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가 촉발시킨 중러의 한반도 ‘재균형 전략’

강태호 2016.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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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봄 한반도는 걷잡을 수 없는 가파른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한미는 북한의 핵 실험과 로켓발사에 맞서 제재와 굴복의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에서의 제재 등 한미일이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기 위해선 제재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한미는 강력한 제재가 없으면, 북한에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강력한 제재는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신호라고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다면 중러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제재를 앞세울지라도 북한의 핵 경제 병진노선에 맞서는 제재와 협상의 병진노선을 내세울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중러의 지지는 제재를 위해서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의 북핵 협상에서 북한의 핵포기를 얻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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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 시스템을 구성하는 X밴드 레이더(위 사진)와 미사일 포대, 그리고 패트리엇 3( PAC-3) 요격 미사일(맨 아래)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앞장서서 그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선제 대북제재에 나서야 국제 공조가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 국제공조는 북한의 고립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중러를 배제함으로써 대결구도를 자초하는 것이다. 지난 2월 11, 12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잇따라 열린 한미, 미중, 한중 외무장관회담은 한미와 중국(러)간의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을 그대로 보여줬다. 윤병세 외무장관은 존 케리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유엔 결의는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하고 실효적인 ‘끝장 결의(terminating resolution)’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또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도 “엄중한 상황에 대해 특단의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북한이 앞으로 5차, 6차 핵실험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측의 책임있는 역할을 촉구했다.
  그러나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제재는 본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협상을 통한 해결 궤도로 돌려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월 12일 케리 장관과의 회담에서도 “중국은 제재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표명했다”며 “공동 목표는 한반도 핵문제를 대화와 담판(협상)이라는 정확한 궤도로 돌려놓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왕이 부장은 사드배치 문제를 두고 한미 모두에 대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기회를 틈타 중국의 안보 이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중국은 작심한 듯 같은 날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사드 배치에 대한 단호한 자세를 거듭 표명하기도 했다. “결연히 반대하며 엄중한 우려를 표시한다”는 그의 발언은 한미동맹이 사드 도입 협의 사실을 밝힌 이후 가장 강한 의사표시였다. 중러에게 한미의 협상을 배제한 유엔의 ‘끝장 결의’는 외교적 무시이며, 사드배치는 정면 대결을 불사하는 위험한 군사조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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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외교부장과 존 케리 국무(위), 윤병세 외교장관과 케리 국무(중간), 윤병세 외교와 왕이 부장   


