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가 군 기강 무너뜨린다?

김동규 2011.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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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가 군 기강 무너뜨린다?
선진국 군대 대부분 동성애자 차별 금지, 한국군은 여전히 차별

 

한국군은 공식적으로는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방부 내 각종 규정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버젓이 명문화돼 있다. 이미 선진국 군대 대부분이 동성애자 차별 규정을 폐지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한국군은 그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동성애자가 군 기강 무너뜨린다는 근거없는 우려


국방부에서 군형법 92조의 계간조항을 고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군 기강 확립’이다. 국방부는 군형법 92조의 위헌 심판 제청이 제기됐을 당시 계간조항이 삭제 돼 동성애가 만연해질 경우 군 기강이 흐트러지고 전투력에 중대한 결함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계간조항이 폐지되면 동성애가 만연할 것’이라는 근거가 부족한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동성애가 군 기강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주장은 짚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동성애자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의 군대에서 한국군이 걱정하는 군 기강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성애자의 입대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프랑스, 이스라엘, 네덜란드, 덴마크, 대만, 독일을 비롯해 올 9월 동성애자 입대를 전면 허용키로 한 미국을 포함 20여 개국에 이른다. 이들은 군 내부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진급이나 복지에 있어 그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고 있다.


사진2. 레이디가가.jpg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공개석상에서 DADT 정책을 비난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과 대만은 징병제 국가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계간조항 폐지를 우려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논리 중에는 ‘적을 마주하고 있는 징병제 국가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은 세계적인 강군으로 평가받는 군대다. 특히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우세하게 이끌었다. 동성애자 입대를 허용하고, 이들에게 관대한 문화를 가진 군대가 한국군의 걱정과는 달리 아무 문제없이 운영되고 실전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 대만군은 좁은 해역을 사이에 두고 동북아 최강의 군대인 중국군을 마주하고 있다. 한국군처럼 적을 코앞에 둔 상황인데도 이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외려 이들 군대는 한국군과 달리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들과는 다른 면에서 창의성을 발휘해 군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동성애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동성애자가 입대한다고 해서 동성애의 만연, 군 기강 문란, 성폭행 급증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는 전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군의 우려는 편견에서 나온 일종의 두려움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설명이다. 

여성학자의 시각으로 군대 문제에 대한 많은 연구물을 발표한 바 있는 권인숙 명지대 교수는 <군대 섹슈얼리티 분석>에서 “단합의 문제는 미군이 흑인병사를 받아들일 때도 여군을 받아들일 때도 항상 반대의 명분으로 사용됐지만 단합을 해치는 것은 이들의 존재가 아니라 이들에 대한 차별적 관념의 소유자들과 문화였다”라고 분석했다. 권 교수의 분석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까지 한국군에서 발생한 동성애자 문제는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가 가진 문제라기보다는 차별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는 군의 인식


한국군에는 군형법 92조 외에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명문화한 규정들이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더욱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현대 정신의학계에서는 동성애를 더 이상 정신질환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1973년부터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규정하면서 동성애를 성행동의 정상적 변형체(normal variant)라고 정의했다. 1993년 국제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ICD-10에서도 개인의 성적 지향은 정신적 장애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지금도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방부령 제 556호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명시된 ‘질병 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의 평가항목에는 트랜스젠더를 ‘성주체성장애’, 동성애자를 ‘성선호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군인사법 시행규칙 56조에는 현역부적합자 기준으로 ‘변태적 성벽자’를 명시하고 있는데, 현역 복무 중인 군인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면 이 기준에 따라 전역심사대상이 된다.
DADT정책 폐지는 정치권의 노력보다 미국 내 성소수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단체의 힘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3. dadt.jpg

