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돌아보며-없어진 폭력과 남아 있는 폭력

김종대 2014.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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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된 1914,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영국군과 독일군은 상부 지시와 무관하게 참호를 떠나 완충지대에서 함께 성탄을 축하했습니다. 양 측 군인들은 먹을 것과 담배를 나누고 축구 경기도 벌였습니다. 지친 전쟁터에서 벌어진 이 유명한 일화를 기념하는 기념물이 세워졌고, 매년 기념식이 열리며 영화와 노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한 중학교 교사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2013)>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자 한 남학생이 참 큰일이야, 비싼 밥 먹이고 총 주니까 엉뚱한 짓을 하네라며 혀를 차더랍니다. 이 반응에 교사는 더 놀랐습니다. 그만큼 어린 학생들이 전쟁에 무감각하더라는 이유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육군의 마샬 준장은 미군 지도부를 충격에 빠뜨리는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일선 전투원들의 실제 사격 명중률은 50%에도 미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살해당하는 걸 두려워하지만, 그보다도 누군가를 살해해야 한다는 걸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제대로 겨누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용감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들마저 막상 사격을 할 때는 반 이상 위축되더랍니다.

  총을 버리고 꽃을 들자는 호소에 인간의 영혼은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병사의 총구는 흔들립니다. 이 때문에 모든 지휘관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병사들이 제대로 사격을 하게 할 것인가에 모아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폭력이 감소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습니다. 스티븐 핑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그의 1,200 페이지가 넘는 긴 저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역사상 가장 끔찍한 오늘,’ ‘날로 증가하는 폭력등 현대의 잔혹한 폭력을 둘러싼 여러 비관적 통념에 도전합니다. 성경과 각종 고전문학, 인류학의 방대한 도서관을 헤집어 서기전 8000년부터 오늘날까지의 폭력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그는 인간의 폭력이 감소해 왔고, 어쩌면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문명화 과정과 인도주의 혁명을 거쳐 냉전시대의 긴 평화의 과정을 겪고 이제는 새로운 평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폭력 감소의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아직 남아있는 폭력을 없애는데 기여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없어진 폭력과 남아있는 폭력


  근대 이후 사적 영역에서 행사되던 폭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국가 간 교류와 협력, 여성주의, 인권개념의 발전으로 폭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 역사에서 1백만 이상 사망하는 국가 단위의 전쟁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졌습니다. 불과 70년 전만 하더라도 4,000만 명이 사망한 제1차 세계대전, 7,000만 명이 사망한 제2차 세계대전, 390만 명이 사망한 한국전쟁, 190만 명이 사망한 베트남전쟁 등 20세기에만 18,000만 명이 전쟁이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을 끝으로 신기하게 이렇게 많이 죽는 국가 단위 전쟁은 사라졌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잔혹성을 보이는 폭력은 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콩고 내전의 경우 총23개 무장 정파가 참여하여 500만 명이 사망한 금세기 최대 비극이었습니다. 21세기에는 국가 간 전쟁으로 사망한 숫자보다 국가 내부의 내전으로 사망한 숫자가 20배에 달합니다. 국가 간의 분쟁은 국제기구의 발전, 경제적 상호의존의 증가와 다양한 협력의 성공으로 현저히 줄어든 반면 인종 차별과 이민자에 대한 억압, 종교 분쟁 등 국가와는 무관한 사회 내부의 투쟁은 여전히 격렬합니다. 국제정치보다 국내정치가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내전의 폭력도 최근에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역시 평화화 과정이라는 스티븐 핑거가 말한 진화의 과정은 꾸준히 일관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복고풍의 폭력

 

  그런데 저물어 가는 2014년의 대한민국은 이제껏 우리가 알던 것과 달리 낯설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권력구조, 서열구조가 새로운 폭력으로 인식되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잊어왔던 새로운 폭력이 등장하는 것은 돈과 권력을 움켜진 사람들의 짐승 같은 행위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그 동안 우리 자신에게 수 없이 되풀이 되었던 질문을 다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윤 일병은 왜 죽어야 했는가? 이 죽음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나? 윤 일병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가 있고, 더 놀랍게도 그의 비통(悲痛)을 향유하는 강자들의 질서가 있습니다. 괴롭히면 괴로워해야 하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야 하는 철저히 파괴된 인간으로서만 생존이 가능한 그런 질서가 있습니다. 윤 일병이 사망하기 직전에도 동료 이 일병은 오직 개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네가 살 수 있다고 윤 일병에게 생존법을 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윤 일병은 그걸 하지 못했습니다. 가해자가 괴롭히는 대로 비통해하는 걸 빨리 보여주어야 하는데 윤 일병은 스스로 인격을 파괴하면서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게 가해자를 더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조종하는 대로 반응해야지, 왜 못하냐면서 더 분노했습니다. 자신의 인격을 포기할 수 없는 피해자에게서 가해자는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더 가혹한 폭력으로 응징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강자가 약자에게 분노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그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더 강한 응징이 나오는 것이지요. “왜 너의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느냐면서 잔혹성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문득 고개를 돌리면 무릎 꿇고 가혹한 행위를 당하다가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던 사무장에게서도 그 윤 일병의 모습이 보입니다. 과일 던져주며 짐승 취급하는 걸 못 이겨 분신자살을 한 아파트 경비원에게서도 윤 일병의 모습이 보입니다. 딸을 잃고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다가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된 김영오 씨에게서도 윤 일병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법원에서도 청천벽력같은 판결을 받고 이제는 죽음을 무릅쓴 철탑 농성에 돌입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게서도 윤 일병의 모습이 보입니다. 북한에 우호적인 기행문을 썼다고 토크쇼 행사장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 신은미 씨에게서도 윤 일병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모든 윤 일병에게 사회는 말합니다. “저항하지 마라, 차라리 개가 되어라라고. 어쩌면 윤 일병이 제왕인 이 병장의 의도대로 더 민첩하게 반응하고 자신의 인격을 더 학살하였더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갑()들의 분노를 이해한다면 최근 사회적으로 회자되는 갑 질, 진상 짓이 왜 빈발하는 것인지에 대한 배경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사람이 죽는 일은 줄어들지만 우리 사회 내부의 구조적 폭력은 오히려 강화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어떤 권력구조, 또는 어떤 집단의 수직적 서열구조가 신성하고 고귀하며 우월한 것이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라는 통념도 수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권위, 그런 집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치 있는 것은 오직 인격적으로 평등한 민주적 시민공동체 하나뿐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인간이 고안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땅히 존중받고 배려 받아야 할 자존감이 있는 인격의 집합체로서 시민공동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사회와 다른 특별한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집단들은 어떤 범죄가 있어도 은폐하려고 할 것이고, 내부의 반인격적 행위도 합리화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는 대표적으로 학교, 군대, 기업이 그런 자기만의 규범으로 작동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폭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감옥의 문을 부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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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일했습니다. 또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국방부 정책보좌관 등으로 일하며 군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이메일 :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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