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망사건으로 시작된 군 인사는 기무사령부와 헌병대 등 미묘한 권력게임의 흐름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수치수여식에서 박지만씨의 육사 동기생인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수치는 군 장성의 직위와 이름 등이 수놓아진 끈 깃발로, 대통령이 관례적으로 장성들의 삼정도(장군에게 상징적으로 지급되는 칼)에 달아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경질됐다기보단 배려받은 것
바로 4성장군으로 가기엔 부담
야전으로 한바퀴 돌려 내년에
군사령관 보내려는 의도로 보여윤일병 사건 책임 묻는 과정에서
국방장관-육참총장 갈등 조짐
헌병실장·인사참모부장에 대한
경질 와중에 월권-인사보류 논란
자기 줄 찾는 별들의 파워게임전인범 특전사령관과 장경욱 기무사령관의 경우더 황당한 사태는 헌병으로 이어졌다. 헌병실장이 징계를 받을 처지에 이르자 10월7일의 정기인사에서 육군은 아예 헌병실장으로 헌병 출신이 아닌 보병 김주훈 소장(육사 40기)을 임명했다. 이어 또다른 헌병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에 이종협 대령(육사 42기)을 정상진급이 아닌 임기제 준장 진급자(해당 직위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한시적으로 진급시키는 제도)로 발령냈다. 이에 헌병 장교들은 “사건 보고를 육군 인사참모부장이 독점하여 생긴 문제인데 왜 헌병이 초토화되느냐. 이렇게 되면 내년에 헌병에서 장군 진급자가 나올지도 걱정”이라며 조직의 안위와 지신의 진급에 대한 불이익을 걱정하는 눈치다.더 황당한 일은 기무사로 이어졌다. 현 정부에서 세번째 기무사령관이자 박지만씨와 육사 동기생으로 군 내 떠오르는 실세로 평가받던 이재수 기무사령관(육사 37기)이 전격적으로 경질되어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간 것이다. 이재수 사령관은 부임한 이래 육군 개혁 방향, 병영문화 혁신 방향 등 기무사 업무와 무관한 육군 정책발전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기무사가 육군의 정책까지 좌지우지하는 과시적 행태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샀다.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 기무사령관이 윤 일병 사건과 같은 군대 내 주요 사건에 대해 “적시에 조언하지 못했다”며 자청해서 물러났다는 국방부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실상은 기무사령관 경질이 아니라 배려에 가깝다. 기무사령관을 바로 4성장군으로 진급시켜 군사령관으로 내보내기가 부담스러우니까 야전으로 한 바퀴 돌려 내년에 군사령관으로 보내려는 꼼수에 가깝다는 이야기다.역대 정권이 군을 관리하면서 권력 직위인 기무사령관을 4성장군으로 진급시킨 사례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남신 대장(육사 23기)의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박지만 동기생들이 약진하는 현재의 군 추세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또다른 박지만 동기생인 현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경우 최근 고문체험훈련 과정에서 2명의 특전사 요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별다른 징계 없이 여전히 건재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기무사령관에 대해 “그게 배려이지 왜 경질이냐”고 반문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내년 4월께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친구들이 군 최고 요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충분히 보인다.정작 적시에 군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상부에 직언하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물러난 기무사령관은 전임 장경욱 사령관이다. 그는 작년 8월에 일선 사단장들의 군 인사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여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육사 27기)과 남재준 국정원장(육사 25기), 박흥렬 경호실장(육사 28기)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육사 28기)에다가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칭해 “군 인사를 관리하는 5개의 머리가 있다”는 야전 장교들의 여론이 가감 없이 기록돼 있었다. 김장수 안보실장은 과거 측근, 박흥렬 경호실장은 부산고 후배, 남재준 국정원장은 과거 육군본부 측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독일 육사 출신 후배를 각별히 챙긴다는 구체적 행태까지 적시되어 있었다. 김기춘 실장은 이 보고서를 김장수, 박흥렬에게 보여주었고, 곧바로 김관진 국방장관에게도 전달했다. 그 결과 10월에 군복을 벗은 사람은 장경욱 사령관이었다. 야전 장교들이 보기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무사도 군 유력자의 인사행태를 섣불리 건드렸다가 외려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껏 기무사는 권력에 직언을 하다가 그 역풍을 맞은 적은 있어도 권력에 영합하여 불이익을 본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윤 일병 사건으로 보고의 법적 책임자도 아닌 기무사령관이 경질되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김관진-박흥렬-한민구의 타협 산물?만일 기무사가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조언을 못한 사례가 있다면 올해 3월 말에 불거진 무인기 출몰 소동이 대표적이다. 기무사는 3월 말에 북한 무인기에 대해 “대공용의점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합동조사단의 간사 기관이었다. 그런데 기무사가 “별다른 위협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 무인기를 국정원이 수거해 가면서, 이 무인기는 4월에 ‘심각한 위협’으로 돌변했다. 4월 초에도 이런 정황을 전혀 알지 못한 김관진 국방장관을 비롯해 국방부 정보본부장 등은 무인기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 결과를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 그러나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 등이 국정원을 압박하여 이 무인기의 의미를 ‘심각한 위협’으로 바꾸자, 무인기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덮으려는 호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재수 기무사령관이 “사건 조사를 부실하게 했다”며 기무사 요원을 질책하고 김관진 장관이 무인기를 “심각한 위협”이라며 사태를 주도하는 순간 세월호 참사가 벌어져 이 사건은 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만일 기무사령관이 잘못 조언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다면 그때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누나회’(박지만씨의 육사 37기생들을 부르는 별칭)는 건재하다.이런 일련의 현상에 대해 군 장교들은 정보를 분석하기에 바쁘다. 우리 군에는 400여명의 장군과 3000명 정도의 대령이 있다. 이런 고위 장교단에 진출하기 위해 보직과 경력을 관리하는 중령, 소령들이 수만명이다. 계급과 직책이 높아질수록 군의 문화를 주도하는 장교단의 집단정신이 고양되어야 하지만 과도한 진급 경쟁에 내몰리는 한국군의 장교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과거 독일군 장교단의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 이스라엘 장교단의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와 같은 집단정신이 한국군 장교들에게는 무엇일까? 이런 집단정신보다는 특정 장교에 대해 “아무개는 누구 사람”이라는 사적 파벌을 지칭하는 용어가 통용되는 것이 군의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소속된 조직에서 1등을 하면 진급이 된다”는 믿음이 약화되고 정치권이건 청와대건 누구에게든 줄을 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확산된다면 군의 정신은 이미 무너졌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청와대가 군 장교들의 신상을 직접 검증한다는 원칙이 정착되고 난 이후 군의 집단정신이 무너지는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육군에서 진급 추천을 받았다고 해도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의 노골적인 개입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군 유력자들이 청와대에 즐비한 상황에서 그 간섭의 폭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10월 정기인사는 청와대 김관진·박흥렬과 한민구 국방장관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고위 장교들은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의식하며 초조주를 마시고 있다.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