 제재국면에서 사드배치의 한미 대 중러의 대결국면으로
 
 지금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냉전적 대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한미일은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를 응징하기 위한 개성공단 철수에 이어 미국의 초강경 대북 제재법 발효 등 강도 높은 대북 제재와 전례 없는 무력시위를 동시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미국의 핵 무기 전개등 군사적 무력시위는 2월 하순이후 본격 준비단계에 들어가는 한미 합동 군사연습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미국이 보여준 괌에서 발진한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격으로부터 시작해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 등 미국의 핵무장 전략자산을 동원한 무력과시는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맞선 대응조처를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남북한은 각각 4월의 총선과 5월의 노동당 당 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은 사드 배치는 물론이고 독자적 핵무장론에다 북한 체제의 전환을 공언하는 등 무책임한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모든 강경 대결을 진두지휘 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1월 6일 북한 핵실험 이후 2월 16일 국회연설까지 40여일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은 강경발언을 쏟아내며 외교안보 정책 결정과정을 주도했다. 개성공단 중단이나 사드 배치 공식화에서 통일부, 외교부 등 해당부처의 의견 수렴은 물론이거니와 토론도 없었다는 후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5자회담론을 들고 나온 건 지난 1월 22일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의 연두 합동 업무보고에서였다. 그는 “6자회담은 지난 8년여간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며 6자회담 무용론을 비치면서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시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심지어 이를 ‘다양한 창의적인 접근 방법’의 하나라고 말했다. 국내적으로는 정부부처와 재계에 대해 ‘경제 살리기 법안’ 서명의 줄 세우기를 강요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의 가능성을 닫아두고 일방적인 굴복을 강요하는 5자회담을 창의적인 접근법으로 간주하는 것은 권위주의 통치자의 일관된 사고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5자회담안은 나오자 마자 중러의 반발을 불러왔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같은날 정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이 북한을 뺀 5자회담을 추진하자고 제안한 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6자 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만해도 중국은 우회적이고 신중한 태도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의 제안을 보다 직접적으로 반박한 것은 러시아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월26일 연두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중국보다 더 강경하고 직설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한국측이 우선 ‘6-1’ 형식으로, 즉 북한을 제외하고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들었다”면서 “이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 누군가를 또 고립시키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 3년 동안 미국과 일본, 한국 등 서방 측 참가자들은 모든 종류의 유연한 접근법을 거부하고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단호한 태도를 고수해 왔다”고 말했다. 협상을 거부한 쪽이 한미일이었다는 인식인 셈이다.
   라브로프는 또한 한국, 미국의 핵무기를 적시하며 북핵 문제만이 아닌 한반도 비핵화가 돼야한다고 명시했다. “북한, 남한, 미국 어느 누구도 한반도에서 핵을 보유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은 자국 핵무기 일부를 다시 한반도로 배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브로프 장관은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했다는 확신은 없다”면서도 “만약 그것이 수소폭탄이었다면 모든 종류의 핵물질 북한 반입을 엄중하게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등 관련 제재들이 효과가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제재에 대한 의문 제기다.
 이런 러시아의 판단은 북러 관계와 앞으로 전개될 북핵 문제 향방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중요하다. 우선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이래 북중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북러관계가 그 빈공간을 채워왔다. 북중관계의 악화라는 상황에서 북한은 그만큼 러시아에 의존해 온 셈인데 라브로프의 발언은 북러관계가 오히려 더 강화될 여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 내용에서 본다면 러시아의 입장은 5자 회담과 징벌적 제재를 추구하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방향과는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러시아의 이런 입장은 제재가 목적이 돼서는 안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으로서 6자회담 재개가 동시에 추구돼야 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5자회담 발언 직후 이례적으로 주한 미 대사관의 성명을 통해 지지를 밝힌 것은 박근혜 정부를 내세워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것으로 보였다.
  한반도에서 사드 배치를 강행해 중국과 정면 대결하려는 것이 미 국방부와 록히드 마틴 등 미 군산복합체의 이해에 그치지 않고,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어떤 것이든 2월7일 북한의 로켓 발사와 그 직후 역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드 배치를 공론화하면서 사드는 활 시위를 떠나고 말았다. 중국은 이제 북한이 아니라 4차 핵실험과 로켓발사를 중국 봉쇄의 명분으로 이용하는 남한과 미국을 중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했다며 공격할 것이며, 북한과의 결속을 강화할 가능성마저 있다. 사드 배치는 남한이 중국의 대북 압박을 위한 카드가 될 수가 없다. 오히려 실제적인 배치가 진행되면 그것은 중국에게 ‘남한의 핵실험’으로 간주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드배치 공식화 결정은 제재 국면을 사드 배치를 둘러싼 미-중(러) 및 한-중 사이의 대결국면으로 바꿔버렸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실험이 아니라 사드 배치로 제재냐 협상이냐의 갈림길을 넘어서 전면적 이고 복합적인 대결구도에 직면하게 됐다. 사드 배치가 최종 합의되면 국내에서는 배치 후보지역의 거센 반발에 따른 내부의 심각한 갈등은 물론이고, 남북을 둘러싼 한반도를 돌이킬 수 없는 대결국면으로 몰아갈 것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시대착오적인 냉전질서로 회귀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것인가? 핵실험 이후 사드배치 공식화에 이르는 한달여의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 내린 결정들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와 격변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 핵심 주변국들의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은 중국의 ‘반접근(anti-access)/지역거부(area denial)’ 전략과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이후의 흐름은 한반도를 미중대결의 제 2 전선으로 만들고 있다.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새로운 냉전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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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공군기지의 스텔스 전투기 랩터 F-22

 

