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녘 삶 속 슬픈 이혼

2015. 1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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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이 흔한 세상이다. 나의 친인척 중에도 이혼경험이 있는 사람이 한두 명쯤 있고, 나와 아내의 친구들 중에도 이혼하였거나 재혼한 사람이 더러 있다. 이혼이 뉴스거리가 되지도 못하는 시대지만, 실제 이혼 사례를 들어보면, 기구한 사연도 많다.
 최근 탈북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희한한 이혼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에선 이혼을 하려면 재판을 통해야만 한다. 남한처럼 부부간 합의만으로 이혼할 수 있는 합의이혼제도는 없고, 재판소의 판결로만 이혼이 가능하다. 북한에서 인민참심원으로 재판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최 선생으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북한의 사회주의 대가정 이념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사회주의 대가정’이라는 이념으로 사회를 유지한다. ‘사회주의 대가정’은 북한 사회 전체를 하나의 가정으로 보고, 수령·당·인민의 관계를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의 관계와 같다고 본다. 가정이라는 1차 집단을 확대해서 국가라는 2차 집단을 통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강하고, 그 결과 이혼에 엄격한 편이다. 북한 소설 중 호평을 받는 백남룡의 『벗』이라는 장편소설은 1980년대의 북한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주인공인 판사가 이혼재판을 하면서 파탄에 이른 부부를 서로 화해시키는 과정을 소재로 한다. 이 소설에서 판사는 어떻게든 이혼을 막아보려 노력하는데, 남편과 부인을 따로 만나 파탄의 원인을 찾아내는 열정이 절절하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진 1990년대 후반이후 북한 내 사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국가 배급이 끊기게 되면서, 가족이 흩어져서 장사하러 다니기 시작했고, 돈 벌기 위해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이혼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최근에는 부부의 한 쪽이 집을 나간 지 3년이 넘었을 경우에는 인민반장이나 담당보안원의 확인을 거쳐 부부 한 쪽의 신청만으로도 이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낮전등'으로 불리는 북의 남편들

 

 내가 들은 사례는 2007년 경 사리원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 무렵 북한에서는 나이든 여성에게 판매대를 하나씩 허용해 주어 장사를 할 수 있게 허용했는데, 40대의 여자 두 명이 장마당에서 판매대를 나란히 하고 장사하고 있었다. 한 명은 혼자 사는 여자 김옥순으로, 제법 돈을 많이 모았다. 다른 여자는 남편은 있지만 돈은 별로 없는 리영순이었다. 리영순은 옆에서 장사하는 김옥순으로부터 12만 원 정도를 빌린 처지였다. 북한 근로자의 한 달 월급이 3천원 내지 5천 원 정도니 12만원은 제법 큰돈이지만, 반면에 시장환율상으로는 백 달러 정도의 돈이다. 북한에서 남편은 ‘낮전등’이나 ‘멍멍개’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남편의 별칭으로 ‘만 달러짜리 열쇠’라는 말도 생겼다는데 경제규모가 커진 탓인가 짐작한다.
  리영순의 남편은 부인이 장사하러 갈 때 짐도 날라주고, 밤에는 자전거에 부인을 태워 집으로 같이 가기도 하면서 부인을 돕고 있었다. 리영순의 남편은 낮에는 의무적으로 직장에 나가지만, 원자재가 부족한 북한의 공장은 가동율이 낮기 때문에 하는 일은 별로 없었고, 따라서 월급도 적은 편이었다. 평소 김옥순은 리영순 부부가 같이 다니는 것이 부러워서 같이 사니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느 날 리영순은 김옥순에게 “내 남편이 좋으면 가져라”고 했다. 그 대신 빌린 돈 12만원은 받지 말라고 했다. 리영순의 처지에는 남편의 도움이 좋기는 하였지만, 그 보다는 남편을 먹이고 입히고 술값까지 대느라 힘들었던 것이다. 리영순은 남편에게도 “내가 벌어 먹이기도 힘드니, 당신은 이제부터 김옥순네 집에 가서 살아라. 김씨는 나보다 잘 사니 여기 보다 잘 먹을 수 있을 거다”라고 했다.

  그 뒤로 남편은 김씨 집에서 같이 살았다. 잘 먹고, 잘 입게 되니 남편은 보기에도 좋아졌고, 김씨와 같이 다니는 모습도 다정했다. 두 사람이 다정히 지내는 모습을 본 리영순은 심술이 나서 재판을 걸었다. 김씨를 상대로 해서 12만원 줄 테니 남편을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재판 결과 리영순이 패소했다. 남편은 “이제 본 여자와는 못 살겠다. 내가 물건도 아니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달픈 삶이 빚어낸 슬픈 이야기다.


권은민 변호사(북한학 박사)


*이 글은 남북물류포럼의 칼럼으로 실린 글입니다.

 http://www.kolofo.org/?c=user&mcd=sub03_01&me=bbs_detail&idx=1854&cur_page=1&sP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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