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표’ 기어갈 때 ‘황매’는 날았다

201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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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요구성능(ROC)에 미치지 못하는 탱크


 노후 전차 대체와 기동 전력 강화를 목표로 군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K-2 흑표전차 사업이 미완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특히 성능과 신뢰도 면에서 최초 작전요구성능(ROC)에 미치지 못하는 전차를 군이 납품받기로 하면서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합참은 지난 10월 28일 K-2 흑표전차가 정지상태에서 시속 32㎞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초 ROC상 8초 이하에서 9초 이하로 완화했다. 이에 따라 파워팩 문제로 거듭 전력화가 지연된 K-2 흑표전차가 군에 납품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K-2 흑표전차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K-1 전차의 후계 기종으로, 120㎜ 55구경장 활강포가 채택돼 사거리가 크게 늘어나는 등 막강한 화력을 구사한다. 또 분당 10발을 장전할 수 있는 자동장전장치가 탑재돼 3명의 승무원이 전차를 운용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K-2는 핵무기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장갑과 대전차무기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능동방어체계가 적용돼 전차의 생존성을 크게 높였다. 이와 함께 목표물을 자동획득하고 추적할 수 있는 4세대 자동사격통제장치를 적용했으며 다른 전차와 데이터를 공유하며 전투할 수 있는 통제컴퓨터가 탑재됐다.

초기 700대가 생산될 예정이었던 K-2 흑표전차는 지난 1995년 기초 연구가 시작된 후 2003년부터 체계개발에 돌입, 2007년 시제차량이 나왔으나 실전배치까지는 7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당초 흑표는 독일 레오파드 전차 등에 사용된 1500마력짜리 독일제 MTU-883엔진을 단 파워팩이 장착될 예정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연구개발을 담당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한국은 차세대 전차의 파워팩을 제작할 기술이나 기반이 취약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일제 파워팩을 채택키로 하고 사업이 한창 추진되고 있던 지난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파워팩도 국산화를 추진키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는 파워팩 국산화를 주장하며 사업 참여를 원한 업체의 요구와 맞물려 노무현 정부의 방위산업활성화 차원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지난 2005년 4월 방사청과 ADD의 관리 감독 하에 엔진 개발은 두산인프라코어가, 변속기는 S&T중공업이 개발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전차 차체를 만드는 체계개발은 현대로템이 맡았다.


파워팩에 문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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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국내 1280억 원을 들여 개발한 파워팩이 테스트 도중 각종 문제를 일으켰다. 실제로 2009년 2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124건의 중대 결함이 발견됐다. 냉각팬 불량으로 인한 엔진 과열, 변속기 불량으로 인한 기어 변속 불능, 조향장치 불량으로 인한 방향 전환 불능, 오일 냉각기 균열로 인한 누유, 엔진 실린더 파손 등이 수시로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도 개발에 실패한 1500마력짜리 전차용 파워팩을 기술력이 부족한 국내 업체가 짧은 기간 안에 만들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무모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한 K-2 흑표전차는 순조롭게 개발이 진행돼 이미 지난 2008년 9월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한 K-2 흑표전차 40대가 올해 군에 인도돼 주행테스트 등 전투적합성 실험을 거쳐 오는 2018년까지 실전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국산 파워팩이 성능과 신뢰도를 확보하지 못하자 군은 초도 물량 100대는 독일제 파워팩을 장착해 양산하고 나머지 물량은 국산 파워팩을 장착한 후 양산에 들어갔다. 동시에 2012년부터는 야전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뤄지지 못했다. 앞서 국산 파워팩에서 발견된 124건의 결함 중 지난해까지 82건의 결함에 대해 보완이 이뤄졌으나 실린더 내구성과 냉각기 누유 등은 완벽히 개선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K-2 흑표전차의 전력화 시기는 지난해로 예정됐다 다시 올해 3월로 연기되는 등 난항이 계속됐다.