 3월7일부터 시작해 4월30일까지 이어지는 한·미 키리졸브·독수리훈련에는 1만5천 명의 미군이 참가한다. 작년에는 3천5백명 정도가 참가했으니, 올해는 무려 1만1천여명이 증원됐다. 군은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해병전력을 지난해에 비해 5배 정도 늘어난 8,000명 가량 투입할 예정이다. 이미 괌에서 전략폭격기 B-52 편대가 출격해 대북 위협 비행을 했고, 핵 잠수함 노스 캐롤라이나가 동원됐다. 미국은 F-22 랩터 2대를 아예 한국에 배치했다. 또 주한미군이 본토에 있던 PAC-3 미사일 1개 포대를 추가로 오산 미 공군기지에 배치한 것은 다목적 포석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은 미 텍사스주에 주둔 중인 제11방공포여단 43방공포연대 1대대 D포대가 ‘긴급 전개 대비태세 연습’을 위해 수송기에 실려 지난 2월8일 한국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8기의 패트리엇-3를 보유 중인 D포대는 오산 공군기지에 주둔한 미 35방공포여단과 함께 유사시 북한군이 쏘는 단·중거리 미사일을 고도 15~30㎞에서 요격하는 방어훈련을 하고 있다. PAC-3는 음속 3.5~5배의 속도로 고도 30~40㎞에서 북한의 단거리미사일을 요격하는 하층 방어체계로, 고도 40~150㎞에서 미사일을 맞추는 사드와 중첩해 운용해야 명중률이 높아진다. 이와 달리 우리 군이 보유한 PAC-2 미사일은 북한의 미사일 탄두을 직접 타격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탄이 터지는 방식이라 요격률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이번에 새로 투입된 PAC-3 부대는 미 본토에서 사드를 운영하는 제11방공포여단 소속이라는 점에서 사드 배치를 위한 사전조치로 보인다. 주한미군 측도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연습하기 위한 배치”라며 이 같은 해석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탐지ㆍ교란ㆍ파괴ㆍ방어하는 ‘4D’작전개념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PAC-3를 추가로 투입한 것은 사드 배치를 위한 가교를 마련하고 한반도의 미사일방어(MD)를 강화시키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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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C. 스테니스 호


 미 본토에서 스텔스 전략폭격기 B-2와 새로 미 태평양 함대에 배치된 핵추진 스테니스 항공모함의 항모 전단도 다음 달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런 군사적 대응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2013년에도 선보였던 일종의 전술교본인 플레이 북에 따른 계산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미 태평양 사령부는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에 이어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이명박 정부가 연평도 인근에서 실탄사격 연습을 강행하겠다고 밝히면서 남북의 정면 군사충돌 가능성이 커지자 북한의 군사위협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이 플레이 북을 2012년 12월에 마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2103년 4월3일자)에 따르면 그 목적은 북이 위협을 가할 경우 훨씬 강력하고 압도적인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지 못하도록 제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 정부의 지나친 군사적 대응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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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해병대의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16일 국회 연설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북한 정권을 변화시키겠다”고 말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은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한미는 이번 군사연습이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 훈련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한미는 지난해 6월 북한 전면적 남침에 대비한 기존의 작전계획(작계) 5027 대신에 북한의 국지도발과 핵·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 위협의 증가 등 군사 안보상의 환경 변화에 대응한 작계 5015를 수립했으며, 이번에 이를 적응한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미군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무력화하고 핵무기를 쓰지 못하도록 선제 대응하기 위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례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키리졸브 독수리 연습에 함께 진행되는 한미 해병대의 상륙작전인 쌍용훈련에는 미군의 수직이착륙기인 오스프리도 투입돼 전력을 내륙으로 빠르게 전개하는 입체적인 작전을 펼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게다가 언론은 한 술 더 떠 참수 작전, 그러니까 북한의 지도부 제거를 목표로 미군의 최정예 특수부대도 참가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응징과 보복이라는 이름 아래 전쟁 위기와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남쪽에게 더 유리하다고 보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본격 군사연습에 앞서 한미는 2월19일부터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을 한반도에 신속하게 전개하는 연습에 들어갔다. 육군은 이날 육군 제2작전사령부와 미 8군사령부가 한미 연합 전시증원(RSOI)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RSOI는 수용(Reception), 대기(Staging), 전방이동(Onward Movement), 통합(Integration)의 약어로, 유사시 미 증원 전력의 한반도 전개 과정을 의미한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RSOI 훈련은 부산항 제8부두에서 미군 물자를 하역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미 양국 군의 경호차량은 미군 물자를 실은 컨테이너 차량 수십대를 에워싸고 북쪽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공중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헬기가 엄호작전을 펼쳤다. 이번 훈련은 2작전사령부 예하 53사단 등 4개 사단과 항공단, 국군수송사령부, 미 19 지원사령부 뿐 아니라 철도공사, 도로공사,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도 참가한 민·관·군·경 합동 훈련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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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경북 왜관 캠프캐럴에서의 미 육군 사전 배치물자 철로 수송작전


