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출신의 파벌과 군대 내 차별
군대의 골품제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육사를 비롯한 사관학교 생도들의 비행과 높은 퇴교율, 의무복무 10년을 채우지 않고 5년 만에 제대를 희망하는 ‘먹튀 장교’들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사출신의 장군진급 점유율은 70%를 넘어 올해에는 80%를 기록했다. 특권과 혜택을 점유하는 육사출신들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일부에서는 사관학교 생도의 퇴교와 5년차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선 처우 개선등 더 많은 혜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특정 출신에 지나친 혜택으로 인한 형평성 문제 등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육사 출신의 파벌과 군대 내 차별 문제를 짚었다.
소위 임관식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기사내용 무관.학사장교 37기 동기회 제공)
‘퇴교’와 ‘먹튀 장교’
지난 10월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정미경 의원(새누리당)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징계로 인한 사관생도 퇴교현황'을 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138명이었다. 징계 사유를 보면 성매매, 성폭행, 절도, 하극상, 폭행 등이었다. 또 학교별로는 육군사관학교 39건, 해군사관학교 27건, 공군사관학교 22건, 육군3사관학교 43건, 국군간호사관학교가 7건으로 집계되었다.
육사만을 놓고보면 매년 성폭행, 성매매, 교내 과도한 애정행각 등 성군기 위반행위로 한해 평균 8명이 퇴교 당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육사 4학년 생도가 음주 후 후배 여생도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고 육사 1학년 생도가 공사 2학년 생도와 싸움이 벌어져 퇴교조치 당하는 일이 있었다. 사관학교는 군의 간성을 키우는 교육기관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생도들의 비행으로 인한 퇴교가 높아진 것은 실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자진 퇴교율 또한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안규백 의원(새정치 민주연합)이 육사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생도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임관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사의 정원은 최근 4년 동안 약 30%가 증가했다. 하지만 매년 평균 13% 정도가 퇴교(가입교 기간 중의 귀향 포함)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올해 입학한 육사 신입 생도들은 입학정원 310명의 21%인 66명이 교육기간 10개월도 안된 시점에서 퇴교했다.
안 의원은 "사관생도는 우리 군의 귀중한 장교 자원임에도 생도의 상당수가 중도에 도태되는 것은 장교 인력 충원의 문제와도 직결 된다"며 "제대로 선발하고 교육시켜 우수한 장교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육사 자진 퇴교율 증가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10년의 의무복무를 채우지 않고 5년차 전역을 하는 육사출신 장교들도 늘고 있다. 육사졸업생은 10년의 의무복무기간을 정해놓고 있다. 이 규정은 10년 이상을 장기근무자라고 규정해 둔 군 규정에서 볼 때 장기근무자로 선발되기 힘든 비 육사출신과 차별을 두는 우대조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육사출신자들에게는 5년차부터 전역을 허용하는 규정(군인사법)을 두고 있다. 이 또한 비 육사출신과의 차별적 조치이다. 학군장교나 학사장교 중 일부는 대학 재학기간 중 4년 혹은 3년을 군으로부터 장학금을 수령 받고 중기요원으로 근무시키는 ‘군장학생’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들 군장학생들은 학군장교의 경우 2년4개월, 학사장교의 경우 3년의 의무복무기간을 마치더라도 전역을 하기 위해서는 국정이자를 포함한 장학금을 반환해야 전역이 가능하다. 게다가 이들의 조기전역 신청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육사의 경우는 5년차부터 전역이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육사 생도 한명을 육군소위로 임관시키기 위해서 4년간 들어가는 비용은 약 2억 3000만원 정도이다. 5년차 전역자에게 교육금액에 대한 반환의무는 없다. 10년의 반만을 복무했으니 5년차 전역을 한다면 교육비의 반인 1억5000만원은 반납해야 형평성에 맞지 않는가?
