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조차 ‘전쟁위험’ 느껴 연평도 부실대응 불렀다
이명박 정부 대북 강경 목소리 높일수록 현장 지휘관은 위축
다음의 두 사건을 비교해 보자.
사건 #1.
2004년 7월14일. 오후 4시40분에 우리 해군은 북한 함정 1척이 NLL을 향해 남하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핫라인을 통해 1차 경고통신을 내보냈다. 그러나 북한 함정은 계속 남하하여 4시47분에 NLL을 1.2km 월선하였고, 우리는 4시51분까지 4차례 통신으로 경고하였다.
이 순간 북측은 “내려가는 것은 우리 어선이 아니고 중국어선”이라는 내용의 메시지 1회 우리에게 송신하였으며, 52분에 재차 우리는 “북상하지 않으면 발표하겠다”는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에 북측이 불응하자 54분에 우리가 벌컨포 2발로 경고 사격하였다. 북측은 54분과 56분에 재차 “남하하는 것은 중국선박이며 귀측은 방향을 바꾸어 남하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2차례 송신한 후 5시1분에 NLL 이북으로 퇴각하여 사건이 종료되었다.
2010년 11월23일 북한 해안포사격으로 연평도 야산에 산불이 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언뜻 보면 NLL에서 벌어진 남북 간의 통상적인 사건 같지만, 이 사건은 이후 정국을 뒤흔든 초대형 사건으로 발전한다. 합참이 “남북 간 핫라인으로 교신한 사실이 없다”고 발표를 하자 청와대․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군이 허위보고를 했다”며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조사 결과 해군 작전사령부가 상부에서 ‘사격중지 명령’을 할 것을 우려해 북한 경비정과의 교신 사실을 상급 기관인 합참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합참 허위보고’의 진실
이상은 언론에 보도된 당시 사건의 전말이지만 보도되지 않은 더 큰 사건도 있었다.
합참은 해군의 경고사격이 있기 이전인 4시50분경에 NSC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했으며, 보고 뒤 경고사격을 하라고 해군에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위기관리센터 요원이 경고사격 사실을 보고받은 시각은 5시가 넘어서였다. 그런데 이튿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합참과 핫라인으로 보고를 받은 위기관리센터의 중령은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기무사 요원의 연락을 받고 기무사에 불려갔다. 가보니 합참 지휘통제실 요원 9명의 진술서가 놓여 있었다. 진술서에는 “4시50분에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한 후 경고사격을 해군에 지시했다”고 적혀 있었다. 기무사는 이 진술서를 근거로 위기관리센터의 중령을 “4시50분에 보고 받고도 나중에 보고받은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다그쳤다. 심지어 그 중령을 정신병자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사무실에 출근한 위기관리센터장 ㄹ 장군은 센터 중령이 기무사에 호출돼 조사를 받은 전날 사건을 보고받고 격분했다. 즉시 NSC에서는 2명의 국정원 요원을 업체 기술요원으로 위장시켜 비밀 조사단을 편성한 후 합참에 투입했다. 합참과 위기관리센터를 연결하는 핫라인의 단자판을 열어 실제 교신 시각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막 단자판을 여는 순간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헌병들이 국정원 요원들을 강제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측과 이를 덮으려는 측에 고성이 오가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합참의 보고는 5시가 넘어서 이루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19번째 유도심문에 말려든 속초함장
사건 #2.
2010년 3월26일 밤 9시22분에 백령도 서남단에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연락을 받은 속초함은 백령도 남단에서 즉시 북상하기 시작했다. 속초함이 현장으로 접근한 시각은 밤 10시40분. 그리고 속초함은 10시55분에 갑자기 레이더 상에 북상하는 고속의 표적이 포착되어 이를 추격하기 위해 북상하기 시작했다. 이미 비상사태인 ‘서풍 1호’가 발령된 상황에서 속초함은 사격을 주저했다. 표적이 계속 북상하는 동안 속초함장은 2함대사령부와 해군작전사령부에 “쏠까요, 말까요”를 묻고 대답을 기다렸다. 해군 작전사령부는 합참에 다시 같은 질문을 하였고, 이상의 합참의장과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이 사실이 보고된 11시 경에 표적은 이미 NLL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5분 이상 지체된 뒤 해군 작전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속초함은 76mm 주포를 130여발 발사했다. 함정이 보유한 주포 포탄을 모두 쏜 셈이다. 발사 직후 속초함은 표적을 추적하지 않고 NLL 이남에서만 대기했다. 현장 지휘관에게 위임된 ‘사격권’과 ‘추적권’이 모두 실행되지 않았다. 11시8분에 레이더 상에 소실된 표적은 11시9분에 다시 나타났다가 11분에 육지인 장산곶 부근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검은 물체는 ‘새떼’로 판단됐지만 정작 문제는 두 달 후 감사원 감사에서 터져 나왔다. 감사원 조사요원은 속초함장을 총 20번 소환조사하면서 “문제의 물체는 새떼가 아니라 반잠수정 아니냐”고 다그쳤다. 그 중 19번째 조사에서 “현장에서 북한 반잠수정과 공작원이 목격되었다는 다른 진술이 나왔다”며 “계속 반잠수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거냐”고 함장을 압박했다. 이 유도심문에 속초함장이 말려들었다. 결국 “문제의 물체는 반잠수정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술서에 서명하게 된다.