 미 대북 제재법과 사드 배치로 중국 압박
 
 미국의 대북 제재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만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2월 18일(현지시간) 미국의 첫 대북제재법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공식 발효됐다. 일본 정부 역시 19일 오후 임시각의(국무회의)를 열어  Δ북한 국적자 입국 및 선박 입항의 원칙적 금지 Δ북한에 기항한 제3국 선박의 입항 금지 Δ대북 송금 제한 확대 등의 대북제재 방안을 마련했다. 한국은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라는 고강도 조치를 취했다. 박 대통령이 2월16일 국회연설에서 밝힌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가 앞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취해 나갈 제반 조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은 미일의 이런 양자 제재 조처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군사적 차원의 무력시위를 별도로 한다면 개성공단 철수 말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조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대북제재법의 경우 사드배치와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재법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인권유린, 사이버 해킹 등과 연관된 제3국의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해서도 제재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또한 북한에 대한 ‘돈세탁 우려 대상국’ 지정 여부를 미 재무부가 법 시행 180일 이내 결정하도록 해, 미국이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식 금융제재를 가할 길도 열어놨다. 이 경우에도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금융회사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다만 법안은 세컨더리 보이콧의 실행 여부를 행정부의 재량권으로 맡겨 놓았다. 그만큼 미중간에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미국의 이번 대북제재는 기본적으로 북핵이 존재하는 한 중국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않을 수밖에 없다는 중국 책임론의 논리를 깔고 있다.
   미국은 사드 배치 문제 역시 중국의 대북 제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사드는 중국과 상관 없이 우리 안보의 필요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정부의 논리를 약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앤서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2월17일 <PBS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대북 압박 차원에서 사드 배치 같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북 제재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자신들의 대북 지렛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사드 배치 같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피력했다. 그런 조치가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정부가 견지해온 입장과는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 협의를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한미 연합방위력 증강 조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은 박근혜 정부의 이런 논리를 일축했지만, 미국 스스로 사드 배치를 미국의 재균형 전략으로 공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논리는 더더욱 설자리를 잃고 있는 셈이다.
  북핵 문제에 대해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온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아시아 재균형전략을 추진하면서 이런 논리를 견지해왔다. 미중은 그동안에도 북핵 문제를 놓고 비슷한 책임공방을 벌여왔다. 지난 2014년 4월 오마바 대통령의 일본과 한국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동일한 논리로 중국을 압박했다. 그는 4월1일 워싱턴 DC ‘아시아소사이어티’가 마련한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 관련 전화 토론회(conference call)에서 중국이 북한 비핵화란 목표에 진정으로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대북 경제협력에 적극 나서는 등 대북제재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중국이 국경지역, 즉 북한의 안정과 북한의 핵능력 차단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의 우선순위를 놓고 갈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러셀은 ”북한의 핵무기 능력 추구와 그 운반 수단인 탄도미사일 개발이야말로 지역 불안정의 근본 원인(fundamental driver of instability)“이라고 단정했다. 따라서 중국이 진정한 지역안정을 원한다면 이 근본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그는 “한미일 3국의 군사훈련이나 한반도 주변 병력 집결 등은 북한을 억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중국이 이를 원치 않는다면 대북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했다. 그의 발언은 사드 배치의 명분을 북한의 노동미사일 위협으로 내세우면서도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블링큰 부장관과 다를 바 없다. 중국이 사드가 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지역안정을 해친다고 생각한다면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을 막으라는 것이다. 그러자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러셀의 발언 며칠 뒤인 4월10일 워싱턴 DC 미국평화연구소(USIP) 강연에서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강제로 하도록 만들라는 것은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라고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에 ‘불가능한 임무’를 요구하면서 ‘만일 중국이 못하겠다면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데 있어 건설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그는 비판했다.
 중국은 당시만 해도 미국이 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머물렀다. 지금 중국의 외교는 분명 다르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1월 7일 미중은 외교장관 전화통화에 북핵문제 대응에 긴밀히 협력할 것에 동의했다. 케리 장관은 중국의 대북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북한 문제를 더 이상 ‘기존 방식대로(business as usual)’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1월8일 화춘잉 중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북핵문제의 원인과 해결의 관건은 중국에게 있지 않다”고 강조함으로써 케리 장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2월2일 이번엔 대니얼 러셀 미 동아태 차관보가 북한의 핵실험은 “대북제재를 반대해온 국가에 싸대기를 날린 것”이라며 중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러자 2월3일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자회담이 중단되고 대북제재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결국 그 타깃이 미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응수함으로써 뺨 싸대기를 맞은 것은 오히려 미국이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과정 중 사익을 도모하려는 어떠한 국가의 행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협상을 거부하고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무시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오히려 북핵 위기의 원인이라는 점을 직접 거론하기까지 했다. 이는 과거 한반도 비핵화를 앞세워 북한의 핵실험 및 로켓발사에 대해 유엔의 대북 제재결의는 물론이고 한미의 요구를 수용하던 자세에 비한다면, 크게 달라진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의 요구와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이는 미국의 중국견제를 목표로 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맞선 시진핑 정부의 한반도 재균형 전략이라 부를만하다. 