육사 출신 장교의 조기 전역율은 2010년 4.2%, 2011년 8.8%, 2012년 7.7%, 2013년 9.7%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는 특히 14.6%로 작년에 비해 4.9% 포인트나 증가해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조기이탈을 막고자 한다면, 조기 전역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지 더 많은 떡을 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웨스트 포인트(미 육사) 생도들의 모습
군대에 존재하는 골품제
육사는 생도시절부터 학비와 품위유지비 등 각종 수혜를 받고 임관과 동시에 장기복무자로서의 대우를 받는다. 거기에 5년차 전역의 기회까지 부여 받는 이런 편중된 특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군의 최고정점이자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요직인 장군직위까지 독식하고 있다.
1975년부터 2011년까지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육군3사관학교의 자료를 보면 간략히 정리돼 있다. 아래 표에 따르면 1970년대 당시 육사 출신자가 장군 진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 비육사 출신 비율은 70%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면 이는 84% 대 16%로 그 비율의 엄청난 역전현상이 나타난다.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준장 진급자의 육사출신 비율은 64%로 줄어들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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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출신들은 장군 진급뿐만 아니라 주요보직 또한 독점하고 있다. 우리 육군은 19대 참모총장부터 현재 43대 참모총장까지 모두 육사출신이 참모총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최근 11명의 합참의장 중 사관학교 출신은 단 4명에 불과(2012년 기준)하다. 미국은 사관학교 출신들이 주요보직을 독점한다면 그것은 곧 전투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군은 군 고위층이 모두 사관학교 선후배 사이로 사석에서 서로 형님 아우가 되고 서로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고 감춰주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이러한 파벌의식은 타 출신 장교들의 군복무에 대한 염증과 제대 후 군을 불신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대다수 건전한 사고와 진정으로 국가와 군에 헌신하려는 소신을 가진 육사 출신 장교들의 의지마저도 꺾고 있다.
말단의 비육사 출신 장교들은 육사 출신자들이 장군진급 뿐만 아니라 말단에서의 진급과 보직에서의 독식 또한 심각하다고 이야기 한다. 소속부대와 성명을 밝히기를 꺼려한 이 장교들은 하나 같이 육사 출신자들을 ‘아카데미 출신’으로 비하해서 호칭했다. 그들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하지만 군대에는 그 씨가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이야기 했다. 경기도의 모 부대에 복무중인 한 장교는 “10년 넘게 열심히 복무했다. 하지만 이제 지긋지긋 하다. 제대를 결심했다. 장군이 아니라 말단의 보직과 진급에서도 비 육사출신은 차별의 대상이다. 우리 연대장은 1년 후배인 육사출신 장교를 소령으로 진급시키기 위해 지휘관 재량으로 지휘추천을 육사출신에게 밀어줬다. 그 후배는 연대장 지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육사출신 후배는 진급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휘 추천을 받았고, 연대 내에서 다른 그 누구도 진급을 할 수 없었다. 육사 밀어주기는 이미 말단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에 근무하는 또 다른 비육사 출신 장교는 “출발점이 다른 경쟁체제에서 비육사 출신들의 약진은 당연히 무리가 따른다. 이미 초급장교 시절부터 각종 위탁과 진급에 유리한 보직을 선점해서 군 복무를 시작한다. 그러기에 비육사 출신이 장군까지 간다는 것은 정말로 바늘구멍에 낙타가 들어가는 격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신라의 골품제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더 군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육사를 비롯한 비육사 출신의 군사학 이수시간은 동일하다. 계급이 올라가면서 업무의 숙련도와 완성도의 격차는 미미해진다. 하지만 비육사 출신들은 소령진급에서부터 보직과 진급이라는 좁은 문에 봉착하게 된다. 우리 군에는 골품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의 ROTC 장교들의 모습.정기 육사(웨스트포인트)와 균등한 기회 부여로 미군조직을 건강하게 개혁했다는 평가
대한민국 장교채용의 문제점
10월 27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손인춘 의원(새누리당)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장교의 운용실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소위로 임관한 장교의 누적인원은 4만7870명이다. 하지만 1만971명만이 장기복무자로 선발됐다. 나머지 77%에 해당하는 3만6899명은 2년6개월에서 3년만 근무하고 제대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군장학생처럼 5년에서 7년간 근무하는 중기복무 장교들이 빠져있다. 중기복무 장교들의 장기복무 비선발을 감안한다면, 우리 군의 숙련 장교들의 유실은 심각하다.