6월10일에 감사원은 “해군이 반잠수정일 가능성이 높은 물체를 새떼로 조작했다”고 발표하여 파문을 일으킨다. 심지어 감사원은 “속초함장은 아직도 그 물체가 반잠수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해군 작전사령부 단위에서 조작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점을 강력히 암시했다. 그러나 같은 사안을 무려 20번씩이나 조사한 것을 두고 당시 감사원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조사한 것 아니냐는 추측들이 나돌았다. 그 20번도 속초함장이 19번째 소환했을 때 감사원의 유도심문에 말려들면서 마무리됐지, 속초함장이 계속 자신의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면 30~40회로 이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쏘지마”랄까봐 조작하고, “쏴”라고 할까봐 망설이고
위 두 사건은 각기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조사기관이 해군작전사령부 단위에서 ‘조작’이 진행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점이다. 물론 앞의 사건은 합참도 조작에 가담하였다는 혐의까지 더해진 경우다. 그런데 의심받는 ‘조작’의 방향이 다르다. 앞의 사건은 ‘상부에서 사격 중지명령을 내릴까봐’ 조작한 경우이고, 뒤의 사건은 ‘사격을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조작을 했다’고 감사원이 발표한 경우다. 의미가 전혀 반대다.
그런데 여기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과거 10년의 진보정권에서는 현장 지휘관의 사격에 대한 재량권을 행사하기 위해 정치권력에 가끔 허위보고를 했다고 치다. 그런데 왜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을 충분히 인정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반대현상이 일어났을까? 왜 속초함장은 “쏠까요, 말까요”를 물으면서 망설였을까? 또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사건 #3.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에 북한에서 포탄이 날아오기 시작한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긴급 소집된 청와대 지하벙커의 회의는 3시11분 2차 포격 당시에도 계속 진행되어 4시 넘기면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지하벙커에서 이 대통령은 합참의장, 해군 작전사령관, 공군 작전사령관 등과 화상회의를 갖고 상황을 보고받았다. 상황 발생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30분쯤 지하벙커에서는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김태영 국방부 장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임채민 국무총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 대통령 주재로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가 시작됐다. 이 자리에는 4성 장군 출신인 이희원 안보특보, 김인종 경호처장도 배석했다.
이날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은 회의 중간에 나와 이 대통령이 긴급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확전 방지’를 지시했다는 설명은 와전이라며 “이 대통령은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자세를 초지일관 유지했다”고 강조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북한 해안포 인근 미사일 기지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타격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몇 시간 전에 ‘확전 방지’를 지시했다는 자신의 브리핑을 뒤집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설명과 달리 ‘단호한 응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진실은 이렇다. 그 누구도 이 대통령에게 F-15K 전투기나 함정, 또는 다른 수단을 동원한 ‘단호한 응징’을 건의한 사람이 없었다. 이런 수단을 동원해 “쏠까요, 말까요”를 물어보는 군사지도자조차 없었다. 오직 연평도 현장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대응 외에 아무도 다른 수단을 건의하지 않았다.
“나 때문에 전쟁나지 않을까?” 군 지휘관들 걱정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 이후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확성기 방송’을 통한 심리전 방송을 재개한다고 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실행하지 않았다. 말은 단호하게 하는데 행동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은 군사지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위기상황에서는 “나 때문에 전쟁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고, 그러다보니까 재량권을 인정받은 현장 지휘관도 군사조치를 실행하지 않았다. 정부의 강경 대북정책이 겉으로 강경할수록, 실제로는 군의 지휘부들에게도 전쟁 가능성을 느끼게 하면서 행동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해군의 교전수칙을 개정하는 등 여러 차례 단호한 원칙을 천명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는 정치권력에 허위보고를 하면서까지 이루어지던 군사행동이 정작 이를 천명한 정부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 더 우유부단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군의 ‘단호한 응징’이란 것이 어떤 특정한 상황 아래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잘 파악되고 우리가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굴복시킬 자신이 있는 경우가 그때이다. 그렇지 않고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의 군은 자신의 군사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정치권력에 아웃소싱하려는 속성이 있고, 더 나아가 자발적으로 정치권력에 예속되려는 경향이 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분단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마지막 확전 차단장치가 바로 이러한 '문민통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모든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의 판단 만으로 단호한 대응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군의 단호한 응징이 가능한 정치 환경이란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을 초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강경보수 정권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런데 이를 답답해하면서 일선의 전투원들에게 ‘단호한 응징’을 주문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높은 수준의 위기관리가 가능한지의 문제이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순간에 국가 위기관리계층은 뛰어난 균형 감각을 유지해야 하고 일선의 지휘관과 전투원들은 '똑똑해야' 한다. 그것이 전쟁을 막는 길이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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