 

 왕이 외교부장 한반도 핵문제에 3개 마지노선 제시


 왕이 부장은 2월 11, 12일 독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한중, 미중 외무장관과의 회담 뒤 1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나라든 한반도 핵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하려는 데 대해 견결히 반대한다(堅決反對)”면서 한반도 정책의 전환을 분명히 했다.  
 왕이 부장은 이 인터뷰에서 “항장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유방을 죽이는 데 있다(項莊舞劍,意在沛公)”, “사마소의 야심은 길 가는 사람도 다 안다(司馬昭之心 路人皆知)”는 고사를 인용했다. 비유적으로 말했지만 그 뜻은 미국의 사드 배치가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조처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리고 중국 정부가 새롭게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 정책의 3개 마지노선(半島政策 三底線)’을 밝혔다. 외교적으로 마지노선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것으로 최후통첩과 같은 의미다.
 “첫째, 정세가 어떻든 한반도에 핵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북측이든 남측이든, 스스로 만들든 외부에서 들여오든지 막론하고. 둘째, 무력을 사용한 문제 해결은 안된다. 중국은 한반도에 전쟁이나 동란이 터지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중국 자신의 정당한 국가 안전 이익은 반드시 효과적으로 지키고 보장해야 한다.”
  이는 중국이 그동안 일관되게 유지해 온 △한반도 비핵화 목표, △한반도 평화 안정 수호, △대화 협상 통한 해결이라는 ‘한반도 정책 3원칙’의 정책기조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북한 핵뿐 아니라 한국의 핵무장 및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반대하겠다는 걸 분명히 했다. 두 번째 전쟁 반대는 ‘대화 협상 통한 해결’ 의 원칙을 현재의 상황에 비춰 강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북미가 직접 당사자라고 명시함으로써 과거의 6자회담 재개라는 원론적 접근법과 다르다는 걸 분명히 했다. 그는 “우리는 계속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흔들림없이 한반도 비핵화 과정을 추진할 것”이나 “솔직히, 한반도 핵문제의 초점은 미조(북) 쌍방에 있다. 우리는 미조 쌍방이 협상장에 앉아 서로의 합리적 우려를 해결하고 모두가 바라는 목표를 끝내 실현하도록 촉진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대신에 중국의 이익이 보장돼야 하며 침해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걸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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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찬룽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왕이 부장의 이런 관점은 과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국의 이익이라는 입장과는 다른 것이다. 중국 내 국제관계 권위자인 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같은 이들에 의하면 이는 이미 예견돼 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6월12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이 전례 없이 강경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원래 지역 안정을 중시한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안정과 권익 수호를 모두 중시한다. 주변국들이 실력을 행사한다면 중국도 가만있지 않고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 강약은 주변국에 달려 있다. 이웃 나라들이 강하게 나오면 중국의 대응도 강해질 것이다. 주변국의 반응 강도가 약하다면 중국도 그에 맞출 것이다. 이는 중국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는 이를 시진핑 지도부의 외교가 전략적으로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유지하되 전술상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뤄낸다) 가 강해진다는 것으로 설명했다.
 놀랍게도 왕이 외교부장의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이런 원칙은 앞서 언급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1월26일 연두기자회견의 내용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라브로프 장관은 왕이 부장의 <로이터통신> 인터뷰 다음날인 2월 13일 뮌헨 안보회의 연설에서도 중국과 동일한 정세인식을 보였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그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한 제재 이외에 한미일 등이 잇따라 추진하고 있는 양자 제재 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리고는  한미를 겨냥해 “유엔 안보리를 우회해 북한을 응징하는 일방적인 행보를 취하고 대화를 통해 상황을 안정화시키려는 공동의 노력에 해를 끼치면서 역내에 군사력을 증강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월18일  “어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방적 제재 형태로 취해지는 특정 국가에 대한 모든 압력은 불법적”이라면서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취하는 제재만을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중국이 2월7일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배치 공식화를 밝힌지 1시간만에 김장수 주중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2월 12일 박노벽 주러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한반도의 사드 배치가 러시아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 아님에도 러시아가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논리는 명확하다. 러시아 외무부가 2월10일 발표한 논평은 “미국 글로벌 미사일 방어(MD) 시스템 요소의 역내(한국) 배치는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한반도 핵문제를 추가로 복잡하게 할 수 있으며, 이같은 행보는 미국의 MD 시스템이 국제 안보와 전략적 안정성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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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중국의 새로운 접근-한반도 ‘재균형 전략’


