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쟁점과 전략

201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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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5일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은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하는 데 마침내 성공하였다. 2008년 1월 오바마 정부가 협상에 참여한 지 7년, 2013년 5월 일본 아베 정부가 협상의 공식 참여를 선언한 지 2년여 만의 성과이다. TPP는 과연 무엇이고, 특히 한국에게 어떤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가? TPP는 무역 자유화를 넘어선 새로운 무역 규칙과 세계경제질서의 수립을 위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인 동시에, 경제 영역과 안보 영역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아시아 지역아키텍처를 설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동시에 TPP는 대외정책과 국내정책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몸통을 이루고 있는 쟁점이다. TPP는 이처럼 다차원적이고 다면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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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무역 규칙의 수립을 둘러싼 경쟁과 협력, 그 효과


  TPP는 30개의 챕터로 구성될 만큼 광범위하고 수준 높은 21세기 무역협정(21st century high quality FTA)이다. 상품분야, 원산지규정, 의약품 특허 보호, 무역구제조치, 위생검역(SPS), 기술장벽(TBT), 서비스,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등 자유무역협정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 분야가 WTO 규범과 규칙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협상 참여국들이 공언한 대로 21세기형 FTA라고 할 만하다.

  TPP의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듯 협상 타결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협상의 핵심은 역시 예상대로 미국이었다. 정부 조달, 바이오 신약의 지적재산권, 유제품의 관세와 쿼터, 원산지규정 등 협상 최종 단계에서 문제가 되었던 핵심 쟁점에서 미국은 유일하게 직접적 당사자였다. 바이오 신약에 대한 지적재산권 협상도 첨예하게 이해가 엇갈려 막바지까지 합의를 어렵게 했던 쟁점이었다. 당초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지적재산권 보호가 필요하다고 보고 바이오 신약에 대해 12년의 배타적 보호를 주장한 미국과 의료보험 재정의 부담과 환자의 권리를 이유로 보호 기간을 5년으로 한정할 것을 고수한 호주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정부조달의 경우,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등 참여국 가운데 8개국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정부조달절차를 보장하는 ‘WTO 정부조달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되었다. 특히 TPP의 양대 축인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규정, 의약품 특허 보호, 지적재산권, 농업분야에서는 유제품 시장개방 정도, 일본의 5대 농산물 시장개방(쌀, 밀/보리, 축산물, 낙농품, 설탕)등 장애가 산적했다. ‘성역’으로 간주되어 이전의 FTA 협상에서 자유화의 예외가 되었던 일본의 농산물 개방 폭은 특히 어려운 쟁점이었다.

  협상 당사국들은 이러한 난제들이 극복되었다는 점에서 TPP가 21세기 FTA의 기준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쟁점들이 협상 당사국들 사이에서 적정 수준으로 타협되었다는 점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지적재산권의 경우, 미국과 호주 양국은 결국 입장을 절충하여 최소 5년의 보호 기간을 설정하고 이후 경쟁 제품이 심사를 받는 기간 중 추가 수년 동안 보호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TPP가 기존 양자 FTA를 다자화하는 거대 FTA인 만큼 역내 무역을 원활히 하는 원산지규정의 도입이 매우 중요한 쟁점이었다. 최종적으로 부품의 55% 이상이 역내에서 조달될 경우 관세철폐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누적 원산지규정이 도입되었다. 누적 원산규정의 도입은 누들볼 효과를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동남아시아와 멕시코에 생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데 이 규정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5%라는 수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의 62.5%보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픽업 트럭에 대한 보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부수적 성과도 거두었다.

