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20년 시시포스 신화(상)

강태호 2014.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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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 기획북핵 20년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차관보는 얼마 전 국내의 한 학술회의에서 "봉쇄든 포용이든 지난 20년간 대북정책은 모두 실패했다"고 밝혔다.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자, 그럼 생각해보자. 왜 실패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난 20년 북핵의 궤적을 크게 둘로 나눴다. 
하나는 '합의와 퇴행'이라는 주제로, 합의는 어떻게 가능했고 왜 이행되지 못하고 파기됐는지를 짚었다.
다른 하나는 '위기와 반전'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전쟁의 위기로 치달았고, 어떻게 반전이 가능했는지를 추적했다.
마지막으로 북-미 최후의 담판을 내건 3차 핵위기의 본질은 무엇이고, 북한의 전략은 무엇인지를 분석했다.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2335자 29면 강태호



1차(1993년)에서 3차(2013년)에 이른 북의 핵실험은 일상화의 둔감함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 반복되는 위기는 시시포스의 신화를 연상시킨다. 시시포스는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에게서 받은 형벌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시시포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바위가 정상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다시 굴러 떨어지기 때문이다. 북핵을 둘러싼 대결과 갈등도 협상을 통해 힘겹게 합의에 이르긴 하나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위기-파국-반전(협상)-합의'는 끝을 맺지 못한 채 그 과정을 반복한다. 

2013년 봄, 이제 그 추락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위험한 질주가 예고되고 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것은 1993년 3월 12일이다. 꼭 20년 전이다. 1980년대 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북핵 문제는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나 1993년 2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결의에 맞서 한 달 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다. 1차 핵위기다. 1994년 6월 한반도는 전쟁 임박의 파국으로 치달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담판은 반전의 계기가 됐다. 북-미는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정상에 도달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는 이행을 둘러싼 갈등으로 곧바로 내리막길에 들어섰으며, 1998년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과 북한의 첫 3단계 로켓(대포동 1호) 발사로 위기를 맞았다. 이번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클린턴 행정부의 '페리 프로세스'가 반전의 계기가 됐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과 10월 '북-미 공동코뮈니케', 그리고 임기 말 북-미 미사일 협상을 타결짓기 위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합의됐다. 북핵은 마침내 정상에 오르며 긴 여정을 마칠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미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자 또다시 추락했다. 미사일 합의는 거부됐고, 불신과 대결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2001년 북한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악의 축'이 됐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평양에 보낸 특사를 통해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핵 프로그램을 가동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북한을 몰아붙였다. 북은 그보다 더한 것도 갖고 있다며 맞받아쳤다. 그해 10월부터 다음해인 2003년 1월까지 불과 3개월 사이에 제네바 합의는 붕괴됐다. 2003년 1월 10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최종적으로 탈퇴했다. 2월부터는 핵연료봉 재처리 작업에 들어갔다. 2차 핵위기다. 1차 핵위기 때처럼 2003년 3월 북-미는 정면충돌했다. 이라크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북한은 플루토늄 재처리를 강행하며 핵무장화로 나갔고, 미국은 예방공격의 '북폭론'(北暴論)을 검토하며 한반도 주변에 군사력을 증강했다. 한반도는 또다시 1994년처럼 전쟁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엔 중국이 적극 중재에 나섰다. 3월 초 첸치천 중국 부총리는 백두산 삼지연으로 날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담판을 했다. 가까스로 열린 3자회담을 거쳐 2003년 8월 6자회담이 열렸다. 바위는 더디게나마 정상을 향해 움직였다. 3년여 힘겨운 협상 끝에 2005년 2월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라는 고비를 넘어서 그해 9월 4차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이라는 합의를 이뤄냈다. 그러나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불법 금융거래와 초정밀 위조달러인 슈퍼노트 제조 의혹이 터져나왔다.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를, 북한은 6자회담 거부로 맞섰다. 이번에도 2006년 7월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확대, 10월의 1차 핵실험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1718호)로 파국을 향해 치닫자 반전이 되었다. 2007년 10·3 2단계 북핵 불능화 합의와 2차 남북 정상회담의 10·4 선언에서 합의된 한반도 종전 선언으로 바위는 다시 정상에 올라섰다. 

그러나 2000년 미국 대선이 문제였듯이 2007년엔 남한 대선이 합의를 뒤흔들었다. 북-미 공동 코뮈니케가 부시 행정부의 등장으로 무산됐듯이, 이명박 정부 들어 10·4 선언은 실종됐다. 그리고 2009년 장거리 로켓(인공위성) 발사에 이은 핵실험과 2012년 두 번의 인공위성 발사를 거쳐, 유엔의 대북 제재결의(2087호)에 맞서 2013년 1월 북은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1993년의 1차 위기는 10년 만인 2003년에 2차 위기로, 다시 10년 만인 2013년에 3차 핵위기로 그것도 공교롭게 모두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등 새 정부가 출범하는 2~3월에 재현됐다. 



글 / 강태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 

[북핵 20년 기획시리즈 ]
1.  북핵 위기 20년과 3차 핵실험: 합의와 퇴행 (중)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6422자 임수호


2.  북핵 위기 20년, 3가지 의문 (하)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5348자 김종대


3.  미완의 합의와 최후의 담판 (최종)
르몽드 54호  2013.03.10 본지    특집 5819자 강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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