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인가, 남풍인가

2012.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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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북풍인가, 남풍인가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가설. 선거철이 되면 북한은 남한을 향해 도발한다. 심정적으로는 맞는 가설인 것 같다. 1987년 대선 직전의 여객기 폭파 테러, 1992년 대선에는 대규모 간첩사건, 1996년 총선 때는 판문점 북한 무장군인 난입, 2002년 대선에는 제2연평해전 발발 등 축적된 경험은 많다. 만일 선거 때 안보위기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1997년 대선 때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첫째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함부로 남한 선거에 개입하는 도발을 하지 말라고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움직임이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가 이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자칫 공안사건으로 연결될 빌미를 제공했다. 둘째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북한이 도발을 하라고, 휴전선에서 총질이라도 해달라고 은밀히 부탁하는 움직임이다. 정부 여당의 일각에서 이를 주도했다. 훗날 “국기를 뒤흔든 사건”으로 알려진 소위 ‘총풍 사건’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보수정권이 집권한 기간에는 이런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선거 때 쟁점이 된 안보위기는 선거가 끝나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점이다. 총선을 한달 남짓 앞둔 올해 3월6일 청와대는 돌연 외교안보장관회의를 개최했고, 그 다음날에 김관진 국방장관은 연평도 부대를 방문해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 무렵 김 장관은 “북한이 4·11 총선과 연말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대남 비방전 수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북한이 태양절(4월15일) 이후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마치 북한의 도발을 기정사실화하는 듯 말했다. 정부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강경발언은 전쟁 전야의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13일에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4월23일 남쪽에 ‘특별행동’을 선언하였고, 닷새 만인 28일에 북한은 우리 쪽에 위성항법장치 교란을 위한 전자파 공격을 감행했다. 위기라면 이 시기가 위기였다. 그런데 정부 당국자 그 누구도 이를 위기라고 하지 않았고, 그 흔한 정부 차원의 긴급대책회의도 열지 않는 너무도 ‘차분한’ 대응이 이어졌다. 총선 직전과 대조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거 이전과 이후라는 국면의 전환이라는 점만 대입하면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된다.


지난 9월26일에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 외교안보장관회의는 최근 북한 어선의 북방한계선 월선 문제에 대해 “대선을 앞두고 북풍을 조성하려는 기획 도발”이라며, 북에 “대선 개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북한 어선 동향을 ‘대선 기획’으로 진단하는 상상력과 분석력이 놀랍다. 최근 북한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북한이 최근 여당 후보를 비난하고 있어서 나온 반응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과거의 북풍 경험 때문인지, 배경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과거의 경험 때문에 필자에게는 이 말이 “북한은 대선에 개입하라”고 촉구하는 반어적 표현으로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지 말라”고 하면 북한은 더 하기 때문이다. 엄마 청개구리가 자식에게 “강가에 묻어 달라”고 말하는 우화적 상황 같다.


1307011027_00393729501_20110603.jpg청와대가 집권 기간 중 각종 위기관리에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정치와 안보를 연계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우리가 청와대의 당연한 말에 트라우마를 겪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야당 후보 지지율이 좀 오르니까 갑자기 선거와 북한을 연계시키는 말을 들을 때 밀려오는 이 석연치 않은 느낌의 정체는 뭘까? 대통령의 관심은 안보인가, 선거인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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