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통합전술지휘체계 C4I 먹통되나

김동규 2012.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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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사 불법SW 사용으로 저작권 침해 소송 채비
국방부 3년째 정품 구매 회피…한미FTA도 위반


한국군의 모든 C4I체계가 가동 중지될 위기에 처했다. C4I체계는 지휘(command)ㆍ통제(control)ㆍ통신(communication)ㆍ컴퓨터(computer)ㆍ정보(intelligence)의 영문 앞 글자를 따 합친 단어로 전장 곳곳에 분산된 아군 전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통합해주는 전술지휘체계다. 육해공 전력을 전장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보병 단위의 전투원들까지 각종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어 네트워크 중심전(NCW, Network Centric Warfare)으로 대표되는 현대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지휘체계다. 
한미연합작전에서도 C4I체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국군이 획득한 정보를 C4I체계를 통해 공유하며 연합전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전술지휘체계가 왜 가동 중지될 위기까지 처했을까. 

가처분 신청 받아들이면 장비 압류·폐기에 형사책임까지

이번 사태는 C4I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장비들에 결함이 있거나 북한의 전자전 공격 혹은 해킹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다. 한국군의 핵심 전술지휘체계를 정지시킬 정도로 강력한 힘은 다름 아닌 소프트웨어 저작권법이다. 한국군이 C4I체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대규모로 침해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 관련법에 따라 C4I시스템 운영 자체가 중단될 상황인 것이다.  



20120530_1.JPG » C4I체계 시연. 한겨레 자료 사진

상용 소프트웨어는 저작권법 제4조 1항에 따라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로 불리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 저작권자는 저작권법 136조에 따라 소프트웨어를 무단으로 복제한 사람이나 그 업무를 총괄한 책임자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할 수 있으며, 법인 업무에 관련해 불법을 저지른 경우 법인까지도 형사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 업체가 국방부를 고소할 경우 C4I체계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군인과 국방부가 함께 형사책임을 떠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저작권자는 저작권법 제123조에 따라 법원에 저작권 침해 정지를 청구할 수도 있다. 법원이 업체가 낸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 등을 받아들일 경우 법관의 재량에 따라 해당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침해자의 장비를 몰수하거나 압류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폐기까지도 가능한데, C4I체계에 사용되는 서버나 단말기 같은 군용 장비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정품 오피스 프로그램을 설치한 단말기는 절반에 불과

현재 국방부는 C4I체계 단말기와 서버를 비롯한 군용 컴퓨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 제품을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는 바람에 저작권 분쟁에 휘말린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크게 네 가지 부분에서 국방부가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C4I체계에서 사용자 인증에 이용하는 키 관리(KMA, Key Management Application) 서버가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키 관리 서버는 사용자가 C4I체계에 접속할 때 암호키가 담긴 USB 등의 저장장치를 단말기에 삽입하면 이를 인증해주는 기능을 한다. 한국군이 운용 중인 키 관리 서버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Windows Server‘와 ’MS-SQL’을 이용해 개발했는데, 이 제품들은 서버 프로그램 외에도 서버에 접속할 권한인 CAL(Client Access License)을 사용자 수에 따라 구매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A기업에서 윈도 서버 소프트웨어 한 개를 도입했을 때 여기에 접속하는 사원이 300명이라면 CAL도 300개를 구입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쪽은 국방부가 키 관리 서버에 서버 프로그램만 구매한 채 CAL을 구입하지 않아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전군이 접속하는 국방 인증체계에서도 키 관리 서버에 ‘Windows Server‘ 프로그램을 도입해 이용 중이지만 CAL을 구입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세 번째로 전군 통합 백신체계에서 도입한 백신 업데이트 서버에도 같은 제품을 사용 중이지만 CAL을 구입하지 않고 운용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에 따르면 CAL은 프로그램이 따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논리적 권한이기 때문에 라이선스를 확보하지 않고 서버에 접속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파악한 키 관리 서버 관련 저작권 침해 피해 규모는 C4I체계 단말기만 따져도 54억여 원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와 자원관리체계를 연동해 국방부 임의로 라이선스가 없는 사용자를 늘렸을 경우 피해액은 683억여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마지막 문제는 C4I체계 단말기에서 이용 중인 오피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다. 국방부가 낸 2011년 C4I체계 유지보수 공고에 따르면 전체 18,436대의 C4I체계 단말기에서 정품 오피스 프로그램을 설치한 단말기는 절반에 불과한 9,100여 대로 9년 전에 출시된 3,355개의 2003 버전까지 포함한 모든 버전을 합친 숫자가 이 정도다. 최신 버전인 2010은 총 302개만 도입한 것으로 확인돼 C4I체계 단말기에서 다수의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jpg
▲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3년에 걸쳐 국방부를 설득했지만 국방부가 이에 응하지 않아 법적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연합정보공조체계에도 치명타 

