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한미일 정보공유약정 체결 전후

김종대 2015.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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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일 군사협력을 보여주는 2014년 5월 7일자 MBC 뉴스의 일부


한미일 정보교류 약정은 ‘택배기사 약정’


  작년 12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한미일 정보공유약정 체결에 대한 절차적 투명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방부는 26일에만 하더라도 사흘 뒤인 “29일에 국방차관이 서명하여 발효된다”고 국회와 언론에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29일 열린 국방위에서는 “미국이 23일, 한국과 일본은 26일 이미 서명을 마치고 이미 약정이 발효되었다”고 국방부가 뒤늦게 밝히고 나서 여야 의원들이 일제히 “국민을 속인 밀실협정”이라고 비난을 쏟아 낸 것. 국회 심의도 필요 없고 국무회의도 통과할 필요가 없는 차관급 약정이라는 꼼수로 감시를 피한 것은 그렇다 치자. 애초 차관끼리 협정 서명문을 교환하기로 한 계획까지 파기하고 미 국방부의 하급관리가 일본과 한국을 번갈아가며 협정문에 서명을 받고 돌아간 ‘택배 기사 약정’으로 귀결된 것은 중차대한 국가 외교안보 사안을 다루는 모습 치고는 치졸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국방부가 국민에게 설명한 바와 달리 그렇게 궁색하게 약정 체결을 사흘이나 앞당겨 체결할 절박할 사정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민구 국방장관이 과연 이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고 통제했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곳곳에서 노출되었다. 국회에서 소동이 있은 직후에 열린 국방부 국․실장이 참여하는 간부회의에서 한 장관은 “군사외교에 관한 약정이라면 법과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관리했어야 하는데 이번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며 관련 간부들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에게 “평소 한 장관의 온화한 스타일에 비추어 이날 질타는 매우 강한 톤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계속해서 그는 “26일 국회에 대한 약정체결계획 설명은 한 장관이 직접 여야 의원들에게 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한 장관의 허언이 되고 말았다”며 이에 한 장관이 “매우 섭섭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한 장관이 섭섭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인가, 라는 의문이 또 꼬리를 문다. 관련 국․실장이 장관인 자신에게 사실관계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인가, 아니면 한 장관의 발언을 헛소리로 만든 더 강한 권력자에 대한 것인가. 더 나아가 한 장관이 “26일에 약정이 체결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주장도 국방부 안팎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국방장관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약정이 전광석화처럼 체결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밀어붙여서……


  이와 관련하여 또 다른 국방부 관계자는 “애초 이 약정에 대해 국방부가 서둘러 연내(2014년) 체결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작년 김관진 전 장관이 재임했을 당시에 한미일 정보공유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한 데 대해 “한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정책참모들은 이를 올해(2015년) 1월경에 체결하면 무난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김관진 안보실장이 “연내 체결을 강력히 밀어붙이며 국방부를 압박했다”고 말한다. 그나마도 연내라는 시한에 쫓겨 가까스로 29일로 차관이 서명하고 예정되어 있던 것을 청와대가 개입하여 시점을 앞당기도록 국방부 실무진을 압박하는 동안 막상 한 장관은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방장관을 따돌리다시피 하면서 26일에 서명이 강행된 것은 김관진 안보실장이 장관 재임 시절에 미국에 연내 체결을 약속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반드시 작년에 이 약정이 체결되어야만 했던 김 실장의 절박한 사정이 무엇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약정은 한미일 3국간에 공유하는 비밀정보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정에만 먼저 서명하고 교류내용은 추후에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3국간의 정보교류의 공감대와 준비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상적으로 약정 체결을 서둘렀음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한일 간에는 직접 정보를 교류하지 않고 미국을 경유한다는 점, 한미(1987년), 미일(2007년) 간에는 이미 체결된 정보보호협정에 따라 정보를 교류하기 때문에 구태여 기존에 이루어지던 정보교류와 무엇이 달라지는지도 분명치 않다는 점, 3국간에 정보교류를 위한 실무 워킹그룹의 가동도 완전치 않고 서로 필요로 하는 정보의 내용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 등 서둘러 약정을 체결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한일 간에 정상외교를 비롯한 양국 우호관계가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국민여론이 우호적이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핵심 군사정부가 일본에 누설되는 길을 터 준 이번 협정이 우리 안보에 어떤 실익이 있는지, 법적인 구속력이 어느 정도인지, 국방부는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