  K-2 흑표전차는 최첨단 전투장비가 탑재된 4세대 전차로 평가된다. 특히 주동력원인 파워팩은 K-2 흑표전차를 구성하는 핵심장비라 할 수 있다. 무게가 수십 톤에 이르는 전차의 주된 임무는 거친 전장에서 적과 전투를 벌이며 승리하는 것이다. 전차의 기동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파워팩이므로 선진국도 파워팩을 핵심기술로 인식하고 기술 개발 노력을 펼치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다시 말해 파워팩은 패기만으로 단시일 내에 개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T-50 개발을 교훈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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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및 전력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K-2 흑표전차와 비교되는 것이 바로 2005년 양산에 들어간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골든이글:황매) 개발 성공 사례일 것이다.

전투기는 공군을 대표하는 무기로, 현대 첨단 기술의 복합체인 전투기를 자체 개발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힐 만큼 기술 장벽이 높은 분야다. 한국은 광복 이후 주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 항공기를 운용해 오던 중 1980년대 말 국산 항공기 제작에 나섰다.

공군은 1974년 8월 노스롭 그루먼사가 개발한 F-5E/F를 도입하면서 처음으로 국내에서 전투기 조립생산하게 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내 기술로 전투기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결국 노스롭사는 한국과 면허생산 계약을 체결했고 마침내 1980년 대한항공이 ‘제공호’로 불린 이 항공기의 국내 생산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때 삼성정밀(삼성테크윈의 전신)이 제공호에 장착되는 ‘J85-GE-21’엔진을 조립생산하면서 KF-16과 T-50에 탑재된 미국제 엔진을 면허생산을 하며 엔진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후 북한의 공군 전력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된 ‘한국형 전투기사업(KFP)’에 따라 한국은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개량된 F-16C/D 140대를 도입했다. 한국은 일부 직도입 물량을 제외하고 직접 조립생산을 하게 되면서 T-50 사업을 위한 기술을 축적하게 됐다. 또한 KFP사업을 통해 ‘KTX-1’으로 불리는 기본훈련기 개발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 T-50개발에 성공하면서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전투기를 자체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

한국이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을 개발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1980년대 말 한국 공군은 북한의 기습남침을 우려해 1996년까지 고등훈련기를 도입할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었다. 공군은 낮은 가격에 성능이 뛰어나고 신뢰도도 국제적으로 검증된 베스트셀러 전투기 구매를 추진 중이었다. 국내에서 개발할 경우 개발비가 올라가고 성능도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개발이 성공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공군은 ADD를 중심으로 추진되던 국산 고등훈련기 사업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ADD는 호메이니 집권 후 미국이 제공한 첨단 전투기를 날릴 수 없었던 이란 등의 예를 들며 유사시 국산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ADD의 끈질긴 설득으로 공군은 결국 국산 고등훈련기 개발을 허락하게 됐다. 국산 고등훈련기 개발로 방향이 선회하자 국방부는 급한 대로 영국 BAe사(BAE의 전신)의 고등훈련기 ‘호크’ 20대를 도입키로 했다.

ADD는 호크를 수입하는 댓가로 BAe사로부터 시험비행사 양성 및 시뮬레이터 기술 제공, 고등훈련기 설계기술 제공을 약속받았지만 BAe사의 방해로 고등훈련기 사업은 좌초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 록히드 마틴과 KTX-2 기술지원협정을 체결하고 고등훈련기 기술을 지원받게 된다.

록히드마틴의 요청과 국내 방산의 발전을 위해 정부 당국은 T-50 개발을 민간 주도로 추진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KAI가 T-50의 개발 및 생산을 담당하게 됐다. KAI는 지난 1999년 삼성항공 항공부문과 대우중공업 항공부문, 현대항공이 합병해 탄생했다.

T-50 개발 성공 이면에는 한국 독자개발이라는 욕심 대신 세계 최고 전투기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관계자들의 안목이 있었다. 록히드 마틴은 세계 최강인 스텔스 전폭기 F-22를 개발한 회사다. 이 회사의 투자를 받고 기술 지원을 통해 T-50을 공동 개발함으로써 KAI는 항공기 및 전투기 개발의 핵심 노하우를 축적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록히드 마틴과의 협력은 T-50의 향후 전세계 수출까지 보장하는 절묘한 포석이 됐다.