군 장교를 많이 임관 시키지만, 짧은 군복무기간에만 활용하고 제대를 시킨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예산과 전투력의 낭비를 가져온다. 특정 출신으로 빈 공간을 메우겠다는 사고에 입각한 장교채용 정책은 군이 병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일찍이 이러한 폐해는 구 일본군의 장교 채용의 문제점에서 볼 수 있다. 구 일본군은 철저하게 페쇄적이고 파벌주의에 의한 장교진급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각 지역별 현인회(현은 일본의 행정단위 이다)가 존재하고 생도 시절부터 현인회 활동을 한다. 야전의 선배들과 일본육사 생도들은 일요하숙이라는 제도를 통해 자기지역 출신들만의 배타적 영역을 구축했다. 또한 같은 육사 생도들도 유년학교 출신인지 비유년 학교출신인지에 따라 차등 대우했다. 유년학교와 육사를 거친 소수의 장교들만이 육대를 거쳐 고급장교로 진출 할 수 있었고 그 뒷 배경에는 현인회라는 사조직의 입김 또한 강했다. 소수의 이들의 빛나는 자리를 제외한 다른 빈 자리들을 메우기 위해 일본군은 갑종과 을종 장교제도를 채택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높게 진급해도 대위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구 일본군에서는 ‘천년중위’, ‘만년대위’라는 말이 나돌았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를 치닫자 일본군은 부족한 초급장교를 충원하기 위해 학도지원병을 도입했고 이들의 대부분은 가미카제를 비롯한 ‘특공작전’에 투입되었다. 장교에 대한 기본소양 교육도 전투 전기에 대한 교육도 부실했고, 전투원의 대량희생과 지휘부와 말단 제대의 괴리감은 깊어갔다. 결국 일본의 패망에는 전력의 열세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겠지만,그 이면에는 건강한 군대를 만들지 못한 파벌주의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해군의 경우 함상과 항공등 전투병과가 아닌 비전투병과에 대해서는 특무사관이라는 명칭으로 계급의 호칭과 대우도 차별 했다. 겉으로만 충성으로 일관하는 장교들이 복무하는 군대가 정녕 전투해서 승리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 군의 장교채용 또한 일본군과 다르지 않다. 단기간 쓰고 버리는 장교들 특정 출신의 뒷바라지용 액서사리로만 생각하는 장교채용 정책은 우리 군을 병들게 하고 있다.
육해공군의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독일 사관학교. 학교시설도 전국에 분산돼 있다.
건강한 장교 문화를 만들자
현역 장교들 그리고 예비역 장교들이 하는 얘기들은 한결 같다. “우리 군의 장교단이 흔들리고 있다. 점점 사명감은 사라져가고 녹봉을 받는 장교는 없고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만 존재한다. 군인으로써 20년, 30년 국가와 군에 헌신하고 싶어도 한정된 보직과 좋은 보직을 거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걸려 군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처럼 보직과 진급에 얽매이는 장교단의 책임 회피 보신주의 문화가 임 병장과 윤 일병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힘든 취업난도 문제라고 이야기 하는 장교들도 있다. “언론은 군대 그리고 간부가 평생을 보장하는 철 밥그릇인 것처럼 보도한다. 하지만 뛰어난 우수자원들은 방산기업의 연구원이나 짧아진 군 복무기간 탓에 병사의 길을 선택한다. 생각을 해보라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펼치지도 못하고 짧은 계급정년에 의해 언제 군복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지원을 할 것인가?” 실제로 외국의 경우 우수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진급의 기회를 확대하고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다. 장교로 시작되는 인원을 최대한 줄여서 그들이 장기간 군에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직업적 안정성을 부여한다. 말단의 병사 부사관을 거쳐 장군까지 진급할 신분이동의 기회를 넓혀두어 하부로부터 형성된 강력한 초급장교층 두텁게 확보하고 있다. 안정된 정년으로 진급과 보직보다 소신으로 근무하는 복무여건 그리고 특정 출신에 한정되지 않는 균등한 기회야 말로 건강한 장교단 문화를 형성하는 힘이 되며 그것은 군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글 문형철 기자 captin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