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회담’ 감상법

박민희 2011.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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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966796_6000355692_20091124.JPG그들의 축제는 끝나고, 우리의 숙제가 남았다.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역사적인’ 등의 수식어로 가득했던 미-중 정상회담이 끝났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의 외교전이 치열해질수록 한국은 두 강대국이 ‘밀실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해버리는 게 아닌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봐야 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중은 잘 조율하고 포장한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하고 타협했는지, 한국은 어떻게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할지 우리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이번 회담을 관찰하며 나름의 관전 포인트를 생각해봤다. 우선은 미국과 중국의 ‘지피지기 백전불태’(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진영을 대표하는 외교전략가인 헨리 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고한 글들이 상징적이었다. 1970년대 미-중 수교를 이끌었던 키신저는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미-중 냉전 피하기’에서 ‘중국의 길’을 비난하지 않고 미·중의 차이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미국식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고, 중국인들은 중국의 부상을 역사적으로 항상 누려온 우월한 지위로 돌아가는 것으로 본다. 미국은 국가적 재난을 겪은 적이 별로 없지만, 제국주의 침략으로 치욕의 세월을 보낸 중국은 압력에 굴복하는 것을 꺼린다.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은 핵 비확산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중국은 북한 체제 붕괴와 혼란을 우려하며 동북아 미래의 맥락에서 복잡한 도전으로 파악한다.”

 

30년 전 덩샤오핑 미국 방문의 조율사였던 브레진스키는 <뉴욕 타임스>에 실은 ‘중국과 계속 친구되기’에서 후진타오 주석의 이번 방문은 “덩샤오핑의 역사적 방문 이후 미·중 최고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만남”이지만 장애물이 많다고 지적한다. 전략적 불신, 한반도·경제·인권 등에 대한 갈등이 깊고, 특히 미국과 중국이 복잡한 국내문제 때문에 서로를 악마화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 위에서 미국과 중국은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한 현실정치의 맥락에서 서로의 장점과 약점을 깊이 꿰뚫으며 체스 또는 장기를 뒀다.

 

둘째로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공수의 전환’이 일어났다. 경제력의 급성장에 걸맞게 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면서 미국에 공세를 취했던 중국은 이번 회담을 앞두고 몸을 숙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반면, 미국은 최고의 의전을 준비하면서도 인권·경제문제 등에서 중국을 겨냥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지난해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고, 미국이 ‘중국위협론’을 틈타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회복했던 때와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내년 대선 도전을 앞두고 경제적 실익을 챙기고 중국을 향해 할 말은 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중국은 내년 권력 교체기를 앞두고 후 주석의 업적 만들기와 차기 지도부 구성을 위한 안정된 환경 만들기라는 성과를 얻었다. 아울러 지난해 ‘힘의 외교’로 중국이 잃은 것이 많다는 철저한 반성 속에, 2020년까지 미국과 대등한 경제력을 갖출 만큼 성장한다는 목표를 바라보며 다시 ‘와신상담’과 ‘도광양회’의 길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중국이 수십년 동안 계속될 경쟁을 의식하며 끊임없이 화려한 변신술을 선보이는 동안, 한국은 이에 대비한 어떤 전략과 전술을 짜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강대국 틈바구니’라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이 미-중의 경쟁이 가져올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플랜 B’ ‘플랜 C’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지고는 있는지, 역사는 현재 한국이 선택한 길을 어떻게 냉정하게 평가할지, 워싱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사실 그것이 궁금하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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