  협상의 절충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이루어졌다. 입장 차이를 좁히는 데 어려움을 겪던 미일 간 협상에 2015년부터 협상 타결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2015년 4월 도쿄에서 개최된 미・일 각료회의에서 쌀과 자동차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쟁점에 대해 양국의 견해 차이가 좁혀졌다. 일본 측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현행 38.5%의 관세를 향후 10년 간 10% 전후로 인하하기로 결정하면서 협상 타결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후 애틀랜타에서 최종 타결된 협상에서 일본은 소고기의 현행 38.5%의 관세를 TPP 발효 즉시 27.5%로 감축하고 이후 1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9%까지 감축하기로 하였다. 가장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쌀의 경우 일본이 미국산 쌀에 대한 무관세 수입량을 13년 동안 현재 5만 톤에서 7만 톤으로 증량하여 쌀에 대한 관세감축 대신 저율할당관세를 제공하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미국은 일본의 승용차와 트럭에 부과되는 관세 현행 관세 2.5%, 25%를 향후 30년에 걸쳐 철폐하기로 하고, 일본산 소고기에 대한 저율할당관세(Tariff Rate Quotas: TRQ)를 기존 3천 톤에서 6천 톤으로 15년에 걸쳐 증량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협상 참여국들은 광범위하고 높은 수준의 21세기 FTA라는 본래의 취지를 유지하는 가운데 유연성을 발휘하여 협상을 타결하였다. 12개국 통상장관들이 각료회의 마감 시한을 거듭 연장하며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 자체가 협상 타결에 대한 의지가 지대했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TPP에 내포된 전략적 요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TPP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미국의 판단은 담당 부처인 통상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의 평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USTR은 TPP에 다섯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첫째, 포괄적 시장접근(comprehensive market access)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 둘째, 생산과 공급 체인의 발전을 촉진하는 지역적 접근(regional approach to commitments)을 통해 경제 통합을 가속화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셋째, 디지털경제의 발전과 세계화 된 경제에서 국영기업의 역할 등 새로운 쟁점들을 다수 포함 (addressing new trade challenges)시킴으로써 혁신을 촉진하고, 생산성과 경쟁력을 제고할 것이다. 넷째, 다양한 경제발전 단계에 있는 국가들과 모든 규모의 기업들이 무역으로부터 혜택(inclusive trade)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역내 무역의 플랫폼(platform for regional trade)이자 향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다른 국가들도 포함하도록 설계되었다.

  TPP는 관세 자유화를 주목적으로 했던 과거의 FTA와 달리, 새로운 무역 규칙을 수립하고 회원국 간 경제 통합을 촉진하는 한편, 새로운 지역 및 세계무역질서를 새롭게 형성하는 게임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으로 첫째, TPP는 새로운 무역 표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TPP에는 아직 WTO에서 확립되어 있지 않은 규칙과 규범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규정들은 환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른 거대 FTA는 물론 향후 전개될 WTO의 다자 무역자유화협상에서도 새로운 표준 또는 중요한 준거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과 일본이 공개적으로 중국 배제를 공식적으로 언명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국영기업, 환경 및 노동 기준, 지적재산권 등 TPP의 높은 기준을 중국이 현 시점에서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과 일본 양국은 중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새로운 무역 규칙을 제정함으로써 21세기 무역질서, 더 나아가 세계경제질서의 틀을 자국에 유리하게 짜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베 총리가 중국의 TPP 참가가 상당한 전략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단기적으로 RCEP의 협상 속도를 높임으로써 TPP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16개국이 참여하는 RCEP은 타결될 경우 TPP보다 큰 자유무역지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주요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둘째, TPP가 동아시아 주요국의 FTA 경쟁의 성격을 바꾸어 놓을 것으로 보인다. TPP 협상 타결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FTA 게임을 양자 FTA 중심에서 거대 FTA로 바꿔놓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공산이 크다. TPP는 국제통상환경에서 거대 FTA의 흐름을 본격화함으로써 게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일본의 시각에서 볼 때, TPP는 그동안 한국 등 주요 경쟁국에 뒤처졌던 FTA 경쟁 구도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다목적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FTA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협상 타결 직후 발표한 국내 보도에서 TPP가 한미 FTA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명시해서 밝힌 점이 이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TPP의 즉시 관세 철폐율이 품목수 기준 87.4%, 수출액 기준 81.3%로, 한미 FTA의 83.0%, 77.5%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TPP 타결 직후 한국 정부가 한미 FTA가 대미 수출 자동차 부품 관세가 즉시 철폐된 데 비해, TPP에서는 25년에 걸쳐 철폐될 것임을 강조한 것도 한일 양국의 경쟁적 측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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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등 12개국 대표단이 10월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리츠칼튼 호텔에서 TPP 협상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TPP 다시 보기- 경제·안보 연계의 관점


