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핵군축을 염원했던 미국 대통령과 한 소녀

김종대 201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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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희망이 사라진 해

2013년 11월22일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암살 당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미국인이라면 케네디 대통령 암살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 사건은 또한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추모 열기로 이어졌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영국 역사가 아이자야 벌린 경은 케네디 대통령 특보인 아서 슐레징거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희망이… 한 순간에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암살당하기 1년 전인 1962년 10월에 소련이 쿠바의 해안에 중장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발생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는 극심한 두 개의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소련의 위협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의회가 자신을 탄핵할 것이라는 국내정치적로부터의 압박과, 소련과의 핵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3차 대전의 압박이었습니다. 
1963년이 되자 케네디는 반드시 자신의 재임 기간 중에 핵전쟁 가능성을 끝내겠다는 신념가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그해 1월에 케네디는 유엔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류가 전쟁을 끝장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장낼 것이다.”

소련의 핵 위협에 맞서 미 군부는 이미 소련에 대한 전략폭격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전략공군사령관인 토마스 파워 장군은 미국의 소련에 대한 전략폭격 계획을 케네디 대통령과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브리핑한 바 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미국의 군부는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 그리고 중국의 모든 도시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통해 적어도 사망자가 4억 명에 달하는 전략 공격 능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파워 장군은 군사시설이든 민간시설이든 상관없이 1000개 이상의 목표물을 겨냥하여 중국과 소련의 전체 블록을 몰살시키는 계획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을 끝장내는 이러한 파국은 어떤 중간단계나 경고도 없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미국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덧붙여졌습니다. 어이가 없어하는 맥나마라에게 파워 장군은 이렇게 말합니다. 

“장관님, 핵전쟁으로 미국인이 2명 살아남고 소련인이 1명만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이기는 겁니다.”

전쟁의 문제를 군인에게 맡기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했습니다. 10월에 케네디는 예일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 소련을 향해 전략핵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을 제안함으로써 핵 없는 세상을 향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당연히 냉전세력은 반발했습니다. 특히 군부는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소련의 핵미사일이 쿠바에서 철수한 것은 미국이 갖고 있는 공격적인 핵무기 덕분이고, 그런 만큼 핵미사일은 신이 미국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선사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번도 도전받은 바 없는 핵미사일의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 대통령은 반역자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케네디는 의문의 암살을 당하면서 핵무기 군축의 희망도 사라집니다. 이후로 미국과 소련은 미친듯이 핵무기 경쟁에 매달립니다.

우리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젊은 지도자를 어느 날 잃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 여러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바로 그 때, “무언가 특별한 희망이… 한 순간에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는 억압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희망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1982년, 희망이 부활한 해

1982년 세계는 또 다시 핵전쟁의 공포에 떨게 되었습니다. 소련은 파이오니어를, 미국은 순항 미사일과 퍼싱 II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ABC 방송은 10년 안에 핵전쟁 일어날 것을 예견하는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를 상영하고 북미대륙과 유럽에서 핵 반대 시위가 벌어집니다. 이어 1982년 11월에 새로운 소련 서기장으로 유리 안드로포프가 취임합니다. 이를 골똘히 지켜본 만 10살의 미국 소녀 사만다 스미스는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만약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한다면 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전쟁을 원하는지, 또는 원하지 않는지 편지를 보내 물어보지 않나요?"
그러자 엄마는 "네가 해보지 않겠니?"라고 대답하게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만다는 즉시 다음과 같이 편지를 씁니다.

“친애하는 안드로포프 서기장님께.
저는 사만다 스미스이며 10살입니다. 새로운 직업을 얻으신 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러시아와 미국이 핵전쟁을 할까봐 걱정해왔습니다. 서기장님은 정말 전쟁을 하길 원하시나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전쟁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하실 건 지 답변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대해 답변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저는 서기장님이 세계 혹은 최소한 우리 미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신께서는 우리가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사만다 스미스 올림”

편지는 소련의 신문 프라우다에 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드로포프로부터 기다리던 답장이 없자 사만다는 재차 미국 주재 소련 대사에게 편지를 보내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대답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섯달 후인 1983년 4월에 사만다는 안드로포프의 답장을 받게 됩니다.

“친애하는 사만다 양에게.
소련에 있는 우리 모두는 지구상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떠한 일이든 하려고 합니다. 이건 모든 소련 사람이 원하는 것이고 우리의 위대한 창시자 레닌이 가르쳐준 것이기도 하죠. 오늘날 우리는 가깝든 멀든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며 평화 속에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어 서기장은 사만다를 소련으로 초청하면서 “소련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1983년 7월7일, 숱한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부모와 함께 소련으로 간 사만다는 2주 동안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보고, 소련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소련 최초 여성 우주비행사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를 만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돌라온 사만다는 각종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소련에 대해 “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걸 알았다”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제 사만다는 미·소 간의 평화 친선대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만다의 활동은 미국의 냉전세력에게는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던 중 9월에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영공에 폭파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방세계는 일제히 소련에 대한 경제제재와 강압적인 정책으로 더욱더 치닫게 됩니다. 사만다에게 쏟아지던 세상의 관심과 언론의 출연 요청도 뚝 끊어집니다. 냉전의 유령이 다시 세계를 배회합니다. 악의 제국이라는 소련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날로 커져갑니다.

이렇게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만다는 85년 8월에 여객기 사고로 만 13살의 나이에 사망합니다. 한 해 전에는 이미 사만다의 친구 유리 안드로포프도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사만다의 사망 소식에 비로소 미국 국민들은 긴 잠에서 깨어난 듯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이 소녀에게서 비로소 진실을 재발견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애도와 함께 조문이 밀려왔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과 레이건 대통령도 애도를 표합니다. 소련은 사만다를 추모하는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감축 협상을 시작합니다. 바로 안드로포프가 사만다에게 약속했던 그것입니다. 지구 최후의 날을 두려워하며 소련을 다녀온 이 어린 소녀는 그녀의 죽음으로서 세상에 다시 평화의 메시지를 알렸습니다. 

겨우 13년을 살고 간 저 어린 맑은 영혼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다시 핵전쟁의 공포가 밀려오는 이 한반도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쟁의 공포에 또 한 세기를 지내야 합니다.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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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일했습니다. 또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국방부 정책보좌관 등으로 일하며 군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이메일 : jdkim2010@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nd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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