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먼저 풀고 6자회담 문턱 낮춰야

강태호 2014.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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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북한의 핵심인사들이 12시간여 인천에 머물다 간 뒤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남북관계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북은 왜 이들을 보냈는지부터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아니 그 보다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 등등을 놓고 좀 다른 얘기를 듣고 싶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른바 남북문제 전문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30여년 경력의 외교관 가운데 그는 좀 독특하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가시가 센 생선 같은 사람”인데다 우리 외교는 분단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는 소신이 매우 강하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엔 6자회담 수석대표,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통상부장관으로 북핵과 2차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지위에 있었다.
7일 아침 신용산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에서 그를 만났다. 방에는 책상 하나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4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간이 소파만 있을 뿐 흔한 책장도 없었고 컴퓨터도 없었다. “생각하는데 컴퓨터는 별로 필요 없다. 공직에 있을 때 적어뒀던 메모를 보며 통일을 위한 외교는 어떤 것이 돼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그 결과가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는 올 봄에 박근혜 정부의 외교를 두고 “내건 간판과 파는 물건이 다르다”고 쓴 소리를 한 뒤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까칠한 얘기보다는 조언 쪽에 가까운 주문이 많았다.
   북한이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핵심인사로 이뤄진 대표단을 보낸 배경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것은 이를 통해 북한이 뭘 얻을 것인가라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일거삼득이다’라면서. “북한으로서는 그야말로 잃을 게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내, 대남 관계에 있어 측근들을 보냄으로써 자신감을 과시한 측면이 있다.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7위라는 성적을 낸 건 자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다. 과거 동독이 세계 2위의 스포츠 강국으로서 서독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하면서 국가적인 결속을 도모했듯이,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스포츠는 국력이자 자신감이다. 국제행사에 한 이벤트를 만들어 적절히 활용한 셈이다. 우리도 과거에 그랬다. 또 이를 통해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해서도 입지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일본과의 납치문제 조사와 관계 정상화 교섭은 정략적인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간단치 않다. 대미, 대중 관계도 어렵다. 사업하는 입장으로 비유하자면  남쪽과 대화를 트는 건 거래 선을 다양하게 확대하여 여유를 찾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쪽과의 경제협력은 북에게는 변함없이 필요한 일이다.”
  이들의 방문을 통해 북은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 인권 문제 제기 등을 이유로 거부해온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수락했다. 그러나 ‘중량급’ 대표단이 온 것에 비하면 ‘경량급’ 합의라는 지적이 따랐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남북관계에서 건설적인 논의와 합의를 해가는 관행이 존재해 온 게 아니고, 사전에 조율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분위기 타진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쪽이 북한 인권, 핵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북쪽은 북쪽대로 남쪽 지도자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든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이 적대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선린 이웃관계로 바뀌고 그 다음 민족공동체의 관계로 나아가야겠지만 아직은 서로 견제하고 갈등하면서  의중을 시험하면서  이기고 지는 게임을 하는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는 남쪽이 박근혜 대통령 면담 가능성을 열어놓은 반면에 북쪽이 응하지 않으면서 불발이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분석했다. “ 우리로서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여주려 했겠지만, 북은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걸 원치 않았다고 볼 수 있고, 남은 면담 성사 그 자체만으로 보여주는 게 되지만, 북은 손에 잡히는 게 없는 것으로 봤을 것이다. 남북이 아직 게임을 하는 단계에 있는 것이고, 대화와 협상의 국면으로 들어가기 전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빠지는 밀물과 썰물사이에 간조기가 필요한 것과 같다.”
   이번 북쪽 고위급 인사들과의 접촉으로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관진 안보실장이 카운터 파트가 되고,  김양건 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 교통정리가 됐다. 지난해 북은 통일부 장관의 상대는 북의 통전부장이 돼야 한다는 남쪽의 요구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남북 장관급 회담이 무산됐던 것에 비춰보면 북의 변화된 자세다. 송 전 장관은 이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간 두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던 만큼 이제는 남북관계의 국면을 충격요법과 같은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보였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쪽 총정치국장, 북쪽 통전부와 통일부의 통-통라인이 되든 어떤 것이든 공개적이고 정상적인 채널을 통해서 협의를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기초작업 없이 정상회담을 통한 극적인 국면 전환 방식은 언제든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 밑에서부터 합의를 쌓아가면서 그 결과로서 관계를 변화시켜야 간다.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앞에 둘 것인가 뒤에 둘 것인가로 구분해서 본다면 입구론 보다는 출구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5.24조처로 막혀있는 지금의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5.24를 그대로 둔 채 남북관계를 진전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입구론’의 관점에서 정상회담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가 않다.
  “5.24 조처로 인한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상회담 만능론 이라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쉬운 것부터 할 필요가 있다. 금강산 관광재개로부터 해나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사건은 당시 ‘불가피한 상황에서 생긴 일’ 이었다고 북한 군 책임자가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이게 바로 사과로 가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불가피한 상황이 뭐였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과의 취지 표현과 재발방지 대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북한도 현대 아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
   그는 보다 큰 틀에서 남북이 안고 있는 여러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라는 문제를 ‘상위 정치’와 ‘하위 정치’의 개념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상호 체제인정, 안전보장, 서해 북방한계선 문제, 인권 등은 상위정치로 볼 수 있고, 경제협력 및 스포츠 문화 교류, 인도적 지원 등은 하위정치로 볼 수 있는데 하위 정치가 진전이 있더라도 상위 정치에서 충돌하면  관계발전에 명백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상위 정치의 타협만 있고 하위정치의 실질적 내용이 없으면 공허한 관계가 된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상위도 하위도 안되는 상황에 있다.
  게다가 그에 따르면 북한 핵은 상위 정치의 범주에 있는 핵심현안인데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북한이 핵문제는 미국과 상대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극도의 불신으로 인해 외교적 투자를 해도 국내 정치적으로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아예 상대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낸 조엘 위트는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겠다는 것’이며 가장 나쁜 대북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전문가의 목소리는 소수다.
  송 전 장관의 지론이긴 하지만 그는 6자회담 무용론 내지 협상 무용론을 한마디로 일축해 왔다. 다른 대안이 뭐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건 한국 역할론이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가 나서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출발점으로 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진전 없는 남북관계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직시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남북관계의 전제로 연계시켜서도 안되지만 분리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균형을 맞추어 병행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과 북한을 마주 앉힐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동맹국인 한국이 이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그럼 중국의 지지도 끌어낼 수 있다. 미국내 여론도 한국이 미국에 요구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협조를 받아낼 경우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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