T-50은 영국의 호크 등 기존 아날로그식 초음속 고등훈련기에 비해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디지털화된 첨단 고등훈련기다. 개발자들은 T-50을 개발하면서 개발프로그램, 기체 및 전자장비 등에 대한 국산화는 강력하게 추진했으나 엔진만큼은 독자개발하지 않고 T-50에 적절한 미국 GE의 ‘F-404 엔진’을 장착했다.

T-50 개발자들은 한국은 아직까지 항공기용 엔진 개발 능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엔진을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 엔진 가운데 성능 요구도를 만족시키는 것을 구매키로 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비용도 문제가 됐다. T-50용 엔진을 독자개발할 경우 T-50 개발비는 16억 달러에서 30억~40억 달러로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단가가 상승할 경우 애초 수출까지 목표로 한 T-50의 수출은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한국 공군도 가격 부담으로 인해 구입 꺼렸을 것이었다.

설령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T-50용 엔진을 개발했다하더라도 T-50을 제외한 다른 항공기에는 탑재가 불가해 기술은 얻을 수 있으나 막대한 개발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항공기 엔진 개발은 자본과 기술이 축적된 이후에 시도해도 늦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독자 모델의 항공기를 자체 제작하는 국가는 10여개국으로 엔진까지 제작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4~5개국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의 예를 들어봐도 현대자동차도 처음엔 이탈리아에 디자인을 의뢰하고 일본제 엔진을 단 포니를 먼저 개발하고 이후 일정한 규모에 이르자 엔진을 국산화한 사례가 있다.

중요한 것은 T-50 개발과정에서 한국은 항공기 엔진 제작에 대한 노하우 축적 및 국산화를 서두르지 않고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엔진 제작을 담당한 삼성테크윈의 경우 1차 납품분 27대는 GE의 엔진을 단순 조립하면서 26%의 국산화를 달성했고 2차분 57대의 엔진에 대해서는 30%의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T-50 엔진의 조립 및 부품 국산화는 향후 비전투용 항공기 엔진 국산화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T-50 개발 성공은 선진국으로부터의 전투기 개발 기술 및 엔진 기술 이전을 추진한 국내 개발자들의 점진적인 전략과 개발 업체를 일관되게 지원한 정부의 정책이 맞아떨어지면서 가능했다는 평가다. T-50은 전투기 선진국이 주목하지 않은 초음속 고등훈련기 시장이라는 틈새를 파고든다는 전략 아래 사업이 진행됐다. 이러한 예상이 적중해 지난 2011년에는 4억 달러 규모의 T-50 16대를 인도네시아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기술 수준을 고려한 개발전략이 필요


다시 K-2 흑표로 돌아오자. 첨단 무기의 핵심부품을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기술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국내 개발을 고집하는 것은 자칫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가정이지만 현재 수준의 국산 파워팩을 장착한 K-2 흑표전차는 유사시 평양까지 이르기도 전에 고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당국은 ‘AT-4’와 같은 북한의 최신 대전차 유도탄에 흑표가 쉽게 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전투기 엔진이나 전차 파워팩은 최첨단 기술이다. 기술적 기반 없이 어느날 뚝딱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현대자동차도 처음엔 이탈리아에서 디자인을 사오고 일본에서 엔진을 사와 ‘포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출이 증가해 규모의 경제가 이뤄졌을 때 자체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2012년 K-2 흑표전차가 양산에 들어갈 것을 대비해 대규모 설비투자를 했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양산을 차일피일 연기하며 큰 손실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방산 관련 정책 당국은 현실을 냉엄하게 직시함으로써 제2의 K-2 흑표전차로 인해 국방과 방산업계가 멍드는 일을 미리 방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T-50 개발 성공사례는 두고두고 모범사례로 연구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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