DADT정책 폐지는 정치권의 노력보다 미국 내 성소수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단체의 힘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동성애자란 이유로 무조건 전역시키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동성애자임이 드러난 후 정신병원에 수용돼 정신질환판정을 받고 전역한 실제 사례들을 보면 설득력이 부족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동성애자 인권단체에서는 “동성애자를 변태적 성벽자로 규정해 놓은 것도 문제지만 전역을 원치 않는 동성애자를 모두 심사대상에 두는 것은 명백한 평등권 침해 행위”라고 주장한다. 모든 동성애자가 전역을 목적으로 성 정체성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데 동성애자란 것이 밝혀졌다고 무조건 전역 심사대상에 두는 건 불합리하다는 말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동성애자를 병역에서 제외하는 문제에 대해 “동성애자와 군 복무 적합 여부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월 군형법 92조와 징병신체검사규칙, 군인사법 시행규칙 56조 등의 법령은 동성애를 정신질환, 범죄로 규정한 차별이라며 시행규칙의 폐지 또는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군은 지금까지 요지부동으로 동성애에 대한 차별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군 기강, 사회적 합의 등을 이유로 인권위의 권고를 거부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동성애자 차별


미군은 지난해까지 병영 내 동성애자에 대해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DADT)' 정책을 유지해왔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이 제정한 DADT 정책은 군대 내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타인이 묻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동성애자 입대가 금지돼 있는 미군에서도 성 정체성만 드러나지 않으면 군복무를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이 공개되는 순간 당사자는 강제로 전역조치를 당해야만 했다.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묵인’하긴 했지만 ‘인정’하지는 않는 일종의 절충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DADT 정책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내 성소수자들의 활동 덕분에 DADT 정책은 결국 올 9월 20일자로 완전 폐기키로 합의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18일 미 상원은 DADT 폐기 법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5표, 반대 31표로 통과시켰다. 폐기안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 서명을 거치면 60일간의 대기기간을 거쳐 공식 발효될 예정이었다. 하나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 후에도 국방태세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군 지도부의 인증이 지연되면서 시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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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DADT정책을 풍자한 그림


결국 올해 7월 22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과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이 인증을 해 DADT 정책은 폐기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징병제인 한국군과 달리 원하는 사람만 입대를 하는 미군에서 동성애자의 입대를 공식적으로 허용한 것은 한국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군이 전세계에서 실전을 가장 많이 수행하는 군대라는 점도 전투력 저하를 염려하는 한국군이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다.

1999년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당시 영국군에 근무하다 동성애자로 밝혀져 강제전역당한 2명의 병사가 영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영국 정부가 유럽인권 협약 제8조를 위반했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영국 정부는 동성애자의 존재가 “군부대의 작전 효율성과 전투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동성애자에 대한 조사는 사생활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군부대의 작전 효율성과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직후 영국은 동성애자의 입대를 제한하는 정책을 없앴고, 현재 영국군에는 동성애를 금지하는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에서도 개인의 성적 지향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 것이다.


동성애자 차별 폐지는 세계적 추세, 한국군도 발 맞춰야


앞서 살펴본 대로 대다수 선진국 군대에서는 이미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폐지했다. 국방부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군형법 92조의 위헌심판을 제청했던 당사자인 이경환 변호사에 따르면 “국방부는 대만, 이스라엘, 캐나다, 호주 등 원래 동성애자 입대를 금지했던 군대에서 인권보호를 이유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정책을 철폐한 사례를 보고한 적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 국방부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유지하는 이유로 ‘군 기강 문란’이나 ‘전투력 저하’ 등의 추상적 근거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별을 하나씩 없애 나가야 한다. 이미 선진국의 사례가 국방부에서 우려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 것임을 보증하고 있다.

막강한 ‘전투형 군대’로 변화해 동북아의 진정한 강자로 발돋움하려는 한국군은 지금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인권문제에서는 유독 후진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전투형 군대가 되기 전에 전투원의 인권을 먼저 챙겨주는 군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미군이나 독일군처럼 강군으로 이름난 군대는 병사들의 인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전력증강에 쓰는 역량의 반 정도만이라도 인권 신장에 투자한다면 선진 군대로 가는 길은 쉽게 열릴 것이다. 선진 ‘인권형’ 군대 한국군을 기대해 본다.

김동규 <D&D포커스>기자  ppankk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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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디펜스21+ 기자
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모 대도시에서 20년을 보냈다.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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