  왕이 외교부장의 3개 마지노선으로 제시된 북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원칙은 미국이 중국 책임론을 내세워 북한 핵문제에 대해 중국을 압박해 온 것이 상당기간 거슬러 올라가듯이 어제 오늘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은 아니다.
   사실 2013년 공식 출범한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과 유엔제재 이행을 공언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당시 성균 중국연구소의 이춘복 책임연구원이 중국의 ‘한반도 재균형 전략’이라고 적절히 명명했듯이 이는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이 우려하는 안보불안-북미, 남북관계를 동시에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여기엔 미국의 대중국 견제로 작동하는 아시아 중시전략(또는 재균형 전략)에서 북핵 문제가 한미일의 대중 포위전략에 이용되서는 안된다는 판단과 미중 신형대국관계 추진에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두 나라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인 조처가 2013년 5월7일 중국은행이 북한의 무역결제은행인 조선무역은행의 계좌 폐쇄였다. 중국은행은 중국의 4대 ‘국유 상업은행’ 가운데 하나이며, 당시는 2013년 2월 3차 핵실험과 북한의 전면 대결전 공세로 촉발된 군사적 충돌의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즈음이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워싱턴포스트>와 한 회견에서 밝힌 “북한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중국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요청에 화답한 것이었다. 또한 이 조처는 미국과의 사전 교감에 의해 나온 것이기도 했다. 그에 앞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월13일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을 재검토하는 조짐이 보인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행의 계좌폐쇄 조처가 취해진 날은 워싱턴에서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첫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두 정상이 이 회담에서 북한에 던진 메시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버마’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받아들여 북한이 ‘핵무기를 버리고 평화와 진전의 길’로 가는 의미 있는 조처를 취한다면 버마처럼 북-미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중국은 한미가 요구한 북한에 대한 제재조처와 병행해 북한이 우려하는 안보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2013년 9월19일 왕이 외교부장은 워싱턴서 케리 장관과의 회담 뒤 “6자회담을 어떻게 재개할지에 대해 미국과 새롭고 중요한 합의를 도출할 자신이 있다”고 밝히고, 브루킹스 연구소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이 2005년 9월 6자회담 공동성명과 우라늄 농축작업 일시 중단 등을 수용한 2.29 북미 합의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는 6자회담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9.19 공동성명 합의를 거부하는 자세를 보였던 북한의 팔을 비틀어 입장을 바꾸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9월18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10주년 기념 국제토론회에서 김계관 북 외무성 제1부상은 왕이 외교부장의 발언을 확인해줬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비핵화가 북한의 정책목표라고 밝히고, 6자회담의 전제조건 없는 즉각 재개와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자 케리 국무장관은 2013년 10월3일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진정한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 그러나 북미간 대화는 재개되지 못했다. 앞서의 베이징 토론회에 참석했던 문정인 교수(연대 정외과)에 따르면 한미 두나라를 대표한 참석자들은 6자회담의 선행 조처로서 ‘2·29 합의에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포함해+ α를 추가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재는 이 간극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에 반발했다. 2013년 10월 12일 국방위원회는 “미국이 진정으로 조.미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다면 대조선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우리가 핵무기를 내놓으면 대화도 있고 관계 개선도 있으며 불가침도 있다는 감언이설로 감히 그 누구를 흔들어보려고 꾀한 것”이라면서 미국 협상안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 북미는 서로 상대에게 의지가 없다며 비난에 나섰다.
  북한은 핵과 적대시 정책의 상호 폐기를 위한 협상을 요구한 것이지만 미국은 ‘비핵화 없이는 어떤 협상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013년 4월 케리 국무장관은 하원 청문회에서 북핵 문제에서 과거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의 조건 없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 경제적 지원 및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은 더 이상 안하겠다는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이런 북미의 입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은 핵무기는 최후의 보장장치로 일종의 보험(헤징)인데, 그걸 제일 먼저 내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핵물질이나 시설 등은 몰라도 비핵화가 핵의 완전 포기라면 핵군축을 통해서 체제 안보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한 응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비핵화를 거부하면서 관계개선을 요구하는 건 기만으로 본다. 전향적이라고 할 수 있는 케리 국무장관 마저도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는 풀 수가 없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취한 유례없을 정도의 적극적인 중재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위샤오화 중국 국제문제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연구부 주임은 미국이 “북한에 협상이 아니라 항복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에 대해 느슨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북한 핵무기 확산에 따른 위험보다 그것을 이용할 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즉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 강화, 한국 일본 등과의 군사협력 및 동맹 체제 강화 등 북한 핵무기를 통해 얻는 이익을 보건데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중국과 남한에 ‘우리(미국)와 발맞춰 북한을 압박하라’고 강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위 주임은 이런 미국의 태도가 장기적인 측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북한이 최근 경제에 무게를 실을 수 있는 것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자신감에 근거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핵을 포기하라는 것은 협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 관여로서의 ‘한반도 평화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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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외교부장 비숍 오스트레일리아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

