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사의 아버지가 국방부장관께 보내는 편지

2014.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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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성민 상병 영결식 장면. 뇌종양을 앓던 신 상병에게 군은 두통약만 처방했고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지난 2013년 사망했다. 영결식이 있던 날 그 어머니는어려운 가정 살림에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아들을 생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101일은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 국군의 예순 여섯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 국군, 참 잘하고 있다"며 축하해 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국군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올곧은 군인의 기강은 어디가고 그저 책임 회피와 비겁한 변명만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선임병과 군 간부의 조직적인 구타와 가혹행위, 지독한 인권 유린으로 참혹한 죽임을 당한 윤 일병 사건이나 또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은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군의 실상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놀라지도 않습니다. 왜냐구요? 그 동안 은폐되어서 세상 사람들이 몰랐을 뿐, 이전에는 없었던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3의 은폐된 윤 일병 사건은 차고 넘쳐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군에 아들을 보낸 이 땅의 부모들은 애가 타고 있습니다. 국민의 의무로 징병해 간 우리 아들들을 이 나라와 국방부가 제대로 지켜줄지 걱정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군대에 가다

 

201310월의 어느 가을 날, 아침부터 비가 참 많이 왔습니다. 그날 제 아들이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습니다. 입대 전날, “머리 깎는데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가위가 필요 없는 머리 손질을 하는 아들을 보며, 그리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보며 저는 낄낄낄 웃었습니다. 일부러 크게 웃으며 "더 바짝 깎아 달라"고 미용사에게 말했지만, 그러면서도 제 눈가 끝자락엔 눈물이 맺혔습니다. 아마 아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아들을 보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제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거창한 '국민의 의무' 운운하는 말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한 일이라는 등등의 말도 저는 솔직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병역은 헌법상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라며 신성 운운하는 분들을 타박했습니다. 헌법에 '병역은 국민의 의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건 삭제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뜻대로 본다면 현재 병역 이행은 남자만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 여성은 국민이 아니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병역을 '대한민국 남자만이 하는 아주 특별한 애국행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군대를 가야 소위 철이 들고, 진짜 남자가 된다는 말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군대에 다녀왔고 또한 저의 많은 친구와 선, 후배들이 군에 다녀왔습니다. 그중에 원래부터 인성이 뛰어난 사람은 군대 다녀와서도 잘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오래 군 복무를 해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참 좋았던 사람이 욕을 잘하게 되고, 안 피우던 담배를 배워 오는 등의 모습만 봤습니다. 너무 안 좋은 예만 들고 있나요. 하지만 제가 본 군대가 그런데 어찌할까요.

 

그런 군대에 저의 아들이 입대했습니다. 스물 몇 해 전, 저의 아들로 태어나 저와 함께 부자지간으로서 깊고 넓은 사연을 나눈 저의 핏줄입니다. 저의 목숨보다 더 귀하고, 또 제가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아들입니다. 어려서부터 마음이 여렸으며 작고 귀여운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착한 아들, 책을 무척 좋아해서 상급 학교에 진급할 때마다 행복하다던 아들, 그 이유를 물으니 새로운 책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던 아들. 고등학교 때는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해, 담임교사로부터 제가 "부럽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만들어준 아들. 그런 아들이 군대를 간다고 하니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다 컸구나' 하는 통속적인 생각도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유약한 아들이 군대에서 고생 좀 하면서 성숙해지겠지하는 막연한 기대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앞선 건, 제가 가진 트라우마에 대한 자극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판문점 김훈 중위 사망 의문사 사건을 처음 다룬 1998년 이래 지금까지 수 백여 명의 군 사망사고 유족을 만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사연 하나 하나를 들으며 '과연 대한민국 군대에서 사병의 인권이 무엇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일명 윤 일병 사망사건)은 이전부터 제가 흔하게 접해온 사건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윤 일병이 오른쪽 다리를 집중적으로 맞아 절뚝였다면 제가 그동안 만나온 또 다른 김 일병은 왼쪽 다리를 맞아 절뚝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 군인 인권 문제는 그동안은 존재하지 않았다가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비극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군대에 저의 아들이 입대한다는 사실 앞에 저는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제가 그동안 들었던 사연처럼 늦은 밤, 군부대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불행한 어떤 사건의 시작이 되진 않을까, 한동안은 힘들었습니다. 특히 첫 휴가를 나온다는 아들의 연락을 받고 진짜로 휴가를 나오는 날까지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긴장한 이유는 그동안 만나온 군 사망사고 유족들 중 '첫 휴가를 앞둔 아들이 갑자기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 사연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들이 군에 입대하는 그날은 저 마음이 얼마나 심란했을까요.

