 가기 때문에 영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아예 고장이 났다고 말을 바꿨다. 또 그 다음에는 폐쇄회로TV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자료가 지워지기 때문에 자료가 없다고 했다. 도대체 몇 번이나 말을 바꾼 건가. 초동조사만 투명하게 이뤄져도 심리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부모가 두 눈으로 수사과정을 지켜봐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결과를 두고 왜 심리부검이 필요한가.

윤주호 만약 병사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부모에게 즉각 알려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가끔 죽은 아이들의 부모 잘못을 따지며 책임을 회피하는 군인들이 있는데, 부모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 군에 애를 보내면 휴가 나올 때 외에는 마음대로 볼 수도 없다. 부대 내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전혀 모른다. 부모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으면 일단 이상 징후가 보일 때 밖으로 돌려보내라. 집에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한다면 그건 부모 잘못이라고 인정하겠다. 심리부검 같은 의구심만 불러일으키는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예방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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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디펜스21+ 기자
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모 대도시에서 20년을 보냈다.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이메일 : ppankku@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sem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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