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용기로 쓴 ‘천안함의 진실’

김보근 2011. 01. 17
조회수 7845 추천수 0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
이승헌 지음 / 창비·1만3천800원
 

00377752801_20101120.JPG의복 대신 거짓과 허영을 걸친 임금님 이야기를 다룬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그 거짓을 드러낸 것은 아이의 천진함이었다. 어찌 보면, 20년 동안 미국에서 연구에만 전념해온 이승헌 버지니아대학 교수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발언하게 된 것도 그런 ‘천진함’과 관련이 있다.

 

그는 ‘북한 어뢰설’로 불리는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서 문제점을 발견한 뒤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지 않고 발언에 나섰다. 그런 모습은 임금님의 거짓을 폭로한 아이의 순수함과 닿아 있는 측면이 있다. ‘물리학자 이승헌의 사건 리포트’라는 부제를 단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는 그 순수함이 어떻게 그를 거대한 국가권력의 ‘위선과 거짓’에 맞서게 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과학의 양심’이라는 순수함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5월10일부터 10월10일까지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그의 고민을 날짜별로 기록해놓은 이 책의 행간에선 사실 ‘두려움’도 읽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1번 어뢰’의 흡착물과 관련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조작된 것”이라는 그의 일관된 주장은 이런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난 7월12일 미국에 있던 가족이 그가 머물던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는 버스 시간이 안 맞아 30분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에 도착해 있던 아내는 그에게 “얼마나 걱정했는데… 한국 정보부에서 잡아가지 않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국정원은 펄쩍 뛰며 부정할 수도 있지만, 그에겐 그 말이 절실히 와 닿았다. 당시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천안함’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물었다. 그는 거기서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뒤덮었던 독재의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 정부가 “‘1번 어뢰’와 천안함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들은 같은 것이며 폭발의 증거”라고 ‘과학의 이름’으로 주장하고 나설 때 그의 양심과 용기는 그를 침묵할 수 없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정부가 과학적 증거라며 내놓은 분석방식이 엑스선 회절(XRD)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파동이 장애물 뒤쪽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이용해 물질을 분석하는 이 방식은 그의 박사학위 주제이기도 했고, 그 뒤 20여년 동안 연구에 쓰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5월 말 합조단의 엑스선 회절 데이터를 처음 보자마자 ‘이상함’을 발견했다. 특히 분석방법에 따른 데이터의 불일치는 합조단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강한 확신을 그에게 심어줬다. 그는 그 뒤 다만 과학자로서 확신하는 바를 가감없이 얘기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의 양심과 용기를 기록한 이 책은 한 과학자의 개인 기록에 머물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모순투성이의 정부 주장이 훗날 진실인 양 행사하는 것을 막는 주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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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근
한겨레신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북한문제 및 한반도 주변정세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7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배고파요 오마니!’ ‘연변의 쉰들러’ 등 북한 식량난 문제를 표지이야기로 쓰는 등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 왔습니다. 박사논문으로 <북한 천리마 노동과정 연구>(2006년)을 썼으며, 엮은 책으로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2010년), 공저로는 <북한 주민의 일상생활>(2008), <남북연합 형성ㆍ운영의 거버넌스>(2008) 등이 있습니다.
이메일 : tree21@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peac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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