  TPP는 미국이 협상에 참여한 이후 그 성격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논쟁의 핵심은 TPP를 순수하게 경제적 이익의 차원과 외교안보적 관점 가운데 어떤 입장에서 TPP에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차원과 외교안보적 차원을 분리하여 접근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어 TPP에 접근하는 것은 현실 인식을 오도하고 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TPP의 경제적 효과에만 주목하고 그에 내포되어 있는 외교안보적 의미를 간과하는 것은 향후 지역 및 세계 질서 변화의 성격과 방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된다. TPP에 외교안보적 고려를 과도하게 투사하는 것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중국 포위의 수단으로 TPP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일면의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과도한 해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경제와 안보가 연계되는지 여부보다는 양자가 연계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TPP가 경제와 안보를 한데 아우르는 세계 및 지역아키텍처의 재설계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TPP로부터 촉발된 지역아키텍처의 재설계 과정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완전히 열린 과정도 아니며, 그렇다고 중국 포위론 같은 전적으로 폐쇄적인 과정도 아니다. 동아시아 주요국들은 지역 아키텍처를 형성하되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보다 효과적인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게임에 돌입한 것이다. TPP를 적극 주도했던 미국이나 RCEP에 적극적인 중국이 상대를 배제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적이 없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TPP를 고리로 경제와 안보가 연계되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TPP는 원래 2005년 P4로 불리는 소규모 국가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 사이에 체결된 환태평양전략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Strategic and Economic Partnership)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2008년 이후 호주, 캐나다, 일본, 멕시코, 페루, 미국, 베트남이 협상에 참여하면서 지금과 같은 12개국 간 협상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TPP 협상의 주요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P4에서 제시한 어젠다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TPP가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기획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TPP의 기원과 성격을 미국이 주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소규모 4개국이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의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다.

  그렇다면 협상 당사국들이 TPP에 뛰어든 경제적 동기는 무엇인가? 첫째, 미국과 일본 양국 정부 모두 경제적 활력이 가장 큰 아시아태평양지역과 자국 경제를 연계해야 할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점증하는 경제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와 일자리 창출 등이 필요하며 TPP는 이를 촉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 침체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경제 체질을 개선할 세 번째 화살 가운데 하나로 TPP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TPP로 인해 일본 정부가 실행해야 할 자유화 및 탈규제 조치가 동맥경화상태에 놓인 일본 경제를 구조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2010년 10월 TPP 협상 참여 관심을 처음 드러냈던 민주당의 칸 나오토 정부가 TPP를 ‘제3의 개방’으로 일컬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둘째, TPP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경제적 동인은 ‘21세기형 생산과 무역과 20세기형 무역규칙’의 괴리를 메우는 시도와 관련이 있다. 일본이 협상 참여를 공식화한 무렵인 2013년 4월을 기준으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FTA의 숫자는 76개에 달하였다. 그럼에도  FTA에 기대했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여 다수의 FTA를 체결하였음에도, 정작 수혜자인 기업들이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기존 양자 FTA들이 낮은 수준의 FTA인 경우가 많고, 원산지규정 등에서 FTA 간 정합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누들볼’(noodle bowl) 효과를 개선함으로써 실질적인 경제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TPP는 이 문제를 해결할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한편, 미국 등 주요국들이 TPP를 추진하는 데는 경제적 동기가 강력하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략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무역 자유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제한적인 P4가 주도하는 무역 협상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전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비록 P4가 시작하였지만, 21세기 세계무역질서와 동아시아 지역아키텍처에 미칠 잠재력을 충분히 인식하고 TPP 협상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일본의 참여를 독려했던 것은 TPP의 경제적 효과를 증대하려는 것뿐 아니라, TPP에 담긴 전략적 성격을 가시화하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TPP는 미국이 아시아 지역으로 대외정책의 중심을 이동하려는 재균형정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오바마 정부의 재균형정책은 단순히 중국을 봉쇄하는 문제이거나 이를 위해 군사적 주둔을 강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미국 국력의 모든 요소를 강화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재균형정책을 통해 오바마 정부는 과거 역외 이해관계자(offshore stakeholder)에 머물렀던 자국의 전략적 지위를 역외 리더(offshore leader)로 전환시킴으로써 아태 지역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전략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일본, 호주 등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EAS 등 역내 다자제도에 참여하는 한편, TPP 등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 아키텍처를 주도적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면에서 TPP가 경제와 안보가 긴밀하게 연계되는 통로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일본 정부 역시 TPP를 통해 경제적 이익과 전략적 목표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싱가포르와 동아시아 국가 간 최초의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하였음에도, 농업 등 정치적으로 강력한 산업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양자 FTA를 적극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한국 등 주변국들과의 FTA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이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거대 FTA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TPP뿐 아니라, RCEP과 일-EU FTA를 병행 추진하는 등 거대 FTA를 통해 경쟁국에 뒤떨어진 FTA 추격의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TPP는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를 점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이 EU 및 중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가운데 TPP 교섭마저 불참할 경우, 향후 세계경제질서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베 정부는 또한 미국의 정책 변화에 보조를 같이 하는 차원에서 TPP를 추진하였다. TPP 참가를 통해 TPP의 경제적 효과를 가시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구상에 협조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편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이중 효과를 노린 것이다. TPP가 오바마 정부의 재균형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의 TPP 협상 참여는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외교안보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일본 민주당 정부 당시 긴장되었던 미일 관계의 복원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전략적 강화의 주요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베 정부 역시 TPP를 통해 경제-안보 연계를 적극 추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TPP- 이제 국내정치의 영역으로


