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직전의 일본 평화헌법

2015.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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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시위.jpg

  지난 5월 아베 신조 총리 관저 앞에서의 평화헌법 수호 시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인 그 누구도 징집령이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 적이 없었다. 전쟁을 경험한 노인층부터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본 적도 없는 젊은층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일본인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쿠테타’라 불려도 손색없는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의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은 1년 이상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해 오고 있다. 기록적인 무더위를 기록한 올해 여름도 예외 없이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7월 18일에만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의 해외 활동 범위를 넓힌 법안, 일명 ‘집단 자위권’ 행사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어 한다. 일본 혹은 우방국 한 곳이 공격을 받는 경우, 그리고 국민을 보호할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에 집단 자위대 행사가 가능하다는 법안이다.(1)

  하지만 일본 헌법, 특히 헌법 제 9조는 ‘일본 국민은 국가 주권으로서 전쟁을, 그리고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 위협 혹은 무력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바로 이 포기한 권리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회 양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고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전쟁 트라우마에 여전히 시달리는 국민들이 있기에 국민투표에서 승리를 거머쥐기는 힘들 것 같다.

  처음에 아베 총리는 헌법 9조를 직접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임기 동안에 헌법 96조를 개정해 국회가 유연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다수의 표를 얻어 헌법 개정이 채택될 수 있도록 애썼다. 하지만 이것마저 여의치 않자 아베 총리는 마침내 헌법 9조의 재해석에 나서게 되었다. 안보법안을 통해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위법이자 역사를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헌법전문가인 히구치 요이치의 설명이다. 요이치의 생각은 법학자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6월에 NHK 여론 조사를 통해서도 공공법 법학자 90%가 집단자위권 법안을 ‘위법’이라고 평가했다.(2)

  자민당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있음에도 지난 7월 16일에 중의원 안보법제 특별위원회에서 안보법안 제·개정안에 대한 표결을 강행, 찬성 다수로 가결했다. 일본법상 참의원이 60일 이내에, 즉 9월 14일까지 가결하지 않으면 중의원이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가결할 수 있다.(3) 아베 총리는 국회 개최 일자를 9월 29일로 연장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지지율 역시 그 어느 때보다 급락했다. <니혼게이자이> 경제지가 7월 말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7%가 통상 국회에서 안보법안이 채택되는 것에 반대했고(26%가 찬성) 50%는 아베 총리의 정책 전반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38%는 동의).(4)

  안보법안에 대한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은 1960년 미일 안보조약 비준(군사력 증강 조약)에 대한 반대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본 조약을 구상한 인물은 기시 노부스케 총리로 바로 현재 아베 총리의 외조부다. 하지만 현재 아베 총리의 안보법안에 대한 반대는 그 형태나 성격이 1960년 당시의 시위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아베의 안보법안 반대 시위에는 도쿄와 그외 도시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1960년대의 미일 안보조약 비준 반대 시위에는 대학생들, 그리고 야당과 노조의 지지를 등에 업은 젠가쿠렌(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이 주로 참가했다. 게다가 1960년대의 반대 시위는 공권력과 빈번하게 맞설 정도로 폭력적이었고 많은 시위대가 밝은 미래와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하지만 반대로 현재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는 비폭력적이며 민주주의가 위협 받을까봐 걱정하는 일반 시민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시위 방법도 타악기를 연주하거나 가면 등으로 변장을 하거나 각종 슬로건을 내세우는 등 다양하다. 또한 시위대는 안보법안의 내용뿐 아니라 본 법안을 무조건 밀어 붙여 통과시키려는 정부의 방식에도 반대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다 비정규직 등으로 일상이 불안정한 지금의 젊은층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주요 회원 중 한 명인 오쿠다 아이키가 설명한 표현을 빌리자면 ‘행복한 미래가 없는’ 세대로 통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안보법안을 아베 총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로 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안보법안이 일본의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시켜 ‘아름다운 일본’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 하고 있다.(5)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에 대한 새로운 기본법, 내부의 적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를 제한하는 2013년 12월의 특정비밀보호법이 이 같은 프로젝트에 속한다.(6)

  한 마디로 아베 총리는 태평양과 아시아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 후 연합국을 대표하는 점령군 미군이 강요한 헌법을 버리려는 보수주의자들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즉, 일본을 군사 주권이 있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다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인 배경을 잊고 하는 행동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의 희생자들을 포함해 일본인 3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연합군 국가에서도 수천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록 헌법은 미군이 작성한 것이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일본 국민도 이 헌법을 원했다. 지난 번 여론 조사가 보여주듯(7) 일본 국민은 평화롭게 살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안보법안을 통해 미국에게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에서 군사적으로 미군의 하수인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헌법 9조가 없었다면 일본의 지도층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지 못했을 겁니다.”(8) 히구치의 설명이다. 지난 5월 미국 순방에서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 변화의 원칙을 더 대폭적인 협력의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고 했다.(9)

  반대로 일본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1947년의 헌법은 서문부터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일본 국민은 다시는 정부가 주도한 전쟁의 공포를 겪고 싶지 않다고 결심하며 주권은 국민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유엔 헌장은 인류에게 막대한 고통을 두 번이나 안겨준 폐해를 미래 세대가 경험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목표다.

  외국인과 일본 정치인 등 일부 사람들은 이 평화 헌법은 순진하고 고리타분하고, 나아가 이상주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세계의 상황에서 이 같은 평화의 의지는 오히려 세계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시아도 군사 충돌을 흉내내는 군사 작전에 몰두하기보다는 평화의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1) <National Secyrity Strategy>, 국방부, 도쿄, 2015년

(2) 1146명의 법학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 조사. 야후 뉴스 재팬, 2015년 8월 7일

(3) 자유국민당(PDL)과 코메이당(평화를 원칙으로 하는 불교신자가 주축이 된 정당)은 480석 중 326석을 얻었다.

(4) <니케이 아시안 리뷰>, 도쿄, 2015년 7월 27일

(5) 2006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책으로 영어로 번역되었다. Abe Sinhzo, <Towards a Beautiful Country : My vision for Japan>, Vertical, 뉴욕, 2007년

(6) ‘State secrecy law takes effect amid protests, concernaver press freedom>, <The Japan Times>, 도쿄, 2014년 12월 10일

(7) 참고할 도서 : Higuchi Yoichi, <Constitutionalism in a Globalizing World : Individual rights and National identity>, 도쿄대학교 출판부, 2002년

(8) 'Japan security bills reveals irreconcilable divide between scholars, politicians', <The Japan Times>, 2015년 6월 12일

(9) 참고할 도서 : Jeffrey W. Hornung, <US-Japan : a pacific alliance transformed>, The Diplomat, 도쿄, 2015년 5월 4일


글·카츠마타 마코토 (勝俣 誠)

경제학자, 메이지 가쿠인 대학의 명예교수, 국제 평화 연구소 연구원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졸. 번역서로는 <워크숍 매뉴얼>(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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