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온 바람, 남북 녹일까

2011.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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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846호 
G2 정상회담의 결과로 2년 만에 열릴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미·중의 압박과 남쪽의 대응 전략에 회담 성과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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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열린 지난해 9월30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회담이 끝난 뒤 남쪽 대표인 문상균 대령(왼쪽)과 
북쪽 대표인 리선권 대좌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어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1월20일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 개최 합의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그는 “남북대화 합의는 중요하고 긍정적 신호”라며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데 발맞추기로 합의해 한국이 대화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 효과’라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북, ‘기다렸다는 듯’ 군사회담 제안

북한은 미-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나온 뒤 8시간 만에 ‘기다렸다는 듯’ 남쪽에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했고, 한국 정부도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참모회의 뒤 곧바로 회담을 수용했다. 북한의 제안과 한국 정부의 즉각적 수용은 사전에 북한-중국, 미국-한국의 교감과 협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진지하고 건설적인 남북대화가 필수적인 조치”라고 남북 양쪽에 대화를 압박하면서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남북한 국방장관회담이 열리면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1월 이후 2년여 만이다. 대결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일단은 대화 국면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중에 떠밀려 협상 테이블은 마련됐지만, 문제는 어떤 식단을 차리느냐다. 전망은 밝지 않다. 양쪽은 고위급 군사회담에 앞서 설 연휴 이후 다음달 중순 판문점에서 예비회담을 개최할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태가 어떻게 처리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책임 있는 조처’와 추가 도발 방지 및 비핵화 약속 등을 요구해왔다.

북한은 1월21일 “모든 군사적 현안 문제를 해결할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지만 ‘분리 대응’이 점쳐진다.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는 민간인 희생 등을 이유로 사과하더라도, ‘날조극’이라고 부인해온 천안함 침몰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노무현·김정일 남북 두 정상이 2007년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군사적 충돌 방지책을 논의하자고 제안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북한이 이런 태도를 취할 경우, 남쪽은 ‘북한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비난하면서 대화가 진전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다루자고 제안한 만큼 이는 남쪽이 거부할 수 없는 의제와 채널”이라며 “미-중 회담이라는 외부적 환경에 견인돼 대화 테이블에는 남북이 마주 앉지만 회담의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안함이 큰 장벽이다. 김 교수는 “북한이 천안함에 대한 책임을 시인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본회담이 개최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전망도 비슷하다. “북한이 후계체제를 안착시키는 데 군부의 충성심이 절대적인 만큼 천안함 사건을 시인하고 사과할 가능성은 제로다. 대신 남북 공동 조사를 제안할 수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을 요구하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겠다고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양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남북대화 압박 정도와 남쪽의 대응 전략에 회담의 성과가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의제 조율 안 되면 회담 무산될 수도

전문가들의 분석은 예비회담에서 의제가 조율되지 않으면 남북 고위급 회담이 아예 개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지난해 9월에도 남북 장성급 회담을 열기 위해 군사실무회담이 열렸지만 천안함 때문에 의제 조율에 실패해 장성급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예비회담이라도 개최되면 양쪽 모두 대화 국면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남북대화를 촉구하고 양쪽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갖춘 상황에서 판을 깨는 데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이 미-중 협조체제라는 이름 아래 한국 정부를 대화의 장으로 밀어넣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 두 열강이 남북대화를 모든 대화의 전제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남북대화가 풀리지 않으면 모든 상황이 엉클어진다.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사찰을 원하는데 한국 정부가 대화를 시작도 못하게 막는 상황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미-중 정상회담 이후에도 계속 남북대화의 진전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1월20일 “남북대화를 환영한다. (남북의) 긴장 완화와 이해 증진은 6자회담을 위한 조처다. 대화가 생산적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 6자회담을 재개할 것”이라며 북-미 대화에 앞서 남북대화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또 1월26일 방한하는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통해 6자회담 재개 및 UEP 대응 방안 등을 조율할 예정이다.

미국과 중국이 그리고 있는 로드맵은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이다. 남북 군사고위급 예비회담과 본회담이 어떻게 열리느냐에 따라 북-미 대화와 6자회담의 전망이 결정된다. 하지만 남북이 장기간 갈등을 빚으면서 대화에 성과가 없을 경우 미국이 이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북-미 대화와 6자회담으로 직행한다는 얘기다. 북한도 남북대화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북-미 대화로 가는 징검다리로 상정하고 있고, 비핵화는 어차피 미국과 마주 앉아 풀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다. 다시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될 경우, 1994년 제네바 합의처럼 관계 개선 및 경제지원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MB, 대북정책 실패로 주도권 잃어

결국 북한의 ‘분리대응’ 등 태도가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적극적 대화 의지가 향후 국면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김근식 교수는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자제하라, 협상하라’고 하니 한국 정부가 등 떠밀려 따라가면서 미국의 발목을 잡는 격”이라며 “남북회담이 결렬될 경우 남과 북 가운데 누가 판을 깼느냐는 책임을 따지게 될 것이고, 미-중이 보기에 이명박 정부의 책임으로 회담이 깨지면 북한은 북-미 회담이나 6자회담으로 바로 가려 할 것이기 때문에 재개된 6자회담에서 한국이 외교적 ‘왕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중 공동성명에 UEP에 대한 우려가 포함됐지만 이를 규탄하거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루자는 내용이 없고, 남북대화를 촉구하면서도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북한에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않은 것은 북한 외교의 승리이자 한국 외교의 패배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무진 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통일에 대한 철학의 빈곤,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 등 잘못된 정보, 압박하면 굴복한다는 전략의 부재가 맞물려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과 북한에 끌려왔다”며 “잘못된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6자회담에 갈 경우 한국은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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