 서둘러 체결할 하등의 이유 없다


  군사적인 면만 보자면 작년 연내에 체결을 서둘러야만 될 구체적 이유가 발견되지 않지만 이 약정이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군사협력의 상징적인 계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대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방향에서 움직인다면 이 약정은 미국 주도의 동맹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다음 단계의 조치까지 앞당기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 우선 정보교류에서 시작하여 한미일 공동의 미사일방어 군사작전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3국간의 공동 군사작전과 공동 군사훈련도 강행하는 군사일체화의 길이 예정되어 있다. 미국은 단지 약정에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군사협력의 단계로 곧바로 나아가려는 것이기에 한국에 그 첫걸음에 해당되는 이 약정을 체결하라는 강한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손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런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청와대가 국방부에 앞서서 공명하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이 약정에 서둘러 성의를 보였어야만 할 충분한 이유가 생겨난다. 우선 미국은 작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전시작전권 전환 무기 연기’ 요구에 전폭적으로 응해주면서까지 “한미동맹이 지역안정에 기여하는 역할”을 공동선언에서 부각시켰다. 여기서 한미동맹은 기존의 ‘한반도 방위동맹’에서 동북아 ‘지역안정 동맹’으로 질적 전환을 이루는 강한 모멘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 핵심 기제는 단연 한미일 미사일방어(MD)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안보의 기본개념이 북한의 침공을 격퇴한다는 기존의 한반도에 갇힌 개념에서 동북아 지역에 미국 패권을 중심으로 안정적 질서를 형성하는 사법적 개념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또한 이는 한미라는 양자동맹 만이 아니라 한미일이라는 다자동맹, 즉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맞물려 작동해야 하는 새로운 동맹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동맹의 뼈대와 구조를 재설계하는 데 미국은 한일 관계의 개선, 그리고 정보교류 양해각서의 체결을 강력히 주장해 왔다. 이런 동맹운영의 전 과정에 김관진 실장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적극 공명하면서 국방부에 약정의 조속한 체결을 압박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령(令)이 선 국방장관?


  이와 관련하여 정부 소식통은 “작년에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전 장관은 수시로 국방부 업무에 개입해 왔다”며 이로 인해 국방부 역시 상당한 고충이 있음을 털어놓는다.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미사일방어(MD)와 같은 대북 군사대비태세, 사드(THAAD) 미사일 한반도 배치 등 핵심적인 군사현안이 대부분 김관진 장관 시절에 방향이 설정된 것이어서 한 장관이 자신의 독자적인 철학을 갖고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김 실장이라는 거대한 산성이 버티고 있어 만만치 않다는 것. 이번 정보공유 약정 역시 국방부 자체의 판단에 따라 추진하기에는 청와대의 영향력이 너무 강했다. 그런가하면 김 실장이 국방부 업무에 개입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개입했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에 “김 실장의 역할이 과도하게 포장되는 측면도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작년 9월에 윤 일병 사망 사건으로 육군본부 류성식 인사참모부장(육사 39기)가 경질되는 데 김 실장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세간에는 청와대가 경질 인사를 주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김 실장의 국방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주로 군사정책에 관련된 것이지 인사문제와 같은 장관의 고유 권한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최근 한 장관은 취임 초기의 어수선했던 국방부 상황을 정리하고 국방장관 위주로 일사분란하게 국방이 운영되도록 조직을 장악하는 데 상당부분 성공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작년 말의 군 정기인사에서 이재수 기무사령관 경질을 비롯한 주요 핵심 인사를 한 장관이 직접 주도하면서 상당부분 “령(令)이 섰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한민구 장관은 중요한 결정을 내림에 있어 사실상 후견인 역할을 하는 김관진 실장을 초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부처 장관들과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문고리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참모에 장관이 더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권력구조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다가 한 장관의 경우에는 더 특별한 사정도 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지난해 6월 장관으로 부임하기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장관이 “5․16은 쿠데타”라고 시원하게 내지르는데 대해 당시 청와대는 장관 후보 교체까지 검토하는 심각한 분위기였다“고 설명한다. 청문회 이튿날 장관 임명장이 내려오지 않아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취임식이 진행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이 당시 김관진 실장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더라면 한 장관의 부임 여부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한 장관은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입지 때문에 청와대와 더욱 긴밀하게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정치논리에 안보가 망가져서야


  한편 합참의 일군의 장교들은 현재 국방부가 외부의 여론이나 정치권력에 의해 군사대비태세가 크게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눈치다. 정보본부나 작전본부의 장교들은 대부분 경제난, 에너지난에 처한 북한이 재래식 전면전을 지속할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북한의 제2경제권이라고 할 수 있는 군수산업이 와전 와해직전이라는 첩보도 수시로 들어오고 있다.  2013년 3월에 김정은이 북한군 서해 부대를 시찰하면서 “3일 만에 끝나는 통일대전”을 천명하고 대내외에 이를 선전하고 있지만, 그 개연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앙일보>가 북한의 ‘7일 전쟁계획’을 보도하는 등 여전히 단기전에 의한 재래식 전면전의 가능성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고 여기에 청와대가 적극 공명하고 있다고 본다. 그 결과 북한의 선전에 불과한 새로운 전쟁계획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을 수립하느라고 과도하게 에너지를 집중할 경우 군사정책의 일관성이 파괴되어 오히려 군사대비태세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작년 3월말부터 출몰한 북한의 조잡한 무인기가 정치논리로 ‘심각한 위협’으로 돌변함에 따라 그 대비책을 수립하느라고 또 다른 예산소요가 발생한 것은 과도한 대응이었다는 지적이다. 그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나 국정원 국방비서관 등이 북한의 새로운 위협을 ‘심각한 위협’으로 과도하게 부풀린 결과 이제 언론에 북한의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기만 하면 국방정책을 또 수정해야 하는 비효율이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유달리 여론에 민감하고 정치논리에 끌려가는 군사대비태세가 거꾸로 국방부와 합참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무엇이 진짜 우리에게 위협인지를 판단하는 분별력이 흐려진 것이 안보에 있어 새로운 우려사항이 되고 말았다.
  결국 한 장관에게는 국내정치에 민감한 정치권력과 북한의 위협을 부풀려 국방부를 압박하는 보수언론이 모두 짐이 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장관이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소동에서와 같이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경우 안보에 있어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김종대 디펜스 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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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일했습니다. 또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국방부 정책보좌관 등으로 일하며 군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이메일 :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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