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 통제 실종과 불발탄 해군

김종대 2014.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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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NLL교전과 남북 대화

 

  인천에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가 다년 간 후인 지난 107일에 합동참모본부는 오늘 오전 950분쯤 북 경비정 1척이 서해 NLL 0.5노티컬마일(900m) 침범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의 유도탄고속함 1척이 북한 경비정에 대해 경고통신과 경고사격을 실시했고, 북한 경비정이 대응사격을 해 아군도 대응사격을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는 여러 모로 의문입니다. 지금의 교전수칙은 북 경비정이 우리가 설정한 일종의 해상 전술조치선을 넘으면 그 때 경고방송이나 경고사격을 하고 북방한계선(NLL)을 넘으면 격파사격을 할 수 있습니다. 합참에 따르면 오전 950분경에 NLL을 넘어 온 북 경비정 1척에 우리가 사거리 1276함포 5발을 발사하자 북 경비정은 기관총으로 추정되는 수십발의 화기를 발사했습니다. 이에 우리가 대응사격으로 76함포 10여발과 유효사거리 4~840함포 80여발을 발사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대로 주포인 76mm가 불발탄으로 기능이 정지되고 이어 40mm 마저 같은 상황이 된 고속함은 포를 수리하기 위해 10분 정도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북한 경비정은 어선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뒤늦게 우리 참수리 고속정이 40mm 포를 발사였으나 한 발도 맞지 않았습니다. 남북 대화 분위기를 고려하여 군이 경고사격에 그치는 자제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현장에서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한 바대로 모든 전투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불발탄으로 무산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저는 매우 의미 있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사실은 NLL 부근에 북의 경비정은 3척이었고, 그 중 한 척만이 NLL을 넘어왔다는 점입니다. 단 한 척이 우리의 공격을 받아 희생되는 걸 북한도 좌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술 대형을 유지했던 것 아닌지도 의문입니다. 당시 합참의장이 화상으로 작전을 지휘하던 중에 조준사격에도 북 경비정이 격침되지 않자 왜 히스토리(역사)를 못 만들었지라며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5년 전 대청해전 이후 해군의 역사를 새로 쓸 기회를 놓쳤다는 겁니다. 또한 청와대가 남북대화를 고려하여 군을 자제시켰다는 근거도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왜 격파하지 못했느냐는 이유로 합참, 해군 작전사령부, 2함대사령부 간에 원인 및 책임에 대한 공방이 이어진 정황이 포착됩니다. 지금 합참이나 해군은 남북대화 분위기까지 고려하여 작전의 수위를 조절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 간에 불상사가 벌어져 대화 분위기가 깨지는 걸 아쉬워한다 하더라도 군은 자기 길을 갑니다.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군을 그렇게 만들어 왔습니다. 남북관계를 정치권력이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오직 현장의 군사지휘관 대응 결과에 따라 조정해 나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북 전단 살포와 국가 위기관리

 

20101123일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 한 해병대 대령은 저에게 해병 연평 부대장은 북한에 더 많은 포를 쏠 수도 있었으나, 어쩌면 나 때문에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어느 수준에서 포 사격을 자제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만일 그 때 연평부대장이 더 많은 포를 북한의 후방, 아마도 해주까지 발사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판단은 역사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포격사건이 있고 난 후 언론은 해병대의 미흡한 대응을 질타하면서 더 단호하고 신속한 대응을 주문하였습니다. 이후 군의 현장 지휘관들은 더 단호하게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압박을 받아 왔습니다.

서해에서 우리 해군이 북한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하여 살해하면 군은 국민들이 환호하고 대통령이 잘했다고 칭찬을 기대합니다. 200911월에 대청도 인근에 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을 단 3분 만에 3960발의 총포탄을 발사하여 적어도 8명을 사상시키고 배를 완파했습니다. 우리 측에 아무런 피해도 없었던 승전에 이상의 합참의장은 대통령이 칭찬해 줄 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싱가포르에서 특사가 비밀접촉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합참의장에게 전화로 굳이 그렇게 강경하게 대응했어야 하느냐?”며 질책을 하는가 하면, 청와대는 해군의 과잉대응 여부를 조사하였습니다. 이게 억울했는지 당시 합참의장은 최근 한 월간지에 당시 상황을 토로하며 이 대통령을 비판합니다. 이것이 바로 군의 정서이고 지금의 최윤희 합참의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의 고사 기관총이 우리 측으로 발사되고 나서 정부는 사흘 째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간단체 전단 살포에 대해서도 정부는 제지할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 역시 별 다른 대책이 없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렇게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군은 김관진 장관 시절에 남북 간에 사소한 충돌이 전쟁으로 확전되는 걸 방지하는 유엔사령부 정전 시 교전규칙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수립해 놓았습니다. 교전규칙은 지난 60여년간 한반도에서 확전을 방지하는 규범이자 현장 지휘관에 대한 지침이지만 최근 이것은 무력화되었습니다. 김관진 전 장관은 북의 도발에 자위권 차원에서 정면으로 대응하고 필요시에는 북의 포격 원점뿐만 아니라 그 지원세력과 지휘부까지 타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쏠까요, 말까요묻지 말고 먼저 쏜 다음에 나중에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합참의장이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군 지휘관들은 확전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에 국방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군 지휘관들에게 일체의 정치적 고려 없이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안보와 대화가 상호작용하는 방식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마저 자신의 국군통수권을 내려놓는 발언을 했는데 작은 충돌이 전쟁으로 갈지, 아닐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 정부도 이번 군의 대응사격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일체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쟁이 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긴장이 조성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현장 지휘관의 현명함을 믿는 것 말고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지금 이 나라에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치권력에 의한 군사력에 대한 통제, 즉 문민통제가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습니다. 군이 사실상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있으며, 국가가 관리해야 할 위기를 군이 독점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위기를 관리하는 규범이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요?

결국 안보는 안보대로, 남북 대화는 대화대로 각기 진행하되 그 결과는 운에 맡기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군사는 군사논리로, 외교는 외교논리로 제각기 갑니다. 일찍이 키신저는 군사는 절대적 논리이고, 외교는 상대적인 논리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둘의 균형을 맞추되 키신저는 외교로 하지 못할 일은 없다며 군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숨겨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군사는 정치에 예속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군사가 외교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의 성패는 군사지도자의 선의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는 군이 부담스러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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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일했습니다. 또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국방부 정책보좌관 등으로 일하며 군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이메일 :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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