  TPP의 국내 정치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TPP 타결 직후 발표된 백악관 성명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세계 경제의 규칙을 중국과 같은 국가가 쓰게 할 수 없으며, 미국이 써야 한다”고 갈파한 것이 TPP에 담긴 경제적, 전략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또한 10월 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TPP 타결에 대해 “새로운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드디어 개막했다”라고 평가하며 “일본과 미국의 주도 하에 자유민주주의, 인권, 법질서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함께 아시아・태평양에 자유와 번영의 바다를 만들 것”이라고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 너무도 직설적인 반 중국적 발언은 TPP가 타결된 순간부터 국내정치의 영역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TPP 협상 타결 이후 오바마 정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의회 비준 통과라는 국내정치적 과제를 앞두고 있다. 우선, 오바마 정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할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등 민주당의 주요 후보들이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조에 대한 우려 때문에 TPP의 의회 통과에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TPA)을 획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도 제약업계의 반대를 우려하여 비준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중국 카드를 사용한 것은 TPP의 전략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의회 비준 과정에서 예상되는 반대를 완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선택은?

  

  TPP는 이제 한국에게도 미래가 아닌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 한국은 TPP뿐 아니라, 이후 세계무역질서와 지역아키텍처의 변화 방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는 TPP 참여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중요한 것은 참여 여부 자체보다는 참여의 시기와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TPP 참여와 비참여의 경제적 득실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TPP 참여의 경제적 득실은 관세 철폐 등 가시적인 것과 새로운 규칙의 수립 과정에 한국의 입장을 투영하는 것과 같은 비가시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다. 관세 자유화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TPP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둘째, 한국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13번째 참여국이 되기 위해 단독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참여 의향을 밝힌 국가들과 하나의 그룹으로 참여 협상을 진행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셋째, 향후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전개될 거대 FTA 협상의 추이에 대한 체계적 전망과 그에 따른 전략적 접근이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TPP 타결 이후 관심이 자연스럽게 RCEP으로 모아지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TPP와 RCEP이 상충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양자의 상충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양자를 조화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TPP와 RCEP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이 7개국에 달하기 때문에 양자가 반드시 상충될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이 국가들과 협력하여 양자를 서로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넷째, TPP의 타결이 미중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일각에서는 TPP가 중국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대응 전략과 간접적으로 연계되어 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미국과 중국이 TPP 와 RCEP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지역아키텍처를 설계하려는 노력을 배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기는 어려우나, 2014년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rea Trade Area of the Asia-Pacific: FTAAP)을 제시한 것을 계기로 지역아키텍처의 다양한 경로가 제시되고 있다. 한국은 이 가운데 TPP와 RCEP가 조화될 수 있는 경로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내 국가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 외교력을 보일 필요가 있다.

  다섯째, 국내정치 차원에서 체계적인 과정 관리가 필요하다. 미국 대선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발효에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으로서는 그만큼의 시간을 확보했다는 의미이다. 한국 정부가 TPP 협상 참여를 적극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TPP의 피해 분야에 대한 국내정치적 부담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TPP가 발효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어쩌면 한국 정부가 대외전략의 차원뿐 아니라 국내 보완대책의 차원에서도 보다 철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정책적 공간을 확보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대내외 전략의 수립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글은 동아시아재단이 한국의 대내외적인 정책현안을 장기적 시각에서 분석하기 위해 운영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에 실린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http://www.keaf.org/book/EAF_Policy_Debate_The_TPP_and_South_Korea:_Issues_and_Strategies_kr


이승주 중앙대 교수(정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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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01. 20

      한겨레 국방 전문 웹진 ‘디펜스21’ 오픈 특집 - ‘연평도 피격 그 후’   그래픽 정희영, 사진 뉴시스     서해는 이미 ‘사령부 천국’가뜩이나 복잡한 지휘체계에 혼선만 부채질할 판   성격과 임무 가닥 안 잡혀창설 모체 부대 선정부터 이견“즉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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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01. 20

      한겨레 국방 전문 웹진 ‘디펜스21’ 오픈 특집 - ‘연평도 피격 그 후’     북 체제 붕괴 몰두하다 국지 도발 ‘뒤통수’   옛말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부질없는 일에 탐닉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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