  중국의 새로운 한반도 균형전략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즉 지역 안정이라는 소극적 목표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중국의 권익을 추구하고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이는 왕이 외교부장이 2월 17일 오스트레일리아의 줄리 비숍 외무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새로운 북핵문제 해법’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왕이 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각국과 가능한 문제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이라면서 “한반도에서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동시에) 병행해 추진하는 협상방식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은 한국이 사드배치로 중국견제에 나서는 만큼 중국 또한 북한의 정당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화시보(京華時報)>는 2월18일 이를 두고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은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에 제시된 것이다. 새롭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9.19 공동성명은 6자회담의 목표를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로 제시하면서 북한이 요구한 직접 당사국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협상을 추진한다는 합의를 담고 있다. 또 북미간의 상호주권 존중, 평화적 공존, 관계정상화 추진, 미국의 대북 불가침 의사 확인 등 북한의 체제안전을 담보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미일이 독자적 대북제재와 함께 안보리 결의로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시점에서 중국이 이를 공식적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6자회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9.19 공동성명의 합의이행이라는 관점 보다는, 비핵화와 평화체제가 동등한 과제라는 관점에 입각해 직접당사자로서 북미의 직접 담판에 강조점을 더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이 밝히고 있듯이 “이런 방식의 취지는 각국의 주요한 우려 사항을 균형적으로 해결하는 한편 대화·담판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조속히 대화 복귀의 돌파구를 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이 보여 왔던 자세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6자회담의 틀 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우선하며 북한체제의 안전에 대한 우려사항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일반론적인 접근이었다면, 이번에 왕이 부장이 내놓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은 한미의 제재와 비핵화에 맞서 대등한 입장에서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왕이 부장은 특히 지난해 7월 이란 핵협상이 타결된 것과 북핵 위기를 대비하는 것을 거론하면서 “이란 핵문제가 해결된 것은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는 동시에 지난 10년간 대화와 협상을 이어왔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게다가 그는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심각하게 위반한 데 대한 ‘필요한 대가를 치를 필요가 있다’고 말해 한미가 요구하는 '끝장 결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을 보였다. 따라서 그가 안보리 결의가 제재를 논의하는 동시에 “반드시 협상을 부활시키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왜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달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언론성명을 통해 새로운 추가제재 결의안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50일 가까이 결의를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 유엔 안보리는 5일 만에 결의 1718호를 채택했다. 2차 핵실험에 대해서는 18일만에 1874호를, 3차 핵실험에 대해서는 23일만에 결의 2094호를 채택했다. 한미일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 러시아의 동의 없이 안보리의 보다 강도 높은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할 수 없다.  제재 결의를 채택하려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명시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협상의 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한미일은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얻기 위해선 제재와 협상의 병행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미일의 대북 독자 제재와 사드배치는 중러로 하여금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한의 정당한 안보적 권리를 대변하는 한반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북한은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외교적 고립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계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태호 한겨레선임기자 kank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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