 

국방부 장관님! 부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다가온 아들의 군 입소일. 저는 아내와 함께 아들을 데리고 보충대에 갔습니다.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이 먹고 싶다던 갈비를 사줬습니다. 저는 아들이 "배부르다"고 할 때까지 연신 고기만 구웠습니다. 이제 한동안 먹고 싶은 것을 제 맘대로 먹지 못할 아들의 입에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넣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후 보충대에 들어선 뒤 저는 저의 아들과 똑같은 수많은 장정들을 보며 이들의 부모 역시 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입소식 행사를 진행하던 연단 쪽에서 중령 계급을 단 대대장이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나 함께 온 가족 중 오늘 입소하는 장정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나 군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주변이 웅성거렸지만 나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러자 다시 대대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 나오셔서 용기 있게 말씀하시는 가족에게는 특별한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래 보충대에서는 집으로 전화를 할 수 없는데 지금 나오셔서 말씀하시는 분의 가족 장정에게는 1회 전화 사용권을 특별히 주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도 나갔습니다. 오늘 입소하는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뭐라고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이후 10명만 접수한다는 소리가 들렸고 다행히 저는 그중 9번째로 연단에 도착했습니다. 나온 사람들이 한 이야기는 다양했습니다. 한 여자 친구는 "변치 않고 기다릴 테니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했고, 또 누군가의 친구는 "먼저 가라, 나도 곧 따라갈게"라고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누군가의 고모부는 아버지가 없는 조카를 따라와 "기죽지 말고 잘 생활하고 휴가 나오면 맛있는 것 사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의 차례가 왔습니다. 저는 연단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오늘 입영하는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저의 아이에게 이야기 하려 나온 것이 아니라 이 부대 높은 분들과 이 나라 국방부 장관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나왔습니다. 오늘 저의 아들은 저의 품을 떠나 국방부 장관의 지휘 아래 병사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저의 아들과 같은 많은 청년들이 군복으로 갈아입고 대한민국의 군인이 됩니다. 매년 27만 여명이 군에 입대하지만 그중 150여명은 부모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에서 사망해 끝내 그 아들을 제 부모가 돌려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탁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에게 그리고 이 부대 높은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오늘 부모의 손을 잡고, 그리고 친구와 애인의 손을 잡고 입대하는 모든 군인들을 21개월이 지난 20157월에는 안전하게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것을 약속해 주십시오. 만약 전쟁이 나서 저의 아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아들을 조국에 바쳤다고 생각하며 국가를 원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아니라면 누구도 다쳐서는 안 됩니다. 죽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을 약속해 주십시오.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은 우리의 아들입니다. 그 아들을 국방부 장관의 아들처럼 여기고 보살펴 주십시오. 이것이 오늘, 군에 아들을 보내는 이 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장관님, 우리의 아들들을 당신 아들처럼...

 

그날 제가 연단에 나가 발언한 덕분에 아들은 입대 후 3일이 지나가던 날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내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입소 후 일주일여가 지나던 날, 집으로 우체국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소포 안에서 아들이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이 나오자 아내는 또 다시 울었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입대한 아들의 흔적을 확인하면서 울었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정말 잘 있는지 늘 걱정하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후 아내는 언론에 보도되는 각종 군 인권 사고를 접하면서 분개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안절부절 못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군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직접 다루기도 하고 접하면서 무척 실망스러운 군의 태도에 분개할 때가 많습니다. 도대체 언제나 이런 군의 잘못된 행태가 바로 잡힐까요.

 

많은 이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이 군인을 대할 때 당부하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말입니다.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60만 장병을 장관의 아들처럼만 대해 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민구 장관의 아들 역시 군 복무를 했습니다. 한민구 장관도 아들이 군 복무를 할 때 안전하게, 무사하게 잘 근무하기를 얼마나 바랐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60만 군인들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다시는 윤 일병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들려오는 군대에서의 군인 사망 소식을 들을 때마다 군인의 부모가 겪는 마음의 고통을 헤아려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군에서 누군가가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든, 아니면 다른 사유 때문에 죽든, 이 나라가 징집해서 데려간 모든 군인의 죽음은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군이 창설된 후 지난 66년간 군복무 중 사망하였으나 국가로부터 아무런 예우 없이 사라진 군인이 모두 39천여 명입니다. 이는 국방부의 공식 발표입니다. 이 군인의 가족들은 지금 이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한 채 통한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국방부 장관은 알아야 합니다. 더 이상 이런 비극적인 가족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군인이 죽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이 이 나라에서 아들을 군인으로 보낸 모든 아버지를 대신하여국방부장관께 드리는 간곡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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