이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국방부 정보화기획관실 관계자에게 사실 여부를 묻자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쪽의 문제 제기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일단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보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라는 국방부의 답변과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2009년부터 국방부에 저작권 침해 문제를 제기해왔고 국방부도 여기에 대응해 왔다고 한다. 
이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9년부터 불법소프트웨어 사용 여부를 알기 위해 몇 차례 질의서를 보내고 민원도 제기했지만 국방부는 항상 불법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미 증거가 다 확보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부인만 하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 국방부와 저작권에 관련된 협상을 수차례 시도하고 저작권 세미나를 열고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조정 신청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저작권 침해 증거 자료들은 국가종합전자조달체계인 나라장터에 공시된 상용 소프트웨어 조달 문서와 C4I체계 유지보수 공고, 국회 국방위원회 김학송 전 의원이 공개한 자료 등으로, 국방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정부기관을 상대로 마련한 조달등록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반 판매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정품 구매를 유도해도 국방부는 번번이 이를 회피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이미 국방부에 협상 기회를 줄 만큼 줬다”며 “남은 건 법적 대응밖에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에 적발된 업체나 기관을 바로 형사고소하기보다는 정품구매를 유도해 윈-윈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침해자가 이에 불응할 경우 형사고소로 이어진다. 국방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속적인 정품 구매 협상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형사고소를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가 법원에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키 관리 서버에 설치된 윈도 서버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키 관리 서버를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는 한국군의 C4I체계에 접속 자체가 불가능해져 전군의 전술지휘체계가 마비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못해 한미연합정보공조체계에 문제가 생기는 건 체계에 접속을 아예 못하는 문제에 비하면 별 문제도 아닌 셈이다. 업체의 협상 요구에 3년간 버텨오던 국방부의 태도가 고가의 전술지휘체계를 깡통으로 만들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다른 정부기관들도 줄줄이 소송 당할 판

또 다른 문제는 국방부의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이 국내 저작권법은 물론 한미자유무역협정까지 위반한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양국 간 분쟁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3월 15일부로 발효된 한미자유무역협정은 한국의 모든 정부 기관이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각 정부 부처에서 사용하는 사무용 컴퓨터는 물론 국방부가 관리하는 C4I 단말기, 국방인증체계 등 상용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는 장치에는 예외 없이 정품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라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7일부터 6월 20일까지 45일에 걸쳐 공공기관의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문체부가 각 기관에 내려보낸 공문에는 ‘<불법복제 방지 및 저작권 보호>는 이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라며 2012년 5월 중 공공부문에 대한 소프트웨어 관리지침으로 ‘공공기관의 소프트웨어 사용 및 관리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 훈령으로 공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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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자유무역협정 전문에는 한미 양국 정부 기관이 정품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뒤늦게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에 대해 한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는 “협정문에 명시된 조항에 대한 대비도 없이 협정을 밀어붙이다가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국방부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정부기관들이 국방부처럼 저작권 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오면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대규모 소송을 불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한미자유무역협정 주무 부처인 외교통상부에서도 불법 소프트웨어를 다수 사용 중인 것이 확인됐다고 한다.

국방부 예산 45억 원, 컴퓨터 한 대당 고작 2만원 꼴

상황이 이런데도 국방부는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 측의 협상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 중이다. 이 때문에 한미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처음으로 미국 업체에게 형사고소를 당한 정부기관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을 상황까지 처했다. 게다가 이번 사태는 단순히 불명예로 그치지 않고 전시를 대비해 구축한 전술지휘체계가 깡통으로 전락할 위기까지 불러올 우려가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3년 동안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협상에 응했다면 법적 대응까지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캐서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해 한국 정부에 “한국군에 불법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컴퓨터가 적지 않아 양국군의 네트워크 연결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나 문제는 스티븐스 전 대사가 지적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 양국군의 네트워크 연결은커녕 저작권 문제로 한국군이 자군의 C4I체계에 접속조차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는 “일부 다른 업체들도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우리처럼 정면에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국방부가 정품 소프트웨어 사용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올 한해 소프트웨어 구입 예산은 45억 원이다. 컴퓨터 한 대당 2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과연 국방부는 C4I체계에만 쓰기도 부족한 예산으로 이번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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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디펜스21+ 기자
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모 대도시에서 20년을 보냈다.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이메일 : ppankku@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sem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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